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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개혁해야할신앙

[스크랩] 기복적이고 실용주의적 설교의 폐해

80년대 이후 한국교회 설교의 동향과 전망(5)
청중의 기복주의적 기대와 왜곡된 하나님의 이미지 ②기복적이고 실용주의적 설교의 폐해
2006년 06월 21일 (수) 13:10:13 [조회수 : 1095] 이승진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는 한국교회는 예전의 전통적인 설교에서 새로운 환경에 어울리는 설교를 찾아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본지는 ‘21세기 하나님나라 공동체를 세워가는 설교는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의 일환으로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설교학을 강의하고 있는 이승진 교수의 ‘80년대 이후 한국교회 설교 동향과 전망’을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 글이 목회자들의 바람직한 설교사역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편집자 주)

 

 

성경에 기록된 구원사의 과정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며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선포하지 않고, 이 땅에서 어떤 자세와 통찰을 가지고 살 때 이 땅에서 복락을 누리며 살 수 있는지에 관한 실용적인 통찰을 제시하는 설교가 무엇이 문제인가? 성도들을 방종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영적인 건덕을 제시해 주며 교회가 부흥하는 이런 류의 설교가 과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이런 설교를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목회의 현장을 모르고 상아탑에 갇힌 학자들의 한가로운 투정에 불과할까?

 

이런 류의 설교가 가진 최대의 문제점은, 그 설교가 지향하는 하나님의 모습이 성도가 언젠가는 만나 대면하게 될 참 하나님의 모습과 상당 부분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실용주의적 기독교를 강조하는 설교는, 이 땅에서의 윤택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전제로 할 뿐만 아니라, 그 이기심을 달성시켜줄 헛된 신을 상정하고 있다. 이 헛된 신은 인간의 이기심을 폭로하고 그 이기심의 비참한 종말을 직시하게 하면서 이 땅의 삶을 부인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고 그 나라를 위하여 이 땅의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과는 정반대이다.

 

인간의 이기심을 기본 축으로 삼는 설교는 하나님의 의도와 정반대의 길을 추구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당장에는 성도들에게 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이미지를 심어놓는 비극을 초래한다. 이런 설교의 일차적인 폐단은 성도들에게 역사와 우주를 주관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과 지혜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고 그 하나님의 장엄한 섭리의 시각에서 자신의 삶을 거시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대신에 성도들의 뇌리에 그저 몇 가지 간단한 적용적인 지침들이나 인생의 성공 비결과 자세만을 인간이 그 원칙에서 벗어나는가 아니면 벗어나지 않고 잘 지켜가는지를 고집하고 집착하는 옹색하고 편협한 산타클로스 하나님만을 심어 놓는다. 그리고 그런 몇 가지 원칙과 비결만을 고집하는 편협하고 옹졸한 하나님의 모습이 성도들의 뇌리에 각인될 때, 그런 하나님은 오늘날 이 세계의 정치 질서를 재편하고 있는 조지 부시나 강대국 수반들보다 더 무능력한 신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마치 뒷골목에서 몇 가지 요행수를 내걸고서 사람들의 심리를 다독거리는 점쟁이처럼 몇 가지 성공 비결만 고집하는 존재로 다가올 때, 그런 하나님은 급속도로 발전해가는 IT 산업이나 BT 산업 현장에서 거대한 인간 맘모스 군단들이 품어내는 신기술의 지혜와 능력에 비할 때, 또 하루가 다르게 치솟아 올라가는 이 세상의 높은 건물들과 그 부귀와 영화와 비교할 때 참으로 보잘것없는 신이 아닌가? 그리고 세상의 부귀영화가 더 크게 다가오는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는 그런 별 볼일 없는 하나님을 마치 대단한 구세주로 모시고 떠받들면서 살고 있는 교회 성도들이나 그런 신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교회의 여러 행사들, 그리고 그런 별 볼일 없어 보이는 하나님을 무슨 대단한 것인 양 목소리를 높이는 설교자의 행색도 하찮게 보이기에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다섯째로 8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설교에서 설교자의 위치가 예전에 권위를 확보했던 모습에서 점차적으로 그 권위가 쇠퇴해갈 뿐만 아니라 설교자의 적극적인 역할이 위축되고 설교자의 전인격적인 역할이 배제되는 가현설적인 설교가 서서히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설교에서 설교자의 적극적인 역할이 축소되는 배경으로는 이 시기에 한국교회는 자신이 직접 교회를 개척했던 1세대 목회자를 떠나보내고 새로 부임하는 후임 목회자나  세습 목회자를 맞이하게 되는 추세와 모종의 관련이 있다. 개척 1세대 목회자들과 달리 후임 목회자들은 교회의 권위에 있어서나 그 열정에 있어서 선임 목회자와는 자연히 비교가 되며 이는 그대로 설득력 있는

설교를 위한 설교자의 합당한 권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또한 설교에서 설교자의 전인격적인 역할이 축소되면서 설득력이 없는 설교가 범람하게 되는 배경으로서는 앞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설교 횟수의 증가와 설교 자료의 범람 속에서 설교 준비 과정에서 설교자가 핵심 메시지와 전인격적으로 관계를 맺지 못하고 그저 지식적인 차원에서만 관계를 맺고 전달하다보니 결국 설교에 설교자가 없는 설교, 설교자의 전인격적인 확신과 그를 기반으로 하는 설득과 감동이 일어나지 못하는 설교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즉 설교에 설교자가 정당하게 자리매김됨으로서 청중 편에서 감화와 설득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설교 횟수의 조정과, 설교 준비 과정에서의 전인격적인 개입, 핵심 메시지에 대한 전인격적인 관계 맺음과 그에 따른 설교자의 분명한 확신, 그리고 인격적인 모범과 감화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넓게는 설교를 목회 전체를 아우르는 목회 철학과 연계시키면서 그 목회 철학을 실현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설교를 도구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목회 전체가 하나님나라의 백성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라면, 구체적으로 설교 한편은 어떤 성경 본문에서 펼쳐지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와 영광과 은혜를 자세히 제시해줘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현재 이 교회 안에서 자기 백성들을 이끌어가고 계심을 확인시켜줌으로써 성도로 하여금 그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반응하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모든 설교를 이 목적에 일치시키면 그 목적에 대한 확신 속에서 자신의 전인격적체 속에서 쏟아지는 살아 있는 성육신적 메시지로 성도들에게 울려올 것이다.

 

   
 
  ▲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이승진 교수.  
 
설교에서의 하나님의 임재라는 관점으로 한국교회 설교를 연구하여 남아공 Stellenbosch 대학에서 설교학 박사학위(Th. D)를 취득한 이승진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는 <프리칭 예수>나 <설교학 사전> 등 여러 권의 설교학 관련 도서를 번역 소개하였으며, 한국교회 설교목회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다.

출처 :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글쓴이 : 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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