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공부/산상수훈강해집

죄의 사악성.

 

죄의 사악성.


이제 27절에서 30절의 대목에서 율법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 중 두 번째 실례를 살펴보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해석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간음을 금한 계명을 단순히 육체적 간음행위의 차원으로 격하시켰다. 그들은 행위 자체를 범하지 않은 이상 이 계명에 대해 완전히 무죄하다고 생각하였다. 다시 동일한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그들은 다시 율법의 문자를 취하여 이것을 어떤 특정문제로 격하시켜 이 계명을 파괴하였다. 그들은 율법의 정신을 온통 잊어버렸다.


이들에게 진짜 문제가 된 것은 그들이 십계명을 올바로 읽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십계명을 참되게 고찰하고 연구했다면 각 계명을 분리시켜 취할 수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들은 결국 자신이 간음을 범하지 않는 한 이 율법을 지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죄성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


율법의 전 목적은 죄의 사악성을 보여주는 데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죄론을 온통 싫어하여 이것을 심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며, 이상주의의 영향으로 성경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가르침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죄론에 관해 분명하게 알고 있지 못하면 우리는 신약성서의 구원의 길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십자가 위의 죽음을 이해하는 것 또한 죄의 문제만이 설명해 줄 수 있다. 신약성경의 구원론을 이해하는 오직 한 길은 죄론에서 출발하는 길인 것이다. 죄를 무엇이라 말하던 간에, 죄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만 처리 될 수 있었던 그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이 절대 필요하지 아니하였다면 자기의 독생자에게 그런 죽음을 즐겨 허용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죄 때문에 불가피했던 것이다.


신약성경의 중생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신약성경의 죄론을 깨닫지 못한다면 중생은 의미가 없다. 깨닫고 있다면 사람이 거듭나지 못하고 새 성품과 새 마음을 받지 못할 때 구원받을 수 없음을 명백히 볼 것이다. 그러나 죄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견지하고 죄의 깊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중생은 의미가 없다.


이 교리는 바른 전도개념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죄론이 없는 곳에는 참된 전도도 없다. 그저 예수께로 올 것을 말하며 예수를 친구로 제시하며 경이로운 새 생활을 제의하긴 해도 죄를 깨우쳐주지 않는 전도는 신약성경의 전도가 아니다. 참된 전도는 이 죄론 때문에, 항상 율법을 설교하는 것에서 출발해야한다. 하나님의 성결과, 사람의 죄의 사악성과, 율법의 요구와, 율법이 할당한 처벌사항과, 악과, 악행의 영원한 결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에 근거하지 않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그것은 참 신앙이 아니다. 참된 전도는 이와 같이 시작하며 참된 전도는 애초부터 회개의 요청인 것이다. 즉,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죄론은 참된 성결개념과도 매우 중요한 관계를 가진다. 우리가 해온 전도가 피상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성결개념 역시 피상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성경에서 행위의 문제만이 아닌, 마음의 문제로써의 성결을 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행위 일 뿐 아니라 의욕이다. 우리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탐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의 마음을 탐사해 보고 악이 있는지 찾아보자. 이것이 신약성경의 성결이다. 신약성경의 성결제시 방법은 죄론을 설교하며 그의 사람됨을 그에게 제시해 줌으로써 그가 자기를 미워하며, 심령이 가난해지며, 애통하며,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그리스도에게로 도피하며, 그 안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성결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체험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이고 따라야 할 그리스도이다.


신약성경의 죄론을 파악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방법뿐이다. 하나님에 관한 것을 믿기만 해서는 안 되며 그를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어째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원인은 우리가 죄의 성격과 죄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다면 죄론을 파악해야한다.


이제 우리 주님이 죄론에 관해서 하신 말씀을 살펴보아야 하겠다. 죄가 무엇인지 알기까지 죄로부터 구원을 운운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로, 죄의 깊이 또는 죄의 세력을 강조해 말씀하셨다. 주님은 󰡐�너희가 간음 행위를 하지 않는 한 모두 옳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라고 하셨다. 죄는 행위의 문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끄는 마음속의 문제인 것이다. 즉,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죄로써의 죄가 아니다. 죄는 죄라 불리 우는 병의 징조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중요한 것은 징조가 아니라 질병이다. 징조는 매우 다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양태가 아니라 죽음의 사실인 것이다. 주께서 여기에서 우리로 명심케 하시는 진리도 이것이다. 우리가 간음 행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해서 죄책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가? 거기에 질병은 없는가? 중요한 것은 타락의 결과로써 인간성 속에 있는 무섭고 더러운 세력이라는 사실이다. 죄는 우리들 속에 있다. 우리는 이 죄를 직면해야 한다. 죄의 깊이와 세력에 직면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죄는 교활하다. 죄는 우리가 그 죄의 행위를 범하지 않는 한 우리로 아주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우리를 현혹하고 속이는 무서운 실재가 된다. 유혹을 받았으나 감사하게도 넘어지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일을 하지 않은 사실로만 만족 한다면 잘못 된 것이다. 우리는 󰡐�어째서 그 짓을 하고 싶어 하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해야 한다. 실제 간음을 범한 일이 없다고 해도 마음으로, 정신으로, 상상으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마음속에 있다. 기타 모든 것은 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죄로 이끄는 그것이다.


둘째로, 죄의 사곡성과 그 결과를 말씀하신다. 죄는 사곡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고 말씀하신다. 죄는 하나님께서 나의 유익에 도움이 되도록 주신 도구들을 변화시켜 그것을 원수로 만들어 버린다. 죄는 사람을 사곡시켜, 선 그 자체를 악으로 만들어 버렸다. 죄는 거룩하고 바르고 선한 하나님의 율법을, 사람을 죄에 빠뜨리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율법이 나에게 하지 말라고 말하는 바로 그 사실 자체가 나로 하여금 이것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율법은 이것을 상상하게 만들고 마침내는 그것을 행하게 함으로 끝을 내는 것이다. 율법은 옳고 선하고 순결하다. 문제는 우리들 속에, 우리의 사곡한 성품 속에 있다.


셋째로, 죄의 파괴적인 실재이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면 빼어 내버리라.󰡑� 왜냐하면, 백체중 하나가 없어져도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하기 때문이다. 죄는 삶과 세상에 죽음을 가져왔다. 죄는 항상 죽음으로 인도하며 궁극적으로는 지옥으로 인도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토록 순결한 분이시기 때문에 끔찍스러운 죄와 절대 양립될 수 없다. 죄는 하나님께 절대 가증한 것이다.


이상으로 죄성에 대한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설명하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과 욕망과 상상을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악하고 더러워 깨끗해져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길 기도해야한다. 흠 없고 순결하고 거룩하신 분이 나의 죄와 죄책을 받으심을 감사하며 그 분의 성품을 나에게 주시길 기도하자.

'성경공부 > 산상수훈강해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복과 십리(十里)  (0) 2007.06.27
죄를 억제함에 대하여  (0) 2007.06.27
살인하지 말지니라.  (0) 2007.06.27
의문과 영  (0) 2007.06.2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하는 의(마5:20)  (0) 2007.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