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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성 경 공 부

[스크랩] 교회에서 교리문답을 소개하고 가르쳐야 하는 이유

 

 

교회에서 교리문답을 소개하고 가르쳐야 하는 이유

(우르시누스의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주석 서문중에서…)

 

 

1.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 말을 당신들 자녀에게 가르치며, 당신들이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십시오”…( 11:19).

 

2.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때문인데, 이는 어른들 아니라, 어린 아이들까지도 바르게 알고 예배할 것을 요구합니다. “어린이와 젖먹이들까지도 입술로 주님의 위엄을 찬양합니다” ( 8:2, 표준새번역).

 

3.    우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되고 바른 지식이 없이는 아무리 수년간의 지식이나 명철이 있어도 구원얻지 못하여,  자신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영원한 위로를 얻을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생은 이것이니,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아는 것과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 17:3; 11:6). 그럴 아니라, 어느 누구도 자신이 들어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이를 믿지 안습니다. ( 10:14, 17). 그러므로 구원받을 사람들은 복음의 주요하고 근본적인 가르침인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부여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될려면, 일을 위하여 준비된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배움이 많지 않거나, 어린 사람들에게도 적합한 간단하고 단순한 형태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4.    교회와 공동체의 보존을 위해서입니다. 지나온 모든 역사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예배, 경건한 삶과 실천, 정직, 공의, 진리들이야말로 교회와 국가의 복락과 보존에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나라들에게서 이러한 것들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것은 아무런 쓸모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제 까지 경건이나 참된 덕의 열매를 산출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런 일들에 훈련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참된 덕성의 훈련과 새롭게 되는 일을 시작하지 않고 오래 지체되면, 우리 본성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본성과 악한 원리들이 강화되고 견고해 져서, 나중에 그것들을 억제하고 제한하려고 하면 때는 너무 늦어 그것들을 거부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성경으로부터 하나님과 그의 뜻에 대하여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않고, 경건의 실천을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가 본성으로 타고났거나 어려서부터 받아들인 잘못된 것들로부터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고, 우리가 자라고 익숙해진 악한 것들을 저절로 버리게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나 국가가 타락과 멸망으로부터 보존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본성의 이런 타락한 것들에 대한 적절한 억제가 필요하고, 이러한 것들이 다스려져야 합니다.

 

5.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과 주장에 대하여 바르게 판단하고 결정할 기준과 규칙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오도되지 않고, 잘못에 빠지지 않을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에 대한 많은 언급이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주의하라”,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을 붙드십시오(공동번역)”, “영을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 7:15; 살전 5:21; 요일 4:1).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율법과 사도신경은 사람들의 주장을 판단할 법과 기준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얼마나 알아야 하는 중요성을 있습니다.

 

6.    설교를 듣고 유익을 얻기 위해; 교리문답을 제대로 공부하고 배운 사람들은 대개 설교를 들을 , 설교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그들은 들은 설교가 자신들이 배운 교리문답의 어느 부분의 어느 주제와 관련된 것인지도 어렵지 않게 말할 있습니다. 반면에 교리문답으로 미리 훈련되지 못한 사람들은 설교를 듣기는 해도 자신들에게 거의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7.    범인(凡人)들에게 유익; 특별히, 교리문답의 중요성은 배움이 많지 못하거나, 약한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 교리문답을 배울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간단하고, 명백하고, 독특한 형태의 가르침이 적합한데, 교리문답이 바로 여기에 적합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있습니다. 특별히 길고, 까다로운 형태로 주어지는 가르침에 약한 사람들에게 적합합니다.

 

8.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교리문답을 아는 것은 특별히 가르치는 위치에 사람들에게 중요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소명에 대해서 아니라, 교회의 교리들을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보다 더욱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언제든지 기회가 오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항상 배우는 것에 부지런한 것이 합당하며, 디모데 처럼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러한 교훈을 교우들에게 깨우쳐주시오. 그러면 그대는 지금까지 따르는 믿음의 원리와 참된 교훈으로 점점 자라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것입니다” (딤전 4:6).

 

   이 외에도 다른 중요한 이유들을 여기에 더할 있는데 특별히 교리문답을 가르치는 목적이 갖는 탁월함 말할 있습니다. 교리문답이 지향하고,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바로 여기에 교리문답의 가치와 중심성이 있습니다. 최고의 선을 알고, 참여하는 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보화보다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13:44에서 말씀하신 교회라는 밭에 감추어진 보화이며, 이는 많은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어린 자녀들과 함께 이를 위하여 죽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교리들과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하여 무지하다면, 우리가운데 과연 누가 이를 위하여 기꺼이 고난을 당하려 하겠습니까? 우리가 어려서부터 이런 가르침으로부터 배우고 양육받지 못한 다면, 우리는 이런 가르침들에 대하여 무지할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리문답을 소흘히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온갖 거짓 가르침과 풍조에 이리 저리 떠밀려 다니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실상은 그리스도를 떠나 그리스도를 해치는 일가운데 있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교리문답을 배우는 이유는 우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교리문답이 밝히고 있는 최고의 선을 누리는 있습니다. 생에서 이미 시작되어 보고 있는 우리의 위로는 우리가 오는 세상에서 완전하고 온전히 최고의 선을 누릴 것에 대한 확신과 기대로 이루어 집니다. 최고의 선은 이것을 지금 우리고 있는 사람들을 참으로 복되게 하는 것일 아니라 것을 지금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참으로 비참하고 가엾은 사람으로 드러나게 합니다. (지금까지의 글에서 언급된 유일한 위로’, 혹은 최고의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1문답의 내용을 가리킵니다-역주).

 

By Zacharias Ursinus.

(translated by Ho June Jang. http://puritanreformed.cyworld.com)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우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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