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설명해서 목사님이 십일조 내면 건강하고 이땅에서 복을 받고 부자가 됩니다. 라고 설교합니다.
정말 부자가 되고 건강하게 살고 행복하게 살고 이땅에서 복을 받고 사나요? 복음을 믿으면 아무런 걱정이 없고 마음의 평안만 있고 아프지도 않고 죽을때도 평안하게 죽나요?
이땅에서는 결코 그런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이땅은 고난이고 고생이고 슬픔이고 아픔입니다.
이별의 아픔은 이땅이 끝나는날까지 없어지지 않습니다. 죽음의 고통도 이 땅이 끝나는 날까지 없어지지 않습니다. 물질적 고통과 삶의 고난은 결코 줄어들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이땅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인가요?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이땅에서 아무런 고난없이 평안하고 부자로 살고 행복하게 살고 죽음도 이별도 없는 삶을 원하나요?
결단코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이런걸 가르치는 교회가 있다면 그냥 미련없이 그 교회를 나오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삶은 실패이고 이별이고 슬픔이며 고통이고 고난이고 아픔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땅에 살아가는동안 우리를 떠나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 슬픔과 고난과 고통과 아픔을 덜 겪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고통과 고난이 없어지는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겨내는 힘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수 없으며 사랑으로 고난을 이겨내고 감사로 고통을 이겨낼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고난을 겪지 말라는 것이 아니며 슬픔을 겪지 말라는 것이 아니며 그런것들을 겪지 않게될것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슬픔과 고난과 고통과 아픔의 삶을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삶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땅에 오셔서 아파하셨고 눈물을 흘리셨으며 슬퍼하셨고 애통하셨습니다. 고난을 겪으셨고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겪어야할 고통과 고난 죽음을 다 회피하지 않으시고 다 겪으시고 지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가야할길을 가신 이유는 우리가 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 예수님은 한가지를 더 하셨습니다. 바로 부활입니다. 우리가 아직 겪지 못했고 가지 못했던 길 보지 못했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부활하셨고 새로운 몸을 입으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될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새로운 삶이 있다는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새로운 삶이 바로 아브라함의 복입니다. 약속의 언약의 성취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설교의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복음을 믿는 목적이 우리가 이땅에서 잘되고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까? 고통을 줄이고 고난을 줄이고 아픔을 줄이고 죽음을 없애기 위해서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 고난을 고통을 아픔을 죽음을 당당히 맞이하게 하는 설교가 되어야합니다. 이 고난이 당연한것이고 고통이 당연한것이며 이 아픔이 당연한것임을 말해야합니다.
우리는 당당히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부끄러운 죽음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죽음이 되어야합니다. 죽을때 이땅에 태어난것을 후회하는 죽음이 아니라 이땅에서 내가 할만큼 했다고 고백하고 죽는것 비록 미련이 남는 이 세상의 삶이 될지라도 나는 내가 사는 만큼 내가 할만큼 할일을 했다고 고백하는 삶이 되게하는 설교가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실때 33살의 나이로 죽으셨습니다. 34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젊은나이에 죽으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예수님의 죽으심에는 후회가 없으신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맡긴 그 사명을 다 감당했고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짦은 시간동안 자기가 할일을 감당했습니다. 죽음을 당당히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삶입니다. 이땅을 바라보고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그나라를 바라보고 그 나라의 희망을 바라보고 사는 삶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통해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무엇인지 묵상해보십시요.
이땅에서 복을 받으면 그 복을 나누어 주십시요. 다 싸들고 무덤까지 갈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복을 받지 못했다면 후회하지 마십시요. 천국에서 그 복을 받을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십시요.
애통하십시요.
긍휼하십시요.
자비로우십시요.
오래참으십시요.
온유하십시요.
충성하십시요.
절제하십시요.
선하게 사십시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열매들은 이땅에서 고통가운데서 살면서도 우리가 그 고난을 고통을 아픔을 어떻게 이겨낼수 있는지를 알려주시는 말씀들입니다. 이 열매들은 우리를 기쁘게 할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후회를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아 누리십시요. 그땅이 우리에게 주어질것입니다. 영원한 기업이 우리에게 주어질것입니다. 이땅에서 우리가 가진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붙잡고 살지 마십시요. 달라는 자들에게 나눠주고 자식에게 나눠주고 이웃에게 나눠주고 붙들고 죽을때까지 붙들고 살지 마시고 때가 되면 다 나눠주십시요.
이땅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유는 부자들이 쌓아두는것은 알지만 나누어줄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창고를 많이 짓고 돈을 쌓아둔다고 하나님이 그 영혼을 천국에서 그 창고만큼의 돈을 주시는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그런 쓰레기는 받지 않습니다. 왜? 천국은 그것보다 더 좋은것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종이쪼가리가 아니라 열매들과 보석들과 귀한것들이 가득있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우주에는 석유로만 되어있는 별도 있고 다이아몬드로만 되어있는 별도 있습니다. 루비 사파이어로 이루어진 별도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수정으로 되어 있는 별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별들가운데도 보석이 가득한 별들이 있을 것입니다. 천국에 그런것들이 없을까요?
아브라함의 복을 생각하여 그 복을 누리십시요. 십일조가 건강과 복을 주고 부자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건강과 복을 주고 부자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아브라함의 복을 받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 복을 받아 누리십시요!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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