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오순절주의의 시작 : 신비주의
* 이 글은 '도서출판 두루마리'에서 출간한 「오순절 표적 부흥의 실체: 펜사콜라, 빈야드, 아주사 신드롬」를 옮긴 것입니다. 성도님의 유익을 위하여 여기에 올린 것이니 무단 복제를 하지 마시기 바라며,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판사와 책 이름을 밝히시기 바랍니다."
기적들! 그들은 신비한 어떤 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원했다. "선생님,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마12:38). 이처럼 우리 귀에 익숙한 요구가 우리 구주 예수님의 귀에까지 들렸던 것이다. 지난 수천 년 동안 그분께서는 인간의 가슴속에 깊이 존재하고 있는 그런 욕망들을 보고 계셨다.
신비한 초능력을 보려는 욕망은 언제나 사람들을 마술로 이끌었다. 야곱의 후손들은 이집트에 그런 신비한 일들이 매우 많음을 보고 현혹되었다. 이집트왕 파라오(바로)의 마술사들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은 - 특히 이런 것들이 이집트의 신들(gods)로 인해 이루어지게 되었을 때 - 유다인들의 가슴속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러나 이런 신비주의를 추구해 보려는 그들의 욕망은 결국 시내산에서 큰 재난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아론에게 이집트 신의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방 신들이 보여주는 신비한 능력과 그들의 임재를 바라는 깊은 갈망은 결코 그들을 떠나지 않았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의 삶이 시작된 지 채 200년이 못되어, 그들은 또 다시 과거 그들의 조상들이 갈망해 오던 것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초자연적 능력을 보려는 욕망은 결국 이스라엘 국가의 몰락을 가져오고 말았다. 그들은 그 같은 사악함 속에 푹 빠져들게 되었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우상 숭배로 가득한 바빌론으로 추방시켜 버렸다.
그로부터 약 50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속하실 때가 되었다. 바로 그때에 고대로부터 그들이 갈망해 오던 욕구가 갑자기 되살아났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어떤 신비하며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임재하기를 고대했던 것이다. 또한 그 같은 신비는 그들의 육신의 오감(五感)을 통해서 드러나야만 했던 것이다. 확실히 그 신비는 손으로 만져지며 보이는 형태를 통해 인지될 수 있어야만 했다.
이 같이 정당화된 요구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분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주지 아니하리라. 요나가 사흘 동안 밤낮으로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사흘 동안 밤낮으로 땅의 중심부에 있으리라."(마12:39,40).
이 구절에서 우리 예수님께서 '표적'이란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어 '세메이온'(Semeion)을 번역한 것으로서 '표시' 혹은 '드러남' 등을 의미한다. 바인 박사(Dr. W. E. Vine)는 자신의 신약성경 단어들에 대한 강해 사전에서 그 단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단어는 신성의 권세나 권능의 표시로서 일어난 기적적인 일들의 표적, 마크, 드러남, 표시 등을 의미한다. 예들 들어 고전1:22에 보면 '유다인들은 표적을 구한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 구절은 사도들 역시 예수님처럼 유다인들로부터 똑같은 요구를 당했음을 보여준다."
비록 예수님께서 자신의 교회의 초기 사역기간에 기적들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지만, 이 같은 것들은 곧 바로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믿음'과 '보는 것'이 공존하는 것이 비생산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없이는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을 원하셨다(히11:6) 성경은 믿음이 눈에 보이는 초자연적인 능력과 함께 병행되었을 때 항상 쉽게 시들게 되고 부패하게 됨을 보여준다. 사도 바울이 "믿음은 소망하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히11:1)라고 말씀해 주었듯이, 믿음은 반드시 홀로 서야만 한다.
그런데 또 다른 일이 벌어졌다. 사탄이 초자연적이며 신비한 생산품으로 가득한 자신의 시장 바구니를 갖고 되돌아 온 것이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이슈가 되어 왔던, 눈에 보이는 초능력에 대한 인류의 욕망이 되살아났다. 그것은 먼저 고린도에 있었던 '불행한 교회' 안에서 생겨났고,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유다인들은 표적을 원한다."고 경고해야만 됨을 느꼈다(고전1:22). 사실 이 때 사도 바울은 초능력의 증거를 요구하는 인류의 욕망에 관한 불행한 역사를 회고했던 것이다.
고린도에서는 이상한 형태의 무아지경에 이르는 현상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복음전파를 돕기 위해 예수님의 승천 이후 첫 번째 오순절에 주어졌던 원래의 방언(타지방의 사람들이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던)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그것 대신에 알아들을 수도 없고 유익을 주지 못했던 이상한 모조품 방언이 들어서게 되었다. 사도 바울의 의심은 또 다른 사실로 인해 더 증폭되었다. 정상적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이상하며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대치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건전한 교리는 무시되었고, 오류들이 기승을 부리며 경건한 질서가 없어지게 되었다.
신비주의가 고린도 교회에서 득세하게 되었고,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대언자들의 영은 대언자들에게 통제를 받나니, 이는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와 같이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요, 화평의 창시자이심이라."(고전14:32,33).
여기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혼란'(confusion)은 말 그대로 '소용돌이' 혹은 '확고히 서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 같은 혼란이 생긴 까닭은 고린도 교회의 어떤 성도들이 "알지 못하는 방언"(unknown tongue)을 하는 동안 이상한 영(spirit)의 제재 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영은 그들의 제재 하에 있지 않았고, 결론적으로 그들은 어떤 누군가에 의해 조절되었다. 사도 바울이 경고했듯이, 그것은 예수님의 방법이 아니었다. 명백하게도, 이교도들의 신비주의가 고린도 교회를 침투했던 것이다.
실제적으로 볼 때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사람들의 피동성으로 인해 생기게 되었다. 그곳 성도들 중 일부는 자신들을 전적으로 무기력한 상태(명상 등을 통해서)에 빠지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웹스터의 「신 20세기 영어 사전」은 피동적인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신비주의자들 중에는 혼 혹은 다른 지적 기관들의 활동을 중지하도록 하는 사람들이 있다."
창조 이후로 인류를 기만해 온 '인간 영혼의 원수'인 마귀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 얼마에게 아무런 저항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신비주의라는 소용돌이를 스스로 택했기 때문이었다.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신비주의란 "인간의 어떤 이성을 통하지 않고 명상과 사랑을 통해 신과의 접촉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믿음"으로 정의되어 있다. 사도 바울은 이미 고린도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지각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노래하고 또 지각으로 노래하리라."(고전14:15).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불쌍한 신자들은 신비주의의 길을 선택했고, 그 결과 대언자들의 영이 더 이상 대언자들에 의해 제재되지 못했던 것이다.
고린도전서 1장은 신비주의의 토대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신비주의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이상 홀로 영광을 받지 못하고, "나는 바울에게 속한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한다.", "나는 게바에게 속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서 싹트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달리신 분을 제외하고는 너희 가운데서 어떤 것도 알려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바울 사도의 가르침에 대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이도 이미 놓은 기초, 즉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다."는 권면도 역시 무시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신비주의라는 또 다른 기초 위에 자신들의 집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자신들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대해 자랑스러워했고 사도 바울을 경멸했다. 그때에 사도 바울은 더욱더 강력한 말로 그들에게 경고했다.
"그러한 자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니,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느니라. 그러므로 사탄의 사역자들이 의의 사역자로 가장한다 하여도 결코 큰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들의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13-15).
사탄의 손으로부터 고린도 교회를 구해 내려는 노력의 마지막 일환으로, 사도 바울은 자신의 권위를 재확립시키려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이 보았던 이상과 계시들을 자심의 적들의 것과 비교했다. 물론 이렇게 함으로써 사도 바울은 스스로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좋지 못함을 인정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영화롭게 함으로써 내가 바보가 되었노라. 너희들이 강제로 내가 그렇게 하도록 했노라"(고후12:2,11)라고 고백했다.
사도 바울은 "뱀이 자신의 교묘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처럼"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두려워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확증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뱀에 의한 "다른 예수", "다른 영", 그리고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를 분별한 사도 바울은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하였는가를 시험해 보았다(요일4:1) 그는 눈으로 초능력을 확인해 보려는 고대로부터의 인류의 욕망이 바로 '신비주의'이며, 그것이 고린도 교회에 파급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그 광경 뒤의 희미한 그림자 속에 사탄이라는 존재가 우뚝 서 있음을 보게 되었다.
드디어 '사람의 영혼의 원수'는 교회 속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서기 2세기경에는 '새로운 예수'와 '새로운 영'을 따르는 이들이 많이 생겨났다. 역사학자 콸벤(Lars P. Qualben)은 「기독교회의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예언을 도입했다. 유세비우스는 그것이 전통적으로 지속되어 왔던 교회의 규례들과 상치되며, 황홀경속의 이상이나 시벨레(Cybele) 제사장들의 광적인 행태들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완전히 사로잡아 자신들을 통해 말하게 될 때 무아지경에 빠져들어가 의식이 사라지고 마음은 완전히 피동적이 된다고 주장했다. 유세비우스는 이 같은 황홀경 속에서 어떤 몬타니스트 예언자들이 '중얼중얼 거리며 이상한 소리들을 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사실 이런 것들은 19세기의 어빙주의자들과 그 뒤 유사한 형태의 회중들이 행하던 '�라 �라'와 비슷했다."
그로부터 수세기가 지났고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전세계의 종교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천주교의 수녀원들과 수도원들은 자신들의 초자연적 경험들을 기록하느라 일생의 대부분을 보낸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들은 이상을 보았고, 이상한 말들을 했고, 수없이 많은 계시들을 받았다. 그들은 다름 아닌 신비주의자들이었으며 명상을 통해서 자신들이 남들보다 우월한 '영성'(spirituality)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톨릭 신비주의에 깊이 빠진 사람들 중 유명한 사람들로는 기적 메달의 캐서린 라본, 아빌라의 테레사, 아씨시의 프란시스, 끌레베의 버나드, 예수회의 창시자로서 「영성 훈련」(Spiritual excercise) 교재를 만든 이그나셔스 로욜라, 프란시스 사비에르, 수녀 쥴리안 노르위치 등이 있다. 알퐁소 드 리구오라는 그가 기록한 계시들로 인해 바티칸으로부터 "교회의 박사"란 칭호를 받게 되었다. 그가 지은 「마리아의 영광」이란 책만큼 반(反)그리스도적인 책은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경건치 못하며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갈구하는 것이 고대로부터 늘 사람들 사이에 있어 왔지만, 이런 것을 추구하는 운동의 현대적 기원은 1819년 영국에서 일어났던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의 목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스코틀랜드 장로교인이며 유능한 설교자였던 어빙은 자신의 성공으로 인해 자만하게 되었다. 마치 사탄이 타락했던 것처럼, 어빙도 개인의 교만이라는 똑같은 멸망의 길에 들어섬으로써 영적 비극을 맛보았다. 1828년 드디어 어빙은 "그 영(spirit)에 의해" 초능력과 초자연적 경험의 영역으로 빠져들어 갔다. 인간의 타락이라는 교리를 거부하면서, 그는 황홀경, 이상, 방언, 신비한 일들, 무질서, 감정 주의, 계시, 그리고 오늘날의 오순절운동의 이단 교리들을 추구했고, 받아들였으며, 다른 이들에게 가르쳤다.
그로부터 채 1세기가 지나지 않아서, 미국은 오순절운동의 대활극장이 되어 버렸다. 1895년에 일어난 벤자민 어윈의 '불침례 성결교회'는 미국 서부에 퍼져 나갔다. 캔자스주 토페가에 있었던 파르함(Charles Parham)의 성경학교는 1900년에 '오순절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1906년의 '아주사 거리' 현상으로 발전되었고, 그로부터 오늘날의 전세계적인 오순절/은사운동이 나오게 되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성도들을 유혹해 온 '피리 부는 사나이'는 자신의 초능력으로 놀랄 만한 성공을 이루게 되었다. 현재의 오순절운동의 성장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오순절주의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역사학자인 사이난은 1985년 '오순절 연구 협회' 모임에서 연사로 초청되었고, 그 모임에서 그는 「기독교 세계 백과 사전」의 저자인 바렛(David Barrett)이 만든 보고서를 인용했다. 그 보고서는 1985년도 현재 오순절 교도들의 숫자가 1억 6천 8백만이며 20세기 끝에 가서는 4억 4천만을 넘게 될 것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그러한 예상이 모두 이루어지고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순절/은사주의 지도자들은 무서운 진실 앞에 정면으로 서야만 할 것이다. 바로 그날은 오순절운동이 아무리 순수해도 결국 신비주의였다는 사실을 드러낼 것이다. 지금까지 세상은 오랄 로버츠(Oral Roberts)로부터 짐 베이커(Jim Bakker)에 이르기까지, 미조리주로부터 극동지방에 이르기까지 오순절주의가 주장하는 이상들, 계시들, 음성들, 기적들 그리고 다른 초자연적 현상들을 동반하는 신비주의의 장면들을 보아 왔다.
이런 것들은 상상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적인 것들이다. 지금까지 이 책을 읽어 온 독자들은 오순절운동을 이끌고 가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더 듣게 됨에 따라, 신비주의의 참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더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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