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 신학은 칼빈의 오대교리에서 드러나듯이 전적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적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 이것으로 칼빈주의 신학을 핵심적으로 표현할수 있으며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의 구체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곧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선택과 속죄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개인적인 구원에 그 중심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신론 기독론 성령론 인죄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 성경을 분해 해석하여 각각의 신학을 정립하고 그 정립된 신학의 바탕아래서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을 믿음의 기초로 삼는것이 개혁주의 신학입니다.
이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성경의 중심에 흐르는 하나님의 역사를 간과하고 그저 무슨 무슨 론이라는 주의에 바탕으로 해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인간 구원 교회 이런것을 분리해서 해석하는 바람에 성경의 아주 핵심을 간과해버리는 아주 큰 잘못을 범하게 된것입니다.
칼빈의 오대교리는 구원론에 있어서 성경의 핵심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 은혜는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 핵심입니다.
이 불가항력적 은혜와 성도의 견인은 알미니안주의에 의해서 구원이 취소될수 있고 은혜는 선택될수 있다는 반대론도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왜? 이 반대론이 등장했을까요?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성경의 중심 민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선택사항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선택할수 있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구원의 은혜가 취소될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어떤 주의나 철학 신학으로 해석하는것은 성경을 좀더 이해하기 쉽고 우리가 알기 쉽게 해주는 방법이지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되는것입니다. 만약 신학이 주장하는것이 성경이라고 한다면 그 신학을 벗어난 것이 이단이라고 한다면 이 보다 더 무식한것이 없는 것입니다.
신학을 벗어난 해석은 거부한다고? 이런 주장은 결국 지금까지 신학자들의 성경해석만 옳고 다른것은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그것은 결국 이단을 양산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것입니다.
이단의 양산은 성경의 중심을 꿰뚫고 있는 역사와 하나님의 섭리에 무식했기 때문입니다. 무식한 인간들이 신학이라는 칼을 들고 자기들만 옳고 나머지는 틀리다는 칼을 휘둘렀기 때문입니다. 그 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삼위일체론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야 했습니까!! 삼위일체론도 마찬가지로 성경에 나오지도 않는 주의입니다. 천주교에서 삼위일체 주의를 만들어냈지만 결국 그 천주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 아니라 태양신을 섬기는 곳일 뿐입니다. 입으로는 삼위일체를 말하지만 결국은 그들은 가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죠
그런데도 개혁교회는 천주교식 삼위일체 교리를 그냥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원죄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원죄를 갖고 태어난다는 주장도 결국 어거스틴의 주장이고 천주교 사상입니다.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대체주의 신학도 결국 천주교에서 만들어낸 신학일 뿐입니다.
개혁교회가 천주교에서 개혁되어 나오다보니 개혁주의 신학에 천주교적 색채가 너무 강한것입니다.
종말론에 대해서도 무천년주의사상은 교회가 천년왕국이라는 중심사상이 그 핵심으로서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사상이 바로 무천년주의입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천년왕국은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성취하고 그 언약의 왕국을 건설하는것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천년왕국이라는 논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교회가 이스라엘민족을 대체해야 했던 것입니다.
원죄론에 대해서도 인간이 죄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면 태어나서 죄도 없이 죽어간 수없이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이 심판할때 그 심판이 불합리하다는것을 우리는 말할수 있습니다.
현 법체계에서도 아이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국가가 처벌하지 않습니다. 미성년자라고 할때 그 아이들을 처벌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판단력이 범죄를 저지를때 자기 판단에 의해서 범죄를 저지른다고 판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원죄론이 문제되는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의 할례를 무력화 시키기 때문인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할례는 죄가 없다는것을 증명하는 언약의 증표인것입니다. 나은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하는데 이 할례는 이스라엘의 언약사상의 핵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원죄론이 맞다면 모든 사람이 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면 할례가 무슨 소용이 있나요? 할례는 죄가 없다고 증명하는 증표이고 이 증표를 통해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율법을 범하여 죄인을 만드는것인데 이 죄인을 만들어서 속죄제사를 드리게 하고 이 속죄제사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제물의 논리를 만들어낸것인데....
할례가 없으면 세례도 없고 세례도 없으면 구원도 없는것입니다.
이 원죄론의 신학은 너무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자비롭지 않은 하나님으로 만든것입니다.
대체신학의 신학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거짓말장이로 만들어낸것입니다.
삼위일체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을 분리시키고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되는 통일되는 하나님의 그 뜻을 하나님만이 하나되는것으로 만들어서 인간은 하나님과 하나될수 없게만드는 잘못된 신학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성경을 무슨 주의 성경을 무슨론 성경을 이런식으로 해석해 버리는 바람에 수없이 많은 이단들이 성경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만것이고 그렇게 이단은 무수히 만들어지게 된것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이 주장하는것이 성경은 성경으로 핵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면 자기들 신학논조에 맞지 않다고 하면서 그 해석은 틀린것이라고 해버립니다.
에베소서의 교회론과 히브리서의 언약론에 대한 해석을 지들 멋대로 해석해버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언약론은 이스라엘 민족을 대상으로 하나님과 너희와의 언약에 대해서 저자가 그것을 상기시켜주는 성경으로서 이방인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임에도 그것을 이방인이 해석함으로서 엉터리 해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의 약속도 이방인과 상관없고 레위기의 제사도 이방인과 상관없고 출애굽기의 언약도 이방인과 상관없고 이방인과 관계있는것은 오직 할례전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맺은 믿음의 언약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런 불상사들을 개혁교회가 저지르고 있으니 참으로 한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개혁교회가 아니라 실상 천주교의 뿌리라고 밖에 말할수 없는것이 현 개혁주의 교회의 실상입니다. 기독교는 천주교의 뿌리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정통 유대교 곧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믿는 그 믿음의 뿌리에서 나온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개혁교회를 보면 정말로 통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칼빈의 오대교리에서 주장하는 성도의 견인 문제는 하나님이 구원한 하나님의 자녀는 끝까지 지킨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자녀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과 약속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 그 약속은 하나님이 버렸다고 주장하는 개혁주의 신학사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장인것입니다.
칼빈은 결코 대체신학을 주장한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성경을 해석했고 그 성경해석을 후대사람들이 신학으로 정립한것인데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칼빈이 설교한 내용을 편집한것일뿐 칼빈이 그렇게 쓴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칼빈의 성경해석은 결국 현재의 개혁교회 성경해석과는 전혀 다른 해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헌재의 개혁교회는 칼빈주의를 따른다고 하면서 결국 천주교의 신학을 그 뿌리로 두고 있고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것에 그 심각성을 말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성경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신학은 그냥 참고하십시요! 신학이 성경은 아닙니다. 신학이 주장한 주의나 사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고 할례를 행하고 언약의 민족을 세우고 율법을 주고 율법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시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에서 이기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언약으로 준 땅에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며 영원히 살게 하신것이 성경의 핵심인데.....
율법도 무시하고 그리스도께서 왜 율법에 의해서 죽으셔야 했는지도 무시하고 왜 이스라엘을 세웠는지도 무시하고 왜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오는지도 무시하고 예수님이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어린양을 찾으러 오신 분임도 무시하고 이스라엘이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 구원의 복음을 들을수 있었다는 것도 무시하고 하나님이 마지막때에 자기 백성들을 약속대로 땅을 주실것이라는 그 사실도 무시하고 성경을 2천년전에 쓴 구닥다리 문서로만 취급하고 2천년이 지난 지금은 새로운 성경을 써야한다고 새로운 성경을 써대는 신천지와 똑같은 주장을 해대고...그리고는 신천지는 이단이라는 말로 무시하고....신천지와 개혁교회가 다를게 뭐가 있지???
오죽하면 신천지간 성도가 개혁교회와 다를게 없다고 하더구만...천주교 신학을 가져다가 똑같이 천주교 신학아래 있으니 별반 다를게 없는게 당연한것 아닌가!!! 천주교의 신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혁교회는 더이상 이땅에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개혁교회가 진정한 기도교로 그 본질을 찾지 않는한 개혁교회의 몰락은 기정사실이고 앞으로도 몰락하게 되고 말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니엘서에서 로만카톨릭을 부서트리는 돌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로만카톨릭의 신학아래 있다면 똑같이 부서지고 말것입니다. 변해야합니다. 참 기독교로 돌아와야합니다. 개혁교회가 아니라 기독교가 되어야합니다. 언약의 종교가 되어야합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되게 만든 예수그리스도를 섬기는 그런 참 예수그리스도교가 되어야합니다.
난 이스라엘을 구원하자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자고 주장하는것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본래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안에 이방인이 참예하는것으로서 이 언약안에 있어야 영원한 기업을 얻게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내 손에 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과 그 뜻 그리고 하나님의 개입에 달려있는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눈물을 닦고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이지 이방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할일이지 우리가 할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중심과 그 뜻을 깨닫고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나되게 만든 그 언약을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축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 전부인것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이해하지못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전 정말 답답할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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