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설교 2장 개관 및 분석
학적 권위자들은 마태복음 5,6,7장에 기록된 산상설교가 누가복음 6장에 기록된 설교와 동일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이 세 개의 장에 기록된 설교에 여러 가지 분류법과 세분법이 제시되기도 하며 많은 논증과 논란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복들을 마주 대해야 한다는 데 있다. 성경은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어느 다른 책들에 접근하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본 설교는 전체로서 살피는 것이 중요한데 본 설교의 어느 부분도 본 설교 전체에 비추어 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본 설교를 올바로 다루고, 여기서 유익을 얻으려면 본 설교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본 설교의 순서는 이런 의미에서 실로 가장 중요하다. 팔복은 끝 부분에 있지 않고 처음에 위치해 있다. 만일 우리가 팔복에 대해 완전히 분명히 알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더 이상 진전할 수 없다. 본 설교에는 일종의 논리적 연결, 영적인 순서와 연결이 있다. 어떤 기초 원리가 설정되고 그것을 기초로 다른 기초 원리들이 뒤를 잇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 산상설교를 살며 실천하도록 노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다. 산상설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들이 된 사람들에게만 말씀 되어진 것이다.
산상설교의 분류법과 세분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분류법에 일반적인 것과 특수적인 것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ㅡ 일반 부분
5 : 3-10 기독교인의 본질적(일반적) 성격
5 : 11,12 위에 대한 세상의 반응에 의해 증명된 기독교인 긍정적, 부정적 성격
5 : 13-16 기독교인의 세상에 대한 관계(사회와 세상에서의 기독교인의 기능)
ㅡ 특수적인 부분
5 : 17-48 하나님의 율법과 율법의 요구에 직면하는 기독교인(기독교인의 의에 대한 대략적 서술).
6장 하나님 존전에서 그에게 능동적으로 순종하고 전적으로 의지하며 생활하는 기독교인.
7장 하나님의 판단에 비추에 항상 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사는 자로서의 기독교인.
기독교인은 특유의 자질들이 있고 이 자질들에는 매우 중요한 세 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로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살며 그 법을 지키는 데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다. 이런 이유로 기독교인은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명심해야 한다. 둘째로 기독교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존전에 있음을 항상 인식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관점에서 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복, 먹을 것 등 세상의 것에 관심을 갖고 염려해서는 안 된다. 세 번째 원리는 기독교인은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행하는 사람이다.
비겁한 두려움 때문에서가 아니라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은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께 접근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모든 삶을 이처럼 사는 것이다. 성경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았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는 가르침을 받아 들였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이 교훈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에 앞에 드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를 부인하는 생활을 하며 행해야 한다.
산상설교를 지배하는 몇 가지 지배 원리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원리는 산상설교는 어떤 윤리나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어떤 성격의 서술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계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규범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주어진 환경과 조건 안에 있으므로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심령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내가 이와 같은 사람이니,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나는 그렇게 할 태세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영을 강조하고 있을 때에도 동시에 그는 문자에도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문자에만 관심을 가질 뿐만이 아다. 문자를 영에서 분리시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산상설교의 세부 부분에 어떤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여러분에게 잘못이 있든가 아니면 산상설교에 대한 여러분의 해석이 잘못되었거나 둘 중 하나이다. 산상설교는 매우 두려운 교훈이므로 읽거나 언급 할 때 조심해야 한다.
끝으로 만일 여러분에게 본 설교의 어느 명령이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면 여러분의 해석과 이해가 잘못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주님은 이 교훈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실 작정이었다. 주님 자신이 산상설교대로 사셨다. 이것은 주님께서 자기 백성인 우리에게 가르치신 교훈으로 모름지기 기독교인이 생활화해야 할 교훈인 것이다. 이 교훈과 다투는 심령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이 명령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지 않도록 주의하라. 이 명령이 하나라도 불가능하게 보이지 않도록 해석에 주의하라. 여기에, 우리들이 살아야할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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