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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개혁해야할신앙

[스크랩] 교회개혁포럼 발제문 요약

  

성경이해와 교회개혁/문종철 목사(지성교회)


개인이 신자답게 살고 교회가 교회답게 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서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의 개념이 나온다. 동시에 이 말은 성경을 부분적으로 해석하고 아는 것을 말하지 않으며 성경전체의 흐름과 해당 본문의 전후문맥을 통해 유기적으로 해석하고 아는 것, 즉 ‘전체 성경으로(Tota Scriptura)'를 의미한다.

이제까지 잘 알려진 해석학적 용어로는 하나님 나라, 언약, 구속사, 성경신학 등의 해석학적 관점, 즉 역사적, 문학적, 신학적, 문법적 해석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런 관점들은 성경을 읽고 해석함에 있어 각자의 경험과 성향 그리고 상상력에 의한 접근을 막고 자의적 해석과 그로 인한 그릇된 열심에서 돌아서게 하며 성경 저자의 의도와 계시의 정신에 충실하게 한다.


성경말씀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믿음을 따른 모든 헌신과 봉사와 충성은 참된 헌신과 충성과 봉사에 합당한 열매로 응답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다. 많은 이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의미를 놓치고 자의적, 이기적 열심에서 성경을 이해하고 믿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회개혁은 바로 이러한 바른 성경의 이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나와 교회가 개혁되는 유일한 길은 ‘오직 말씀으로’ 그리고 ‘전체 말씀으로’만 가능하다.


자아개혁과 교회개혁/손성은 목사(런던양무리교회)  

교회개혁이나 자아개혁을 말할 때 우리는 부분적인 개혁이 아닌 근원적인 개혁을 말해야 한다. 여기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교회나 자아개혁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란 점이다. 또 참된 회심없이 참 교회개혁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여기에서 개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회심’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감을 의미하고 ‘부흥’은 집단적인 역사로 하나님께 돌아감을 뜻한다. 그러므로 회심과 부흥은 하나님의 역사이고 그것에 부응하게 되는 자아개혁과 교회개혁은 바로 그 역사에 감동된 사람들의 역사, 곧 나의 역할이 강조된 표현이고 정의이다.


성경이 말하는 자아개혁이 가능한 자는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에 따라 자신의 전적 무능력을 발견한 사람이다. 이런 발견은 통회와 회개로 이어진다. 자신에게 걸어왔던 모든 기대와 소망, 그의 존재기반이 산산이 부서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이며 비로소 하나님께로 돌아갈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윤무적 삼위일체(Perichoretic Triune God)’의 하나님께로 돌아옴을 의미한다.


회심한 사람은 예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교제와 누림이 뒤따른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교회에 언약공동체 형성과 신조교육의 강화를 강조하고 싶다. 각 교단들의 신조를 가정의 부모들이 숙지하고 자녀들에게 교육할 수 있을 때까지 한국교회가 훈련되고 쇄신된다면 교회개혁은 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여기에서 한국교회의 예배의 정신과 교회행정이나 정치의 정신의 불일치를 생각해보게 되는데 목사나 장로, 그리고 교중들이 성령께서 회중을 섬기도록 허락한 직무나 은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성령에 귀를 기울일 때 교권의 문제, 은사나직무가 타락하는 문제 등이 회복되며 그 결과 성경적 교회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교회개혁은 방법은 개혁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분의 방법을 따름에 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개혁이다. 우리 인간의 욕심이 표현되거나 우리의 경건을 이루기 위한 개혁이 되어서는 안된다. 비판을 위한 비판, 개혁을 위한 개혁이 되어서는 참 개혁이 될 수 없다. 교회개혁운동은 ‘의식화운동’이다. 잠자고 있는 교회의 의식을 깨우는 운동이다. 쉽지않은 일이며 일신의 영광을 누릴 수 없는 운동이다. 욕 듣기 좋은 운동이다.

한국교회에 개혁이 화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징표이다.


교회사를 통해본 교회개혁/이상규 교수(고신대)

교회사를 통해 교회가 본래의 교회로부터 이탈했고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인식한 최초의 경우는 사도이후 첫 기독교문서라고 할 수 있는 로마의 클레멘트 서신에서 나타난다. 96년경 클레멘트는 고린도교회를 향해 사랑과 순종, 겸손이 없는 교회분규에 대해 비판하고 질책하며 쇄신을 요구했다. 또 2세기 중반 몬타누스는 당시 교회의 속화와 타락상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인식한 인물이었다.  수도원운동도 당시 교회의 타락과 속화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이 운동은 270년경 자신의 재산과 지위를 버리고 은둔생활을 시작한 안토니우스(250~356)에 의해 시작되어 바질, 그레고리, 아다나시우스(295~373), 제롬, 암브로스, 어거스틴 등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교회의 부패와 타락이 수도원운동의 현실적 동기였다.


일반적으로 313년 기독교공인을 교회가 사도적 교회로 이탈한 뚜렷한 시기로 보고 있다. 박해가 종식되고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교회당이 건축되고 감독과 설교자들은 국가로부터 급료를 받고 교직자의 납세가 면제되고(319), 주일은 안식하는 날로 지정되어 준수가 의무화됐다(321). 그리고 380년을 지나 제국의 국교화 되면서 교회는 타락의 길을 걸었다. 고난과 희생, 겸손과 봉사, 성결과 거룩의 개념이 현실적 부와 권력을 지향하는 인간적 탐욕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4세기를 기점으로 이후의 교회를 ‘콘스탄틴적 기독교’라 부른다. ‘나그네 공동체’가 ‘안주공동체’가 되면서 교회관의 변질과 속화가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교회의 속화나 타락은 교회개혁이 일어났던 중세시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태동한 이후부터 줄곧 제기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교회의 역사는 개혁과 타락, 부흥과 쇠퇴의 길을 거듭해 왔다.

이상에서 우리는 지상의 교회는 완전할 수 없으며 완전한 교회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과 교회의 타락과 부패는 교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타락에 근거하며,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하고 끊임없이 완전을 향한 노력을 경주해야 함을 보게 된다.


중세교회의 문제는 첫째로 오도된 교리와 인간중심의 신학, 공로사상, 신비주의 등 교리와 신학의 변질 둘째, 비신학적 비윤리적 교회구조와 제도 셋째, 부에 대한 지나친 탐욕 넷째, 교회가 세속권력을 탐닉함 등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건전한 신학에 대한 무관심, 교회의 명분없는 분열, 교회공동체의 도덕적 윤리적 계도성의 상실, 치리에 대한 무관심, 기복주의적 설교, 무분별한 신학교의 난립과 신학교육의 부재 등을 들 수 있겠다.

이같은 문제점들을 개혁하기 위해서 목회자의 자기 혁신, 신학교육의 제고, 설교의 갱신, 성경적 교회구조와 제도의 회복 등을 제안한다. 강조하건대 한국교회 개혁의 핵심은 교회지도자 즉 목회자의 의식에 달려있다.   

출처 : 최재호 기자의 성경적 교회개혁
글쓴이 : 최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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