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순복음 실업인 협회는 오순절/로마 카톨릭 카리스마 친교와 일치를 위해 일했다. 실제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지역 모임과 대중 집회는 오순절/로마 카톨릭 카리스마 일치를 환호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모든 집회들 중 절정을 이룬 것은 6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의 필라델피아의 시민 센터에서의 모임이었다. 그곳에는 2만명 이상의 오순절 운동가들과 카톨릭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이 제28차 세계 집회에 참석하려고 모여들었다.
"장벽이 아니라 다리"가 이 집회의 슬로건이었다. 순복음 실업인 협회의 공식 간행물인 「보이스」(Voice)지 9월호에 제시된 대로 분명히 그 집회의 목적은 카톨릭 교회와의 일치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보이스」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업인 협회와 로마 카톨릭 신자들 사이의 길고 의미심장한 관계는 필라델피아의 대주교이자 추기경이 보낸 대표의 인사 속에서, 브라운 사제의 주요 연사로서의 역할 속에서, 그리고 필라델피아 지역 카톨릭 평신도의 인상적으로 많이 참석했다는 점에서 매우 새롭게 표현되었다. 브라운 사제가 카톨릭/프로테스탄트의 분열의 껍질을 벗고 서로 화해하자는 내용의 '짓이긴 감자'에 관해 연설하자,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그 후 순복음 실업인 협회의 월간지인 「보이스」지의 1981년 11월호가 나왔다. 이 잡지는 「놀라운 교황 요한 바오로 23세」(Amazing John XXIII)라는 책에 대한 광고로 가득 찼다. 이 잡지는 교황 요한을 하나님의 참 자녀로 묘사하며 저자의 말을 빌려 "틀림없이 요한은 성도,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된 하나님의 성도"라고 말한다(p.9). 교황을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자라고 보는 사상이 그 글 전체를 통해 흐르고 있다. 한 곳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그는 땅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자기가 늘 살아온 방식대로 하나님의 아들의 자유 안에서 살았다"(p.108). 순복음 실업인 협회도 이런 확신을 가졌으며, 이 기구는 온 세상의 모든 기독교 신자들이 교황에 대해 그와 같은 태도를 갖기를 바라고 있다.
도대체 누가 교황 요한 23세를 가리켜 성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던가? 작가인 프레드 라데니우스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라데니우스 박사는 누구인가? 그는 바티칸 출판국의 일원이었으며 교황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 밑에서 일했던 사람이다. 그는 지금도 로마 카톨릭 교도이며 교황권을 비롯한 카톨릭계 안에서 이리 저리 활보하며 다니는 사람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라데니우스 박사는 순복음 실업인 협회의 잡지인 「유럽 보이스」지의 편집자이다. 그러므로 이 「보이스」지는 교회의 일치를 위한 바티칸의 생각과 정책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편집자는 교황들 중의 한 사람에 대한 일반적인 카톨릭 교도들의 평가, 즉 그가 성인이라는 평가를 내렸을 뿐이다.
물론 사람들은 "요한 23세가 언제 거듭났으며 어떻게 거듭났는가?"하고 묻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점에 대해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 책은 교황이 거쳤던 "어린 아이, 학생, 대학생, 사제, 그리고 채플린, 외교가, 혹은 주교와 교황의 단계들"에 대해서만 말한다. 이 기간 중에 그는 늘 하나님의 어린이였는데, 그 이유는 그가 유아세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교황 요한 23세가 바티칸 공회를 소집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가 이 공회를 개최한 목적은 온 종교계를 하나의 덮개, 즉 로마 카톨릭 교회 아래로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그가 세운 계획의 상세한 내용들은 「제 2 바티칸 공회 문서」에 들어 있다. 요한 23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에큐메니칼 공회의 가장 큰 관심은 기독교 교리의 거룩한 침전물이 더 효과적으로 보호되고 가르쳐져야 한다는 것이다..."(p.713) 그는 이 공회 기간 중에 죽었으며 자신의 임종시까지도, 그는 전혀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된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를 글자 그대로 믿고 보존하고 실천하려했다.
교황 요한의 임종에 대해서는 바티칸의 직원들이 매시간 기록을 했다. 그 기록은 폴 드레이푸스의 「요한 23세」라는 책 안에 들어 있다. 프랑스에서 발행된 486쪽의 이 책은 손에 묵주를 들고 마리아와 성인들에게 기도를 하며 그들의 동상에 눈을 맞춘 채 죽어가고 있는 교황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의 대리 고백자인 카바그나 몬시뇨 역시 성인들에게 죽는 자의 기도를 드렸다. 미사를 드린 뒤, 그는 성체(빵조각)를 집어들면서 대리 고백자에게 말했다 "주님과 함께 내 곁에 서라." 그 뒤 그는 "내가 주교와 교황으로 죽도록 도우소서"라고 외쳤다. 드레이프스는 이 외침이 바로 "교권과 성도들을 세워주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p.398)
이제 순복음 실업인 협회는 바티칸의 종교통합주의, 즉 로마 카톨릭 교회와의 일치를 위한 협력 도구가 되어 버렸다. 순복인 실업인 협회의 집회와 세계 대회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열리는 오순절 은사 그룹의 모임에서 로마 카톨릭 자료들 및 인물들이 계속해서 인용되고 읽히고 수용됨으로써, 필라델피아에서 그들을 승인하며 나왔던 박수 갈채는 좀더 커지게 될 것이다.
6.공통적인 교황 단일체제
교황 교회와 하나가 되려는 것이 오순절 운동의 지도자들에 의해 표출되어 왔다. 초특급 영성으로 유명했던 캐트린 쿨만은 1972년 10월 11일 바오로 교황과 면담을 했다. 그녀는 "내가 교황과 만났을 때 거기에는 일치가 있었다. 그에게는 통역자가 있었지만, 사실 우리 사이에는 통역자가 필요 없었다"라고 말했다. 렉스 험바드도 역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방문했다. 그는 1980년 3월호 「앤써」(Answer)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자, 나는 우리의 사명이 하나라는 것을 점점 더 느끼게 되었다. 즉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 주 안에서 형제들을 늘이는 것, 왕국을 위해 온 세상을 얻는 것, 예수께서 나누라고 한 메시지를 나누는 것 등이다."
또한 「로고스」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은사 부흥 운동 속에서 데이빗 두 플레시스만큼 영적 부흥이 은사주의적이어야하고 종교 통합주의적이어야 함을 확신 시켜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1981년 1,2월호)
바로 그 잡지에서 두 플레시스는 오순절-로마 카톨릭 일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고 일치를 위해서 교회는 오순절에 교회에 내렸던 복을 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두 플레시스는 사실 적은 규모의 그런 일치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것은 20,000명의 은사주의자들이 카톨릭 교회 내의 은사 부흥 회의를 위해 1975년에 바티칸에 모였을 때 성 베드로 성당에서 일어났다. 두 플레시스는 그 경험을 이렇게 말한다.
"바오로 교황이 보좌로 갔고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성령과 함께 하는 찬양이 있었는데 그것은 참으로 부드럽고 존경심을 내포하고 있었으며 참으로 그 자리에 잘 맞는 것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오순절 예배였고 오순절 현상이었으며 명백한 오순절 축복이었다. 우리는 모두 오순절 기적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아무도 새 오순절이 그렇게 풍부하게 적극적으로 나타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그 밤에 모든 오순절 운동에서 세 가지 경향이 작용하고 있음을 인식했다. 고전적인 오순절주의자들이 있었고 신 오순절주의자들과 카
톨릭 오순절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경향들은 협력과 친교 속에서 점점 모여지고 있었다...'영광이 있으라!' 나는 내 자신에게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어둠 속에 대고 크게 외쳤다. '데이빗, 너는 지금 참 초교파적(종교 통합주의자)이다!' '그렇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나는 완벽한 종교통합 -민족들의 전체가족을 포함하는- 만을 인정할 것이다"(「A Man Called Mr. Pentecost」p.238~244)
두 플레시스 자신은 앞에서 요구된 질문에 대답했다. 로마 카톨릭과의 결합에 관한 오순절주의자들의 입장은 무엇인가? 그들의 대변자이자 "미스터 펜테코스트"라는 이름을 지닌 이 사람은 그 질문의 대답이 "완전한 종교통합"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완전한 종교통합"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이미 그 대답을 들었다. 그것은 로마 교회의 수장이 제4차 국제회의에 참석한 523명의 카리스마적 대표자들과 만났을 때 이미 말했던 바 그대로이다. "완전한 종교 통합"이란 로마 카톨릭 교회와의 완전한 일치이며 절대적인 의미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와 일치됨을 의미한다.
7. 승인의 침묵
이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오순절주의자들의 소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아무 데도 없다! 사실상 그들의 침묵은 오히려 우리의 귀를 멍멍하게 만들고 있다! 집회와 회의와 잡지와 책들은 한결같이 염려의 목소리나 기록 없이 로마 교회와의 전체적이고 절대적인 결합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세계적인 오순절 운동의 광경은 전체적으로 불길한 고요함, 즉 하늘의 천사들조차 죽은 것 같은 침묵이라 일컬을 수 있는 예시적인 고요함만을 보여준다.
또 다른 무서운 침묵이 있다. 그것은 카톨릭의 카리스마 부흥 운동의 스타디움에서 나온다. 왜 그 안에는 사도적 진리로부터 자신들의 교회가 이탈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외침이 하나도 없는가? 결국 로마는 여전히 물세례에 의한 죄인의 중생을 고수하고 있다. 구원은 선행과 성례전적인 은총과 개인의 희생과 공적 제도로 말미암는다. 그들에게는 개인적인 영혼에 대한 확신이 없다.
속죄는 금식과 참회와 기도와 면죄부를 통해 이뤄진다. 영혼의 구속은 여전히 연옥의 틀 안에서 완성된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기도가 드려지고 그녀는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하시는 분으로 숭배된다. 마리아는 여전히 로마의 하늘의 여왕이다(렘44장을 보라). 성인들은 중보자라는 칭호를 받는다 유품과 동상과 성인 숭배가 여전히 인정되고 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죄를 인한 미사에서 그리스도는 매 시간마다 바쳐진다. 성찬 빵 조각은 하늘의 참 하나님으로 숭배된다. 그리스도와 그의 흘린 피에 의한 구원은 여전히 공식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거부되고 있다.
그 안에서는 반대나 불일치의 중얼거림 혹은 불만족의 속삭임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죽은 것 같은 무언의 동의 속에서 은사주의 지도자들과 수천만의 추종자들은 이같은 교리들과 공회의 가르침에 집착한다. 이런 가르침들은 초기 교회 안에서는 알려져 있지도 않았고, 그로부터 수세기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타났다. 8억5천만 명의 카톨릭 교도들에게 이런 잘못된 것들을 경고해주는 경종도 없었고, 사람이 만든 이 종교 체제에 대한 경고도 없었다. 그 대신에 비성경적며 기독교에서 배도한 제도가 아직도 조용히 본래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이같은 현상은 미래에도 유지될 것이다. 실제로, 변화하려는 생각 자체를 제거하려는 것은 카리스마적 회의를 환영하는 자리에서 현 교황에 의해 재확인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에 관한 필연성 때문에 트렌트 공회의 가르침은 여전히 효력이 있으며, 그것은 카톨릭 교회 안에서 영원히 효력을 발휘하리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초자연적으로 이해된 타인의 면죄를 위한 사랑은 (이 면죄들은 죄와 화해의 성례전에 대한 확신과 함께 내생 특히 연옥에 대한 신앙과 함께, 그리고 신비스러운 몸의 공적들이 나타나는 것, 즉 '성인들의 통공'과 연결되어 있다. '성인들의 통공'이란 곧 성인들이 카톨릭 교도들을 대신해서 빌어준다는 것임) 진정한 카톨릭 정신의 포괄적인 신원표이다."(「Papal Address to the Holy See's Priest Penitentiaries」, the Catholic Register, 1981년 2월28일)
마침내 사탄은 비카톨릭 오순절 운동권과 역사적 로마 카톨릭 교회를 결합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놀라운 위업은 실제적이며 매우 강력한 영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영은 사도들이 죽은 후 수세기가 지난 후에 로마 카톨릭 교회라는 혼합체를 태동시킨 영으로 결코 새로운 영이 아니다. 그후 이 영은 이 시간까지도 카톨릭 주의를 교육하고 발전시키고 통제하고, 그것에 영감을 주고 나아갈 방향을 지시해 주고 이용했다. 오늘날 이 영은 오순절주의에 도달해서 그 속으로 스며들어갔으며, 지금은 오순절 자녀들을 그들의 본래의 집으로, 즉 로마 카톨릭 주의로 데려오고 있는 것이다.
8.거듭남과 어둠
"다시 태어난다"라는 어구는 오순절/은사주의가 늘 외치는 소리이다. 모든 은사운동은 성경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또 다시 태어났다는 그들의 주장이 실제로 합법적인가? 바꿔 말하면 은사 체험은 진정인가? 아니면 그것은 거짓 영의 산물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어질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거듭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진리이며 인간을 하나님의 말씀과 결합시켜주는 것이다. 따라서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다 진리와 결합되었다. 하나님의 성령님께서는 성도로 하여금 진리를 믿고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위해 싸우고 사람들을 진리로 이끌며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도록 하신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거듭남은 빛과 어둠을 구별하고, 어둠과 반대되는 빛을 믿고 어둠에서 나와 어둠을 피하는 사람을 만들어 낸다. 성도는 자신의 주님처럼 어둠을 미워해야 한다(히1:9을 보라). 거듭남의 첫 열매, 즉 성도의 첫 사랑은 "사악함에 대하여 기뻐하지 않으며 오히려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전13:6).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온전히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순절 은사주의 안에서의 '거듭남'의 경험은 실제로 거의 진리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진리를 사랑하고 강조하는 대신에 카리스마적 운동은 성경 교리, 즉 진리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반대한다. 더구나 오순절/은사 집단들은 가장 나쁜 형태의 어둠이며 영적 실수 집단인 로마 카톨릭 주의와 친교를 나눈다.
구세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분께서 오시면 그분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분께서는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듣는 그것만을 말씀하시며, 장래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요16:13) 거듭남을 주장하는 영이 진리에 대해 별로 혹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영이 사람들을 어둠으로 혹은 실수로 이끌 때, 그것의 정체에 관한 모든 의심은 제거된다. 이것은 바로 적그리스도의 영이다. 이것은 현 오순절 은사주의의 실제적인 이미지이다. 오순절 은사운동이 진리에 대한 사랑을 보이지 않고, 사람들을 오도하여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과 친교를 맺도록 이끌므로, 그것은 어둠의 영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