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혜로운말씀/은혜 로운 말씀

율법과 복음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겁니다.

율법은 성경에서 옛언약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복음은 새언약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복음의 관계는  옛언약과 새언약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 언약이 문제입니다.   복음은 언약과 관계가 있지만  복음은 이방인과 관계가 있는것입니다.   복음은 언약을 얻게하는 수단이지 언약이 아닙니다.

 

이것이 무슨말이냐면!   에베소서 3장 6절에 보면  언약에 참예하게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복음은 이방인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참예하게 하는 방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땅에 전파되고 수없이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얻게 되었는데.......그런데 이 복음이 전파된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오신 분이십니다.  가나안의 여인을  개취급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개가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까지 말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했습니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크다고 했습니다. 칭찬했습니다.  예수님이 가나안여인을 개취급한 이유가 정말로 그 여인을 무시하기 위해서였을까요?

 

본래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가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럼 자기 백성이 누구입니까?  이방인이 아니라 성도입니다. 성경에서 성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거룩한 백성은 이스라엘을 칭하는것이고 이방인은 저주받은 자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자들 언약을 맺지 못한 자들  언약과 하등 상관이 없는 자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속에서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들...그런 자들을 하나님이  상관있게 한것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복음을 지칭하여  원수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을  회복함으로서 구원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언약을 회복하는 역활을 하는데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에 입장에서  복음이라고 칭하지 않고  새언약이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새언약의 목적은 옛언약으로 말미암아 지은죄를 용서하기 위함입니다. 

 

옛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이 맺은 시내산언약 율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이것이  율법과 복음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는 이방인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본래 율법자체가 없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자들이 바로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율법과 관계가 있다고 자꾸 말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율법은  언약입니다.  옛언약입니다. 이것을 지키면 하나님이 복을 주고 이것을 어기면 저주하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율법을 범하여  저주받은 자들은  제사를 드림으로서  다시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매일드리는 제사입니다.  매일 매일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또 죄를 범하는게 율법을 범하는게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래서 이  제사로부터  해방시켜주실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메시아입니다.  제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말은 더이상 죄에 대해서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예수님이 단번에 제사로 자기를 드림으로서 이젠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게된것입니다.

 

이것을  세례를 베풂으로서  확증하는 것입니다.   언약의 증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 할례를 받은 자들은 율법을 지킬 의무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언약의 백성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할례받은자들이 율법을 범함으로서 무할례자들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율법을 지킬수 없으니 무할례자들이 되는것이 당연합니다.  무할례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인 영원한 기업을 얻지 못합니다.

 

영원한 기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언약을 회복해야하는데  이것이 새언약입니다.  새언약을 얻게했다는 증표로서  세례를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례는  물로 하는 세례가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베푸는 세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자들은 죄에 대해서 용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이방인에게 까지 베풀게 된것은  이 세례를 통해서  무할례자들 곧  본래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 언약과 상관없는 자들을 세례를 받게 함으로서 한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한 자녀가 되게 하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이  하나가되는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 뜻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죄를 사해주심으로서  온 인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녀로 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이방인에게 까지 베풀게된것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요!! 성경에 세례의 의미가 무언지부터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  복음과 상관이 없다고 한 이유는  복음은 이방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인데  정말 상관없는게 아니라  복잡하지만   율법과 복음은  옛언약과 새언약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럼  옛언약과 새언약은 율법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옛언약은  행위언약입니다.  새언약은  믿음의 언약입니다.  그런데 이 새언약이  신약에서만 존재했느냐! 그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언약의 중보자가 되실 메시아가 이미 구약에서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 후손들  믿음의 조상들은 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서 구원을 얻고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약속이라고 함은  옛언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새언약의 중보자로 오실 메시아!  여자의후손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할  메시아가 오실것임을 그들은 믿고 그 약속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는 그 약속을 믿음으로서 구원을 얻게되는것입니다.

 

율법은 행위언약입니다.  이것을 지키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지킬 육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할까요?   그런데 이 율법을 완성시키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율법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켜 행했습니다. 그리고 온 인류를 사랑함으로서 십자가를 지셨고 죽음으로 그 사랑을 보이셨으며 부활로서 그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이것이 율법을 이루신것입니다.  율법의 요구는 죄요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이 사망의 삯을 예수님이 치루셨고 부활하심으로서 율법의 권세를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율법을 폐하셨다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폐하여진것은 율법의 권세인 죄요  죄의 결과인 사망, 죽음입니다.  곧  율법이 사람을 정죄하고 죽게 만든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그 권세를 깨뜨려 폐하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은 더이상 율법으로 말미암아 정죄받고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완성시키셨습니다. 그것은 사랑에 대해서입니다.  그래서 이것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안에 있음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랑을 완성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함으로서 율법을 지키고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그리스도안에 있을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이루는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래서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율법을 지켜야한다고 할때  지켜야할 율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구약에서 말한 율법과 관계가 없느냐!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 자체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당시는 율법을 잘 지켜야 했습니다.  그래야 병도 걸리지 않고  전염병으로 많은 생명이 죽지 않을수 있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해서  인간을 보호하고 살리기 위해서 특별히 만든 법입니다.

 

율법이 정죄하는 역활을 한다고 하는데!  실상 율법은  인간을 유익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법이라는 사실입니다.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잘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을  심판주로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고 지키지 않으면 죽이고 지키면 상주고...이게 아닙니다. 이것을 잘 지켜야 유익하기 때문에 율법을 주신것입니다.

 

율법에는 정말 많은 의미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핵심을 말하면  성경의 핵심 주제가 하나님의 사랑이듯이  율법의 핵심도 결국 사랑입니다.  폐하신것은  율법의 권세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폐한겁니다.  완성한것은 사랑입니다.  그러면  페하지 않은 사랑은 실천해야 하는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것이  율법을 이루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이땅에 와서 보여주신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떻게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신것입니다.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산상수훈은  동일한것입니다.  너무 구약의 율법을  정죄의 도구로  죄인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간을 죄인이라고 칭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율법을 만들었다고 하면!!  그건 하나님의 진정한 율법의 의미 뜻을 모르는 것입니다.

 

제가 많이 답답한 이유가  율법이 폐했느냐  안폐했느냐 이런 논쟁 쓸데없는 짓입니다.  율법이 행해야 하느냐  행하지 않아도 되느냐! 이것도 쓸데없는 논쟁입니다. 

 

이것이 복잡한 이유는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복음은 이방인들은 쉽게 알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 모릅니다. 복음이라고 하면 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약의 후손들입니다.  복음은 언약의 후손들에게 전하는것이 아닙니다. 언약의 후손들에게는  새언약의 중보자가 오셨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약의 사자가 오셨다고 말해야 하는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예수님은 새언약의 중보자이시며  언약의 사자입니다.  옛언약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은 그들이  그 저주에서 풀려나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새언약의 중보자이시며  언약의 사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나는 길입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의 권세 사망의 권세에서 이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예수님께서 폐한것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율법의 권세에서 풀려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에 대해서 죽는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새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새언약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언약의 중보자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의에 대해서 다시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로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함으로서  율법을 완성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켜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것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지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율법의 권세에 대해서 해방된자들이  율법의 정신에 있어서 그것을 지켜야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니  율법의 정신  곧  새언약 사랑의 언약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사랑하지 않는자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은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사랑은 모든것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것을 완성시키셨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안에서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예정이며 우리에게 바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