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략>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께서는 상대적으로 교회에 많은 연보를 내실 수 있는 여력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교회 회원들이 여러분들께 많은 기대와 의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라 믿지만 혹 여러분들이 신앙고백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철저하지 못해도, 삶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증거가 부족해도 안수집사로, 장로로 세움을 입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대한 보답(?)으로 여러분들께서는 교회에 거금을 연보하시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됩니다! 그리하시는 것은 여러분들은 물론 교회를 허무는 일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우선 스스로가 말씀의 권위 앞에-목사의 권위라고 하지 않았습니다-철저히 엎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말씀을 정말 열심히 연구하십시오. 만약 설교자가 개인적 의도를 가지고 말씀을 왜곡하거나 가감하여 가르치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마십시오.
지나친 말씀이라고 생각되십니까? 그것은 교회가 교회사 가운데 행했던 명백하고 빈번한 죄악들이었습니다. 우리시대에도 그러한 예를 수도 없이 찾아 나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앞서 언급했던 신앙선배들은 성경 말씀의 권위를 가장 우선으로 하여 그들의 삶과 죽음까지 아낌없이 내던졌던 분들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분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 음성에 충실했으며, 그것을 통해 그들의 삶을 주를 위해 불살랐던 분입니다.
우리시대 이러한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신약의 초대교회 같은 교회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또 그런 목사, 장로, 집사들이 교회를 헌신적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다시말해 직분이 바로서야 합니다.
우리시대 많은 분들이 교회에서는 그저 덮어주고 모른 척해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말씀의 원리를 바로 세워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분명 세상에서도 그러하지만 교회에서도 지도자급에 속하는 분들이실 것입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렸지만 성경말씀이 명하는 중요한 직분자의 책임을 절대 외면하시거나 소홀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을 연구하십시오, 신앙의 고전을 읽으십시오, 그 속에서 참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를 발견하시고 그 원리를 여러분들께서 섬기시는 교회에 적용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종종 저희 교회 장로님들께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장로님들께서 신학서적을 읽고 교인들의 삶을 돌아보고 목사님의 설교가 성경적인지 살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아~ 신학은 목사님들이 하는 것이고 우리는 목사님을 잘 보좌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아마 한국교회에서 이런 생각들이 대부분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러시면 안됩니다.
장로들은 목사님을 돕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말씀선포와 교인들의 삶을 점검하고 살펴야 합니다. 말씀선포가 정말 하나님의 참뜻인지, 또 그렇다면 교인들이 그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살피고 또 살펴야 합니다. 그런 책임이 있기에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신학서적을 읽어야 합니다.
집사님들도 직분의 원리에 충실하셔야 합니다. 선포되는 성경의 원리를 따라 교우들의 삶을 살피고 구제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바른 설교를 잘 듣고 또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하십시오. 그래야 교회가 본질적인 부분을 놓치거나 시대사조나 유행에 편승하지 않습니다.
돈 싸가지고 학원이나 족집게선생 찾아가 자녀들을 공부시킬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신앙과 신학은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아무에게나 아무 말이나 듣고 “아멘”하시면 안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은 물론 여러분 가정과 교회를 다 망치는 일입니다. 고민하지 않고 갈등이나 충돌 없이 교회생활을 하는 일이 곧 하나님의 뜻에 맞는 신앙생활이며 교회생활이라고 생각하시지는 마십시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마르틴 루터나 존 칼빈, 쯔빙글리나 마르틴 부서 등의 신앙유산을 물려 받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원리를 위해 교회와 수없는 갈등과 마찰을 빚었던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분들이 한국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현실을 보며 안타깝고 괴로워하고 있지만 무엇을 하려고 해도 사람과 돈이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망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이들에게는 왜 그렇게 눈먼 돈들과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우리들 모두의 맹목적 신앙과 근거없는 양심의 자유 때문에 그러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즉 무엇이 성경적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지 고민하기보다, 막연하게 하나님 앞에 바친다며 교회에 연보하거나 담임목사님께 드리거나 해외 선교사에게 송금하는 것이 더 옳다는 막연한 믿음 때문입니다.
성경은 교회가 공평케 하는 곳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이 아는 사람과 잘 모르는 사람, 많이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 지혜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서로 많이 가진 것을 내놓아 공평케 하는 삶을 사는 곳이 교회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말씀의 원리를 따라’라는 전제입니다. 우리가 헌금하는 것도 이러한 원리를 따라 해야 하고 교회의 봉사도 그리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원리, 성경의 정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종종 한국교회의 타락한 목사들을 살펴보면 그들 주변에 돈 많은 물주가 있음을 봅니다. 여기 계신 사모님들 같은 분들이 교회의 권사로, 집사로 바로 그런 역할을 종종 하고 계십니다. 혹 돈이 많은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돈을 주셨을 때 무슨 이유에서 그랬을까 깊이 고민하시면서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바친다고 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닙니다. 또 제대로 사용되도록 해야 하고 그렇게 요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지 않을 때는 내지 않는 것도 필요합니다. 더 살펴서 하나님 기뻐하실 곳에 내십시오. 아마 그렇게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힘이 드는 일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힘이 들고 어려움이 있어도 그리해야 합니다.
앞서 살핀 신앙의 선배들은 바로 이러한 원리 때문에 자신들의 삶과 재산, 가치있게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포기하고 성경이 말씀하는 원리를 따라 살았고 죽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 바통은 우리에게 넘어왔습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죽었는가는 하나님과 오고오는 세대들에게 하나의 교훈이 될 것입니다. 좋은 의미든 아니든 그러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러한 성경의 원리를 신앙하고 따르는 삶에 대해 너무 약하고 왜곡된 모습을 보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비성경적인 신앙-이를테면 기복주의, 개교회주의, 개인우상화, 성속이원론 등등-이 우리와 주변에 너무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진지하게 여러분들의 신앙과 삶을 고민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와 우리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출처 : | 부흥과 개혁 | 글쓴이 : 최재호 원글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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