" 기괴(奇怪)스러운 또 하나의 징조-석원태목사
(개신교와 로마카톨릭과의 통합)
본문: 로마서 1:16-17
세상이 요지경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언필칭 이러한 요지경의 세상을‘문화’라고 하는 말로 단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지경의 세상과 세상 역사는 알고 보면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미 이 세상 마지막의 요지경 세태를 예언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종말의 징조들입니다. 기독교 안에도 종말의 요지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옛날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세상과 함께 짝을 지으면서 날로 더하여 갈 것입니다.
지난 4주 동안 우리는 21세기의 중대한 징조들과 교회의 과제들을 생각하였습니다. 21세기 징조들로 20세기, 특별히 그 후반기부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던 역사의 벽보들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21세기와 연속선을 이루어 관계될 사건들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결국 종교화 시대로 가고 있음을 예견했습니다.
그 중에 우리는 정말‘기괴스러운 또 하나의 징조’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 천주교를 수장으로 하는 세계적 기독교 연합운동의 모습들입니다. 개신교와 로마 카톨릭과의 통합운동입니다.
우리는 종교개혁 482주년을 맞이하면서 로마 천주교와 개신교간의 통합(?) 움직임에 대하여 한번 직시해 봐야 할 사태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Ⅰ. 신,구교(新,舊敎) 움직임의 최근 동향
1994년 3월29일, 소위‘복음주의자와 천주교 연합(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이란 이름으로 이른바 ECT선언이 발표되어 미국 기독교계에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개신교의 대표적인 전도자 빌리 그래함(Billy Graham)목사를 위시하여 빌 브라이트(Bill Bright), 휘튼대학의 마크 놀(Mark Knoll), 풀러신학교의 리처드 뮤(Richard Mouw), 유명한‘Knowing God’의 저자인 파커(J. I. Packer), 감옥 설교자로 알려진 찰스 콜슨(Charles Colson), 오스 귀네스(Os Guiuness), 로버트슨(Pat Robertson) 등 이른바 쟁쟁한 복음주의자들이 천주교와의 통합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저들은 이른바 ECT 선언문에서‘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형제와 자매된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도들’이라는 말을 쓰면서“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인하여 믿음을 통한 은혜에 의하여 의롭다함을 얻게 됨을 확신한다. …한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 전파라는 한 가지 사명을 지향해야 할 단계에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대표적 인물인 빌리 그래함 목사는 몇 년 전부터“나는 나의 신앙과 로마 천주교의 신앙이 본질적으로 꼭 같은 것임을 발견했다.”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습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뿐 아니라 세계적인 개신교 지도자들과 부흥사들의 상당수가‘복음 전파의 한 목적’이라는 미명아래 천주교와 손을 잡고 있는 실정입니다.
1998년 12월 15일, 개신교 주류 교회는 물론 로마 카톨릭 교회, 오순절교회, 복음교회, 제3세계 교회가 모두 참석하여 세계적인 초교파 기독교 조직이 창설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짐 바브웨 하라레에서 제8차 총회를 연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카톨릭을 포함한 전세계 교회의 일치를 위한‘기독교회 및 에큐메니칼 조직 포럼(가칭)’을 창설키로 결정했습니다.
1998년 12월 19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 박종화 목사는 아프리카 짐 바브웨에서 열린 W.C.C. 총회에 참석하고 돌아와 가진 기자 회견에서“개신교와 카톨릭, 정교회가 참여해 사회 문제와 세계 문제에 관해 대화하는 범기독교 포럼을 우리나라에도 실현시켜 하나님의 정의를 사회 속에 알려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1999년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서울 혜화동에 있는 카톨릭교리신학원에서 한국기독교협의회(개신교)와 대한성공회, 한국천주교, 한국정교회 주최로 그리스도교 일치 주간의 예배가 모였습니다.
1999년 1월 25일부터 27일까지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바람과 물 연구소에서‘새 천년과 비전’을 주제로 젊은 종교인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모임에는 카톨릭과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유교의 40대 성직자와 평신도지도자, 학자들이 모여서 우리나라 종교문화의 과제와 비전에 대하여 논의한 일이 있습니다.
1999년 4월 14일부터 23일까지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그리스도 안에서 화해를 위한 세계적인 파트너’라는 주제로 92개국에서 200명의 여성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기도일 총회가 모였습니다. 여기에 참석하고 돌아온 한국교회 여성연합회 이정옥 회장은 기자 회견에서‘우리나라에도 개신교뿐 아니라 카톨릭과 정교회가 기도에 함께 동참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지난 6월 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루터교의 이스마엘 노코 사무총장과 카톨릭의 에드워드 캐시디 추기경은 공동기자회견을 갖고,‘양측이 칭의교리에 관한 합의문 선언에 완전한 동의를 보았으며, 오는 10월 31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합의서에 공동서명키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양측이 합의를 본 결론은‘칭의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물이며, 이는 선행을 실천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선행 속에 반영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 속에는 참으로 무서운 사탄적 함정이 들어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1999년 5월에는 로마 교황 바오로 2세가 정교회를 국교로 하는 루마니아를 방문하여 정교회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이것은 동서교회가 분리된 11세기 이후에 처음 있는 역사적인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 교황청은 성공회 총본부측에 2000년 5월에 로마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양측 교회의 수장인 요한 바오로 2세와 커레이 대주교와의 만남을 제의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신교측에서는 구교(舊敎)세계의 행보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실례로 지난 6월 24일, 캐나다 토론토 임마누엘대학에서 마친 세계교회협의회 신앙과 직제위원회 정례회의에서는 교회일치에 장애가 되고 있는 신앙전통에 관해 집중적으로 논의한바 있습니다. 여기에서 카톨릭과 개신교 등 서방교회와 정교회로 대표되는 동방교회가 부활절을 같은 날에 가져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는가 하면, 카톨릭과 루터교 사이에 구원론과 관련한 신학논쟁이 합의에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현재 유럽 개신교와 로마 카톨릭 교회 사이에 교회일치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 유럽교회협의회(CEC)와 카톨릭 유럽공의회 주교회의(CECC) 대표자들에 의해 작성되고 있는 교회 일치 선언문은 이미 1997년에 제안되었고, 유럽 교회들은 내년(2000년) 9월까지 선언문의 최종판을 발표하기로 하고 2001년 부활절에 공동예배를 드림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참으로 기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Ⅱ. 과연 칭의 교리에 대한 합의문이 정당한 내용인가?
양측이 합의를 보았다는 칭의교리의 결론을 다시 말하면‘칭의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물이며, 이는 선행을 실천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선행 속에 반영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994년 3월 29일, 미국에 소위‘복음주의자와 천주교의 연합’에서 발표된 선언문은 더 부드럽게“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인하여 믿음을 통한 은혜에 의하여 의롭다 함을 얻게 됨을 함께 확인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구라파나 북미에서 개신교와 천주교가 칭의교리에 대하여 완전합의를 보았다는 내용에 대하여 크게 유의해야 합니다.‘칭의와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선행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칭의와 구원)이‘선행 속에 반영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 속에는 천주교의 칭의와 구원개념이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천주교는‘칭의와 성화’를 합친 것을 구원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들은 칭의와 성화를 혼돈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칭의란‘사람이 선한 행위를 할 때 하나님의 의가 주입(infused)되어 점점 더 의롭게 되어가는 과정(process)’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어떤 윤리적인 법을 이행하고, 천주교가 만들어 놓은 여러 성사(聖事)들을 지키는 선행을 통하여 얻게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교리적 사상 때문에 사람이 지은 그 어떤 죄에 대한 용서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면죄부 같은 영혼매매상품(?)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십자군에 종군하든지 거룩한 성로마를 여행하면 그 효과가 면죄부와 동일한 것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온갖 류의 성골 숭배, 성의 숭배, 성상 숭배 등의 미신적 행위가 판을 치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서 합의된 발표문에는“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인하여 믿음을 통한 은혜에 의하여 의롭다 함을 얻게 됨을 확인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도 사탄적 함정이 깔려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오직 믿음(Sola Fide)으로’(롬 1:17)에 의한 칭의를 빼어 놓았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을 따라 외친 소리는‘믿음을 통하여’가 아니라‘오직 믿음을 통하여’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포룰(Sproul)은“이 ECT의 합동 선언문에‘오직’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는 것은 가장 기분 나쁜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로마 천주교는 저들이 성경과 동일시하는 트렌트 종교회의(1545-1563년)에서 공포한 칭의 교리를 만천하 앞에서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 나타난 칭의 교리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법정적 선포가 아니라, 인간의 선행(노력)으로 칭의가 만들어져 가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개혁자 칼빈(J. Calvin)은 말하기를“사람이 칭의를 통해서 의롭게 만들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 하고 인정되어지는 것인데, 이것은 자기 자신의 의로움을 인하여서가 아니라 그 사람 밖에 있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인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칭의는 단회적이고, 성화는 점진적인 것입니다. 결코 칭의는 사람의 선행 속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imputation)되는 것입니다.
Ⅲ. 개신교와 로마 카톨릭과의 통합운동은 또 하나의 기괴스러운
종말의 징조.
지난 6월 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루터교 이스마엘 노코 사무총장과 카톨릭 에드워드 캐시디 추기경의 공동 기자 회견을 가리켜,‘마르틴 루터가 독일의 비덴베르크 교회 문에 카톨릭에 대한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인 후 482년만에 루터교와 로마 카톨릭 사이의 칭의(Justification) 교리와 관련된 논쟁이 그 종지부를 찍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그것이 과연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의 장벽이 무너지는 종지부가 될 수 있는 일일까?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장벽이 칭의 문제뿐일까?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의 교황권, 중재자로서 마리아, 성사를 통한 구원설, 성자 숭배, 성물 숭배, 성체 성사, 연옥설,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대사면권, 위경 인정, 평신도 성경읽기 금지는 물론 그 외 이루 말할 수 없는 온갖 종류의 유치한 미신적 행위, 각종 우상을 함께 섬기는 범신론적 종교 혼합운동 그리고 교회사에 결의된 여러 이단 교리들…의 장벽이 무너질 수 있는 성격의 것들인가? 로마 카톨릭은 그야말로 총체적 이단이 아닌가?
로마 천주교야말로 교회사에 나타난 뚜렷한 벨리알이 아닌가?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 6:15-16)? 두말 할 나위없이 이러한 통합사상이나 운동은 기괴스러운 종말의 징조 중에 하나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5장 6조 중에는‘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교회의 머리되시는 분이 달리 아무도 없다. 그리고 로마의 교황 역시 어떠한 의미에서든지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다. 다만 교황은 적그리스도요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며,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와 및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에 비하여 자신을 높인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 카톨릭이 기독교인가, 비기독교인가? 아니면 기독교가 아닌 이단인가? 이런 질문은 사실상 초보신자들에게 속한 질문이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놀라는 것은 이런 질문이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로마 카톨릭은 기독교가 아니고 총체적 이단입니다. 그럼에도 로마 카톨릭은 기독교이다, 아니면 기독교와 같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성경이 말한 이신득구(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음) 사상은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우리 종교개혁 선배들은 여기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항쟁했습니다. 5,000만 명이 넘는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이 진리 파수와 증거 때문에 잔혹한 로마 카톨릭의 종교재판에서 희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세대의 사람들은 이러한 칭의 교리(구원)를 무슨 다른대에 나타났다가 지금은 멸종되어 버린 공룡(?)처럼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로마 카톨릭과 통합을 주도하는 개신교 지도자들은, 16세기에 일어났던 종교개혁을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잘못된,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저들이야말로 교회 분리의 원흉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일어나 종교개혁자들을 정죄해야 되지 않겠는가?
로마 카톨릭에서는, 종교개혁 당시에는 우리의 선배들을 반항자들(Protestant)이라고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름이 축복의 대명사처럼 교회사적인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후에 저들은 개신교를 가리켜 다시‘나뉘어진 형제들’이라고 하며 부드럽게 나타났습니다. 정말 가증스러운 속임수입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이 개신교보다 수가 적을 때는 우리 앞에 양(羊)처럼 나타납니다. 그 수가 비슷할 때는 이리처럼 나타납니다. 그러나 카톨릭의 수가 많을 때는 우는 사자처럼 나타나고 있다는 교회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 구라파에는 개신교의 수가 너무 미미합니다. 대부분의 나라는 카톨릭이 국교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판세에‘통합인가, 흡수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미국을 위시한 대부분의 신교 국가들의 교회가 하나님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카톨릭은 여전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국의 개신교가 각성을 해야 할 때입니다. 2,000년 기독교 선교 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축복을 받은 한국교회입니다. 한국 기독교 100년 역사 중 초기에 무당교와 불교와 유교의 박해를 이겼습니다. 그후에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박해를 순교로 대처하였습니다. 6.25동란 후에도 한국교회는 공산주의와 대처하면서 수많은 순교자를 내었습니다.
그래서 그 순교자들의 피가 오늘 교회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영의 눈을 들어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예언하신 마지막 날의 징조를 직시해야 합니다. 더욱이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가 교회일치운동이라고 하는 미명아래 통합운동을 하는 사태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깨어서 진리를 파수하고 포도원(목장)을 지켜야 합니다. 신령한 전투를 해야 합니다. 참으로 자다가 깰 때입니다.
함만(Hamann)은 말하기를, '오류를 공식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헌신의 표시이다. 저주할 수 없는 사람은 축복 역시 할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교회가 받은 별들의 전쟁의 전투 임무 중에 하나가 바로 여기에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아 멘-
http://my.netian.com/~wcc0691/Data/롬1-16.htm
위의 전체의 글은 석원태 박사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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