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음주의의 발생과 발전2/ 저자미상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
C. 현실적 문제
신복음주의는 기회주의적인 생각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자기들의 눈에 유리한 것을 먼저 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근본주의적 복음주의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에 기초하여 생각하고 그것을 준수하자는 주장을 내세운다.
미국 장로교
1936년에 법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배도적 교회가 되었다고 본다. 1936년 전까지는 교단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교단을 구출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1936년에 공식적으로 배도적 교회가 되었음으로 근본주의적 교회들은 거기서 따로 나와서 성별 되어야 할 것을 주장했다. NAE에서는 이런 점에서 분명한 원리를 가지지 않고 혼돈을 하고 있음으로 중간노선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IIIV 미국의 N.A.E.
A. 신학교의 상황(1930-1940)
1930년에 미국의 대부분의 교단들이 신학교와 함께 부패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근본주의적 교회들은 1930-1940년 사이에 많은 독립신학교들을 세우고 복음주의적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이 신학교들이 외적으로는 배도에서 떠난 것 같이 보였으나 사실상 자유주의자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배도적 운동에서 완전히 떠나지는 못했다. 그들은 자유주의자들의 간접적인 지배를 받으면서 말하기를 우리들의 신학교는 복음주의적 정신에 입각한 신학교이다.
자유주의 진영에 있는 자들이라도 복음주의자들과는 협력을 할 것이며 자유주의자들과는 투쟁을 하지 않고 일하겠다고 하였다. 즉 교리적으로는 복음주의적이지만 일하는 데는 자유주의자와의 투쟁을 피하고 타협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이 현저하게 나타난 신학교로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Fuller신학교였다. 이 신학교는 부흥설교가였던 Charles Fuller의 이름을 따라 세운 학교였다.
Fuller는 처음 신학교를 시작할 때 복음주의적 신학을 원했으나 신신학이나 자유주의와 투쟁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아들을 교량 역할을 시키기 위해 프린스톤에서 공부를 하게 했는데 이것이 신복음주의의 전략인 소위 침투전략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유주의와 교제하려면 평화가 필요하다고 하여 교리적인 문제도 타협을 했다. Fuller 신학교에서 근래에 새로운 신앙고백서를 만들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성경의 정확무오성을 삭제하고 있으며 또한 전천년설도 제거해 버렸고 영혼이란 말을 빼고 불신자는 구별되나 악자는 형벌이 없다는 것을 발표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Fuller의 아들은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공부를 한 후 스위스에서 바르트주의도 배워왔다. 이와 같은 침투전략의 결과들로 이 신학이 처음에는 복음주의였던 것이 차차 신복음주의적 학교가 되고 말았다. 침투 전략은 악한 영향을 가져올 뿐이니 그것은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의 원리는 성별인 것이다.
B. 대중복음전도
대중 복음전도의 대표적 인물은 Billy Graham목사이다. 그는 NAE가 배경이며 그의 목적은 복음을 증거 하려는 것이며 자유주의자와 투쟁은 원하지 않았다. 그는 여러 면으로 훌륭한 부흥사이나 그가 자유주의자와 투쟁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주의의 배교적 노선과 개인적으로 협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적 성별생활을 원하는 많은 사람에게 큰 혼란을 가져오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그의 태도 때문에 에큐메니칼측에서 인기를 얻어 N.C.C.의 큰 대회의 주요 스피커로 나타나기도 했고 1956년 N.A.E.대회에도 설교자로 초청을 받기도 했으며 또한 로마 가톨릭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는 사방에 있는 가톨릭 단체에서 초청을 받아 설교를 하기도 했다. 카톨릭의 어떤 사람은 편지를 쓰기를 Billy Graham 목사의 설교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설교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한 가지 흥미 있는 것은 로마 가톨릭교회가 Billy Graham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대부분의 가톨릭 교회가 기뻐할 수 있는 도덕과 복음주의의 내용이 서로 합치한다고 까지 찬사를 늘어 놓았기 때문이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리면에서 볼 때 하나도 발전되거나 변화된 것이 거의 없고 오히려 마리아의 무죄성과 교황의 완전무오설을 주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Billy Graham 목사는 그들에게 한 설교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에게 인기 있는 존재가 되어 칭찬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만일 10년 전에 빌리 그래함 목사가 이렇게 했으면 많은 신자가 그를 반대했었을 것인데 지금은 대대적인 칭찬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우리는 지금 표준이 파괴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C. 선교 단체들
첫째 E.F.M.A. 단체인데(여기에는 130개의 선교단체가 가담하고 있음) 이 단체는 N.C.C.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NAE와도 유대를 맺고 있는 단체이다. 둘째는 I.F.M.A.(50개의 무소속 교단의 선교단체)가 있는데 이 선교단체는 T.A.M.만큼은 못하지만 최초에는 자유주의를 반대하는데 강력했다. 그러나 점점 약화되어 T.A.M.(ICCC와 관계를 가지고 있음)만이 WCC를 반대하고 있는 강한 그룹으로 남고 I.F.M.A.는 E.F.M.A.와 같은 관계를 가지고 오다가 마침내 합동을 하여 Washington D.C.에 사무실을 얻어 함께 일하고 있다.
T.A.M에는 현재 A.C.C.C. 문제 때문에(맥킨타이어 박사의 행위 때문에 A.C.C.C.가 분리된 문제를 의미함) 문제가 야기되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두고 봐야 알 것이다(I.C.C.C.와 관계를 가지고 있음)
D. N.A.E.가 한국에 미친 영향에 대한 실례들
1 침례교회
이 교단이 최초에 I.C.C.C.에 가입할 때 100교회 이상이 가맹했으나 현재는 10교회도 잘 안 되는 형편이다.
2 성결교회
한국에서 ICCC에 가입한 교단 중에 제일 큰 교단이다. I.C.C.C.에 가입한 회원이 7만명인데 그 중 1/2인 3만 5천이 성결교 교단에 속한다. 그런데 이 성결교단이 미국 웨슬레 감리교(N.A.E.)에 가담하려 했다가 Robert S. Rapp박사가 쓴 책자 때문에 가입을 못하고 다시 원 위치에 돌아와 현재까지는 I.C.C.C.안에 그대로 머물고 있다.
3 R.E.S.(개혁주의 에큐메니칼 대회)
R.E.S.는 개혁주의 교회 안에 있는 신복음주의이다. 불행히도 한국은 W.C.C.와 투쟁하여 나온 보수주의 교단과(합동측) 신사참배를 거절하고 옥고를 겪은 분들이 주동이 되어 생긴 고려파 교단이 R.E.S.에 교단적으로 가입이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1971년도 총회 때 고려측 교단에서는 R.E.S.를 탈퇴 하였으나 합동측 교단에서는 R.E.S.를 반대하는 노회와 회원들도 많이 있으나 교단적으로는 아직 탈퇴를 않고 R.E.S.회원 교단이 되어 있다가 1973년에 와서 다행하게도 총회적으로 탈퇴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고 명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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