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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7영리/교 회 론

[펌] 가진자의 오만함과 부끄러움

 


“너는 절대 아이들 때려서 안 된다. 혹시 맞더라도 때리지 말아라”


아이에게 늘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왜 그래야 하느냐고 말합니다. 맞으면 나도 때려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항변합니다. 그럴 때마다 보복은 가장 무서운 죄라고 말합니다. 물론 아이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일단은 수긍을 합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이가 매우 심하게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이유를 물으니까 자신을 미워하는 아이가 있는데 때려주고 싶은데 죄라는 말이 생각나서 너무 힘들다는 것입니다. 한 대 때리고 욕하고 그러면 속이 시원할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신하여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자식을 위한 행동을 보면 조폭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정말로 가진 자의 오만함을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폭행당한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비와 자식이 동일하게 거짓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는 말이 아주 실감나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거짓은 반드시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을 옹호한 모든 사람들은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자신의 아들의 문제에 폭력을 대처하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온갖 고생을 하였기에 자식 사랑이 유별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모든 부모들이 자신 만큼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실소를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거짓과 불의를 옹호하는 자들은 더욱 큰 죄를 범하는 자입니다.


이번 이야기를 보면서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은 가진 자로서의 온갖 오만함입니다. 우선 폭력의 현장에서 보복을 하고 돈으로 입막음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사가 진행되자 변호사를 선임합니다. 자신의 죄를 돈으로 막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식의 친구를 은닉하였습니다. 예일 대에 다니고 서울 대에 다닌 다는 젊은 친구는 자신의 휴대폰 전화번호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지진아도 아닐 텐 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모두가 가진 자의 오만 불손함을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그 돈으로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회개의 자리에 서야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신앙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혹시 외형은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행한 일에 대하여 심판을 내리 실 것입니다. 혹 이 땅에서 돈의 위력으로 법을 피하여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모면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여야합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가진 자의 오만함이 가져온 무서운 결과를 보아야 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임을 철저하게 인식하여야 합니다. 가진 자로서 겸손하게 살지 않으면 그 대가는 참으로 무섭습니다. 성경은 마직 막 때가 이르면 하나님보다 돈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돈을 더욱 의지한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돈을 우상으로 삼고 살다가 영원한 심판에 이르게 될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3: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3: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1-5]


그러므로 이번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부끄러운 일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우리 역시 바로 서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이와 같은 오만함을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 주님의 행하심을 살피면서 오만 한 자의 자리에서 멀어져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겸손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가진 자의 오만함이 아니라 가진 자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보다 어렵다고 한 것은 분명 진리입니다. 잠언 기자도 동일하게 고백합니다.


“30:8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30: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30:8-9]


부자가 되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자신을 살피고 교만의 자리에 서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반드시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를 돌아보고 우리도 이와 같은 자리에 있지 않은지 살피고 온유와 겸손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부자가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 줄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