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회복운동을 위한 전제
이광호 목사
1. 우리는 한국교회를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는가?
한국 기독교가 부흥한다는 소문을 들은 서구의 한 목사가 한국교회를 살펴본 후, “한국에서 부흥한 것은 예수라는 이름으로 치장된 샤머니즘이지 기독교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이 말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대다수 성도들은 한국 기독교의 부패한 토양 가운데 살아가면서 교회가 심각한 신학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와 과연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가? 우리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현대 한국 기독교는 교회다운 모습을 거의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교회에 참 진리가 설 자리가 사라진 것은 말할 필요가 없고 이제는 기본적인 종교적 윤리마저 무너졌다. 불신자들로부터 마땅히 비방을 들어야 할 진리 문제에 대해서는 욕을 듣지 않으면서, 결단코 비난을 받지 말아야 할 윤리 문제에 있어서는 엄청난 욕을 먹고 있다. 이는 한국교회가 과연 진정한 교회인가 하는 회의감을 가지기에 충분한 배경이 된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교회가 진리를 떠난 상태에 놓여 있는데도 하나님을 핑계 대며 평화를 외치는 자들이다. 성경과 기독교 역사 가운데는 배교한 상황 가운데 평화를 외치던 자들이 무수히 많이 있었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전능성과 인간의 믿음을 앞세웠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과 기독 교회를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며 모든 교인들은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거짓 선지자들과 기독교 역사상 존재했던 거짓 지도자들의 주무기는 항상 하나님께서 결코 이스라엘 민족과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미사여구였다. 이러한 사악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시대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흔히 교회를 ‘성도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성도들을 배태하고 양육하며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교회는 이미 전반적으로 정조를 소중히 여기는 순결한 여성이기를 포기한 음녀가 되어 있다. 그런 어머니에게 주님의 자녀를 맡긴다면 더러운 영향을 받을 것이며 불행만 초래할 따름이다.
그와 더불어 우리가 더욱 심각하게 생각해야할 문제는 교회가 산모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복음에 관심을 가진 자들이 교회를 찾고 있다. 주님의 택한 백성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든지 교회를 찾는다면 교회는 선한 어머니로서 그들을 태중에 품어 올바르게 양육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더 이상, 복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교회를 찾는 자들을 건강한 자녀로 배태할 힘이나 출산하는 능력을 잃어 가고 있다. 결국 그런 교회를 찾는 자는 어머니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여 죽음의 지경에 놓여있는 타락한 교회와 함께 상당한 고통을 감내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깨닫고 있으면서 참된 교회로의 회복을 바라는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기존의 한국교회에 과연 희망이 남아 있기라도 한 것인가? 부정한 여자가 남편을 버리고 음녀가 되어 간음을 일삼는다면 그 음행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신앙적 경찰이 나서야 한다. 그것은 법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이다. 그리고 산모가 태중의 아기에게 양질의 영양을 공급할 힘이 없고 출산할 능력마저 없다면 영적 산부인과 의사가 동원되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태중의 아기를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태어난 아기가 있어 잦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면 영적 소아과 의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미가 마땅히 취해야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자식을 방치한 채 올바르게 양육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그를 자극하고 책망함으로써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음행하는 여인 같고 출산할 기력을 상실한 여성과 같다. 나아가 태어난 아기조차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어미와도 같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일을 위해 주님께 매어 달릴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 그런 교회적 형편 가운데 살고 있는 성도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그냥 팔짱만 끼고 앉아 있기만 할 것인가? 우리는 결코 스스로 영적 경찰이 될 수도 없고 의사가 될 수도 없다. 우리는 단지 고발자가 될 수 있고 경고자가 될 수 있을 따름이다. 음행에 취해 남편과 가족을 버림으로써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고 있으면서도 세속적 쾌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사악한 짓인가 하는 것을 이야기 하고 보편교회에 고발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음녀로 인해 고통 당하는 가족이 존재하는 한 그것은 결코 무관심해도 좋을 남의 일이 아니다.
잉태한 여인이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출산할 힘이 없는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음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사악한 자들의 동류(同類)가 될 수 밖에 없다. 의사에게 연락하여 구급차를 불러오든지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병원에 데려가 의사 앞에 그 환자를 눕혀야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산모도 아기도 더욱 위태로운 지경에 놓이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복음에 깨어있는 자들이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 길 밖에 없다. 한국에 타락하고 왜곡된 복음으로써 순진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는 교회와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교회들은 음녀요 출산능력을 상실한 산모와 같다. 음행에 눈이 어두워진 어미는 출생한 자녀에 대한 올바른 양육마저 포기하고 있다. 그래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능욕하는 그들에게 경종을 울릴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2. 우리는 교회의 올바른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는가?
음녀이든 병든 여인이든 그들을 건강한 자로 돌이키기 위해서는 우선 영적으로 건강한 자들이 필요하다. 건강한 자의 조건은 적어도 자신이 음녀가 아니어야 하며 말씀에 건전한 자여야 한다. 이는 완벽한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며 그의 말씀만이 유일한 진리임을 고백하며 그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는 자를 말한다. 그런데 그 정조의 순결성과 건전성 여부를 누가 어떻게 보증할 것인가!
우리는 흔히 교회의 표지를 논하면서 올바른 말씀선포, 올바른 성례의 시행, 올바른 권징의 시행을 들고 있다. 건물 꼭대기에 십자가를 달고 있는 교회당을 중심으로 교인들이 모이고 목사, 장로, 집사가 있다 해도 그것 만으로 올바른 교회라 할 수 없다. 또한 많은 연보를 거두어 이웃에게 구제를 열심히 하고 주변 사람들로 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그것 자체로써 참된 교회라 할 수 없다. 나아가 매주일 모여서 열심히 찬송가를 부르고 모든 교인들이 즐거운 종교생활을 영위한다 할지라도 위에 언급한 교회의 표지가 온전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거짓교회이다. 교회사 가운데 존재했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참 교회와 거짓교회를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함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교회는 어떤가? 이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한국교회는 거의 통째로 거짓교회가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의 영적 회복을 위한다면 우선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즉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한 정체성 있는 이해가 없다면 회복운동 자체를 출발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에 대한 이해는 결코 사회적 환경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이는 성경이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분명한 가르침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하자면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값주고 사신 언약 공동체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교회가 특정 개인의 권한과 연관지어질 수 없는 것이다. 즉 교회는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언약 공동체이며, 단순한 교제(fellowship)를 위한 자발적 종교단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듯이 그의 신부 역시 거룩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의 값어치나 경향성으로 인해 더럽혀 질 수 없다. 만일 신부가 신랑을 멀리 하고 신랑 아닌 자를 바라보거나 의존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세속화되어 순결하지 못한 음녀의 모습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세상의 온갖 잡다한 사상과 철학들이 다 들어와 있다. 대다수 성도들은 처음부터 그 가운데서 줄곧 신앙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그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있다. 스스로 건전한 신앙생활을 하고자 애쓰는 성도들 역시 그런 분위기에 함몰되어 있음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결코 그에서 헤어날 수 없다. 잘못된 주변 환경에 이미 익숙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더 편안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교인들의 종교적 놀음터가 아니며, 종교지도자들의 삶을 위한 직업적 방편이 되거나 정치 놀음을 할 수 있는 조직체가 되어서는 안된다. 만일 목사가 교회를 통해 목회에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것은 자기 목적을 위해 교인들을 이용하는 것 밖에 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께서 자기 피로 값주고 사신 그리스도의 신부요 거룩한 언약공동체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3. 진정한 교회의 회복을 위해 감당해야 할 아픔들
(1)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제거해야 하는가?
한국교회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교권과 명예에 대한 지도자들의 잘못된 사고이다. 특정 직분자가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상당한 권력이라도 이양받은 듯 행세하며 그것을 대단한 명예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주님 이외에 어느 누구도 특별한 권력이나 영예를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에서는 지교회는 물론 노회나 총회 뿐 아니라 각종 기독교 연합 단체들에서도 그 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많은 목사와 장로들이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 가면서 각 기관의 장(長)이 되려고 하는 것은 그것을 명예로 생각하기 때문이며 그것으로 인해 상당한 교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이 자신을 희생하며 수고하는 순수한 봉사의 직무로 알고 있다면 부당한 방법을 사용해 가면서 까지 그렇게 하고자 한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한국교회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교권과 그와 함께하는 명예직 개념을 해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세속화된 권위주의가 청산되어야 한다. 잘못된 권위주의는 교회 내부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힘의 역학관계로 인해 직분자 상호간에 의미없는 견제심을 가지게 한다. 그것은 교회내의 불건전한 계파주의와 세속적 파당정치를 유발하게 된다. 교회의 직분은 결코 계급이 아니다. 한국의 대형 교회들은 어떤가? 담임목사가 가장 높은 사람인가? 만일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면 그 다음 높은 사람은 누구인가? 부 목사인가, 아니면 장로들 중 한 사람인가? 한국교회의 현실에서는 담임목사가 절대적 힘과 권위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 부목사들은 담임목사의 명령과 요구에 따르는 자일 뿐 아무런 힘이나 권위가 없다. 얼마나 모순되는 말인가? 만일 담임목사에게 그만한 권위가 허용될 수 있다면 부목사에게도 그 다음의 권위가 주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는 한국교회에 직분이 완전히 허물어져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한 교회에 여러 명의 목사가 있다면 동일한 직분자일 뿐 어떠한 계급상 경계나 권위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나 월급을 받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직장인이라면 모르거니와 교회가 세운 직분자라면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금력을 포기해야 한다. 극히 소수의 일부 지도자들의 의사와 결정으로 교회의 재정을 좌지우지하는 행위는 근절되어야 한다. 금력을 포기하지 않는 한 교회에서 대우 받는 사람은 결국 돈 많은 사람들일 것이다. 교회 안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빈부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 부유한 사람이 직분을 맡기에 더 나은 조건을 가진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연보를 많이 하는 사람이 그것 자체로서 교회에 더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되거나 신앙이 훌륭한 사람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연보를 할 때 이름을 써서 내는 관행을 제거해야 한다. 누가 연보를 많이 하고 적게 했는지 아무도 그것 자체를 알 필요가 없다. 또한 주보에 연보한 자들의 명단을 공개하거나 예배시간에 이름을 불러가며 소위 특별 기도를 해주는 비신앙적인 행태는 마땅히 근절되어야 한다. 그것은 결국 천박한 경쟁심을 유발할 뿐 아니라 목사가 축복기도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듯한 엉뚱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를 유발하게 된다.
나아가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귀족주의적 사고가 버려져야 한다. 교회는 세상에서 잘난 사람들이 모여 특별한 종교적 활동이나 사업을 도모하는 단체가 아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는 학식있는 사람,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 교육정도가 높은 사람, 소위 유능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다른 성도들 보다 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서는 안된다. 만일 그런 식으로 된다면 직장이 변변치 못하고, 교육정도가 낮고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성도들은 교회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신앙 활동에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귀족주의를 완전히 해체하지 않으면 교회 개혁은 탁상공론이 될 뿐 아무런 실제적 소망이 없다.
그리고 일반 성도들의 건전한 신앙적 판단력을 종교의 이름으로 규제하는 악한 지도자들의 ‘종교적 군화’를 제거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도에 대해서 교권을 핑계 삼아 강압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누가 감히 더러운 군화발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목을 지긋이 짓밟고 있으면서 그들을 유린할 수 있단 말인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에게 강압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종교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겁을 줄 수는 없다. 그것은 종교를 빗댄 가장 악한 행동이다. 특히 특정 직분자에게 잘못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든지, 교회가 하는 일에 무조건 순종하지 않으면 엄청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고를 주입하는 것은 바로 그런 행위에 해당된다.
또한 우리가 유념해야 할 바는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종교적 위선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서 차별없는 죄인이다. 조금이라도 의인행세를 하는 자는 의인이 아니라 도리어 종교적 위선자이다. 더구나 일반 성도들 앞에서 지도자 자신은 의인인 듯 행세하며 물질이나 봉사 등 종교적 요구를 하는 것은 악한 행위이다. 목사든 장로든 집사든 혹은 직분을 맞지 않은 일반 성도든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 감히 설수 없는 죄인들이다. 그런 죄인이 스스로 거룩한 것 처럼 가장하며 자기를 섬기도록 요구하거나 자기를 따르도록 순종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종교적 위선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기만하며 속이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2) 무엇을 회복해야 할 것인가?
우선 교회의 주권이 제 위치대로 회복되어야 한다. 어쩌면 다수의 성도들에게 이 말이 생경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의 몸된 교회의 주권을 인간들이 가로채고 있다고 말한다면 무엇이라 할 것인가? 그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일이 엄연히 발생하고 있다. 교권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자기 임의대로 행사하는 무서운 죄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유일한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는다. 그가 친히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자기 피로 교회를 값주고 사서 하나님의 영광의 대상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권주의자들은 주인의 자리를 주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 누가 감히 교회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가? 누가 감히 교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양 행세하는가? 그런 자들이 있다면 그는 주인의 자리를 가로채려는 사악한 자들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목사든 장로든 집사든 어느 누구도 교회에서 인간적인 주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해야 한다. 성경을 가르치는 태반의 목사들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면서 교인들을 가르치며 지도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실정이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할 수 있는가? 뒤따라 가는 장님은 자기가 앞을 볼 수 없으므로 인해 앞선 장님이 장님인지 아닌지 알아 볼 수 없다. 악한 자들은 장님이면서 스스로 자기가 장님인 사실 조차 모르는 채 큰소리치며 앞장서 가고 있다. 그들은 성경이 아니라 종교적 경험에 따라 설교를 하며 종교적 이성을 배경으로 교인들을 지도하며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즉 성경을 도구삼아 성도들을 가르치지만 성경이 아니라 자기를 따라 오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에는 진정한 성례의 의미가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참된 세례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없이는 온전한 성찬이 이루어질 수 없다. 교회에서 세례를 베풀기 위한 당회의 정당한 문답과 교육이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세례의 벽이 허물어지면 진리를 보호하는 교회의 담은 저절로 무너지고 만다. 더구나 군에서 베풀어지는 비정상적인 특이한 집단 세례는 한국 교회를 크게 오염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앞장서는 자들은 무지함으로 인해 그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절대다수의 신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무분별한 세례 행위가 한국교회를 번성하게 만들 것이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세속화되고 허물어지게 된 원인은 진정한 성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올바른 성례의 회복 없이는 진정한 교회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
또한 한국교회는 권징과 권징사역을 회복해야 한다. 권징사역의 대상은 모든 성도들에게 균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직분에 관계 없이 권징사역은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목사가 일반 성도들에게 권면할 수 있는 것 처럼 일반 성도들 역시 그와 같은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목사는 잘못하는 성도들을 책망할 수 있지만 일반 성도들은 잘못하는 목사를 책망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한국교회에 가장 잘못된 사고 중 하나는 목사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징계하신다고 하는 잘못된 사상이다. 물론 목사든 일반 성도이든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겸손한 자세로 권징사역에 참여해야 한다. 올바른 권징사역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면의 말을 듣지 않으면 말씀의 원리에 따라 교회가 엄하게 징계함으로써 온 성도와 당사자가 영적 유익을 얻게 해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직분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는 권위주의적인 직분개념을 청산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각 직분의 기능이 회복되지 않고는 교회가 올바르게 세워질 수 없으며 참된 예배가 이루어질 수 없다. 한국교회에서는 목사, 장로, 집사의 직분적 기능이 뒤엉켜 있으며 말씀에 의한 봉사의 사역이 아니라 권력형으로 변해 있다. 목사가 장로, 집사의 직분적 기능을 가로채고 있으며 장로가 집사의 직분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장로는 자기의 역할인 말씀사역에 대한 선한 감독의 직무와 정기적인 심방을 포기하고 있으며, 집사는 교회가 맡긴 봉사와 재정관리에 관한 직무를 박탈당하고 있다. 한편 장로, 집사들은 목사에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설교를 요구하는 신앙과 신학의 상식을 벗어난 어처구니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직분적 사역들이 이런 식으로 뒤엉켜 있는 한 진정한 교회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각 직분자들은 교회가 맡긴 자신의 직분을 회복하여 주어진 모든 봉사사역을 신실하게 감당해야만 한다.
우리가 또한 유념해야 할 점은 교회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투명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교회에는 일반 성도들이 알아서는 안 될 어떤 비밀도 있어서는 안된다. 재정문제와 교회정치 및 행정문제가 교회 앞에 항상 투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에 대한 개방된 논의를 위해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참여하는 공동의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내용에 대해서는 교회의 덕을 위해 숨겨두는 것이 좋다는 사고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되면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잘못된 힘이 집약될 위험이 따르게 된다.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교회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공적인 문제들에 대해 알고 기도해야할 책무를 지닌다. 그러므로 교회의 투명성을 회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언약공동체이자 고백공동체인 교회 내부에서 발생하는 공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알아서 안되는 일은 없는 것이다.
4. 맺음 말
우리는 배도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교회 현실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 안에 속하여 그에 대한 심각성을 파악하고 있으면서 부당한 악에 침묵한다면 그것 자체로서 배도행위에 동조하고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필자는 한국교회에 속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적어도 기독교 조직적인 측면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그 한국교회 안에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는 수많은 순진한 성도들이 있을 것이란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의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신실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린당하고 있던 형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일차적인 대상은 한국교회의 조직 자체가 아니라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즉 기독교 지도자들이 아닌 일반 성도들이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직한 종교 사회를 위해 교회의 조직의 틀을 개선하자는 것은 윤리적 문제에 치우칠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악한 종교지도자들은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교인들을 유린하면서 연보를 강요하며 그것으로써 교회 조직과 사회를 위해 잘 쓰면 된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할 지도 모른다.
현실 국가 체제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권력과 재력의 현실적인 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국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데도 교회 가운데서 교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도 교회 가운데서 재력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현대 교회의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 위에 군림한다든지, 교인들로 부터 거둔 연보를 가지고 재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실로 두려운 일이다. 그것은 힘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경향성에 빠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바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을 종교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할 일은 진리 안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각 성도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기독교라는 조직의 힘으로 무지한 교인들을 이용하여 종교적인 활동이나 사업을 펼쳐보려는 행위는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교회에는 이미 그런 일이 전반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이며, 그것에 대한 문제인식을 하고 있는 자들은 그런 악행을 주시하며 하나님과 보편교회에 고발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주변의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교회 조직체가 아니라 교회에 속한 개인 성도들임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므로 특히 목사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성경을 이용하여 교회 조직을 체계적으로 강화하려 해서는 안된다. 자기의 종교적 목적을 이룩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거나,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설교하면서 자기주장을 펼치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의 목회성공을 위한 도구인 양 생각한다면 정말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성숙한 성도들과 교회는 이런 두려운 일에 빠지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현실은 이미 그렇게 변질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악한 누룩과 같은 잘못된 내용들을 외부로 드러내야 한다. 악하고 잘못된 것들을 속으로 감추어둠으로써 완전히 썩게 방치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외부에 드러내어 선명하게 살핌으로써 성령의 인도하심과 함께 진정한 회복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현대 한국교회의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해야 하며,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성경적인 이해를 해야만 한다. 한국교회의 죄악된 모습들을 외부로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말씀에 따른 겸허한 자세를 회복해야 한다. 그 과정에는 살을 찢는 듯한 내부적 아픔이 동반될지 모르며, 외부로 부터 예기치 못한 비난의 소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엄청난 고통을 감내한다 할지라도 더러운 세속적 찌꺼기들을 버리고 참된 신학에 근거한 진리를 회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참으로 감사한 일일 것이다. 남편을 버린 음녀와 같은 한국교회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임하시기를 간절히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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