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혜로운말씀/개혁해야할신앙

상식적인 기독교.......

기독교가 초월적인 종교이기에 상식적이라고 말하면 좀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모릅니다. 기독교가 추구하는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타종교는  우리가 신을 찾아가는 종교라고 합니다.  신을 만나기위해서 정성을 다 바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간들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온 종교입니다.  사실 기독교는 종교라고 말할수 없다고 하죠. 기독교는 우리의 삶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없이 살수 없기때문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외에는  다른 종교는 이땅에  존재할수 없는것입니다.  우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태양도 달도 나무도  별도 바위도  우리에게 어떠한 힘도 줄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그것을 이용하는것이 사단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없이 살수 있다고 우리에게 속이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없이는 살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사단의 말에 속을까요?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미 죽은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애써도 우리는 스스로 구원할수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이미 사망의 몸을 입은 죽은자들이기에  하나님을 알수도 없고 알려고하지도 않고  죽음후의 세상에 대해서도 관심도 없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왜?  사망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살리는 길은 복음밖에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 우리가 죽으면 끝이 아니라  죽음이후의 삶이 있는데  그 삶은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어 진다. 천국에 가기위해서는 오직 예수님을 믿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전파해야하고 이것을 깨달아야지만  비로서 성령님의 역사로 생명을 얻게됩니다.  

 

죽은자들에게 기대할것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일반적 은총과  성령님의 간섭하심으로 일반적 윤리와 도덕을 가지고 살아가게끔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그것은 구원과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이땅의 삶을 추구하게 됩니다.

 

지금 경제가 어렵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도  투자나 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위한 어떤 방법들을 생각할겁니다. 금에 투자하고  은행에 투자하고......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것을 기억하십시요. 하나님께서  이땅에는 안전한곳이 없다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했습니다.  이말을 목사님들은 헌금 많이 하라고 속이는 말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데......하늘에 쌓아두라는것은 바로 이웃을 위해서 쓰라는 말씀입니다.

 

돈을 저축하는것은 중요하지만 과하게 저축하는것보다  일정부분을 저축하고 쓰셔야합니다. 그래야 경제가 돌고 나라가 어려워지지 않습니다.  왜?  경제 위기가 왔는지 생각해보십시요. 투자를 하고 그것으로 수익이 별로 나지 않으니까  투자상품들을 만들고  투자상품의 파생상품을 만들고...돈으로 돈을 벌려구 하다보니까  결국 돈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되고 결국 투자은행들이 부실화되자....경제가 흔들리게 된것입니다. 

 

번만큼 쓰고  일정부분 저축하고  이웃과 함께  일한것을 나누면  이렇게 금융대혼란이 오지 않습니다. 물질은 넉넉하고  삶이 풍요로와지다보니 이웃을 생각하기보다  나만 잘먹고 잘살자는 생각을 하게되고 결국 나를 살게 하기위해서 남을 어려움에 빠뜨릴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게 지금의 세계 경제의 모습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상식대로 살지 않고  비상식적으로 살기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죠. 무엇이 비상식적이냐면  땀흘려서 먹고 살아야하는 인간들이  숫자가지고 먹고 살려고 했기 때문인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것이 특별한것처럼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초월적이라고해서 기적을 추구하거나  이적과 방언  넘어뜨림과 금이빨등  성령의 역사라고하면서 기적과 이적 표적을 쫓아가는 자들이 너무나 많이 있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요즘 그런 프로그램들도 난무하고 있지요.

 

하나님이 원하는것이 과연 그것일까요?  그걸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져야 했을까요? 우리를 죽음에서 건저내어 생명을 주시고  우리에게 지식과 지혜를 주신 이유가 그것일까요?

 

생명을 얻은자는  생각을 바로 하게 됩니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걸 안사람은  담배를 피지 않게 됩니다. 술이 몸에 해롭다는걸 알게된 사람은 술을 금하게 됩니다.  야동이 정신건강에 치명적인걸 알게된 사람들은 야동을 금하게 됩니다. 

 

생명을 얻는다는것은  하나님을 알게되었다는것이고  하나님을 알게되었다는것은 결국 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돌아가는지를 알게되었다는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는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것은 성숙입니다.  인격의성숙을 원하십니다.  아이때의 모습과 성숙한 성인의 모습은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아이때는 자기만 알지만  성인이 되면 에티켓을 생각하고 남을 생각해주는 마음을 갖게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이유는  죽은자들이  산자들의 모습을 보고  생명을 얻고자 하게 하기위한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 그리스도를 깨달아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것입니다.

 

생명을 얻은자들은  죽은자들의 모습을 바로 볼줄 알아야합니다.  죽은자들처럼 행동하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생명을 주신 이유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생명을 얻어 산자들은 산자로 행동해야합니다. 그런데  산자들의 행동이 죽은자들보다 더 형편없다면?  안되겠지요.

 

죽은자들이 물질을 쫓아갈때  산자들은  정신을 쫓아갈줄 알아야합니다.  죽은자들이 높은 도덕성으로 산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심란해집니다.  산자들이 죽은자들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가져야합니다.

 

황금만능주의의 이 땅에서  우리는 황금을 쫓아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더 인본주의적인 사람들이 되어야하는것입니다.   인본주의 하면  악한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본주의를 추구하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신본주의를 추구한다고 해서  인본주의자들을 공격하다보니  기독교가 칼빈주의 알미니안주의 하면서  교회사에서 임없는  논쟁과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것입니다. 

 

신본주의를 중심으로  우리는 인본주의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것입니다.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는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말할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만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때  친구와 다툼이 있으면   친구와 화해하고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나와의 관계만  확실하면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만 확실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천국에 가기위한  확실한 믿음을 위한  방편으로서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분들이 계시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것과  이웃을 사랑하는것은 불과분의 관계인것입니다. 

 

기독교가 세상에서 욕을 먹고 개혁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너무나 등안히 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상식적인 종교이고  이땅의 상식은  십계명에서 너무나 잘 말하고 있습니다.  이땅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그 아들을 보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땅에 증명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알고 깨달은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그것을  알게 하신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기위해서 우리를 먼저 부르신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을 받은것을 감사할뿐 세상을 향해서  그 사랑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을 받은것을 자랑하고 그것을 가지고 뻐기고 살뿐입니다.  그러니 세상사람들이  우리를 향해서 개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고  상식적인 종교입니다.  부모님을 섬기고 사랑해야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겨야합니다.  왜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을까요?   왜 하나님은 인간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셔야 했을까요?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을 다 사랑해서 예수님을 믿기만하면 구원을 선물로 허락하십니다. 

 

인간은 모든 인간을 다 사랑할수 없기에 이웃을 사랑하라고 그 범위를 한정시키셨습니다. 인류를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한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이라크를 위해서  나는 인도를 위해서 나는 중국을 위해서!! 라고 외치며 전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그분들이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은 특별한 일을 감당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우리같이 평범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상식적으로 살면됩니다.  이웃이라고 지칭되는 분들은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내 부모 내 아내 내 자식들 그리고 나와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우리가 그 이웃들에게 사랑으로 대하고  사랑을 베풀고 이웃에게  내것을 씀으로서 그들에게 베푸는것이  하늘에 복을 쌓는것입니다.  남편이면서 아내에게 생활비 안갖다주시는 분들  정말 잘못하는것입니다.  부모님이  키워준 은혜를 배반하고  늙었다고 괄시하고 용돈안주는 자녀분들  하늘의 보화를 잃어버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를 돌보지 않고 자녀를 내팽개친 부모님들 하나님을 두려워할줄 알아야합니다.

 

이런 사소한 일들을 감당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분들은 정말 하나님을 잘못 믿고 있는 분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독교는 정말 상식적인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자체가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입니다.  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것은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것에서 나타납니다.  이웃을 사랑할때  하나님의 사랑은 더 커집니다.  그것이 천국에 보화를 쌓는 작업입니다.

 

많은 분들이 의를 말하고 사랑을 말하고  기독교인들에게 사랑이 없다.  양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교회에서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지만  정작 이웃을 향해서는  내 주머니를 꼭꼭 닫고  한푼도 내어놓지 않고  아까워하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100억을 하는것도 중요하지만  100억을 이웃과 나누는것은 하나님이 더 기뻐합니다.  교회는 부자가 되어서는 안되고 이웃이 부자가 되어야합니다.  교회는 거대하게 지어놓고  주변의 집들은 초라한 스레트집이고 다 허물어져가고 있다면 그 교회는  그곳에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허물어져가는 집의 기둥을 세워주고  지붕을 바꿔주는 일을 하고 교회를 세우는것이 우선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이웃과 불화하면서 하나님께 재물을 바치는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웃과 화목하면서 하나님께 제물을 바칠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고 상식적인 분이십니다.  우리가  잘못 음으로 세상사람들이 기독교를  이상한 종교라고 말하게 않게 합시다.   우리가 바로 믿음으로  우리의 하나님이 영광을 얻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이 대한민국에 필요없는 기독교가 아니라 없어서는 안되는 그런 종교가 될수 있도록  내주변의 이웃부터 챙기고 사랑하는 기독교인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