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혜로운말씀/은혜 로운 말씀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는 자유케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창조하심은 바로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인간이 살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놓고 인간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선물을 인간이 잘 사용하며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과 늘 동행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사랑했던것처럼  서로 사랑하여 이 지구가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어주기를 소원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책임이 있듯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위해서 책임을 져야했습니다. 그것이 서약이라는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서약은 딱한가지였습니다.  그  서약은 선악과를 먹지말라는것이고  그것을 먹으면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서약을 인간이 깨뜨려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죽을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됬습니다. 육체적 사망과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의 영원히 분리되어버리는  심판을 받게 된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서약을 어겼다고 해서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을 버린것이 아닙니다.  호세아의 아내가  호세아를 버리고 음란을 행했을지라도 그 아내를 호세아가 버리지 않고 사랑했던것처럼 하나님은 그런 사랑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단의 말을 들어버린 인간을  구원하기로 한것입니다.   

이 구원의 방법으로  여자의 후손이  사단의 머리를 부수어 사단을 심판하고 인간을  사단의 올무에서 해방시키실것을  인간에게 약속하신것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지 못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가인은 아벨을 죽이는 죄악을 범하게되고  결국 인간은 서로 죽이는 죄악을 범하게 된것입니다.  보다못한 하나님은  노아를 택하여  인류를 보전케 하기로 하고 가인의 후손들을 모두 심판하기로 작정한것입니다.  

아담의 후손 셋의 후손에서 노아를 준비하셨고  노아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어울려 죄악에 빠져  헤맬때  하나님은 이들을 모두 심판하기로 했고  노아와 그 세아들과 세자부만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무지개로 언약을 맺었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않고  바벨탑을 세우고  하나님은 자기의 말을 믿지 않는 인간들을 심판하여 언어를 흩으시고  온 사방으로 인류를 흩어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흩어진 인류가운데서 아브라함을 불러  그 후손에게서  인류를 구원할 자가 나올것임을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주는 자는  위에계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첨부터 하나님의 언약을 확실히 믿은 사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언약을 믿지 못해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고  하나님은 이 언약의 후손이 아닌 이스마엘을 심판해야함에도  하나님은 이스마엘조차도 사랑하셔서 그를 축복하시고 민족을 이룰것임을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약속의 후손은  종의 자녀가 아닌  자유자의 자녀 곧  하갈의 자녀가 아닌 사라로부터 얻을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래가 그 태가 멈춰 더이상 아기를 낳을수 없을때 하나님은 이삭을 낳게 하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언약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삭의 자녀 둘이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야곱은 차남으로서  장자권이 없는 자였고  야곱은 사기꾼이었으며  죄와 더불어 사는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야곱의 행위를 보시고 선택하지 않으시고  야곱을 태중에서 이미 택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로 삼아주셨으니  이는 야곱이 택함을 받은것은 그의 행위도 아니요 그의 믿음의 고백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택함에 의한것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은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 곧 나은지 팔일만에 할례를 행하여  할례를 언약의 증거로 삼아  할례를 받는자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이 할례자들과 이방인들 곧 무할례자들과의 차이점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의 후손이냐 아니냐의 차이로 나타난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후손들을 택하여 민족을 이루고 나라를 세워 하나님의 백성들로 삼으셨으니 야곱의 아들 12지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자유자들인것입니다.   이들은 종의 후손이 아닌 자유자의 후손으로서  종의 후손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자들인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자유자의 자녀들이  방종하게 행하지 않도록 율법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맺은 서약인것입니다.  이 약속을 지키면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영원히 가나안에서 하나님과 행복하게 살것이고  만약 이를 지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심판하여  온땅으로 흩으실것이라는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은 언약은  율법의 문자하나 하나를 지키는것이 아니라  율법의 핵심인  마음을다하고 몸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손등에 새기고 이마에 새겨서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율법 전체를 손등에 새기고 이마에 새긴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바로 율법의 핵심이었고  이것을 잊지 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것입니다.  

그러나 택함받은 자들은  무할례자들 곧 이방인들을 향하여  자기들은 율법이 있는 자들로  무할례자들은  구원이 없는 자들이라고 하여 무례히 행하고 그들을 업신여겨 짐승처럼 대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한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특별히 택하여 복을 준 이유는 모든 나라의 백성들의 제사장나라가 되기를 원하셨던것입니다. 

이 시대의 제사장 나라라는 의미는 바로 복을 주는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만국에 복을 주는 백성들이 되기를 소망하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했고  이스라엘은  복중에 복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 땅에 전하여  참된 제사장의 나라로서의 위치를 세우고  온 세상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백성들이 되기를 가르치기 소원했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히 세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맡은일을 잘 감당하지 못하니 하나님은 결국 이스라엘을 책망하여  많은 나라들의 본보기가 되게 하셨으니  그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면 복을 주시고 잘 섬기지 않으면 벌을 주심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세상이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셨습니다.  

원죄를 가진 인간들은  그 죄악된 성품으로 인해서  아무리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라고 해도 그들도 원죄를 가진자들이고 죄와 싸우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할수 없었기에 세상은 이스라엘을 비웃으며 하나님을 비웃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종이 아닌 자유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더 이상 행할수 없음을 깨달아  그 아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보여주기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의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백성들이 되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문자적 율법을 지킨것이 아닙니다.  문자적 율법을 강조하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율법을 지킨자가 아니라 율법을 파괴한 자였던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처럼 죄중에 태어난 분이 아니라 죄가 없이 태어난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이룬것은 바로 사랑인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전히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했고 아버지의 명령을 준행했으며 그것을 이루셨습니다.  또한 온전히 인간을 사랑하여  모든 인류를 위해서 자기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완성하셨고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 자들은 그 사랑안에 거할수 있게 된것입니다. 

인간은 죄를 짓지 않을수 없으니  용서를 받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아야하는데  죄를 용서받는 길은  이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것이 바로 하나님께 구원을 얻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으로 인해서 모든 인류는 죄아래 있게 되었고  죄의 종이었습니다.  모든 인류는  죄로인해 심판을 받을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인류를 위해서 피를 흘리셔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이삭의 후손 야곱은 자유자들입니다.  종의 자식들이 아닌 자유자의 자식들로서 택함을 입은 자들이며  할례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임을 증거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의 백성들도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죄사함이 없음을 가르쳤고  이들은 제사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사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는 것은  순간적이었습니다. 뒤돌아서면 죄를 범하는 인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들을 위해서 단번에 제사를 드리러 오신것입니다.  죄에서 해방하여  하나님의 참된 자유자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오신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들은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제사를 드리러 곧 속죄양으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린것이 아니라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속죄양으로 오신것을  자기 백성들이  깨닫기 하기위해서  이방인들에게 죄사함을 받는 길을 열어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인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야곱의 후손들처럼 자유자의 후손으로 태어난것이 아니라  종으로서 태어난 자들입니다.  이 종의 신분을 벗어나는 길은  양자가 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친자들은 원래 자유자들이지만  이방인들은 종이었으니 하나님이 양자로 삼아주는 길밖에 구원얻을 길이 없었습니다. 

구약의 수없이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은것은  그들이 종으로서의 낙을 누리지 않고 양자가 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는 하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입어 양자가 되는 축복을 누린자들입니다.  

이들이 양자가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니  친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미리 받아놓고도  이들을 시기하게 된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하나님의 친자인 장남은 하나님의 것을 미리 누리면서도 탕자가 돌아오자  송아지도 안잡아주었다고 아버지를 원망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우리 이방인들은  종으로서 살다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종이 되고자 했던 자들인데 하나님은 우리를 종으로 삼지 않고  자기 자녀로 원래의 신분을 회복시켜준것입니다.  

원래 모든 인간은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었습니다. 아담의 후손이며 노아의 후손인것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죄의 종이 된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죄의 종들중에서  특별히  아브라함을 택했고 그 후손들은 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들로  자유자로 태어나게 하신것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율법을 어김으로서 죄를 짓게 되었고 죄사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방법이 바로 제사였는데  우리 이방인들에게는 그런것이 본질상 없는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이스라엘이 받을 언약에 참여시켜  친자들이 받을 축복을 우리도 누리게 했으니 우리는 양자들로서  친자나 양자나 아버지의 유산을 받을 자격을 가진 자들인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복음으로 전파하시고 우리가 그 복음을 들어  성령님의 인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된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친자와 양자의 관계  참 감람나무가지와  돌감람나무 가지의 비유를 이해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이방인인 양자된 자들이 본질상 자유자의 자녀인 친자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는다고  친자들을  구박하여 그들이 받을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의 축복을  그들은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그들이  비록 잘린가지들이 있고 그 가운에 이방인들이 접붙임을 받게 되어 구원을 얻었으니 우리는 잘난체 하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하여 그 구원을 주신 뜻에 합당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예수님을 죽인 자들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하는 일이 뭔지 잘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곡해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백성들이 죄가운데서 신음하며 매일 드리는 제사로 죄를 없이 할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그들을 위해 제물이 되신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제사를 통해서 죄를 사하는 언약을 맺은적이 없고  이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입니다.  이 언약의  중보자로서 예수님이 이땅에 오실수 밖에 없었던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자유자 친자로 인정하지 않는다고해서 그들의 위치가 훼손되는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방인들로  저주받은 자들로서  이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으니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기쁘게 하는 것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다는 것을 자랑하는것이 아니라  이웃을 섬김음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서의 참된  자녀의 모습을  세상에 나타내며 사는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   곧 빛과 소금으로서  숨길수 없고 맛을 내고 부패를 막는 소명을 주신 그 소명을 바르게 합당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이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입니다.  

모든 논쟁의 핵심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 질수 있느냐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위치를 바로 깨닫는것입니다.  우리가 친자니 양자니 하는 싸움은  정말 중요한 싸움은 아닙니다.  

그런데  양자가 친자의 자리를 차지하는것 또한  바른 모습은 아닙니다.  

죄악에서 멸망받아도 아무말도 할수없는 존재들  곧 종으로서 살다가 종으로서 죽어  영원히 멸망받을수 밖에없는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종으로서 살아가야할 값을  다 치루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 곧 자유자가되었고 진리를 아는 자들이 되었고  진리를 통해서 자유를 얻게되었는데....................정말 이렇게들 싸우며 살아갈겁니까?  

이렇게 싸우고들 살아가니   이 기독교가 분열되어 수백개의 교파가 생긴것이 아닙니까!!!! 사랑하며 살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요!!!! 

 

중요한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오셨지만 또한 언약의 사자로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 오신분이시라는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오신 분이시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때에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재림하실것이라는 사실도 진리입니다.  

 

적그리스도와  예수님을  구분하는 방법은 바로  누굴 구원하러 오신 분인가가 그 구별의 척도가 될것입니다.  자기 백성들을 위해 오셨는가? 아니면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다는가....라는 것 말입니다.  예수님은 심판주로 오시지 구원하러 오시지 않습니다.   온 인류는 심판대 앞에 설것이고  예수님의  택한 백성들과  복음으로 구원얻은 하나님의 자녀들 곧 양자된자들만이 구원을 얻게될것이고  나머지는 심판을 받을것입니다.

 

예수님은 심판주로 오신다는것을 잊지 마십시요!  마지막때는 하늘의 불로  이땅을 불로 심판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