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출34:6 |
신명기 4장 31절의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이 열조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맹세하신 언약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너희 자손이 별과같이 많아질것이며 너희 자손이 가나안땅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고 살게될것이다. 이 영원한 기업을 너희 후손에게 주겠다고 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그냥 약속이 아니라 맹세로 한 약속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맹세로 한 약속...
하나님이 그냥 약속을 해도 지켜야 하는 것인데도 맹세로 한 약속이라고 까지 한 이유는 사람들이 믿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의심하니까 하나님께서 오죽하면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겠다고 까지 하셨겠습니까!
맹세로 한 약속...이 약속이 이스라엘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을 축복하겠다는 것입니다.
대체신학은 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다. 라고 한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믿음의 자손들로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수는 있지만 야곱과 야곱의 자손들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12아들로서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 곧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스라엘의 자손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함은 믿음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할례의 언약을 가진 자손들이라는 것입니다. 할례의 언약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미로서 죄가 없이 태어나는 자녀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은 인간은 죄가 없이 어떻게 태어나느냐? 라고 반문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구별하여 깨끗게 한 자녀가 있습니다. 그 자녀가 바로 이삭입니다. 이스마엘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기전부터 구별하여 택한 자녀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야곱입니다.
곧 야곱의 12아들들은 나기전부터 하나님이 택하여 거룩하게 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그것을 확인하는 할례를 허락하셨습니다. 할례는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라고 하는 확인증명서인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은 죄가 없이 태어나고 죄가 없다고 확인증명서까지 받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죄인이 되었습니까? 바로 율법입니다.
할례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것입니다. 율법은 몽학선생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로 가는 방법을 가르친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한다고 했습니다.
할례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율법을 주셔서 그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생겼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이스라엘 자녀들은 죄인이 됩니다.
이 죄인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습니다. 곧 율법을 잘 지켜서 죄사함을 받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왜? 죄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제사는 일회성으로서 영원히 죄를 사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지만 또한 책임을 맡았고 그 책임이 바로 율법이었던 것입니다. 이 율법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준것으로서 하나님의 선한 법입니다.
곧 천국의 법이 율법인것입니다. 이 율법은 모형으로서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 들어가면서 하나님이 그 땅에서 살때 이 법을 지키며 살아라! 라고 준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이 지켜야할 법이었던 것입니다.
이 율법의 핵심은 그 조항들을 지키라고 준것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준 법인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이 법을 지킨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그 율법의 조항들을 지키는것에 매몰되어서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율법에 매여서 율법의 종이 되어서 살게 되었던것입니다.
율법의 종이 되었다는 의미는 곧 죄의 종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죄를 죄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법이 있어야 죄가 되는 것입니다. 곧 죄를 죄되게하기 위해서는 율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율법이 필요한 이유는 죄가 아무리 관영해도 하나님이 죄를 사하는 법이 없었다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단에게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은 인류에게 죄를 용서받는 방법을 만드신것입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죄를 죄되게 하는것이 바로 율법이었던 것입니다. 이 율법이 죄를 만들고 제사가 죄를 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제사 방법을 통해서 죄를 사함받는것은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양을 잡아 벗은 몸을 가린것처럼 이미 아담과 하와때부터 존재했던 죄사함을 받는 방법이었습니다.
이것을 법으로 만들어낸것이 율법인 것입니다. 이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할 방법을 마련한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백성삼으시고 가나안을 허락하시면서 율법을 주신것과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국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신 이유가 바로 온 인류의 구원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실것이 예언되어 있으며 또한 이스라엘을 통해서 온 인류가 구원을 받게될것임이 예언되어 있는 것입니다.
곧 이스라엘을 부르신 이유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전에는 이스라엘에게 준 율법과 제사방법을 통해서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얻게하는 방법을 온 인류에게 전파하도록 하신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사장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여 지켜 행했다면 온 인류는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신 복을 얻고 구원을 얻을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복을 이방인에게 전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도 실패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온땅에 흩어지는 고통과 환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환란과 고통은 결국 이방인에게도 복이 되지 못하고 이방인에게도 불행과 고통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고통과 불행은 결국 반유대주의로 나타나게 되었고 반유대주의 사상은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유대인 학살은 유대인이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또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방인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이 반유대주의사상이 바로 대체신학인것입니다. 대체신학은 하나님이 유대인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이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준행하지 않음으로서 벌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말씀에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축복을 받고 저주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방이 복을 받는 길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제정한 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때문에 이땅에 오셨습니다. 율법을 범한 죄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물이 되신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인된 자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인것입니다. 동물제사는 그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단번에 제사를 드렸고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으로 인하여 매일드리던 제사를 끝낼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율법이 죄를 드러내게 하고 이 드러난 죄에 대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죄의 삯인 사망을 예수님께서 끝내신것입니다. 더이상 죄로 말미암아 인류는 사망이라는 죄의값을 치루지 않아도 된것입니다.
곧 이스라엘이 존재하지 않고 율법이 존재하지 않고 할례가 존재하지 않고 동물제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에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는것입니다.
대체신학은 바로 이 율법도 이스라엘도 할례도 동물제사도 다 없애버린것입니다. 죄를 죄로 정하게 한 방법을 없애고나서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그럼 그 예수그리스도는 무엇을 위해서 죽으셨나요? 무엇을 위해서 부활하셨나요?
이스라엘이 없다고 하는 자들에게 묻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것은 율법을 가진 자들을 위해서 죽은것과 같습니다. 그럼 당신이 율법을 받았습니까? 왜 예수님이 이스라엘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 오셔야 했는지 아십니까?
바로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선한 법이고 하나님이 의로운 자들에게 준 법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범하여 죄인 된 자들 이 죄인된 자들을 위해서 죽어야 했던것입니다.
율법이 죄인을 만들어냈으니까요! 성경에 율법은 죄를 죄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죄를 죄되게 만든 법 곧 예수님이 죄에 대해서 죽으셨다는것은 죄를 죄되게 만든 법에 대해서 죽은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당신들은 그 법이 없어요. 할례를 받은적도 없고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를 받은적이 없어요.
이것을 성경에서는 저주받은자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 율법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율법 밖에 있는 자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율법을 가진자들과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할례를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받은 자들과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가 되는 방법이 바로 성령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율법을 가진 백성들과 하나가 되어서 그들이 율법에 대해서 용서를 받았듯이 당신도 율법에 대해서 용서를 받은 자가 된다! 라는 논리를 갖게되는 것입니다.
죄를 죄되게 한 법에서 당신이 용서를 받게된것입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서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게된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을 맺은것이고 그 언약아래서 율법이 나온것이고 이 율법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신것이고 이 율법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심으로서 죄의 삯인 사망을 예수님이 치루셨고 이제 인류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의 삯을 치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체신학자들의 논리에는 이스라엘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사라졌다. 없어졌다. 그들은 필요없게 되었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이고 영적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영적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은 맞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없어진것이 아닙니다.
로마서에서 표현하듯이 돌감람나무 가지의 가지를 잘라다가 참감람나무에 붙여서 너희를 구원했던것처럼 잘린 참감람나무의 가지들을 다시 접붙일 능력이 아버지께 없느냐? 오히려 하나님이 참감람나무 가지들을 더 사랑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보고 자긍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잘나서 구원한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체신학은 우리가 잘나서 구원받았다고 떠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하여 이방인들도 고난을 당했고 환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성공하게 되면 이방인도 복을 받고 행복하게 살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스라엘을 온 나라가운데 으뜸이 되는 나라로 만들어주실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스라엘을 통해서 만국이 복을 얻게되는 축복된 날이 도래할것입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있겠지만 그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이스라엘의 화평을 구하고 이스라엘이 온 나라가운데 으뜸이 되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고 축복하면...그 나라를 통해서 인류 모든 나라들이 복을 얻게될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말씀에 따라서 그렇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대체신학자들은 사탄주의자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복과 축복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저주만을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받았다고 기뻐하고 박수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저주했고 버렸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육적인 후손들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착각하지 마십시요! 성경은 믿음의 자손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과 언약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과 야곱을 빼먹지 마십시요. 열조라고 칭하는 것에는 아브라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삭과 야곱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이방인보고 영적 이삭의 자녀 영적 야곱의 자녀라고 부릅니까? 아브라함의 자녀라고 불리는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음입니다. 이는 복입니다. 그러나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지 마십시요! 그들은 우리의 영적 형제들이고 우리의 한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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