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언뜻 보기에는 소득이 늘어나고 살기에 좋은 것 같지만, 복음으로 살아가는데는 방해물만 늘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바다이야기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바다이야기 속에 감추어진 죄악의 구조가 교회 안에도 있는데 간과하고 있는 현실이 신앙인으로서 더 안타깝기만 합니다. 왜 우리는 세상 돌아가는 일만 호들갑스럽게 인식하고 교회 안에 일어나는 일에서는 무관심하고 모두 하나님 사업으로 복음으로 인식해야만 하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와 교회는 한 통속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집단이자 공법이라고 여겨집니다. 바다이야기에는 삶의 진실이 없듯이 교회 안에서는 순수 복음이 없습니다. 세상과 원수가 되지 않고 짝하여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정치 도박이 더 문제
요즘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는 바다이야기가 큰 관심이 되고 있는 가운데 온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조개, 문어 등 바다고기의 그림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다 멈췄을 때 특정한 배열을 이루면 점수를 얻거나 상품권을 받는 게임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뉴스에 강원도 카지노 등지에서 도박을 하다가 돈을 잃고 고급승용차를 전당포에 맡기는 모습들을 많이 방송했는데, 지금은 일반인 누구나 집 근처 골목에서 도박을 할 수 있는 게임장이 슈퍼 드나들듯이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이로 인해 서민들은 갈수록 힘들어 하고 있고 자기 지갑의 돈이 빠져나가는데도 한 번만 터지면 채울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게임장에 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횟집 간판으로 오인하는 바다이야기는 도박 오락 게임의 대명사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또 다시 여름 날씨 만큼이나 뜨겁게 달궈지는 게 바다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시끄러울까요? 그건 정치적인 사안과 국민들의 피해와 언론 게임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하려면 항상 돈이 필요하기 마련이고 이런 돈은 항상 어두운 곳에서 나오게 마련입니다. 애시당초 우리나라의 정치 풍토가 잘못되어 검은 돈과의 커넥션이 항상 따라붙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부정적인 정치 모습입니다. 하기야 교단 총회, 노회, 연합회 정치를 하는 데도 수 천만 원 내지는 수 억 원이 들어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왜 정치에 돈이 들어갈까요? 그건 일종의 도박이기 때문입니다. 도박 게임 중에 가장 피라밋 정점에 있는 것이 정치 게임이고 정치 도박입니다. 그래서 정치꾼들은 이번 대선과 총선에서 어느 당에 줄을 서야 할지 눈치와 각종 정보를 조합하여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대선은 전국민을 상대로 도박을 벌이고 있는 셈입니다. 선거 결과로 집권당이 교체 된다면 희비가 교차되고 수많은 정책의 변화와 인사의 변화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도박이 적중하였다면 돈과 명예와 권력이 보장되는 건 다 알지 않습니까? 당선만 되면 그만한 돈이 남는 장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역시 정치도 도박만큼이나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집안에 있는 재산을 날리기가 쉽거든요. 그러다 한 번 터지면 되기 때문에 그런 미련을 못 버리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정치하다가 낙선의 고배를 몇 번 당한 사람치고 재산 탕진과 병에 안 걸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 폐인 되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극민들의 도박 일상화
국민들은 어떻습니까?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도박이 일상화되었습니다. 국민들은 국민들 대로 편안하게 한탕주의입니다. 도박이란 일종의 불로 소득입니다. 사행성 게임 오락이 문제가 되는 것은 도박 게임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그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즉 불한당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입니다. 불한당이 많으면 생산적인 사회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 피해가 속속히 들어나 우리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합니다. 그렇다면 정치와 행정과 업주에만 유착 관계, 인허가 절차상 문제, 세금 탈루 문제만 수사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 역시 공범으로 수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회적인 범죄와 죄악도 수요 공급 법칙에 따르기 때문에 아무리 공급이 있더라도 수요가 없으면 그런 범죄와 도박은 사라집니다. 모든 사회적 죄악은 왜곡된 수요가 있기 때문에 왜곡된 공급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고양이 앞에 생선을 두고서 먹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애초 생선을 놔두지 말면 될 것을 먹어라고 유혹해 놓고서 말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생선을 놔둔 것도 잘못이고 그런 생선을 너무도 쉽게 먹을려고 덤벼드는 고양이도 잘못입니다.
오늘날 사회심리학자들은 중독성 도박자들의 공통점으로 감정적 불안, 현실 도피 현상, 현실 부적응, 불로 소득의 횡재수만 노리는 등 정신적 문제를 꼽고 있습니다. 소득은 증가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정신적 행복감은 감소하는 기현상이 이미 선진국의 성장 후유증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상적 부의 소유에 대한 불가능 보상적 탈출구와 상대적 박탈감의 탈출구로 도박을 하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밖에도 이런 저런 비정상적 원인으로 사람들은 도박에 빠지게 됩니다. 물론 그중에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혹은 즐기기 위해 도박을 하는 사람도 있고 괴로움을 잊기 위해 도박에 빠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돈을 따기 위해 맹목적으로 도박에 덤벼드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바다이야기만 도박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도박의 종류 역시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경마나 경륜 같은 스포츠 경쟁게임에 열광하며 어떤 사람들은 복잡한 카드 게임을 선호한다. 슬롯머신이나 룰렛과 같이 단순하고 간편한 게임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국민적 오락으로 인식된 고스톱도 도박입니다. 로또와 각종 복권도 이에 해당됩니다.
도박에 빠진 상태의 위험성이나 그 수준도 각기 다릅니다. 지나친 도박을 하면서도 가족과 친구와 정상적 사회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도박이 완전히 생활 중심이 되어버려 그 외는 모두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도박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전자는 잠재적 에비중독자의 모습이고 후자는 이미 중독 증세가 나타난 모습입니다. 도박중독자에 빠진 사람들은 재산 탕진과 이혼, 해고, 신용 불량, 법적 처벌은 물론 건강까지도 위협을 받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도박을 계속하게 됩니다. 도박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잃은 것에 대한 본전을 생각하는 심리와 한 번 딴 것에 대한 재미와 더 크게 따고 싶은 기대 심리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도박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심리는 판돈(본전)을 걸고 한 두번인가 따게 되면 더한 기대 심리가 생기고, 매번 잃다보면 속된 말로 본전 생각을 해서 자리를 못 뜨게 되어 결국은 빈손으로 나오게 된다고 합니다. 이게 바로 도박의 속성이라는거죠.
온나라가. 도박의식으로 도배
왜 이렇게 사회적으로 올 7월에 밀어닥친 홍수와 장마 피해만큼이나 심각합니까? 그것은 사행성 오락장에 대한 허가를 쉽사리 내준 정치적 역학 관계로 얽힌 로비와 행정관청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고, 사회 곳곳에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는 돈의 위력과 돈만 된다면 불법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우리들의 비뚤어진 황금만능주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각종 복권과 도박, 경마와 빠지는 것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증권 투자도 도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동산 투기도 도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만 대박을 터뜨리면 나의 인생이 확 바뀐다는 믿음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오로지 나의 인생 자체이고 돈만이 나의 소망이 되고 돈만이 나의 존재 가치를 나타내주기 때문이지요. 이런 존재 가치는 외형적인 명품의 소유와 시시각각 변하는 패션유행도 한몫 보탭니다. 눈만 뜨면 인터넷을 비롯한 언론, 광고 매체에서는 의식주와 관련된 상품이 홍수를 이루고 더 나은 상품, 좀 더 소비를 하도록 하기 위해 관능적으로 선전합니다. 소위 명품 브랜드라는 것을 걸치고 입고, 신고 기고, 타고 다녀야만 사람 행세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비뚤어진 도박 중독과 브랜드 중독의 사회적 합의가 일반화된 것은 왕따가 되지 않으려는 즉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이고 적어도 남보다 튀게 앞서가기는 힘들어도 남에게 뒤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입니다. 홈쇼핑 중독이란 신종 중독 증세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우선 외상으로 구입할 수 있으니까 앞서 말한 욕구가 충동 구매로 나타나게 되고 실제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구입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물건을 구입하는 행위가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는 셈입니다. 이렇듯 모든 소비의 기준이 돈이 되었습니다.
평생을 일해도 한 사람이 벌어서 생활할 수 있는 규모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도 우리는 천문학적인 돈에 신기루 현상과 같이 매료되고 중독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중독된 마음을 더욱 강하게 몰아붙이고 있는 게 부동산 투기와 부정부패와 비리를 낳게 되고 도박 중독이 생기게 됩니다. 가히 우리나라는 도박공화국입니다. 전 계층, 전 국민이 도박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들의 의식 구조를 개조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정치적으로 법률적으로 정비한다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복음은 없고 도박이야기만 있는 교회
이렇게 온 나라와 사회가 도박 중독증으로 사회적으로 시끄러워지고 있는데 우리 한국교회는 고고하게 거룩하게 수수방관하고 있을 여유가 있습니까? 기독교인도 국민의 한 사람인데 국민들의 도박 심리에 물들지 않았다고는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 기독교인들이 도박 중독증의 원조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상대로 도박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일종의 구원의 도박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불경스럽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한 사랑과 구원의 열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보내신 것은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구원의 승부수를 두시기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구원의 잭팟을 터트리지 않고 있는 백성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기만 하면 천국 백성이 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도 죄성이 가득 찬 백성들은 이 세상의 각종 구조적 도박 게임에 중독되어 돈에 구원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도박 중독증에 빠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자신의 구원 사역의 계시를 우리들에게 계시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그속에는 하나님과 내기를 하여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브라함, 사울, 다윗, 솔로몬 등등 선지자와 사사들의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그들 가운데는 하나님과 내기를 하여 딴사람도 있고 잃은 사람도 있습니다.
바다이야기에는 살아있는 진짜 고기가 없듯이 교회이야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짜 복음이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성장을 두고 많은 찬사와 하나님의 축복으로 미화하고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전혀 그런 면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교회 안에 온존하고 있는 비성경적 요소는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죄성이 가득 찬 인간의 질서에 따라 껍데기만 성장한 눈물겨운 목회 성공 노력의 결과라고 여겨집니다. 이런 외형적인 한국교회 성장과 부흥의 원인에는 도박복음을 선포하는 일부 부흥사와 일부 브랜드 목사와 이들 도박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보다 더 중요하고 실용적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도박복음으로 성장 부흥
이런 도박복음이란 다름아닌 소유와 축복의 거짓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물질의 소유로만 가늠하는 맘몬적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장하고 포장하여 선포합니다. 이들은 가만이 계시는 하나님께 교인들을 선동하여 도박을 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헌금하고 십일조하고 교회를 위한 각종 헌금을 하면 하나님께서 수백 배, 수천 배의 목을 주실 것이라고 거짓 과대 광고를 합니다. 대부분 교인들은 이런 도박의 선전에 귀가 솔깃해져 하나님을 상대로 한판의 기대 심리로 도박 게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디 우리의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과 한판 거래와 도박을 하겠다는 자체가 죄이고 불경스럽습니다. 한국교회 안에서 선포되어진 도박복음을 믿고 게임장인 교회 건물 안에서 판돈을 내걸고 하나님께서 한탕 잭팟을 터뜨려주시기를 기도하고 헌금하고 있는 풍경이 매주일마다 기도원에서 연출되고 있습니다.
사행성 오락 게임장에서는 한 번씩 수백만 원의 상금을 터뜨려준다고 합니다. 그것도 사전 바람잡이와 짜고서 말입니다. 그러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자기도 언젠가는 수백만 원의 돈이 터뜨리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겠지요. 이와 같이 유명 부흥사들의 부흥회에는 바람잡이가 따라다닌다고 합니다. 이들이 바람 잡고 병 나았다고 , 축복받았다고, 신령하다고, 신유은사가 있다고, 자녀 대학에 합격되었다고, 기타 등등의 간증도 하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도박에 빠지게 합니다.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도박 수입은 결국 부흥사와 브랜드 목사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갑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한판 내기를 하라고 부추깁니다. 재물을 드려서 축복받은 사례를 교묘하게 말합니다. 그러면 도박 심리에 물들은 교인들은 판돈을 겁니다. 어디에다? 하나님이 아니라 결국 교회 게임장에 판돈을 걸지만 돌아오는 건 교회 명예입니다. 교회 게임장에서 얻어진 수익금은 바로 부흥사들과 브랜드 목사들에게 교묘하게 지출되어집니다. 총회장 선거 자금인 비자금으로 지출되기도 할 것입니다. 해외 유학과 여행 경비로도 지출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축복받았다고 하는 이야기는 따지고 보면 타종교 교인들도 그런 축복은 다 받습니다. 경제법칙으로, 투기의 대열에 동일한 방법으로 하면 누구나 돈 놓고 돈 먹기에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합니다. 부당하게 번 돈을 종교적으로 세탁하기 위해서 불교인들은 부처님 은덕으로 벌었다고 하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축복으로 벌었다고 일부를 교회에 바쳐 하나님 이름을 빌려 세탁하는 그 차이입니다. 그 세탁비는 당연히 사찰재산과 교회재산으로 들어가 중과 목사들의 얼굴에 개기름만 끼게 합니다. 바다이야기는 결코 하나님의 창조 세계인 바다에 대한 고기 이야기가 아닙니다. 살아 움직이는 현실적인 고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고기들은 사이버 세계에 존재하는 허구의 존재들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겉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부흥과 성장 이야기와, 축복이야기, 출세성공한 이야기, 아파트값이 올라가고, 부동산 투자가 대박난 이야기 등이 복음으로 포장되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대박 터뜨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검증이 돈으로 환산하여 측정하기도 합니다. 이런 한국교회의 복음이야기는 사행성 게임장인 바다이야기와 오십 보 백 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상대로 한판 대박을 터트려보겠다는 인간의 도박 심리를 잘 포장하여 판매하고 있는 것이 부흥회의 모습이고 목회성공하려고 하는 열정이 아닐런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메시지를 이 시대의 병든 자본주의 가치관과 성공관으로 복음을 희석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인의 숫자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은 어찌 설명해야 합니까? 그것은 교회가 썩은 사회와 다를 바가 없다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항상 사회와 대조하여 나타나는 교회의 현상을 우리는 바로 직시하여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회피하여 나가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비록 손해가 되더라도, 성장이 지체되더라도, 목회 성공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죄악적인 현상을 복음으로 재해석하고 정화제 역할을 하여 이 사회가 맑아지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바다이야기는 이 사회의 혼탁한 탐욕의 양상을 가장 가깝게 느끼게 해주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그런 경고를 무시하고 바다이야기와 같은 한판의 대박 논리를 오도된 복음이야기로 한판의 복을 터뜨리겠다는 기독교인들이 있는 이상 비록 전국민이 복음화되었다 하더러도 하나님과는 무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상관없는 사탄의 이야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