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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개혁해야할신앙

과연 기독교인이라는 그 딱지가 무엇입니까?

왜 우리는 기독교인 혹은 크리스챤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게 �을까요?   기독교인이라는 말은 다른말로 예수쟁이라는 말입니다.  크리스챤이라는 말도  다른말로 예수쟁이입니다.  기독이라는 단어는 중국에서 온말이고  크리스챤이라는 말은 어디서 온지 모르겠지만  영/미국에서 온말이겠지요. 

 

성경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했다고 나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딱지를 초대교인들은 붙이고 다녔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6절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것은  스데반집사님의 순교와 안디옥교회의 설립과 동시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것입니다.   이 구절위에 바나바는 착한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착한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에 충만한 사람들이라고 말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복음을 전했고 그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과 행실을 보고  따라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열된 순서를 보면  착한사람이 먼저나오고 성령과 믿음이 나중에 나오는걸 볼수 있습니다.  특별한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지만  한번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착한 사람이라고 칭할만큼의 인간은 착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제가 생각나는 구절은 바로  에베소서 5장 9절 말씀입니다.  빛의 열매는......

 

착하다는 것은 바로 빛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의 열매를 맺는 사람은 성령과 믿음에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바로  성령과 믿음에 충만한 사람은 그 행실이 착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어있고 그것은 숨길수 없다는 것입니다.

 

소금과 빛의 비유에서 빛은 어두울수록 빛을 발하기 때문에  아주 깜깜한 밤에도  빛은 멀리서도 볼수 있습니다.  우리는 빛의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숨기울수 없습니다.  기독교인은 착한 행실을 나타내야합니다.  그것은 교만이 아닙니다.  착하게 사는것은 중요한것입니다.  왜냐하면 빛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참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짜증도 많이 납니다.  미국소가 아직도 수입되지 않았는데 벌써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세분이나 되는 농부님들이 부도가나서 자살을 선택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누구 탓일까요? 내 탓이기도 하지만  위정자탓입니다.  거짓 위정자를 선택한 국민들 탓이기도 합니다.

 

소를 키우는 아주머니가 이명박 대통령 지지연설을 했습니다.  만약 잘못하면 150마리가 넘는 한우를 청와대로 몰고가겠다고 했습니다.  조만간 청와대가 소우리가 될지도 모르는 웃긴 상황이 연출될지도 모릅니다.

 

착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보를 뜻하는 단어입니까?  가끔 우리는 착하다는것을 바보스럽다는 의미와 같이 생각하고 착한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고  머리위에 올라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상사가 착하면,  할아버지가 착하면,  그들과 맞짱뜨려고 하는 모습들을 내 자신에서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착하다는것은 바보스럽다는 것이 아닙니다.  착하다는 의미는 겸손하다는 의미와 맥을 같이 하는것일겁니다.  겸손이라는 것은  자기자신을 잘 아는 것을 의미하는것이라고 봅니다.   곧 착하다는 의미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잘 컨트롤 할 수 있다는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인이 착하다는 것은  우리스스로 착해서 착한것이 아니라 성령하나님이 우리를 컨트롤 하기 때문에 착한 행실이 나타날수 밖에 없습니다.  내 가슴과 내 마음에서는 욱하는 분노와 화가 치밀고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내 가슴에 가득찰때가 있지만,  그런 감정들을 내 스스로 다스리기 힘들고  어쩔땐 폭발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다스려주시고 위로해주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겉으로 그런 행실이 나타나지 않게되는 것입니다.

 

착하다는 의미와 바보스럽다는 의미를 동급으로 놓게되면  웃긴일이 벌어지게됩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은 정말 별볼일없는 사람입니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람은 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   내가 비록 가진것은 없어도 부자에게 꿀릴것이 없고  내가 비록  배운것이 많지 않아도 배운자들에게 굽신거리지 않는 사람!! 

 

배움을 부끄럼으로 여기지 않으며  강자에게 맞짱떠서 지지 않을 각오로 살아가는 사람은  참으로 우리가 멋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착한 사람들인것입니다. 

 

착한사람들은  불의를 보고 참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착한 사람들입니다.  불의로 인해서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며 착한 사람들입니다.

 

연약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입니다.   가진것이 없는 자들을 괴롭히는 자들은 인간이하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착한 사람이라고 불릴수 없습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기독교인은 상식도 없어서는 안됩니다.

 

정치라는것은 바로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정치가 잘되면  국민이 살기 편해지고  국민이 살기 편해지면 약자를 괴롭히는 자들이 설자리가 없어지는것이 바로  정치가 잘 되어질때 이루어지는 사회적 현상입니다.

 

지금  우리의 기독교장로의 정치를 보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 이런 모습때문에 지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중국 대학생들에게  일반인이  실신할정도로 맞고 있는데  의경들이 옆에서 구경하는 사진을 봤습니다.  중국이 강한나라라서? 우리가 그렇게 맞아야 한단 말입니까?   마찬가지 쇠고기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합니다.  쇠고기가 안전하고 불안전하고의 문제에서 벗어나야합니다.

 

우리가 약하다고 미국인이 먹지 않는 쇠고기를 우리가 먹으라는 말입니까?  미국이 강하니 우리는  약하니  미국에게 굴종적으로 협상에 임하고  굴종적으로  포기하고  우리의  목숨을 미국에게 넘겨주자는 것입니까?   이것이 핵심인것입니다.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안전하다? 불안전하다의 문제를 떠나  우리에게 자존심이 있느냐? 는 문제인것입니다.

 

강자에게 강하게 나가고 약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강자입니다.   부자들을 챙겨주고  1%의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해주면서  100만원버는 120만명이나 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세금을 더 거두고,   중산층들이 내는 세금을 깍아주며 자영업자들의 소득을 파악해서 세금을 매기기위해 도입한  연말정산제도도  현금영수증제도도 이제 물건너가게 생겼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비명을 지를것입니다.   가진자들은  점점더 부자가 되어갈것입니다.   인터넷 종량제로  소통은 단절되어질것이고  사회는 점점 독재화 되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가진자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약한 자들에게 강한모습을 보이는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입니다.

 

공공기업을 민영화 함으로서  국민의 기본적 생활에 필요한 전기/수도/가스등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해야할 비용들이  핸드폰 요금처럼 많이 쓰면 수십만원씩 나오게 생겼습니다.  이런것들이  국민들의 생활에 꼭 필요한데  에너지 절약운운하며  공공기업의 수익율을 높여주고 1%의 부자들을 챙겨주기위해서  결국 수없이 많은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것입니다.

 

의료보험 민영화는 정말 말도 안되는 정책이죠!! 아프면 죽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끝까지 가면  월 500만원 이상 벌지 않으면 못사는 세상이 될겁니다.  바로 성공하지 않으면 죽는 세상이 오는 것입니다.  그 끝은 모두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국가는 함께 살아가는 곳입니다. 기업이 아닙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지만  국가는  상생을 추구합니다.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국가는 존재할수 없습니다.  이명박은 국가를 기업으로 만들려구 하고 있고  기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탈락한 사람들은 직장없이 떠돌아 사는 것처럼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탈락한 국민들은 결국 아무데도 갈곳이 없이 죽음만 선택할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것입니다.  이것이 이명박 CEO정부의 마지막 가는 길입니다.

 

이것이 착한 사람들이 하는 정치입니까?   다시 말해서 기독교인이 해야하는 정치입니까?  크리스챤이 해야하는 정치입니까? 그리스도인이 해야하는 정치입니까?  전 묻고 싶습니다. 

 

미국이 강해도 한국은 꿀릴것이 없는 주권국가입니다.   그런데 왜 미국의 애완견도 먹지 않는 쇠고기를 수입하며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선진육까지(뼈에 붙어있는 살점을 뜯어내어 만들어낸 가공육) 수입한단 말입니까?  이것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싼가격에 맛있는 쇠고기를 먹여주는  이명박 임금님의 은덕입니까?

 

이것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포기하고 미국에 굽신대는  친미 맹종/굴종한  민족의 치욕적인 협상이 바로 쇠고기 협상인것입니다. 민족의 자존심을 버린것이고  강자에게 몸을 판 창녀와 같은 행위를 한것입니다.

 

기독교인/크리스챤/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우리들은  착한 사람들입니다.  착하다는 의미는 바보스럽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겸손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겸손이란 자기를 잘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기를 복종하고  맡기는 사람들입니다.  부족한걸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착한사람들은 성령과 믿음으로 충만할때 가능합니다.  우리안에 있는 악한것들이 성령님을 통해 걸러지고 이겨낼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람들은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고  의로운 일을 위해  나설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우리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입니다. 

 

세상에 불의가 판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불의를 보고 눈을 감아서는 안되는데  눈을감고  불의한 자를  이나라의 수장으로 만들어놨습니다. 

 

그러면 이제 책임져야합니다.  불의를 보고 눈감으면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합니다.  거짓을 보면 지적해야합니다.  불의를 보면 분노해야합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이 있으면 그들을  책망해야합니다.  잘난척하는 바리새인을 보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훈계할줄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착하다고  바보스럽게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기독교는  바보들만이 있는 종교가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의 뜻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복있는자들입니다.   그 복을 나누어 주어야합니다.  세상을 향해서 복을 들고 나아가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말씀 하나하나를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이 삶에 적용되어야합니다. 

 

세상에 불의가 판치고 있습니다..   약한자들 위해 군림하는 강한자들이  지금 세상을 쥐고 흔들고 있습니다.   크리스찬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  저는  이들의 불의를 보고 참을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약한자들이 행복하게 살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것이 제 꿈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모두  이런 꿈을 꾸어야하고 실천해야합니다. 그래야  이땅에서 존경받는 종교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게될것입니다. 그래야 교회가 차고 넘치는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부흥하는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