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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몸살을 앓고 있다
호레이스
개혁주의가 몸살을 앓고 있다. 개혁주의신학과 신앙을 주창하는 교단과 그룹에서 개혁주의라는 것이 무엇인 지에 대해서 논의가 일고 있다. 건전한 논의이다. 이 건전한 논의가 건전하게 유지되고, 또한 열매를 맺도록 하는데 일조가 될까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논의의 상대방을 정죄하기 싶고, 그 마땅히 삼아야 할 대적자, 사탄에게 훼방거리만 더해 줄 가능성이 있겠기 때문이다.
특별히 최근 SFC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SFC개혁의 논의와 관련해서 SFC가 지향하고 있는 개혁주의의 정체가 무엇인 지에 대한 질문은 참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개혁주의권”내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전체의 문제이다. 복음과 율법의 관계, 신앙과 행함의 관계와도 깊히 연루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칼빈주의-신칼빈주의논쟁과도 연결된 문제이다.
이 글에서는, 개혁주의를 주창하는 소위 칼빈주의진영과 신칼빈주의진영간의 논쟁을 중심으로 개혁주의의 몸살의 현황을 진단하고, 그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정리, 제시해 보려고 하는 글이다. 학문적인 깊이에 대한 관심보다도, 이런 글에 대한 한국교회내에서의 관심과 필요를 느끼고 급한 마음으로 스케치하는 것임을 밝혀둔다.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질문해 온 후배 손재익형제에게 이 글을 바친다. 후배를 사랑하는 선배의 마음을 항상 간직하길 바란다.
1. 개혁주의와 칼빈주의
개혁주의를 주창하는 교단이나 그룹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다 같은 개혁주의가 아님을 그들의 글을 읽어보면 금방 간파할 수 있다. 한국교회로 예를 든다면, 한신대에서도 자신을 “개혁주의자”들이라고 칭한다. 스위스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발트의 개혁주의신학을 추종하기 때문이다. 총신, 합신, 고신 등의 교단(‘교단’이란 말 대신에 ‘총회’라는 말이 더 올바른 뜻 하나 이 글에서는 편의상 ‘교단’이란 말을 쓴다) 에서도 “개혁주의”를 주창한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개핵’이란 말과 더불어서 약간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띄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 ‘개혁주의’라는 단어가 어떤 식으로 ‘진화’되어갈 지 모를 일이다.
실은, 이 ‘개혁주의’라는 말이나 개념이 ‘칼빈주의’라는 말과 연관된다는 것이 통례이다. 원래 ‘칼빈주의’라는 말은 ‘개혁주의자’들 사이에서 그렇게 선호되는 말이 아니었다. 칼빈 자신도 자신의 신학체계를 ‘칼빈주의’로 불리워지기를 원치 아니하였고, 어느 ‘주의’에 사람의 이름이 붙는 경우는 대개 ‘이단’과 연결되는 경향들이 많기 때문에, 소위 ‘칼빈주의자’로 불리워지는 자들도 자신을 ‘칼빈주의자’로 불리워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었다. 20세기에 이르기까지는 그러했었다. 단지 ‘개혁주의 신앙인’(the Reformed Believer) 등으로 불리워지는 것으로 만족했었다. 그런데, 개혁주의 신앙인들이 ‘칼빈주의자’들로 불리워지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거부감을 가지지 않게 된 계기가 생겼다. 계기라기 보다는, 바로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의 활동 이후로, “칼빈주의”(자)라는 말에 대해서 오히려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 뉘앙스를 띄게 되었다. 이것이 바람직한 것이었는가? 이 글을 다 읽게 된 독자의 판단에 맡길 뿐이다.
이런 “칼빈주의”라는 어휘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는, 아브라함 카이퍼 그 이전에 사용되던 “칼빈주의”와 카이퍼와 그 이후의 “칼빈주의”에는 개념상의 차이가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실이 그러했다. 그래서, 그 이전의 칼빈주의와 대별해서 카이퍼의 신학체계에 의한 칼빈주의를 ‘신칼빈주의’로 명명해서 구분하기도 한다(원래는 카이퍼의 신학사상에 반대하던 자들이 카이퍼 신학을 명명하는데 사용했는데, 카이퍼 자신이나 그의 추종자들이 흔쾌히 이 용어를 받아들였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이 글의 논지의 핵심은 바로, 이전의 칼빈주의와 카이퍼 이후의 신칼빈주의간에 개혁주의신앙노선과 관련된 어떤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 점에 제한해서 이 글을 쓰는 것에 주지하길 바란다. 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브라함 카이퍼의 생애에 대해서 약간의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2. 아브라함 카이퍼의 생애와 활동
카이퍼는 1837년 홀란드(네델란드) 남부의 Maassluis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J.F. Kuyper. Dutch Reformed Church에 속했으며, 중도노선을 걸었던 사람이었다. 무지무지하게 똑똑했던 아브라함 카이퍼는 알파벹을 배우고 나서부터 책읽기를 엄청 좋아하게 되고, 그에게 그의 아버지가 책 좀 읽으라는 얘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12살 때 Leiden의 짐나지움에 입학해서 6년 동안 공부하고 우등(with distinction)으로 졸업하게 된다. 그 이후 Leiden 대학에서 7년 간 수학하고 1862년 졸업하게 되는데, 최우수성적으로 신학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주지할 것은, 이 학교생활을 통해서, 이전의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체계와는 상당히 다른 신앙적 견해를 취하게 되는데, 그 이전의 상당히 보수적인 신앙에서 자유주의 신학적 견해를 취하게 된다. 이런 변화에는 그 당시 현대주의(modernism)의 대표적인 기수 중의 한 명이었던 Scholten박사가 배경이 되었다. 이 일을 되돌아 본다면, 만약 하나님께서 카이퍼의 생애에 개입해 들어오시는 은혜가 없었더라고 하면, Sholten박사보다도 더 좌경화 되어서, 심지어는 배도의 길을 걸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적 가정에 근거한 것이다.
단지, 역사적 사건에 근거한 단편 하나를 언급한다. 카이퍼는 1862년 화란개혁(국가)교회의 목사후보생으로 신청한다. 그 당시 후보신청자들이 너무 많아서, 일년 뒤에사, 목사가 되는데, 첫부임지가 바로 Gelderland의 동부지역에 있는, Beesd란 조그만 교회. 그런데, 이 교회의 교우들 중에 별로 카이퍼의 설교와 목회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특별히 Pietje Baltus라는 여성도는 그의 설교에서 직감적으로 카이퍼목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는, 카이퍼목사가 자기집에 방문했을 때에 그 점에 대해서 언급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생하지 않고는, 목사라고 하더라도 영멸에 처하여질 것이라고 하는 경고를 했던 것은 어쩜 당연한 일(한국교회에서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나님께선 이 여성도의 증언을 통해서, 한 시대의 영웅이 될 카이퍼를 부르시게 된다. 이 여성도와의 여러 번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카이퍼의 생애에 전적인 변화가 오게 된다. 물론 Beesd에서 만난 다른 성도들과의 접촉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 분명하다. 심각한 영적 고뇌를 거친 뒤에 주님의 은혜로 그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상에서 이뤄진 그 구속사역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모든 지식에 뛰어난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새롭게 중생하게 된 목사 카이퍼는 아주 빠른 시간내에 정통신학의 수호자로 부상되고 더욱 영향력있는 교회의 부름을 받아서 사역을 하게 된다. Utrecht로 그 다음엔 Amsterdam으로 임지를 옮기게 된 것. 이곳에서 Doleantie(영어로 Grievance라는 뜻인데, 그 당시 교회의 영적 상태에 대한 ‘슬픔’을 표명하고 있는 듯함)의 지도자가 되어서, 기어이는 화란개혁(국가)교회로부터의 분리에 이르게 되는 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이 분리운동은 1886년에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 이전 1834년에 있었던 교회분리운동과 유사하면서도 차별이 된다(이런 화란교회역사에 대한 것은 별도로 설명할 기회를 갖겠다).
카이퍼는 교회개혁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국가문제와 정치영역에 대해서도 관심이 깊었다. 주간지였던 De Heraut(The Herald)지의 편집장이 되고, 기독교일간지 De Standaard(The Standard)도 편집을 맡는다. 결국 국회에 진출하게 되고, 반혁명당의 지도자가 된다. 여기서 반혁명당이란 프랑스혁명의 무신적인 사고방식에 반대하는 것을 기치로 내세운 일종의 기독교당이라고 할 수 있다(여기서 우리는 프랑스혁명 정신을 무작정 옹호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경계심을 보게 된다. 어떤 부분에서 주의해야 하는 지를 아는 것은 이 혁명정신이 기독교신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개진되어야 할 아주 중요한 역사평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카이퍼는 이런 프랑스혁명의 무신정신에 반대하면서도 또한 동시에 그 혁명정신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어째튼, 20세기가 시작되던 어간, 곧 1901년부터 1905년까지 정부의 수상이 되어서 빈민구호정책을 위한 여러가지 법들을 통과시키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는데 열중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일들.
카이퍼는 또한 Free University대학의 설립자. 이 학교는, 성경과 개혁주의 원리에 기초한 고등학문을 주창하는 학교. 이러 저러한 활동들로 카이퍼는 화란의 교회 및 정치사에 있어서 거의 반세기 동안을 지배했던 사람이라고 평가된다. 이 카이퍼의 활동으로 ‘칼빈주의’라는 말과 개념이 화란의 국가적인 차원에서 회자되면서 영향력을 미쳐서, 이 역사를 돌아보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복음과 사회(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심지어는 칼빈보다 오히려 더 귀감이 되는 인물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가 누구보다 더 위대하다, 귀감이 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칼빈주의와 그 이전의 칼빈주의가 과연 일치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가 바로 개혁주의 진영에서의 몸살의 진원이 된다고 보인다.
3. 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빈주의 이해의 핵심: 하나님 절대주권
먼저, 카이퍼의 칼빈주의에 대한 정의를 들어보자.
“Historically, the name of Calvinism indicates the channel in which the reformation moved, so far as it was neither Lutheran, nor Anabaptist nor Socinian. In the philosophical sense, we understand by it that system of conception which, under the influence of the master-mind of Calvin, raised itself to dominance in the several spheres of life. And as a political name, Calvinism indicates that political movement which has guaranteed the liberty of nations in constitutional statesmanship; first in
위의 인용문의 역사적, 철학적,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정의가 바로 칼빈주의에 대한 카이퍼의 과학적 정의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카이퍼의 칼빈주의는,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던 칼빈주의와 비교하면 상당히 보다 더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당시 사람들은, 칼빈주의를 기본적으로 교회적인, 그리고 고백적인 운동이라고 여겼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칼빈주의란, 주로 인간의 전적 타락과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것을 강조하는 입장을 의미했었다. 곧, 은혜의 교리, 칼빈주의 5대교리를 반대하는 알미니안주의와 현대주의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이해했었었다.
이런 그 당시의 칼빈주의에 대한 이해에 대해서 카이퍼는 칼빈주의란 그 이상의 것이라고 보았고, 그의 생애를 통해서, 그 이상의 것을 그 당시의 신자들에게 설득시키려고 하였었다. 그에게 있어서 칼빈주의란, 전포괄적인 세계관이어서,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들이 현실을 제대로 의미있게 이해하는 일종의 체계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기로, 크리스챤으로서의 우리의 과제란, 칼빈주의 원리를 이 세상의 모든 영역에 연관시켜서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변혁시키며, 구속해서, 그리스도의 것으로 돌려드리는 것이라고 보았다. 바로 그리스도 그 분에게 모든 피조세계가 소속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어 잘못되었는가? 잘못된 것이 없다. 전혀 없다.
잠깐만!
정말 없을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 글을 읽어야 한다. 그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해 보기로 하자. 먼저, 그의 절대주권사상. 카이퍼에 의하면, 칼빈주의의 핵심은, 우주의 모든 영역에 미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sovereignty)사상에 있다. 문제는, 이런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삼중적으로 인간의 주권 속에 반영되어 있다면서, 카이퍼가 국가에서, 사회속에서, 그리고 교회 속에서 이 인간주권이 행사된다고 하는 것이고, 바로 이 점이 카이퍼의 신학을 반대하는 자들 뿐만 아니라 바로 카이퍼와 카이퍼사상의 추종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신칼빈주의”의 핵심인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고전적 칼빈주의, 곧 역사적 개혁주의신앙에 있어서 발견되지 않는 “신”칼빈주의의 새로운 주장인 것이다. 이 “새로움”에 대해서, 카이퍼는 주장하기를, 칼빈과 다른 것이 아니고, 칼빈의 사상 속에 이미 씨앗으로 존재하던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카이퍼 자신의 사상 전개에 의해서 발전되고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한다. 칼빈이 모든 일들 속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음을 가르쳤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구원의 문제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고, 모든 삶의 영역과 연관되어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 가정의 역할, 사회속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소명, 과학의 역할 등등에 대해서 칼빈이 가르쳤었다. 하지만, 이 글의 논지는, 이 칼빈의 신학과 사상이 함축하고 있는 바를 발전시켜가는 과정 중에, 아주 중요한 영역에서, 신칼빈주의가 그 원래의 칼빈주의와는 다른 이상야릇한 칼빈주의(곧, 신칼빈주의)체계로 변형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이상야릇함”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더욱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표현되어지는데, 그것의 시작은 이미 카이퍼 자신의 칼빈주의이해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의 칼빈주의이해의 “이상야릇함”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비판하기 전에, 하지만, 우리가 인정해야만 할 것이 있다. 칼빈주의의 원리를 네델란드사회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려고 함으로 인하여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영향 자체를 부인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굉장한 사람이었다. 그에 대해서 보다 깊이 있는 연구가 이런 비판과 함께 병행되어야 할 것을 제안한다.
4. 카이퍼의 반정립(Antithesis)사상과 일반은총론
왜 카이퍼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게 되었는가? 그리하여 그가 이해한 칼빈주의의 핵심과 골자를 “하나님의 절대주권사상”에 두었는가? 이것을 사실, 카이퍼 당시의 네델란드사회 속에서 이해되었던 칼빈주의가 주로 내향적이고 경건주의적 요소가 강했던 것 때문이다. 그 당시의 칼빈주의의 이러한 경향은, 카이퍼가 보기로는,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분리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을 극복하고, 기독교인들은, 칼빈주의자들은, 고립된 교회내에서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부름을 받아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야 한다고 카이퍼는 느꼈던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의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신들의 소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또한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여기서 간단히 지적해 두고자 하는 근대교회사에서의 역사적 평행이 있다. 네델란드에서의 이런 카이퍼의 사회와 문화 속에서의 그리스도인의 과제에 대한 강조가 바로 미국의 풀러신학교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던, 헤롤드 오켕카, 칼 헨리 등의 “신복음주의”운동, 그리고, 로이드 존스 등의 청교도연구관심과 대조되는, 존 스토트 등으로 대변되는 영국과 유럽에서의 로잔언약운동 등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세계적인 범위에서의 교회사의 변화추세는 현대교회의 배경이 되는 세계문명사적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주지시켜 본다. 20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모더니즘에서 포스터모더니즘으로 변화되어가는 전이과정 속에 있었다).
카이퍼의 두 가지 목표, 곧, 세상에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의 과제로서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는 바로 이 일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었겠는가? 여기에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카이퍼의 반정립사상과 일반은총론이다(아마, 지금까지의 설명을 통해서도, 칼빈주의와 신칼빈주의의 차이를 별로 감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도 한국의 칼빈주의는 이미 신칼빈주의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인내를 부탁해 본다).
반정립사상이란, 종교나 철학의 영역에서 상호 반대하는 입장에 선 견해나 이론을 의미한다. 카이퍼에 의하면, 세상과 교회 사이에는 근본적인 반대입장으로 서로를 반대하는 적의(enmity)가 있다. 구원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원리를 가지고 있고,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은, 그것과는 반대되는 곧, 하나님에 대한 적의감을 갖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두 그룹 사이에는 절대 협동, 협조하는 것이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카이퍼는 “일반은총”이란 개념으로 이 문제를 극복한다. 이 “일반은총”론은 물론, 칼빈과 개혁주의신앙인들이 이미 이전부터 지니고 있던 개념이다. 하지만, 카이퍼의 “일반은총”론은 그 이전의 “일반은총”론과는 그 강조점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이전에는 일반은총의 “결과”나 “효과”로서의 그 부산물(products)에 대해서 강조했다면, 카이퍼는 일반은총의 “방편성”(means)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곧 그의 이전에는 일반은총으로 인하여 중생을 받은 사람이 그 중생과 회심의 감격의 동기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학문과 예술을 통한 그 결과로 사회변혁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 반면, 카이퍼는, 학문과 예술이라는 행위가 사회변혁의 도구나 수단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미세한 차이이다. 아니, 미세한 차이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미세한 차이가 큰 차이를 낫게 되는 것이 역사이다. 특별히 카이퍼 이후 몇세대를 거쳐오면서, 이 미세한 강조점의 차이는 이제 커다란 입장의 차이를 빚어지게 하였다.
그 차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 카이퍼의 일반은총론을 살펴보자. 카이퍼에게 있어서는 두 가지 하나님의 은총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총, 곧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총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사람에게 베푸시는 은총이다. 특별은총은 사람의 마음을 중생에 이르게 하는 반면, 일반은총은 인간사회 일반에 있어서의 죄의 효과를 극대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중생하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창조 속에 잠재되어 있는 잠재된 가능성을 개발시킬 수 있게 하고, 그래서, 인류의 타락 이전에 주어졌던 인류의 문화적 사명을 성취하는데 긍정적인 공헌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타락했지만) 남아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해서 일반은총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불신자들과 더불어서 동역하여 삶의 상태를 개선하고 빈곤을 퇴치하며 사회정의를 개선해 갈 수 있고, 또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일반은총은, 창조세계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감지할 수 있게 하며, 감사함으로 그것들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술과 과학, 문화의 발전과 향상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이 사회 속에서 활동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카이퍼는 그 당시의 개혁주의신앙인들을 도전해서 그들의 “경건주의적 이원주의”, 곧 주일과 평일을 구분하는 것,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을 폐지해야 된다고 하였던 것이다. 자연과 은혜를 분리시키는 일은 해서는 안된다고 도전하였던 것이다.
다시 주지시키거니와 이런 설명을 듣고도 카이퍼의 일반은총론에 대해서 별반 문제점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진정, 경건주의적 이원주의는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더란 말인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주일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날 가운데서 실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더란 말인가? 모든 것이 영적인 것이 아니더란 말인가? 자연과 은혜를 분리시킨 것이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 혹은 그 이전의 헬레니즘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더란 말인가?
그 모든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기독교인의 삶에서, 원리에서, 영육을 분리시키는 이원주의는 마땅히 배제되어야 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이원주의를 배제해야 한다는 말이 그 두 영역의 “구분”조차도 무시하게 될 정도로 두 영역의 어떤 차이의 정도를 약화시키게 된다면, 그 두 영역간에 혼동이 오게 되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다. 이 당연한 일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하지만, 이미 카이퍼의 신학에 제기되던 그 당시부터, 이런 경향을 감지한 사람들이 있어 왔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개혁주의진영에서는 카이퍼의 신학과 사상이 소개되면서, 이렇게 그에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어왔다는 것을 함께 강조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카이퍼의 신학과 사상이 견제될 수 있는 기회를 상실당했다고 하겠다. 특별히 시초부터 카이퍼의 이런 신칼빈주의에 대해서 비평해 온 사람들이 카이퍼보다 화란국교회로부터 먼저 이탈했던 사람들(1834년의 The Secession 때) 이다. Lindeboom이나 Ten Hoor같은 사람들은 심지어 카이퍼의 가르침이 아주 중요한 어떤 면에서 성경으로부터, 그리고 개혁주의의 신앙고백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하곤 하였다.
그 벗어난 부분을 다음 몇 가지로 기술해 보기로 하자.
5. 카이퍼 사상의 문제점
1) 기독교인의 과제설정의 우선순위에 대한 오해
카이퍼에 의하면,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타락 이전의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주셨던 바로 그 과제라고 한다. 그것을 “문화대사명”(the Cultural Mandate)이라고 한다.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이 과제를 적절하게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중생하게 되어서,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상실해 버렸던 원래의 그 관계로 회복되어진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이다.
창세기1:28의 이 “문화대사명”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실제 목적을 요약하고 있다고 카이퍼는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궁극적인 면에서 볼 때, 하나님의 목적은, “죄인들의 구원”(the salvation of sinners)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주의 대구속”(the redemption of the cosmos)에 있다는 것이다. 구원이란 궁극적 그 목적을 향한 일종의 수단(means)이 된다. 곧,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담에게 주어졌던 원래의 그 문화적 대사명을 실행하게 하는 것이다.
문제가 무엇인가? 한국의 이미 신칼빈주의화되어져 있는 “칼빈주의자들”, “개혁주의신앙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별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화대사명”은 카이퍼와 그의 추종자들의 사상체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되다보니, “선교적 대사명”(the Great Commission, 마28:19-20)과 비교해 볼 때, 이 문화대사명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SFC의 강령의 용어로 치자면, “세계와 국가와 학원의 복음화”라는 구호에서, “세계와 국가와 학원”이 “복음화”라는 것보다 더 무게중심을 갖게 된다. 이렇게 되면, “복음화”의 개념이 바뀌지게 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말이 나온 김에, 이 두 개의 요소는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SFC의 신학이다. 두 요소를 모두 강조하고, 놓쳐서는 안될 요소이다. 문제는, 지금 현하의 SFC가 어떠한가 함이다. 현재 국내에서 개진되고 있는 논의를 지켜보건대, 이 두 요소의 긴장을 적절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다툼의 골이 깊어지는 감이 있다. 진지하게 SFC의 본질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필자의 소망은, SFC가 “복음화”의 본질, 곧 “복음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 희석되지 않으면서, “세계와 국가와 학원”의 문제에 대해서 광범위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세계, 국가, 학원”만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관심이 그 활동을 통해서 개진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은 일차적이어야 한다.
곁길로 새었다. 카이퍼로 되돌아 가자. 카이퍼는 이 두 요소에 있어서, 균형을 추구하려고 애쓴다. 그리스도는 그래서 구속의 중보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창조의 중보자이시다. 잃어진 바 된 죄인들만 아니라, 잃어진 바 된 세계와 우주를 위해서도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요소를 강조하면서도 어디에 중점이 있는 지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강조점의 전이는 그 추종자들에 의해서 강화되어진다. 심지어는 이러한 문화대사명을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절대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이 대사명이 완수되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주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 지나친 감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성경적으로 적절한 강조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우리의 문화적 대사명을 성취해가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그 진보에 수반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 우리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우리의 활동과 관련된 점을 지적하자면, 이 문화적 대사명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선교(전도)적 사명에 있다는 것이 신약성경이다. 마태복음24:14을 보라.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주님께서는 문화적 대사명을 완수해야만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창세기1:28절은 아무 의미가 없는가? 아니다. 큰 의미가 있다. 문제는 그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하여서, 마태복음28:19-20을 대치시켜버릴 정도가 된다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카이퍼의 신학적 강조점이 그런 방향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기본논지들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모든 인류에게 사명을 주셨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인류에게 주어졌다는 소위 ‘문화대사명’이 원래 아담에게 주어졌던 그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주어졌는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이 ‘문화대사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일종의 율법주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곧, 은혜와 은혜의 언약이라는 맥락에서 논의되는 것이 아니다. 이 사명이 주어졌던 것은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이었고, 이젠 이 사명을 실행할 수 없는 위치로 전락해 버렸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겼는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그 사명을 성취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이 없단 말인가? 아니다. 있다. 문제는, 우리의 사명, 우리의 문화적 대사명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와 그 능력과 그 동기에 의해서 실행되어야 하고, 실행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점에 다시 주목하기 바란다. 문화대사명을 바로 강조하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된 이 사명을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 우리들이 그런 구원의 감격과 은혜에 대한 감사로서 실행하게 된다는 것에는 조그만 차이인 듯 하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게 된다. 문화대사명에 대한 강조가 자칫 신율법주의적 강조가 되기 쉬운데,이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어떤 행위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앞당겨진다느니 하는 식의 주장은 단호하게 거부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행하심보다 더 앞서 행하기 쉬운 경향이 있음을 우리가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적 대사명”이란 개념이나 용어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조심해서, 경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의 원형”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지 않고 이것을 주장해야 한다. 사실, 영국의 경우를 치자면, 이 문화적대사명에 대한 강조는 존스토트의 신학과 연관이 되고, 로이드 존스의 신학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그 사실들을 유념하기 바란다. 어느 쪽의 신학을 취할 것인가? 두 분 모두에게서 배워야 한다. 무엇을 우선적으로 강조해야 하겠는가? 로이드 존스목사의 “중생과 회심”의 청교도신학이 우선 강조되고, 그런 강조에 기초해서, 존 스토트목사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과제를 균형있게 강조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 두 요소를 균형있게 강조할 수 있는 신학이 현하 한국의 개혁주의신학계에서 개진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중생과 회심의 신학이 회복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과연 중생에 대해서, 회심에 대해서 알아야 할 만큼 알고 있는 것일까? 과연 한국교회는 이 “중생”의 신학을 지금까지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여 이제는 이 문제를 고리타분하게 여길 정도까지 되었는가? 그래서 이젠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책임”에 대해서 강조해야 할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일까? 그리스도인됨에 대해서 확실하고 분명하지 않으면, “윤리와 그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율법주의”가 되기 쉽다는 것은 교회사의 교훈이다.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활동(문화,예술, 정치, 경제 등)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완성에 기초해야 한다. 이것에 강조하지 않고, 곧 “복음”과 “복음화”에 대한 충분한 강조없이 “문화대사명”에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행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그리스도의 구원케하시는 은혜에 근거한 것임을 잊어버리게 할 경향이 있다. 복음을 말하지만, 복음이 상실될 위기, 예수를 말하지만, 예수를 잃어버릴 위기가 바로 이런 경향 때문에 오게 되는 것이다.
(카이퍼의 창1:28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 성경해석학적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것도 언급해 둔다. 기회가 되면 이 점에 대해서만 써볼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2) 문화에 대한 낙관적 견해 및 문화구속의 가능성에 대한 착각
위에서 지적한 카이퍼신학의 문제점은 그의 일반은총론과 긴밀한 관계에 놓여져 있다. 곧 그의 일반은총론은 세속문화활동에 그리스챤들이 활동하는 것을 강조하게 되고 결국 칭의나 중생의 개념에 있어서의 외현화(externalization)를 낳게 되는데, 이 항목에서는 일반은총론에 집중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카이퍼 이전에는 일반은총이라는 것을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동시에 햇빛을 비춰주시는 그런 분으로서의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일컬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에,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 차별 없이 전파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원하기도 하였다. 카이퍼의 일반은총론이 여기에 머물러 있었다면 별다른 문제를 지적할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카이퍼에게 있어서의 일반은총이란 주로 우주와 문화의 구속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을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이런 일반은총의 개념은 그의 예정론과 결합되어,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이 두 가지 길을 통해서 성취되어진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신학체계가 형성되었다. 곧, 한편으로는, 택함받은 자들이, 특별은총을 통해서, 구속의 중보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원에 이르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의 중보자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는 일반은총을 통하여서 우주가 그 모든 문화의 가능성을 담지한 채로 구속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결국 문화와 세상에 대한 대단히 낙관적인 견해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은, 어쩜 당연하다. 카이퍼는 천재였었고, 은혜를 많이 입은 자였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서 균형을 잃지 않았다. 그는 죄에 대하여, 그리고 그 죄의 이 우주와 인간에게 미친 엄청난 결과에 대한 성경적 시각을 잃지 않았음에 분명하다. 반정립의 사고방식이 철저해서, 일반은총과 특별은총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분명한 차이에 대한 인식이 그 추종자들에게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불행의 단초이다. 이런 일반은총론을 취한 많은 추종자들에게서는, 이 세상과 그리스도인 간에 있는 어떤 근본적인 차잇점에 대하여 강조하는 것은, 너무 엄격하다는 식의 방향으로 발전(?)되어갔던 것이다. 소위 개혁주의자라고 하면서도 복음주의신학을 선호하고, 목회에 복음주의신학과 개혁주의신학을 구분하지 않고, 또한 자신을 개혁주의자라고 불리워지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경향들도 다 이런 식으로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혁주의를 표상하지만, 실상 개혁주의신학으로 목회하는 자들이 별로 없게 되어 버린 것이 바로 현대개혁주의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필자의 요지는, 신칼빈주의가 바로 세속화의 길로 치닫게 되는데 있어서 이 일반은총론이 작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칭의라는 개념이 부인되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그 칭의가 “체험적으로” 이해되지 않게 되었다. 칭의가 단지,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이해되는데 그치고 일종의 신조상의 고백으로 이해되고 마는 불행이 빚어지게 되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의 교리가, 불타는 교리가, 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체험에 대한 지나친 경계가 아예 체험을 무시하는 신학체제로 변형되어버리게 된 것이다.
이런 신칼빈주의의 경향을 W. Aalders같은 학자는 “The Great Derailment”(엄청난 탈선)라고 평가하였다. 은혜의 교리가 외현화(externalization)되어 버렸다고 탄식했던 것이다. 카이퍼의 이 세상 가운데서의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열심이, 영적 가치를 세속화시켜버리는 과정을 가속화시키게 되었다는 것은 일종의 역설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교회사를 통해서 흔하게 있었던 일이 아니던가! 세상과의 계속되는 접촉의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세상의 영에 노출되면서, 점점 더 개혁주의신앙은 외현화되어지고, 공허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경향은 바로 카이퍼의 생애에서도 지적되었던 문제였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카이퍼의 신학에 동조해서 시작된 교회(the Gereformeerde Kerken in Netherland)가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에도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교회에 대해서 대항해서 31조파(K.Schilder의 1942년<?>의 분리운동으로 시작)라고 불리워지는 교회가 나중에 고신교단과 자매관계를 맺게 되고, 이 고신교단에서 SFC운동이 태동되었다는 것은 이 SFC운동의 방향성에 대한 일종의 좌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화란교회내에서의 개혁주의 신학운동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도 기회가 되는 대로 약술하기로 하겠다).
신개혁주의의 철학화 경향에 대해서는 4)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3) 교회의 유기체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와 제도적 측면에 대한 강조의 약화
신칼빈주의의 철학화와 체험무시경향을 다루기 전에, 먼저, 신칼빈주의가 그 당시의 철학적 개념을 수용하게 된 것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카이퍼가 활동하던 시대에 유행하던 철학적 개념이 바로 “유기체”라는 개념이다. 독일 관념론적 낭만주의 철학의 중심개념이 바로 이것이다. 이 “유기체”란 말은, 생물학적 용어로서 자기 법칙적 발전과 내재주의 사상을 담고 있다. 바로 이 개념을 카이퍼(와 바빙크)가 차용하게 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그의 제도적 교회와 유기체적 교회의 구분이다. 이런 용어의 차용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 철학의 개념과 용어를 빌려서 성경적 개념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언제나 교회사에서 시도되어 왔었다. 문제는 성경과 복음이 왜곡될 정도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카이퍼의 교회론에서 있어서도 이런 왜곡의 가능성을 감지할 수 있다.
카이퍼에 의하면, 제도로서의 교회와 유기체로서의 교회로, 교회가 구분되어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한다. 제도로서의 교회는 세가지 직분(목사, 장로, 집사)이 주어져서 가르치고 성례를 베풀며 권징을 행하는 일을 한다. 신자들의 몸인 유기체로서의 교회는 사회적 활동에 연루되는데, 그래서 문화적 대사명을 실행하게 된다. 문제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서 분명해 진다.
“The church as institute is not all of the church, nor the real or essential church, not the church itself, but an institute established through the church and for the church in order that the Word can be effective in its midst.”
제도로서의 교회가 유기체로서의 교회를 위해서 존재할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제도로서의 교회는 단지 유기체로서의 교회인 성도들을 무장시켜서 세상 속에서 그 세상을 그리스도를 위해서 구속시켜가도록 사회적 활동을 활발하게 개진해 감으로 문화적 사명을 성취시켜 가도록 하는 일을 위해서 존재하게 된다.
카이퍼 이전의 개혁주의신앙인들 속에서는 사회 속에서의 그리스도인의 활동을 강조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기본적인 존재이유는 바로 죄인의 구원에 있었다. 이제 카이퍼의 신학에서는, 택함을 받은 자들이 이미 중생되어진 채로 이 세상에 들어온다. 태어날 때 이미 중생되어져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유아가 중생되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유아세례를 베풀게 된다(이런 중생관과 회심관은 아래의 5)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다). 결국 교회의 주된 직무는, 이렇게 이미 중생한 사람들을 양육해서 세상에서의 삶을 위해서 그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그가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그의 교회관에 근거하면, 불신자의 상태에서 신자로의 변화에 이르게 되는 회개나, 믿음, 새로운 출생, 칭의, 성화 같은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서 죄인들의 심령 속에 역사하게 되는 것을 강조하기 보다는(카이퍼는 이런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와 문화를 구속하기 위해서 활동해야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한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유기체라는 독일관념적 낭만주의 철학의 개념이 카이퍼의 신학을 통해서 교회내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유기체 개념은, 그 당시의 정통주의교회의 기계론적 초자연주의나 19세기의 물질주의나 진화론을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었지만, 인과론을 극복하지 못함으로, 성령의 역사를 일종의 유기체적 원리로서 이해하게 되는 길로 인도하게 된다. 결국 성령의 역사와 은사에 대한 세속화된 이해나 무관심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
4) 언약에 대한 철학적 개념화
위에서는 “유기체”라는 개념의 차용에 대해서 살폈거니와 이젠 “언약”의 개념 자체가 카이퍼 이전과는 달라진다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자. 한 마디로, 카이퍼에 이르러서, “언약”의 개념이 형이상학적으로 변화된다. 곧 그 이전에는 “언약”이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어떤 관계”를 설명하는 도구였었다. 그런데, 카이퍼와 그 후예들은 이것을 형이상학적으로 확장해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관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세상, 예를 들면 국가) 사이의 모든 관계들에 대하여서도 적용시켜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언약”개념은 위에서 언급한 “유기체”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곧, 세계와 신과의 유기체적 관계를 설정하는 독일관념주의 철학적 전제를 받아들이게 되면, 이런 유기체적 관계를 성경의 “언약”의 개념 속에 잡아넣게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되는 셈이다(신칼빈주의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유기체적 관념론은, 범신론적 경향을 갖고, 결국, 슐라이에르마허의 자유주의신학과도 연결되는 것에 유의해 두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세상의 철학의 흐름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지만, 언제나, 그 철학의 단점과 문제점을 염두에 두어야만 할 것이다. 성경을 통해서 계시되어진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외에는 우리의 삶과 신앙에 기준과 근거가 될 수 있도록 주어진 것이 없다. 절대 없다.
도대체 이런 유기체적 언약의 개념을 끌어들인 동기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개념과 사상이 지나치게 강조됨으로 한 켠으로 치우칠 것에 대한 염려 때문에 오게 된다. 정당한 염려이다. “하이퍼-칼빈이즘”(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인간의 행함이 구원의 영역에서만 아니라, 그 구원에 이르게 되는 방편의 사용조차도 금지하는 경향을 가진 사고방식)의 위험을 숙지하게 되면, 이런 절대주권의 지나친 강조로부터 오게 되는 위험이 무엇인 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시도된다. 그래서 언약의 개념을 끌어오게 된다. 문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언약의 개념이 상호대립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면, 이런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서, 언약의 개념 자체에 어떤 변경이 불가피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변경된 개념으로서의 신칼빈주의의 유기체적 언약개념을 바로 이런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언약의 개념이 그렇게 상호대립된 것일까?
이 부분의 설명이 무척 어렵게 여겨질 지 모르겠다. 애당초 약속처럼, 대략적으로 스케치를 한 뒤에 필요한 부분은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시도하도록 하겠다. 우선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 대한 우려, 노파심…..바로 이것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해야 할 중요한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런 노파심 때문에, 기존의 “언약”의 개념에 변경을 가한 “유기체적 언약”의 개념은, 결국, “언약”이라는 개념으로 모든 관계를 파악하려고 하는 일종의 “Hyper-Covenantism”을 낳게 하고, 애당초 견제하려고 하였던 “Hyper-Calvinism”의 오류에 빠져들어가게 되니, 참으로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우리를 이 아이러니에서 건져주실 자가 누구인가? (감사하리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하실 지니!) 그래서 도이벨트 같은 “신칼빈주의”철학자는 벌코프의 신학이나 반틸의 변증학, 나아가서는 웨스트민스트신앙고백 등을 홀대하는 경향을 보여주기도 한다(벌코프, 반틸의 신학에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도 참 할 말이 많은 영역이지만, 이렇게 언급만 해두기로 하자).
도대체 이런 언약의 개념에 어떤 문제점이 있다는 것인가? 우선, 이렇게 언약의 개념이 확장이 되면, 언약의 최우선적인 의미가 “죄인의 구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문화변혁”에 있게 된다. 신칼빈주의에서 창세기 1:28의 소위 “문화대사명”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죄인의 구원”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지 않은 채로 “세상의 문화변혁”에 우선적인 관심을 둠으로 해서, “죄인의 구원”, 곧 회심과 중생에 대한 관심이 희박해지고, 그 신학적 논리를 상실해 버리고, 그런 것에 대한 강조에 대해서 생리적인 거부감을 느끼고(이것이 바로 청교도들의 신학에 대한 혐오감의 실상이고, 소위 복음주의신학의 현주소가 아닐까?), 결국 나아가서, 인본주의적인 삶의 태도를 노정하게 되고, 세속주의에 물들어가게 되는 것이 일종의 사회학적 관찰이다. 예술과 문화행위가 또 다른 우상적 행위로 변질되지 않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현금, 포스터모더니즘으로 달려가고 있는 세상에서는 벌써 예술과 문화가 우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기를 바란다(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화활동을 우상화되지 않으면서 크리스챤으로서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은 결론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사실, 이것이 주 관심사이고, 카이퍼신학의 비판동기이기도 하다. 비판의 과정에서 그것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필자의 주관심사항인 5), 6)항으로 넘어가기 전에, 신칼빈주의의 언약개념의 문제점에 대해서 한가지만 더 살펴보기로 하자. 신칼빈주의에서는 언약의 개념을 확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로서의 언약이라는 것에 있어서도 얼마간 변경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곧,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맺게 된 언약이라는 것이, 신칼빈주의에서는 주장하기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창조된 인간의 타락하기 이전 상태의 본질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카이퍼 이전의 칼빈주의에서는 아담이 하나님께로 받은 행위언약 이전에도, 일종의 도덕률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강조했었다. 이것은 웨스트민스트신앙고백서7장1절에 잘 나타나 있다.
“The distance between God and the creature is so great, that although reasonable creatures do owe obedience unto him as their Creator, yet they could never have any fruition of him as their blessedness and reward, but by some voluntary condescension on God’s part, which he hath been pleased to express by way of covenant.”
하나님께서 양보해 주셔서(“some voluntary condescension”이란 글귀 참고), 언약, 곧 행위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행위언약을 맺기 이전에도 아담은 창조주되신 하나님께 마땅히 복종해야 할(“owe obedience”라는 글귀 주목) 도덕적 의무가 있었다는 의미이다. 미세한 차이처럼 보인다. 이런 차이에 주목해야, 칼빈주의-신칼빈주의논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현하 개혁주의가 앓고 있는 몸살을 치료할 수 있다. 곧, 신칼빈주의는, 이런 미세한 차이에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담과 하나님 간에 맺은, “행위언약으로서의 율법”(the law as covenant of works)과, 그 이전에도 있었던 인간의 마땅한 본분으로서의 “생의 법칙이 되는 율법”(the law as rule of life)을 혼동함으로 인해서, 결국 표현하기 두려운 일이지만, 반율법주의(antinomianism)의 씨를 뿌려놓게 되었던 셈이다. 필자로 보기로는 이런 비판은 지나친 감이 없쟎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위험의 가능성이 있는 hyper-Calvinism과 연결되는 대목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언급해 두고 싶다. 문화활동과 사회에서의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실상은, 이런 반율법주의적 경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의아하게 여겨질 지 모르지만, 유념해 두어야 할 대목이다. 문화활동과 사회참여가 실상, 곧 복음의 원형에 근거하지 않고,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복음의 이해와 관찰에 근거한 인본주의적 운동이 될 가능성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5) 잘못된 중생개념과 유아세례관
카이퍼신학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바로 그의 중생개념이다. 이 중생개념에서 파생된 것이 그의 유아세례관이다. 필자는 장로교목사로서 칼빈의 이해를 따라서 유아세례를 주장하는 사람이되, 결코, 카이퍼의 유아세례관을 받아들이지 않음을 미리 밝혀 둔다.
지금까지의 신칼빈주의의 언약개념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어느 정도 감지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런 아담과의 맺어진 언약이 모든 인간과 더불어 맺어진 언약이었고, 이 언약은 그러므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출생하게 되는 바로 유아때부터 맺어지게 된다는 생각이다. 바로 이것이 카이퍼의 생각이다. 신자의 자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중생”이 되어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 언약관계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언약관계를 거부하기까지는, 이 신자의 자녀는 “구원에 이르는 은혜”(saving grace)를 담지하고 있는 사람으로 간주된다(presume). 그래서, 이런 카이퍼의 중생관을 “간주된 중생”(presumptive regeneration)론이라고 한다.
눈을 부릅뜨고 이 글을 읽어가기를 요청한다. 아마도 이 글을 읽게 되면, 필자가 목사된 지 6년 뒤에사 ‘참된 중생’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어느 정도 조금이나마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필자의 선친은 목사였었고, 또한 필자는 유아세례를 받았었다. 그럼에도 참된 중생을 알지 못하였었다. 카이퍼가 “중생”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 이후의 “회심”에 대해서 강조하기는 하지만, 그런 주장은, 중생과 회심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오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목회상황에서, 실은, “거의 그리스도인”(Almost Christian)임에도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Non-Christian)을 양산해 낼 가능성이 바로 여기 카이퍼의 신학체계 속에 숨어 있음을 깨닫지 못한 채로, 카이퍼의 신학에 물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카이퍼”라는 이름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필자가, “카이퍼”라는 이름을 알았던 몰랐던 그것과 관계없이, 어째튼, 목사가 된 지 6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그리스도인”이었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카이퍼”의 신학체제 속에 담지되어 있는 아주 위험한 요소이다. SFC가 카이퍼신학의 이 문제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어쩜, 허공을 치는 운동이 되고 말 것임을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싶다. 그러니, 눈을 부릅뜨고 필자의 글을 읽길 요청하는 것이다. 대안적 세계관으로서의 개혁주의, 사회변혁의 철학적, 신학적 대안으로서의 개혁주의에 감격하고 흥분하며 주창한다고 할 지라도(필자도 그러했었다), 바로 이 중생에 대한 신학이 바로 정초되지 않으면, 그 어떤 운동도, 그 어떤 신학도 주의 나라의 일에 물거품일 뿐이다. 주여, 우리의 눈을 열어 이것을 바로 보게 하옵소서! (필자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현재, 이 문제와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텍스트로서의 자아”(Self As Text)라는 글을 집필하고 있는데, 이번 여름이면 탈고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모더니즘에서 포스터모더니즘으로의 변화과정에서 형성된 회심개념의 변화과정에 대한 지식사회학적 연구”라는 글을 심도있게 집필하게 된다. 관심이 있으신 분의 기도를 부탁한다).
카이퍼의 “간주된 중생”론은, 얼핏 보면, 칼빈의 신학에서 유래한 것 같다. 그리고 카이퍼는 그렇게 주장한다. 그러니, 그의 견해를 비판하는 것은, 논문감이다. 하지만 이 글은 논문이 아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간략히 기술하기로 한다. 그가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기 위해서 인용하는 칼빈의 글, Gomarus, Maccovius, 특히 Voetius 등의 글은 대부분 재침례파를 반대하기 위해서, 유아의 중생가능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논쟁의 맥락을 잘 이해해야 한다. 재침례파는 유아세례를 반대한다. 그 반대하는 것을 반대하다 보니, 어떤 강조점이 극단으로 가기가 쉬워진다. 곧 재침례파의 유아세례를 반대하기 위해서, 어떤 유아는 태어날 때부터 중생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그런 주장을, 모든 (신자의) 유아는 태어나면서부터 중생했다는 식으로 주장하게 되면, 일종의 왜곡이 일어나는 것이다.
전통적인 칼빈주의자의 입장에서는 신자의 유아라 하더라도 중생하지 않는 자로 여긴다. 언약을 근거로 해서 유아세례를 베푼다 하더라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물론, 이런 입장에도 문제가 있고, 긴장이 느껴진다. 하지만, 신자의 자녀라 하더라도, 유아세례를 받은 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지정의로 구원의 필요성을 깨닫고 참된 믿음과 회개를 통한 중생의 표지를 보여주기까지는, 중생하지 않은 자로 여겼다는 것이다. 이것이 카이퍼와 동시대에 살았던 헤르만 바빙크의 견해이고, 프린스톤신학교의 촬스 핫지나, 아키발더 알렉산더의 입장이다.
카이퍼의 견해에 따르면, 사울이 다메섹도상에서 회심하게 되기 전에도 중생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그는 회심 이전의 사울을 “중생한 신성모독자”(a regenerated blasphemer)라고 불렀다고 알려진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중생”의 개념이 얼마나 천박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현대의 복음주의자들에게 있어서의 천박한 “중생”개념과 거의 유사해 진다. 은사주의자들의 “중생”개념과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런 “중생”개념을 전제하기 때문에, 중생 이후의 “회심”을 강조하는 이상야릇한 신학체계를 우리가 만나게 된다. “중생” 이후에 “제 2의 축복”으로서의 “성령체험”을 강조하는 현대은사주의자들, 오순절주의자들과 그 논리의 맥이 일치하는 것에 주목하라. 왜 개혁주의운동의 한 본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고려신학대학원출신의 상당수의 목사들이 현대의 은사주의운동에 그렇게 거부감이 없이 몰입되고 있는가? 왜 개혁주의자들이 개혁주의운동과 신학을 부끄러워하는가? 조심스럽게 진단해 보는 것은, 개혁주의신학과 신앙이 신칼빈주의적인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것을 의식하든 지, 의식하지 못하든 지….
더욱 구체적으로 카이퍼의 논리를 비판해 보자. 카이퍼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0장 3절을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신자의 자녀로서 유아때 죽은 자들은 중생된 자로 간주된다는 것이 그 빌미이다. 이 고백을 근거로 모든 신자의 자녀들은 중생된 자로 여긴다는 것이다. 논리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는가? 첫째, 신자의 어떤 자녀들(일찍 죽은 자녀들)이 중생된 자로 간주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신자의 모든 자녀들이 중생된 자로 간주될 수 있다는 논리의 비약에 주목하라. 둘째, 어떤 자녀들의 중생의 가능성(possibility)에 근거해서 그 어떤 자녀들의 중생의 가망성(probability), 나아가서 중생의 간주성(presumption)으로 논리가 비약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이 신자의 자녀들 중 유아때 죽은 자를 중생된 자로 여기는 경우를 인정한다고 해서, 신자들의 모든 유아들을 중생된 자로 보지는 않았었다. 그들이 여전히 중생되어야 할 자들로 보았다. 그런데 왜 유아세례를 베풀었는가? 그것은 언약의 표로서 행하였다. 곧, 구약의 할례받은 것이 그 육체의 할례로 인하여 언약의 외적 표로 삼았던 것처럼(하지만, 마음의 할례가 진정한 언약이었다), 유아세례도 앞으로 있게 될 마음의 할례에 대한 일종의 외적 표로서 행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의 할례에까지 이르도록 키워갈 것에 대한 부모의 서원이요, 소망이요, 결심이 담지된 행위가 바로 유아세례인 것이다. 곧, 자신의 자녀들이 참으로 중생하여서, 하나님과 더불어 자녀들 스스로 마음의 할례와 일치되는 내적 언약을 맺을 수 있도록, 그 내적 언약을 가르키는 일종의 사인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의 칼빈주의자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마음의 할례에 이르기까지 교육시키고 양육하는 것이 바로 부모의 책임으로 여겼다. 청교도들에게 가정이 그렇게도 소중한 역할을 했던 것을 바로 이런 맥락과 관련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자신의 자녀가 참된 중생을 통한 구원에 이르지 않고 어떤 다른 일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강조로부터 이미 자녀들이 중생한 자로 여길 수 있는 것으로서의 유아세례로 변화된 것은, 변화라기 보다는, 일종의 변질이다. 칼빈주의를 위협하는 아주 위험한 변질인 셈이다. 바로 신칼빈주의에게 이런 위험의 요소가 남아있음을 강조한다. 필자의 젊은 시절이 바로 이런 신칼빈주의에 희생되었던 삶이었음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통곡했는 지 모른다. 이런 통곡으로 가슴을 치는 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소망한다.
카이퍼의 이런 중생개념, 유아세례 개념에는 더욱 위험한 사고방식이 숨어 있다. 곧,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the secret counsel of God)을 신학과 삶의 기본 토대로 삼았다는 것이다. 유아나 태아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접근할 수 없는 전능하신 절대주권의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그런 영역에 속한 일에 인간의 부족한 지혜의 칼을 들이대면서 해부하고, 그것으로 신학적 토대를 쌓아가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일을 헤아릴려고 하는 인간의 교만이다. 이미 계시되어진 하나님의 뜻에 자족하지 않으려는 인간철학의 소산이기도 하다. 바로 계시되어진 하나님의 뜻에 의하면, 신자의 모든 자녀들 조차도, 참된 믿음과 참된 회개로 부르셔서 중생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이 자녀양육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모의 의무와 책임을 면제시켜주는 듯한 신학이 바로 카이퍼의 신칼빈주의이다.
6) 잘못된 회심관
카이퍼 신학의 중생관의 오류를 제대로 이해하면, 그의 회심관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은, 쉽게 간파된다. 무엇보다도 큰 잘못은, 구원에 이르는 회심을 중생과 분리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곧 그의 신학체계에 의하면,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중생했지만, 회심하지 않은 자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구원의 서정이라는 구원의 과정에 있어서, 중생, 믿음, 회심, 회개 등의 의 순위에 대한 논의를 이해해야 좀 더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겠다. 사실, 이것도 논문감이다. 필자의 이 관계들에 대한 이해는, 필자의 회심의 과정을 기술해 놓은 다른 글을 언급함으로 간소화시키고 싶다. 관심이 있으면, http:www.yangmoory.org 의 “칼럼”란에 올려져 있는 <*목사의 회심이야기>란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것에 관한 책을 번역해서 곧 국내에서 출간될 예정임을 귀띰해 놓는다. 간략히 약술하면, 말씀의 씨가 뿌려지는 초기중생(수정, conception)을 통해서, 자신의 죄인됨에 대한 각성과 인정, 참된 회개와 믿음, 그리고는 거듭남(중생)과 칭의, 그 이후의 성화의 과정을 통틀어서 회심이라고 보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회개는 회심의 과정 중에 있는 결정적인 변화의 단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회심이란, 순간적이고 결정적인 회개를 통한 기질과 성품의 변화를 동반하는 평생토록 계속되어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회개와 회심을 구분하고 있음에 주목하라.
이런 회심관은, 종교개혁 이후로부터 17-19세기까지 강조되어 왔던 “기질과 성품으로 변화로서의 회심”과 일치하고, “새로운 기질”, “새성품”을 입게 되는 변화의 동반을 강조하는 회심관이며, 인간의 의지적인 결단을 강조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임을 강조하는 회심관이고,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는 것만이 아니고, 바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을 선언하는 회심관이며, “나의 정과 욕심을 그 육체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음”을 선언하는 회심관이다.
이런 회심을 카이퍼가 강조하지 않았는가? 아니다. 분명하게 강조해 왔다. 특별히 그의 책, “The Work of the Holy Spirit”에서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문제가 무엇인가? 다시 말하거니와 중생과 회심을 분리시켜 버림으로 인해서, 이 회심에 대한 강조가 왜곡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중생이란, 거듭남을 말하고, 그 거듭남을 통해서 새로운 기질과 성품을 부여받게 된다. 그런데, 이런 중생이 유아때부터 이미 일어나 버린 것으로 간주되어 버리기 때문에, 비록 회심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그 강조의 위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효과적이지 않게 들린다. 자칫하면, 회심(conversion)과 회개(repentance)가 혼동되어 버린다. 곧, 회심을 생각할 때, 인간의 의지적 결단을 강조하는 식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혼동이 바로 현대의 신칼빈주의자들 사이에서 빈번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신칼빈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아예, 회심과 회개를 구분하지도 않는다. 구분할 수 있는 신학적 지평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혼동은, 찰스 피니의 부흥신학, 그리고 그 이후의 복음주의 운동의 득세와도 연결되어서 더욱 깊어져 가는 것을 본다. 현대교회의 복음주의운동의 흐름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향이 득세하게 된 것이 바로 신칼빈주의 때문이라고 필자가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그 원인이 아니고, 그런 현상의 한 모습이라는 것이 필자의 논지이다. 그 원인에 대한 대강의 분석은, 필자의 또 다른 글, “영국복음주의운동의 과거와 현재, 영국한인교회의 좌표”라는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필자는 한국교회의 위기는 바로 이 부분에서 지적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복음병원부도사태”(이것은 그 신학이 부도상태에 이른 그 한 증상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의 치유는 바로 한국교회 초창기에 있었던 회개운동의 올바른 신학화, 곧 역사적 칼빈주의의 회심과 중생이론을 한국적 상황과 관련해서 올바로 정립하고, 그것을, “민족의 체질을 변혁시키는 복음”으로서, 한국사회와 교회에 대안으로서 제시할 수 있는 데서부터 시도되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이제 이 회개와 회심에 대한 왜곡된 실상에 관련해서 신앙생활의 핵심이 무엇으로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로 넘어가자. 이 부분에 있어서의 신칼빈주의의 오해는 좀 더 심각할 지도 모른다.
7) 체험의 위치에 대한 오해
중생과 회심에 대한 왜곡된 견해는, 신앙생활에 있어서의 체험에 대한 왜곡된 태도를 갖게 한다. 이 점에 말하기 전에, 먼저, 필자의, 신앙생활에서의 체험에 대한 견해를 간략하게 피력하겠다. 간략하게는 미국의 대표적인 청교도신학자 조나단 에드워드의 The Religious Affections에 나오는 견해를 취하고 있다.
체험은 교리보다도 우선되어서는 절대 안된다. 무엇보다도, 사람마다 체험의 질과 깊이에 있어서 다르기 때문에, 이것이 우선시되어지면, 일치된 신앙고백에 이를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가 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할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한 모습을 추구하기에 체험우선, 체험중시주의 신학은 배격되어야 한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자유주의신학이든, 은사주의운동의 체험강조의 신앙생활을 동시에 경계해야 한다. 이런 입장을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체험 “주의”를 배격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체험주의를 배격하는 것 때문에, “체험”까지 무시하게 되면, 신앙생활에 왜곡이 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편으로는 “교리와 신조”를 강조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을 강조하면서, “체험”을 무시하게 된다면, 그것은 지정의의 전인격으로 추구해야 할 신앙생활의 아주 중요한 한 국면이 무시되는 셈이 된다.
이런 면에서, 역사적 칼빈주의는, 특별히, 청교도의 신앙에서 표현된 형태는, “체험적 종교”(Experimental Religion)라고 일컫어 진다. 여기서 experimental이라는 말은, 청교도운동이 한창이던 17세기의 계몽주의사조의 영향을 입은 단어이기도 하다. 그 당시 귀납법적 경험론이 강조되던 당시에 experiment라는 것은 곧 “감각”(sense)를 통한 경험적 확인의 절차를 의미하기도 했고, 이런 사조 가운데서 진행되던 신앙운동으로서의 청교도 신앙운동은 이런 시대사조를 잘 반영하는 가운데서도, 그것에 함몰되지만은 않고, 신앙생활의 옳은 체험적 국면을 표현할 때, 그것을 experimental한 것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니 이 단어는 한편으로는 “실험적”이라고도 번역되고, “체험적”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후자의 의미가 이 글에서의 뜻이다.
신앙생활의 지성적 측면으로서의 교리의 강조, 의지적 측면에서의 윤리적 삶(사회적 책임등)의 강조, 그리고, 정서적 측면에서의 교리의 체험과 그 체험에 기초한 동력적 삶의 전인적인 모습이야말로 마지막 결론부분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게 될 필자의 신앙생활관이다.
이것을 먼저 피력하는 것은, 체험의 어떤 면을 강조하려고 하는 필자의 견해를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기 때문이다. 바로, 카이퍼 이후의 신칼빈주의 신학과 사상에 깊이 몰입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가 있을 것이다. 신칼빈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한다. 옳은 일이다. 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교리에 대한 지식을 강조한다. 옳은 일이다. 그 교리에 근거한 삶을 강조한다. 옳은 일이다. 문제는,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한다면, 문제가 된다. 신앙생활에는 체험적인 국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체험적인 국면을 무시하고 혐오하는 입장이 바로 신칼빈주의적 견해라면 놀랄 지 아니면 당연하다고 하실 지….
죄의 확신에 대한 어떤 신앙적 체험, 그런 체험으로서의 회심의 강조, 그리고 이런 참된 회심을 통한 구원에 이르는 은혜를 받았는 지 받지 않았는 지를 살펴보려고 하는 자기점검에 대한 욕구를 기피하려고 하고, 혹은 혐오하기까지 하는 것이 신칼빈주의적 경향성이다. 그래서, 그들은 청교도들의 신앙과 신학을 좋아한다거나 존경한다고 립서비스를 하지만, 진지하게 그들의 신앙과 신학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려고 하지 않는다.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고, 또한 너무 고리타분하고, 너무 경직되어 있어서, 현대인들의 취향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의 신학과 신앙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접해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청교도신앙과 신학과는 다른 별개의 신학을 “개혁주의신학”이라고 생각한다. 개혁주의신학에 대한 큰 오해이다. 신칼빈주의적 개혁주의이다.
객관적 교리적 진술에 대한 주관적 체험의 이해가 동반되는 것을 동시에 강조한 것이 바로 칼빈주의였다. “열정 칼빈주의”였다. 그 “열정” 칼빈주의에 “열정”이 빠지고, 이젠 칼빈 “주의”만이 남게 된 것이 신칼빈주의라 할 수 있겠다. 변형된 개혁주의이다. 프린스턴신학교의 학장이었던 아키발더 알렉산더의 Thoughts on Religious Experience를 탐독해 보라. 이것은 결코 슐라이에르마허의 체험신학이나, 윌리엄 제임스류의 체험이해와는 그 근본적인 동기와 질이 다르다.
신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이 어떻게 체험을 무시하게 되었는가? 실상, 카이퍼 자신은 체험을 무시하지 않았다. 체험종교로서의 청교도들에 대한 외경감을 담지하고 있었다. 그의 Stone Lectures들을 일독하길 바란다. 문제는 그의 언약개념, 그리고 중생과 회심의 개념을 논리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그가 원하지 않았던 막다른 골목, 곧 체험을 무시하게 되는 신앙의 패턴을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곧, 태어날 때부터 중생한 아이가 비록 훗날 회심해야 한다는 식으로 강조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원리적인 강조가 될 뿐, 실제의 생활 속에서는, 이미 중생된 그 아이는, 자라면서 점차적으로, 비록 체험되어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회심에 이르게 되든 지 아니면, 이미 회심을 한 것처럼 간주하게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신학체계에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신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닌, 그럼으로 인하여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복음의 감격도 없는 바리새인적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칼빈주의는 역사적 정통적 칼빈주의가 분명히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한 두 가지 관련된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이런 체험에 대한 강조가 대각성운동들을 통해서 오게된 “부흥주의”의 소산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Ian Murray의 Revival and Revivalism이라는 책이 우리에게 분별력을 높여준다. 이 책이 꼭 번역되어 한국에 소개되길 바란다. 번역되지도 않은 이 책을 언급하는 것은, 필자가 그냥 감상적으로 흥분이 되어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둘째는, 중생과 죄의 확신과의 관계에 대해서이다. 청교도들을 오해하는 어떤 이들은, 청교도들이 중생에 이르기 전에 죄의 확신에 이르게 되는 것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인하여 일종의 “준비주의”(preparationism)을 낳게 되었다고 한다. 로이드 존스목사의 후임으로 웨스트민스트 채플의 담임목사였다가 최근에 은퇴한 R.T. Kendall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이것에 대해서, Paul Helm같은 이는 Calvin and Calvinists라는 책에서, 청교도들이 죄의 확신을 강조한 것은, 결코, 중생에 이르게 되기 전에 설교자나 구도자가 그 중생에 마땅히 이를 수 있는 준비상태가 되도록 율법을 강조해야 한다는 “준비주의” 때문이 아니라, 구도자가 중생에 이르기 전에 죄의 확신에 이르게 되는 성령 하나님의 준비시켜주심(being prepared)인한 것이고, 그러한 성령님의 사역을 성취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설교와 전도, 상담 등의 방편을 통해서 설득해야 할 설교자의 책임에 대해서 강조한 것이라고 잘 구분하였다.
Kendall은 청교도의 신학이 베자를 통해서 칼빈의 신학을 왜곡시킨 것으로 본다. 청교도신학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 기독교의 영성이 저하된 것의 그 원인을 잘못 찾고 있다. 그는 체험을 강조하면서도, 청교도의 체험을 무시하고, 은사주의적 체험을 추구하여서 결국, 웨스트민스트채플의 그의 현재 후임자는 더욱 은사주의적인 스타일의 목사로 바꿔져 가고 있다(사실, 이런 변질은 로이드 존스 목사가 은사주의운동에 대해서 관용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온 것이다. 그의 성령세례론은 청교도의 신학 중에서도, 존 오웬의 성령론을 따른 것이 아니고, 토마스 굳윈의 것을 따르기 때문에, 정통 칼빈주의와는 약간 거리를 두고 있다).
얘기 보따리를 풀자니 한도 끝도 없을 듯 싶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8) 신앙생활의 핵심에 대한 오해
위 7)의 논지와 비슷하면서도 더욱 본질적인 것은, 신앙생활의 생명이 외적인 제도적 기구나 활동에 있다고 보는 것이 신칼빈주의의 태도이다. 물론, 이것은, 신칼빈주의에 속한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활동스타일과 범위를 보면, 그렇게 분류가 된다는 것이다. 역사적 칼빈주의자들이 보았던 신앙생활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와 친교였다. 그리스도와 생명적 연합에 기초해서 모든 신앙생활이 영유된다는 것이 정통적 칼빈주의자들의 견해였었다. 이것이 신칼빈주의자들에 의해서 약화되든지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칼빈주의자들이 이런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기초한 하나님과의 교제의 삶이 가장 우선순위라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앞에서 논의한 것들의 자연적이고 논리적인 결과가 그렇다. 곧, “문화”라는 것이, 이제 그들에 의해서,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활동, 그리고 예술과 문화활동의 모든 영역을 담지하게 되었고, 이제 그런 모든 영역에서의 문화행위가 개혁주의 신앙인의 몰두해야 할 행동양식으로 대두가 되었다. 이전에 그렇게도 강조되었던, 한 영혼의 구령화, 복음화에 대한 관심,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적 역사와 그 은혜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길 바란다. 과연 영혼이 구원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진지한 관심의 회복부터 개진되어야 할 것이다. 피상적인 관심에 머물러서 스스로를 속이지 않아야 한다. 이제 개혁주의신앙인들은 정치적인 활동과 구호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것을 강조하면서 영혼구령을 무시하노라고 구체적으로 개진하는 “신칼빈주의자’는 없다. 하지만, 물어보라. 복음전도와 선교, 그리고 기독교인의 사회관여에 대해서 양단간의 선택을 요구하라고 질문받았을 때, 나는 어느 곳에 먼저 관심을 가지면 우선권을 두고 나의 삶의 에너지를 경주해 가고 있는가? 스스로를 진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 두 영역, 곧, 선교나 전도와 사회관여의 두 영역이 분리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우선권에 대한 질문이다.
왜 신칼빈주의자들이 분명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왜 그들의 마음 속에, 영혼의 구령사역보다는 외적인 봉사와 사회참여에 대한 관심을 우선적으로 가지게 되었을까? 역설적으로, 바로, 카이퍼의 반정립이론에서 그런 동기가 출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카이퍼의 반정립이론은 도이벨트의 철학에서 꽃이 핀다. 손봉호교수가 유학을 마치고 들어와서 제일 강조한 사람이 누구인지 회상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그의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어떤 경향을 가지고 있는 지도 필자의 글과 함께 비교해 보길 바란다.
물론,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와 세상간에 있는 적의감으로서의 안티테제(반정립)이 있음을 선언한다. 신자와 불신자 간에도 그렇다(고후6:15). 그리고 이런 안티테제는 신자의 모든 삶의 영역에 관여한다. 문제는, 과연, 성경에서 말하는 이런 안티테제가 카이퍼나 도이벨트가 말하는 식으로서의 안티테제인가 하는 것이다. 곧 형이상학적 개념으로서 주장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논리학, 기독교수학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기독교노동운동, 기독교정당운동 같은 것이 가능한 지도 물어보아야 한다. 곧 안티테제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곳에까지 안티테제를 주장함으로서 그 형이상학 성격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소위 “기독교세계관운동”일 수 있음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영역에 안티테제를 강조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영역에서까지도 안티테제를 주장하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곧 종교의 이름으로, 신앙의 이름으로, 기독교의 이름으로, 아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게 될 위험이 있음을 생각해 보았는가? 이런 안티테제의 개념은, 성경에서보다는, 오히려 헤겔의 정, 반,합의 이론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질문해 보기를 바란다.
9) 자연과 은혜간의 차이에 대한 애매모호함
앞에서 논의했던 “유기체”의 개념을 상기시켜 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 유기체의 개념을, 자연과 은혜, 창조와 구속, 이성과 계시의 관계 속에 대입시켜 보기 바란다. 자연과 은혜의 관계가 유기체적이고, 창조와 구속의 관계, 이성과 계시의 관계가 또한 유기체적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유기체적 관계의 배경에는 바로 “언약”의 개념이 놓여져 있다. 이 모든 주제 하나 하나가 심도있게 다뤄져야 할 주제이다. 하지만, 아마도, 이젠, 어느 정도 신칼빈주의의 정체와 면모에 대해서 대강의 스케치 윤곽이 드러났을 것이다. 여기선, 자연과 은혜간의 관계에 대한 유기체적 이해만 살펴보기로 한다. 이것이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이 유기체적 이해로 인해서, 자연과 은혜간의 사이에 분명한 선이 그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혼동이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통적 칼빈주의에서는 이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은혜의 언약과 행위언약간에 분명히 대조되는 바를 강조하였고, 그래서, 그런 대조의 의미로서, 행위언약을 자연의 언약이라고도 부르곤 하였다.
그런데, 신칼빈주의자들은 이런 대조를 스콜라티시즘이라고 비판을 한다. 이런 자연과 은혜를 대립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면, 이원화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헬레니즘에 연유한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 류의 스콜라주의에 빠져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신칼빈주의자들은, 청교도 이후의 신학자들을 “정통적 칼빈주의자들”이라고 규정하면서, 이 용어를 경멸적인 뉘앙스로 사용한다. 그들은 B.B. 워필드나, 핫지 부자, 그리고, 바빙크, 벌코프, 존 머리, 그레샴 메이천 같은 신학자들을 비판한다.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신정통주의자들과 더욱 친화감을 느낀다. 실제로 그렇게 신정통주의로 전향해간 신칼빈주의자들도 없쟎아 있다.
과연, 정통적 칼빈주의가 스콜라티시즘인가? 이것에 답을 하려면 스콜라티시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의 성격상 간단히 기술한다. 중세의 스콜라티시즘에 의하면 자연과 은혜를 분리시킨다. 은혜의 영역은 계시로 인해서 접근가능하지만, 자연의 영역을 그래서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가능한 것으로 보아서 자연신학을 출범하는 전거가 된다. 이것은 필히 비판해야 할 일이다. 프란시스 쉐퍼의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비판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이 타당성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그의 아퀴나스 비판에는 또한 타당성이 있다. 문제는 이런 중세 스콜라티시즘에 대한 비판의 논리를 개혁주의 정통주의, 곧 개혁주의 스콜라티시즘에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미세한 구분이 필요하다. 중세의 스콜라티시즘이 자연신학을 강조하면서, 이 영역에서의 이성의 기능을 강조하고, 이성을 진리의 판단의 기준과 근거로 활용하게 되었다면, 과연, 개혁주의 스콜라티시즘이 이성을 계시 위에 두어서 모든 진리의 판단기준으로 인식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성과 지성의 기능을 제대로 인지하고, 그 위치를 올바르게 정립시키는 것과, 그 이성의 기능을 극대화시켜서 계시 위에 두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이것을 올바로 구분해야 한다. 결코, 정통적 칼빈주의신학, 역사적 칼빈주의 신학은, 이성의 기능이 절대화되도록 방치해 둔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스콜라티시즘이라고 비판할 수 없다.
정통적 칼빈주의자들은 마음의 기능을 강조한다. 이때의 마음은 단순히 지적인 기능이 아니고 전인적인 것이다. 곧, 지, 정, 의의 모든 기능들이 전인격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의지에 치우치지도 않고, 정서에 몰입되지도 않고, 그러면서 지성에 모든 것을 걸지 않되, 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조절하며, 조화를 이루는 기능을 지성에 두었다. 그것은 지성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정상적인 인간의 기능을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계시는 이성을 통해서 감정에까지 이르게 되고, 그 감정의 영향을 끼친 의지의 작용을 통해서 행동과 실천에 이르게 된다. 감정이 지나치게 작용하거나, 전혀 무감동한 것에 대한 문제점들을 어디에서 감지하는가? 바로 지성에서이다. 의지의 작용에 그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합리화시키며 때로는 부끄러움에 이르도록 깨닫게 되는 기능이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바로 지성을 통해서이다. 지성은 우리 인격의 세 요소 중에서 일종의 선지자적 역할을 한다. 그 선지자의 역할에 의해서 왕의 역할을 하는 것이 의지이다. 정서는, 일종의 제사장적 역할을 한다(사실, 이런 설명은, G.I. 윌리엄슨의 소교리문답해설서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정확한 지 기억이 희미하다). 선지자, 왕, 제사장의 삼중직의 역할이 온전히 회복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삼중직분의 완수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작은 그리스도로서 살아야 할 근거가 바로 이것에서 기초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감격과 전율로 인해서, 우리는 빛이 되고, 소금이 된다. 빛이 빛이 되고, 소금이 소금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빛된 사명은, 바로 우리의 빛됨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적 사명은, 우리의 선교적 사명에 기초한 것이다. 빛됨 없이 빛의 역할을 할 수 없겠기 때문이다. 소금도 아닌데 어떻게 짠 맛을 낼 수 있단 말인가?
자연과 은혜와의 차이를 분명히 할 때에 은혜가 자연을 정복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중에, 은혜가 자연에 의해서 함몰되는 비극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신칼빈주의자들에 대한 정통적 역사적 칼빈주의자의 경고이다.
6. 결론: 대안으로서의 문화의 회심과 회심의 문화
몸살 정도를 앓으면, 그냥 시간이 지나면 자연치유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개혁주의권 안에서의 칼빈주의-신칼빈주의논쟁도 개혁주의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일종의 몸살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목을 “개혁주의, 몸살을 앓고 있다”고 붙였다. 이 논쟁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치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칼빈주의이든 신칼빈주의이든 모두 “칼빈”의 신학과 사상을 중요시하고 또한 “개혁주의”라는 일종의 신학체제를 인정하고 있다. 이 공통점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인정하면서 토론하고 논의하느냐에 따라서, 이 논의는 교회사에 아주 긍정적인 열매를 맺게 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대립의식과 분파의식을 가지고 이 문제를 꺼집어 내어서 쟁론하게 되면, 이 몸살은 일종의 홍역으로 커지게 될 것이고, 어쩌면 치유하기에 무척이나 힘든 질병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이 칼빈주의와 신칼빈주의의 간극의 크기를 어느 정도로 보느냐에 따른 인식의 정도와 차이에 의해서 이런 일들이 있거나 혹은 방지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신칼빈주의가 상당히 위험한 수위에까지 미치도록 칼빈주의를 이탈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이 글에서 지적하였다. 하지만, 신칼빈주의의 장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역사적 칼빈주의자들이 무시해 왔던 것들을 당연하게 지적하고 그것을 강조해 왔다고 할 수 있겠다. 필자의 논지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장점들을 잘 살리면서, 정통적 칼빈주의가 담지하고 있던 바로 그 핵심을 어떻게 하면 다시 회복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같은 형제로서의 공동전선을 형성하게 될 때에 가능해 질 일이다. 그 공동전선이란, 바로 서로의 관심을 진심으로 진지하게 공유하게 되는 것에서 가능해 진다. 죄인의 구원을 강조하든지, 문화의 변혁을 강조하든 지,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관심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구호가 아닌가? 이것이 진정한 공통관심사라고 한다면, 형제들로서의 허심탄회한 대화와 토론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본다.
어떤 파벌의식과 집단세력을 형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소망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마음으로, 복음의 참된 능력이 모든 영역에까지 미치도록 애쓰는 노력이, 서로에게 요청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서너가지 제안을 하면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첫째, 문화의 회심과 회심의 문화를 함께 관심두어야 한다. 함께 관심두지 않음으로 인해서, 영국의 개혁주의권내에서는 결국 분열로 치닫고 말았던 비극이 있었다. 로이드 존스 목사와 존 스토트목사의 분열이 바로 그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존경한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서로가 다른 신학적 파벌을 형성하고 말았다. 각자의 길을 간 셈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의 중생의 신학은 문화에 대한 소극적 관심으로, 존 스토트 목사의 신학은 회심에 대한 소극적 관심으로 서로를 비판할 수 있다.
현대복음주의 신학계를 대표하는 두 사람의 이 견해 차이는, 한국의 개혁주의권내의 갈등에 좋은 교훈이 된다. 두 사람을 종합하라. 필자의 조언이다. 현재 필자는 이 두 사람이 활동했던 런던땅에 거주하면서, 두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런던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연구하고 가이드하면서, 그 문화의 깊이를 맛보면서, 회심과 중생을 가르치는 도구와 기회로 삼고는, 이 세속화되어버린 기독교후기의 문화를 어떻게 변혁시켜가야 하는 지에 대해서, 그 대안이 무엇인 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함께 고민했으면 하는 소원으로 함께 기도하기를 제안한다.
둘째, 지정의의 전인격으로 체험하는 진선미의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이상을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 이상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공통된 목표였었다. 그런데 이 포스터모던의 이 현대사회에서는, 지성과 정서와 의지가 분열되어져 버렸고, 아예, 인격이라는 것이 상실되어버린 시대가 되었다. 그리하여 진리의 개념자체가 변질되고, 선과 아름다움이 서로 분절화(fragmentization)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참으로 만물이 목을 빼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다(롬8:19). 그 영광에 자유에 이르기를 탄식함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될 그 날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엡1:10). 칼빈주의와 신칼빈주의의 화해와 통일 없이 어떻게 만물이 통일될 것을 기대할 수 있으랴!
셋째, 이 대통일의 역사는, 우리의 통일의지로 완수되는 것이 아니라, 삼위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은혜로만 말미암아 가능하다. 그렇기에, 이 삼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소망하면서, 우리의 지성과 의지와 정서가 이 하나님 한 분에게 집중되어야 할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물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자 하는 기존의 개혁주의적 관심을 유지하고 또한 흥기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사역의 그 독특하심과 함께하심을 함께 강조하면서, 그 하나되심과 그 다양하심을 동시에 인지하는 신학의 수립을 위해서 공동의 노력을 경도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야 말로, 삼위 하나님의 윤무(페리코러시스) 속에서, 우리도 또한 윤무의 춤을 함께 추게 되는 그 날을 소망하는 모습들일 것이다. 우리 안에서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이런 선한 꿈들을 허락하시길 기도한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2004년 5월 1일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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