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꿈을 꾸듯 행복하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다.
오랫동안 의문해 오던 것이 풀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부정과 부패가
행함과 믿음이 일치하지 않는 곳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이시각에서는 행함과 함께 하는 믿음을 강조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또 한국교회의 부패는 목사직의 권력화 내지는 사제계급화와 결부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목사직에 대한 제도개선을 생각하게 된다.
한국적 목사제도에 대한 비판과 함께 성경적 개혁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한편으로 맘모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이나 기복주의를 경고하고자 한다.
목사 자신부터 앞다투어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현상
목회에 성공하고 큰 성전?을 짓고 부와명예를 얻으려고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하나님이 필요할 정도이며..그 결과 하나님은 진정한 왕과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목사를 위한 종이나 심부름꾼으로 인식되는 경향성이다.
그래서 대형화 물량화를 경계할 필요성에 집중하게 된다
물질만능주의, 자본주의라는 세상의 이데올로기와 힘
물신과 권력신, 힘의신의 위용앞에 무릎꿇지 않아야 교회가 교회다와 질 것이라고 본다.
이미 정치권력화된 기독교 종교권력,
이런 종교권력앞에 무조건 순종하며 앞다투어 무릎꿇는 상황이었다.
권력은 돈과 명예가 있는 곳에서만 생겨난다.
예수님은 돈과 명예를 초월하셨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것들을 초개처럼 버렸다.
예수님은 아담과는 전혀 다르게 물질과 명예와 세상영광이라는 시험을 이기셨다.
군중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을 때 예수님은 오히려 피하셨지만
현금의 목사들은 자기가 왕(한자리 차지하고 앉게)되지 못해 병이 날 정도다.
엄마 소를 닮은 아기 소 역시 한자리 차지하거나 성공하기 위해
종교생활에 열심이지만..자신의 그런 모습을 통찰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토양들은 한국을 기독교 이단의 천국이 되게 했다.
빛(진리)이 들어 올 수 없는 음습한 곳에는
우후죽순처럼 독버섯들이 자라나게 되는 것과 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한국교회의 화려한 명성?에 반비례하여
그 타락상과 비진리에의 오염성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목사의 절대 권력은 종종 교주의 절대권력과 교주숭배로 나타난다.
샤머니즘이나 영지주의, 신비주의 등과 결부하여 기독사이비나 기독이단,
재림예수가 얼마나 많은지,, 정확한 통계조차 낼 수 없을 정도다.
자칭 하나님, 자칭 성령님, 자칭 4위가 되어 사위일체를 주장하거나
감람나무, 두 증인 등... 이단들이 활개를 치며 광범위하게 번져가고 있다.
교회안은 안대로 썩고 밖은 이단과 사이비로 발 디딜틈 조차 없을 정도이다.
이 와중에서 한 줄기 빛을 얻게 되었는데 바로 율법과 복음의 대비와 구분이다.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개인적으론 가볍고 쉽게 치부했던 부분이었는데
율법과 복음을 그 사역에 잘못 오해하고 적용함으로
나타날 수 있는 여러부작용을 통찰할 수 있었다. 이 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나는 폐기된 율법, 이루어지거나 성취된 율법, 더 강화된 율법으로 구분하고
더 강화된 도덕법은 율법의 정신으로 이어받아 지켜야 한다고 믿었지만,
그것이 오류였음을 알게 되었다. 율법은 단지 몽학선생이며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기능을 할 뿐이다. 그리스도는 그 자신이 새언약이 되신다.
주께서 내게 비춰주신 빛에 의하면 한국교회는 창녀들의 교회였다.
나는 그 빛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기에 나는 십여년이 넘도록
항상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성경을 보거나 설교를 듣기 시작했다.
빛을 비춰주실 당시 내가 몸담은 교회는 가장 거룩하고 대단한 모습이었고
그 이상 더 거룩하고 더 잘 할 수 있는 신앙은 없을 정도였다.
한국교회의 모델이요, 표준이라고 할 만큼 거의 완벽에 가까운 종교생활이었다.
매일 밤, 모여서 1시간 예배와 1시간 이상의 통성 기도회를 했으며
어린아이나 누구나 예사롭게 하는 3일금식 7일금식 21일금식 40일 금식이었다.
지극한 사랑의 모습과 거룩한 정신을 포착할 수 있었다,
애써 포착하려 하지 않아도 척 보면, 그냥 보여지는 것이었다.
온유와 겸손의 모습이 머리에서 발 끝 까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으며
그 성품이 너무나 고매하고 멋져서 넋이 나갈 정도였다. 그러기에 한 점 의심없이
바로 그런 모습이 기독교인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믿고 믿고 또 믿었다.
나는 그것들을 닮아나가야 했기에 나의 노력은 서럽도록 필사적이었다.
능력과 표적, 은사들이 나타나고 있었으며 하나님 없이는 곧 죽을 사람들처럼 보였다.
철두철미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 아니 나 역시 십십조 전부를 바칠때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내가 바치는 것은 10의 5조 이상씩이었으며
나의 가진 돈은 늘 최저생계비였었다. 버스비가 없어서 직장출퇴근을 도보로 할때도 있었다.
자기를 희생하고 교회를 위해 전부를 바쳤으며 생명을 걸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창녀로 보여주셨다.
이런 내가 그들의 창녀됨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죽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부러웠고 그들에게 매료되었으며 필사적으로 그런 모습이 되도록 순종하려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이것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도록
당시에 내가 알 수 없었던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사실..즉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깊고 비밀한 어떤 사실을 함께 보여주셨다.
나는 나중에서야 우연히 주께서 창녀로 보여주신 장면속에
함께 진행되었던 모종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명백히 보여주신 그것을 나는 무시했을 것이다.
그들은 보여지는 모습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분명한 창녀인데..
나는 그들이.. 창녀가 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의문은 계속되었다.
점진적으로 그들속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난 그들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구하며
사람들의 존경과 칭찬과 영광을 추구하는 바리새인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창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포착할 수 있었다.
마태복음 23장에 나오는 하나님이신 예수의 심판과 저주를 읽어보라.
"나는 그들의 모습과 다르다, 나는 예외다"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종교적 열정,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태워올리는 종교심의 불을 포착하게 되었다.
어떤 분은 재정부족 때문에 중단된 교회당 건축물(성전건축으로 맹신함)을
바라보면서.. "만약 나 자신뿐 아니라 내 자식을 저 콘트리트에 바닥에 생매장하여
성전건축?이 재개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라고 비장하게 내뱉았다.
무엇을 철두철미하게 하려는 것, 그것은 스스로 바리새인 됨을 증거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가 받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 해 드릴 수 있는 것, 역시 하나도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기에 육체로 부터 난 모든 생각과 행위는 사형에 처해져야 마땅하다.
율법준수는 우리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바벨이념에 근거한다.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깊은 이념, 생각, 근저의 사상
그 자체가 사단정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율법준수나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옷과 같으며 예를 들면 벌레와 구더기와 같다.
굼벵이가 피부가 벗겨지도록 날마다 처절하리 만큼 씻고,지키고,금식하고 고행하며
마침내 온유와 겸손으로 곱게 화장을 하고 향수까지 진하게 뿌린뒤, 주인의 집 거실에
기어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럴수록 더욱 구더기는 주인에게 역겨움이 될 뿐이다.
그러나 만약 굼벵이가 나비가 되어 본질적으로 변화된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부터 난 것은 아무것도 받지 않으신다.
율법에서 난 것은 아무것도 받지 않으신다. 율법준수에서 난 것도 마찬가지다.
구더기의 옷과 화장과 향수와 행위(꿈틀거림)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피로 가득한 제물이나 넘치는 행위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분 자신에게서 난 것을 받으실 뿐이다.
그분으로부터 난 것, 성령으로 난 것= 새롭게 된 피조물 =주님으로 인한 것만 받으신다.
인간이 가져온 불, 나답과 아비후의 불은 단지 저주의 대상이 될 뿐이다.
성령의 불, 여호와의 불, 그 불로 태워진 제물만 받으실 뿐이다. 아모리 제단처럼
참된 제물은 결국 하나님 자신이 준비하시는 것이며 그것만을 열납하실 뿐이다.
주님의 의도, 주님의 뜻, 주님의 행위, 주님의 기도, 주님의 마음만을 받으실 뿐이다.
오직 주님으로 인한 것,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 주님으로부터 시작된 것만 받으신다.
펌) 부흥과 개혁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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