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II와 칼 라너.
[이 글은 정정가감될 소지가 있음을 먼저 밝혀둔다. 글을 쓴 동기는 네티즌 '들풀'님이 제공한 한 가지 물음이었다. 들풀님이 직접 올리신 본래의 전거는 댓글 블로그 맨 하단에 부분적으로 중략/인용했다.]
지구촌에 종교다원주의가 판을 친 지는 오래다. 21세기 들어 더욱 맥과 획이 굵어만 간다. 기실 다원주의는 서구적 의미에서 에큐메니즘과 맥을 같이 한다.
로마 카톨릭이 동방 정교회와 결별한 이래 16세기 서구가 신/구교 양대권으로 갈리고, 동/서구와 서아시아는 유대교/회교를 포함한 4대 종교 중심 판도였으나 20세기로 진입해가면서 교통을 비롯한 모든 문화의 발달로 지구촌 사회의 간격이 좁아지면서 극동을 포함한 동양의 철학/종교의 드센 맞바람을 서구도 쐬게 된다. 유교/도교/불교/힌두교 등 엄청난 세계관적 차이가 있는 종교권을 맞아 이들과의 대화/교류, 더욱이 상호 유사성을 찾기까지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본격 다원적 에큐메니칼 시대를 로마 카톨릭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이하 '바티칸2') 때부터로 본다. 신교, 정교회를 비롯한 많은 종교 공동체들이 옵저버로 참석해서다. 제 종교간 근접 움직임이 이때 비로소 시작된 것은 물론 아니다. 이전부터 있어온 추상적 근접 내지 꾸준한 물밑 작업이 구체화된 것이다.
다원주의와 포용주의
카톨릭은 기본적으로 다원종교적(plural) 또는 그들 말로 '포용주의'적(inclusive)이다. 여기에다 종교 간 근접을 금기시하는 전통주의까지 크게 세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구교측은 물론 '다원종교적'이란 형용사를 퍽 싫어한다. 바티칸이 종종 자신들만이 유일한 참 교회, 참 종교인 양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제도적 교회를 '참 교회'로 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교회는 성경적 교회관에 대한 기본 이해가 없으며 있다고 해도 적당히 무시하는 쪽이다. 그런 흔적들이 많다.
그런데 포용주의가 결국 뭐겠는가? 뚜껑을 열고보면 모든 종교인들/무신론자들도 다 카톨릭으로 들어오란 것이다. 현 시류나 온갖 징후로 볼 때 향후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벌써들 일치운동입네, ECT 운동입네 하고들 있으니 그렇다는 것이다. 회교도 근래 중동 회교도들을 위한 일각의 '마리아 발현설'로 뿅~ 간 상태이니 그들이 조만간 카톨릭으로 포용될 수도 있음직하다. 안 그래도 요한 파울로 2세가 쿠란에다 뽀뽀를 쭉~ 해서 그들의 입이 딱~ 벌어지지 않았던가!
보편속죄와 '만인구원': '모든'과 '많은'의 혼동
카톨릭의 더 큰 문제는 성경의 보편속죄 교리와 보편구원/(=만인구원)에 대한 거대한 혼동. 그들은 예수 크리스토가 만민을 위해 죽으셨음을 곧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세상 사람들을 모두 구원하시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것도 카톨릭 전통주의와 현대주의 간에 견해차가 있다.
여기서 일단..
보편속죄는 신교 일각의 문제 이슈이기도 하다. 예컨대 칼뱅주의권이 천명해온 이니셜 모듬 '튤립'(TULIP)으로 대표되는 5대 교리중 핵심적이고 대표적인 교리가 바로 한가운데 'L'자, 즉 제한속죄(Limited Atonement)다. 문자로만 보면, 예수 크리스토는 제한된 사람들의 죄만 구속 했다/한다는 뜻이 된다. [칼뱅주의 학자에 따라서는 문자 그대로가 아닌 딴 풀이 내지 긴 해설을 붙이기도 한다.]
그런데..(현재 필자도 속해있는) 칼뱅주의권(圈) 사람들은 반발할지 모르나 필자의 집중 연구에 따르면, 제한속죄는 성경과는 상반되는 학설이다. 바꿔 말하면 개혁가 칼뱅의 말이라고 다 옳진 않다는 뜻이다.
[칼뱅의 말도 틀린 것이 많으니, 칼뱅주의자들은 성경 외에 그 어떤 것도 절대화 하지 말 일이다. 성경이 칼뱅의 말보다 더 옳으면 성경을 따라야 한다. 만일 칼뱅의 말은 모두 성경과 다름 없다거나 칼뱅의 말이 성경보다 더 옳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이단이 아니고 무엇이랴. 물론 신학자들이 반발할 테지만 나는 스승들에게서 배운 신학보다 진짜 스승이신 성령께 배운 성경말씀을 더 중시한다!]
자..다음 성구를 보자. [특기하지 않는 이상은 한글개역]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2:9)
주님은 분명히 미리 점 찍어 놓으신 일부인들을 위해서만 죽음을 맛보지 않으셨다.
다음 구절은 또 어떤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딤전2:4~6a).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길 원하시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그냥 거저 아무렇게나 막, 구원을 베푸시진 않는다. 반드시 홀로 한 분이신 중보자 크리스토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구원이 국한된다. 이 점을 중도적/진보적 카톨릭이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예수회 사제 헨리 나웬은 자기가 만나는 장애인들에게서 조건 없는 사랑과 함께 조건 없는 구원까지 베풀어지길 희구(?)했고 테레사 수녀는 모든 힌두인들 속에도 크리스토가 있는 것처럼 해석했다. 물론 성경과 전혀 배치된다! [그래도 나웬과 테레사를 극찬하는 신교 사람들, 특히 거의 주일마다 전국 여기저기서 그들의 어록을 설교 예화로 들춰 써먹는 사람들..큰 문제다!]
각설하고..위 구절은 분명히 그 분이 모든 이(!)들을 위해 자신을 속전(놓아주기 위한 몸값)으로 주셨다고 명시해준다. 여기 우리가 무슨 조건을 달고 자시고 할 수 없는 법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이를 위해 속전을 주셨다는데 무슨 잔소리가 더 필요한가! 물론 그 속전이 개인에게 적용되려면 반드시 그분을 유일한 구주, 주님으로 믿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제 코린토베타(고후) 5장으로 가 보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컨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5:14~15a)
위 구절을 보라. 형용사 '모든'이 3회나 된다. 그뿐인가..그 몇 절 뒤인 18절을 보면, 이렇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코b 5:18)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1~13)
오해는 말자. 이런데도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시진 않는다. 그럼 위 말씀들과 모순되신단 말인가? 전혀! 하나님의 심정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지만 예수 크리스토를 거부하는 이들은 하나님도 어쩌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다음 구절을 유심히 보라.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8. 참고: 5:12)
위에 '모든 사람'이란 말이 두 번 들어있다. 그러니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인류의 운명은 예수 없이는 모두(100%!) 가망이 없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윗 구절을 다음과 비교해보자.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18,19)
바로 윗 구절엔 '모든'이란 형용사 대신 '많은'이 쓰였다. 그러므로 위/아래 성구를 대조할 때 분명 구원은 궁극적으로 천하만민 모두의 것은 아닌 셈이다.
자..그럼 하나님은 만인이 구원받길 원하신다면서 도대체 누구를 어디까지 구원하실 셈인가?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다! 다음 구절이 말해준다. 이 말씀은 곧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면 이제 더는 구원하지 않으신다는 암시다.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로마서11:25하).
그러므로 구원 받을 기회는 충만한 수가 차기 전인 바로 지금, 이때다(고후6:2)! 지금 당장 그분 앞에 무릎 꿇고 예수님의 이름을 붙들고 그분께 믿음을 고백해야 한다. 그분을 주님으로 모셔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거듭나고 구원 받고 성령을 모시게 된다.
만인구원은 하나님의 희망사항..귀결점이 아니다
-보편속죄와 소위 '만인구원'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며 만인을 구원하시고 싶다. 그러나..궁극적으로는 인류 다수가 멸망할 것을 알고 계신다. 아시면서 왜 다 구원하지 못하시는가? 하나님이 제시하신 유일한 구원의 방법, 예수 크리스토를 거부할 무리가 많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 구원받고는 싶으면서 하나님의 구원 방편은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에겐 자동적으로 멸망의 길이 약속돼 있다: 불못, 그것이다.
카톨릭은 만인을 구원하시고 싶은 하나님의 보편구원적(!) 지향성과 그리고 보편속죄 개념을 상당량 이해하곤 있다. 그러나 구교 사람들은 한 가지만 알지 두 가지를 모른다. 보편속죄와 만인구원은 전혀 다른 두 개념임을 말이다. 보편속죄일 뿐 '보편구원'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이런 까닭은 구교인들이 신교인들만큼 성경을 중시하지 않으며 성경해석도 궁극적으로 바티칸에 맡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엔 그런 위탁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 그래서 카톨릭교는 독자의 영혼구원을 위해 의존하기엔 더더욱 위험한 종교다. 그들은 말씀의 반석 위에 든든히 서있지 못한 탓이다. 기억하라: 반석 아니면 모래땅일 뿐이다.
만약 카톨릭교가 생각하듯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끔 된다면 다음은 뭐란 말인가?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3:1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마귀)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3)
위의 상황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자동적으로 일단 다 해결된 게 아니다. 오직 그분을 유일한 구주로 믿는 이들에게만 구원의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나, 예수님 믿어! 뿐만 아니라 공자님도 믿고 석가님도 믿고 무함마드님도 믿고..다 믿어, 다! 한 분만 믿느니 만약을 위해 다 믿어두는 게 더 좋잖아. 더 안전하고.." 가 아니다. 미안하지만 그래선 구원을 못 받는다. 심판을 받을 뿐이다. 하나님이 제정해 놓으신 유일한 구원의 방편인 예수-그분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겐 구원이 보장되지 않는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청으로 넘치지만, 그 못지않게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 불순종하는 무리에 대한 멸망과 심판의 경고도 넘친다. 한번 찾아보라. 그러므로 보편속죄일 뿐 '보편구원'/'만인구원'은 아닌 것이다.
"그(예수 크리스토)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10:43, 개정).
예수를 믿는 사람들, 그 이름을 힘입는 사람들만 속죄함을 얻는 법이다. "예수를 안 믿는데도 적당히 봐 주셔서 구원(또는 그 배스름한 것)을 받게 하신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위의 말씀들은 분명히 로마 카톨릭교를 믿어 구원받는다고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지, 로마 카톨릭교를 믿어 구원을 얻게 되는 게 아니다. 성경 밖에 다른 복음은 없다.
새삼스럽지만..다음 구절들은 구원의 방편으로서 예수 크리스토님의 절대유일성을 단언한다.
"예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이라네. 아무도 나를 통해서가 아니면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네."(요14:6. 사역)
"(그밖에) 다른 분으로는 구원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늘 아래 그 어떤 다른 이름으로도 우리가 구원 받지 못합니다."(행4:12. 사역)
그러니 어찌 예수의 복음 밖에서 구원이란 게 있을 손가! 예수 밖의 '익명 신자'라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여기서 잠시 '삼천포'로 빠지지만..
크리스토의 참 복음은 구원론과 신론의 영역에 마리아를 포함시키지 않는다. 마리아는 구원자도 중재자(중보)도, 기도/찬미/대화나 '흠숭' 대상도 아니다. 성경엔 그런 구절이 전혀전혀전혀 없다! 마리아는 태어날 때 소위 '무흠수태'도 안했고 '영원한 처녀'가 아니었다. 우리처럼 평범한 인간이며 예수님 탄생 후 요�과의 정상적인 부부관계로 (원죄 있는 형제들을) 낳았다. '몽소승천'도 하지 않았다.
마리아를 '하늘여왕'으로 받드는 대관식을 천국에서 거행한 적도 없다. 성경엔 그런 근거가 반쪽도 없다. 마리아는 믿음 좋고 순종적인 여인이었으나 그냥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신의 어머니가 아니다. 신모 아닌 산모, 즉 예수님을 낳고 키운 어머니였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바티칸2는 제3회기 중인 1964년 11월 21일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공식 선언했다. 선언자는 요한23세의 직승계자 파울로6세였다. 물론 옵저버로 참석한 신교도들 중 아무도 항변하지 않았다.
중보자는 오로지 예수님뿐이시다! 카톨릭교의 소위 어떤 '성인'들도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카톨릭이 지정하고 선정하고 시성/시복한 그 어떤 성인들도 (카톨릭신도들의 바람처럼)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지 않으며 어떤 중재적 행위도 할 수 없다. 죽은 자는 죽은 자일뿐 우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죽은 자와의 대화는 성경에서 엄격히 금한 네크러맨시(necromancy)일 뿐이다.
성경에 따른 성인/성자들은 카톨릭 교황의 지정/선정 대상자들이 아니라 바로 거듭난 모든 신자들이다! 성도가 누군가? 바로 거듭난 모든 신자들이 성도요 성인들, 성자들이다. 카톨릭은 이 점에서도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든 것이다.
마리아의 발현/현현? 허허, 웃기지 마라! 성경엔 그런 일언반구도 없다. 죽은 자들은 모두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갈 뿐이다. 마리아는 천국에 있지 결코 지상에 나들이를 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주님 공중재림하시어 교회가 휴거받을 때 다른 모든 잠자던 성도와 마찬가지로 땅에 누웠던 자신의 몸과 합일하여 신령체를 입게 될 뿐, 결코 나들이를 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녀에게만 그런 허락을 하셨다는 성경구절이 눈 씻고 봐도 없다!
그럼 그들이 떠드는 '발현' 현상은 뭔가? 고인을 흉내 내는 악령그룹인 친숙령들(familiar spirits)의 장난인 것이다(신18:11, 삼상28:3. KJV 참조). 이른 바 '피'가 흐르는 '액체 발현' 현상도 마찬가지다. 파티마서부터 윤모씨의 나주성모상까지 한결 같은 친숙령들의 짓이다. 조해너 마이클슨 여사의 책, '악의 아름다운 면모'를 보면 친숙령들은 심지어 예수님 흉내까지 그럴 듯하게 낼 수 있었기에 저자가 깜빡 속는 장면이 나온다.
마리아 석상에 키스하던 로마 교황 요한 파울로2세의 모습, 기억나는가? 하나님 앞에 가증스런 일이다. 우상에 키스를 해? 어이없고 어림없는 일이다. 온 천하의 다른 모든 석상들은 다 우상이고 바티칸궁과 박물관 속의 상들만은 우상이 아니다? 그런 말은 필자의 '내가복음'에도 없다. 교황이 키스한 마리아 석상만은 우상이 아니다? 교황이 누구며 뭔데..? 역대 교황들이 '사도'라는 구절이 성경 어디에 예언돼 있나? 설혹 사도라 한들, 마리아 우상에 키스한 사도는 거짓 사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참조: 행17:16, 29)
또한 신약은 더 이상 구약시대와 같은 유의 중재자인 사제를 허용치 않는다. 우리의 유일한 사제는 하늘 대사제 예수 크리스토뿐! 그런 의미에서 카톨릭/정교회/성공회의 '사제' 제도는 기실 비성서적이다. 오히려 사도 페트로의 말에 따르면, 성도 자신들이 왕 같은 사제들이다. 바로 로마 카톨릭교가 '초대 교황'으로 그렇게도 받드는 페트로의 말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사제' 제도도 그들이 뭐라든 변질된 복음이지 바른 복음이 아니다.
사도들이 전한 것 밖의 딴 복음을 전하면 저주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카톨릭/정교회/성공회 사람들에게 전혀 구원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말씀 대로 불탄 지푸라기 속에라도 공력이 남는다면 구원 받을 사람도 있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갈1:6~9)
봤는가, 위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조금이라도 변질된 복음을 전하면 저주의 대상이다! 카톨릭이 그처럼 떠받드는 천사라도 말이다. 하물며 변질된 복음을 전하는 인간이랴~! 마리아 숭상이건 흠숭이건 숭배건 찬미건 다 변질된 복음이다. 교황무류? 인간이 만들어낸 변질된 복음이다. 카톨릭 교리는 걸핏하면 공의회나 교황교체 때 "왔다리갔다리" 하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카톨릭교 안팎 사람들이 이런 구교와 (내 말이 아닌 성경에 따르면) 저주 대상인 변질된 복음에 관대한 점수를 준다. 특히 그리로 개종해 들어간 사람들이 그렇다. 개종은 자의에 의한 것이고 현재는 자유일지 모르나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이다. 자기책임이 따르는 자유란 것이다.
카톨릭의 자체 변질
카톨릭 공식교리엔 이런 부분이 있다. "(카톨릭) 교회 밖에는 구원도 죄의 보속도 없나니(Extra Ecclesiam nulla salus)." 이 문구는 교황 보니파체 8세가 1302년에 내린 교서 '우남 상크툼'(Unam Sanctum)에서 선언한 말이다. 그에 앞서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에서 인노센트 3세가 한 다음 말을 약간 깎고 줄인 것이다. "더욱이, 하나 뿐인 신도들의 보편적(카톨릭) 교회 밖에서는 아무도 결코 구원받지 못하느니."
보니파체 8세는 또 한술 더 떠 "우리가 선언(말하고 정의하고 단언)하건대, 각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는 로마 교황에게 복종함이 절대 필요하다."(Declaratio quod subesse Romano Pontifici est omni humanae creaturae de necessitate salutis)고 천명했다.
그런데 신교대표들이 참석한 바티칸2에선 마치 신교 등 타 기독교공동체를 위해 절대선언들을 포기하는 듯한(?) 근사한 입발림 소리들을 했다. [여기 다 옮기진 않는다.] 과연 구교가 위와 같은 절대적 선언들을 정말 포기했을까. 누가 알겠는가, 그 속을..!
아니 바티칸2후 수십년이 지나 금방 또 딴소리를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둔다.
"현 지상의 한 순례자-(카톨릭)교회는 구원에 필수적이다.." 요한 파울로 2세가 2000년 교서 '도미누스 이에수스'에서 한 '딴소리'다. 길게 다 인용하진 않지만 전반적인 속내로서는 결국 카톨릭교 없이 구원이 없다는 얘기였다.
이렇게 말을 슬쩍슬쩍 바꿔가며 하는 변질 내지 '엎었다 뒤짚기'를 우리는 어찌 해석해야 할까. 궁극적으로, 그러니 구원받고 싶으면 모두 카톨릭으로 들어와라-그런 얘기다! 어찌 보면 일종의 동화정책(assimilationism) 내지 흡수주의다. 그런데 신교 사람들 일부가 여기 잘도 속아준다. 눈 뜨고 속아준다.
우주적 교회와 제도교회 사이의 혼동
신교 일각에서도 그러지만, 카톨릭은 유난히 제도교회와 성경의 참 교회인 우주적 교회를 혼동한다. 우주적 교회의 개념을 몰라서 그럴 리는 거의 없고 고의적으로 그럴 것이다. 크리스토를 머리로 하는 그분의 몸된 교회는 가시적인 지상교회/유형교회가 아니다. 온 세계의 거듭난 신자들의 공동체다.
따라서 크리스토의 몸이 카톨릭교회일 리가 없고 교황이 크리스토의 '대리자'일 리는 더구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진리의 진실을 카톨릭교는 적당히 짓밟고 무시한다.
하나 묻자. 크리스토가 머리이신 참 교회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삼으며 그녀의 우상을 여기저기 전시하고 섬기게 하겠는가? 천만에다! 아울러..마리아를 열렬히 추앙하던 고 요한 파울로 2세가 참 교회의 제2수장, 크리스토의 '대리자'이겠는가? 글쎄다. 크리스토의 '대리자'라면 지옥엘 가겠는가? 교황의 생시 행태로 보면 그가 천국 갔을 확률이 너무나도 낮아서(?)다. '파티마의 비밀'들을 믿고, 쿠란에 뽀뽀를 다 하고..
복음 아닌 복음: '익명 기독교'
이른 바 '익명 기독교'(anonymous Christianity)는 바티칸2에서 강조됐던 그들만의 포용주의 표어다. 카톨릭이 대표적 신학자의 한 명으로 내세우던 칼 라너(Karl Rahner) 박사의 뇌리에서 나온 개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익명'이란 뜻의 anonymous는 불명의/정체미상의/가명의/개성없는 등의 뜻도 있다. 귀착적 의미로 앞 보다 뒤 어의들이 더 적절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독일 예수회 신부 출신으로 토마스 아퀴나스, 하이데꺼, 인류학, 중세신비주의 등을 섭렵한 초월신학자/신비주의자 라너는 바티칸2에서 전문위원(periti) 즉 공식 신학자중 한 명으로 활약했고 이 공의회에서 그의 '익명 기독교' 아이디어는 그가 표방한 다양한 신학사상들중 가장 대표적 개념으로 자리매김했다.
'익명 크리스천'(anonymous Christian, 이하 '익명신자')은 쉽게 말하면 타종교권 사람이나 무신론자도 숨겨진 (카톨릭)신자일 수 있고 따라서 구원받을 퍼텐셜이 있다는 식의 발상.
그러나 알고보면 말장난에 가깝다. '크리스천', '신자'는 모름지기 예수 크리스토를 믿고 거듭난 사람을 가리키는 명칭인데, 어떻게 말꼬리에다 적당히 눈 가리고 아옹 식으로 붙일 수 있는 이름이란 말인가. 구태여 꼭 구교측이 원하는 그런 뉘앙스로 쓰련다면, '카톨릭 후보'나 '후보 교인', '미래 신자', '잠정 교인', '포교 대상'이라곤 할 수 있을 것이다. '익명신자'는 아닌 것이다. 더욱이 라너가 말한 '기독교'란, 제도교회의 하나인 카톨릭 중심의 관점에서 본 기독교이지 성경 중심의 관점에서 본 기독교일 수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라너는 카톨릭의 다원종교 뉘앙스를 피하기 위한 발상으로 소위 크리스토 중심적 포용주의(Christocentric Inclusivism)에 해당하는 이 개념을 배태시켰다.
흔히 일각에선 성경의 백부장 코르넬리우스를 '익명신자'의 일례로 든다. 코르넬리우스는 이방인인 로마 무관이었으나 온 집안이 야웨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자로 유다 빈민들을 상대로 활발한 온정사역을 펴고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유다 민족이 다들 경탄하던 사람이었다. 그 누구보다 '익명신자'감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 알아두자. 코르넬리우스와 그 가족이 이미 익명 '신자'라면 그에게 페트로의 복음이 왜 필요했겠는가? 왜 천사가 양쪽이 서로 만나도록 중개했겠는가? 만일 이때 백부장이 페트로를 안 만났다면 코르넬리우스가 신자가 되겠는가? 하나님이 미리 점 찍어두신 택한 자(행10:35), 또는 아직 잃은 양일지언정 정식교인은 아닌 것이다.
반증할 성구가 있다. 이방인 코르넬리우스 가문 방문 건에 관해 페트로가 일부 유대교우들에게 뒤늦게 추궁 당했을 때 설명한 내용 중 "그(시몬)가 너(코르넬리우스)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행11:14)고 미래형으로 되어있다. 즉 아직까지는 신자도, 구원받은 자도 아닌 것이다.
그나마 코르넬리우스는 야웨 하나님께 매우 근접한 사람이었으나 카톨릭측이 포용하기 원하는 비교회권 사람들, 이교도들, 무신론자들이 '익명신자'?..말도 안되는 것이다.
'익명신자', '포용주의'라는 어휘들은 왠지 온 세상사람들을 모조리 카톨릭 교권 아래 모아들이려는 일종의 포섭 프로퍼갠더 내지 전략 같기도 하여 왠지 좀 낯 간지러운 건 필자만의 느낌일까? 아닌 게 아니라 바티칸2의 첫 개회 때인 1962년 10월11일, 요한 23세는 자체 구교인들을 포함한 86개 정부와 국제인사들 앞에서 미사를 이끈 뒤 '모교회는 기뻐한다'(Gaudet Mater Ecclesia)란 제하의 연설문을 읽었다. '모교회'라..뭘 의미하는가. 모든 이들의 어머니 교회란 암시가 아닐까.
그리고 카톨릭측으로서는 '익명신자'들 중 신교사람들도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에겐 우리가 기껏 [그쪽에 아부하는] 최고라봐야 '익명신자'들이지 결코 그들과 동급 '신자'들이 아니란 얘기다. 그러면서 동시에 신교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힌두교/불교/회교 또는 무신론자들과 거의 동등한(?) 위치에 서는 셈이다.
물론 우리 대다수는 '익명신자' 아닌 정식 카톨릭도 되길 원치 않겠지만. 그래도 좋다고 익명신자 축에라도 속하려는 복음주의권 인사들도 상당수 된다. 그러나 그들중 아직 성당에서 성체성사를 받았다는 얘길 못 들어봤다. 비록, 침례교 신자 클린턴은 전직 대통령인 죄로 성체를 받은 적이 있다지만..물론 카톨릭법상 반칙이다.
[이 글은 정정가감될 소지가 있음을 먼저 밝혀둔다. 글을 쓴 동기는 네티즌 '들풀'님이 제공한 한 가지 물음이었다. 들풀님이 직접 올리신 본래의 전거는 댓글 블로그 맨 하단에 부분적으로 중략/인용했다.]
지구촌에 종교다원주의가 판을 친 지는 오래다. 21세기 들어 더욱 맥과 획이 굵어만 간다. 기실 다원주의는 서구적 의미에서 에큐메니즘과 맥을 같이 한다.
로마 카톨릭이 동방 정교회와 결별한 이래 16세기 서구가 신/구교 양대권으로 갈리고, 동/서구와 서아시아는 유대교/회교를 포함한 4대 종교 중심 판도였으나 20세기로 진입해가면서 교통을 비롯한 모든 문화의 발달로 지구촌 사회의 간격이 좁아지면서 극동을 포함한 동양의 철학/종교의 드센 맞바람을 서구도 쐬게 된다. 유교/도교/불교/힌두교 등 엄청난 세계관적 차이가 있는 종교권을 맞아 이들과의 대화/교류, 더욱이 상호 유사성을 찾기까지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본격 다원적 에큐메니칼 시대를 로마 카톨릭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이하 '바티칸2') 때부터로 본다. 신교, 정교회를 비롯한 많은 종교 공동체들이 옵저버로 참석해서다. 제 종교간 근접 움직임이 이때 비로소 시작된 것은 물론 아니다. 이전부터 있어온 추상적 근접 내지 꾸준한 물밑 작업이 구체화된 것이다.
다원주의와 포용주의
카톨릭은 기본적으로 다원종교적(plural) 또는 그들 말로 '포용주의'적(inclusive)이다. 여기에다 종교 간 근접을 금기시하는 전통주의까지 크게 세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구교측은 물론 '다원종교적'이란 형용사를 퍽 싫어한다. 바티칸이 종종 자신들만이 유일한 참 교회, 참 종교인 양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제도적 교회를 '참 교회'로 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교회는 성경적 교회관에 대한 기본 이해가 없으며 있다고 해도 적당히 무시하는 쪽이다. 그런 흔적들이 많다.
그런데 포용주의가 결국 뭐겠는가? 뚜껑을 열고보면 모든 종교인들/무신론자들도 다 카톨릭으로 들어오란 것이다. 현 시류나 온갖 징후로 볼 때 향후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벌써들 일치운동입네, ECT 운동입네 하고들 있으니 그렇다는 것이다. 회교도 근래 중동 회교도들을 위한 일각의 '마리아 발현설'로 뿅~ 간 상태이니 그들이 조만간 카톨릭으로 포용될 수도 있음직하다. 안 그래도 요한 파울로 2세가 쿠란에다 뽀뽀를 쭉~ 해서 그들의 입이 딱~ 벌어지지 않았던가!
보편속죄와 '만인구원': '모든'과 '많은'의 혼동
카톨릭의 더 큰 문제는 성경의 보편속죄 교리와 보편구원/(=만인구원)에 대한 거대한 혼동. 그들은 예수 크리스토가 만민을 위해 죽으셨음을 곧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세상 사람들을 모두 구원하시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것도 카톨릭 전통주의와 현대주의 간에 견해차가 있다.
여기서 일단..
보편속죄는 신교 일각의 문제 이슈이기도 하다. 예컨대 칼뱅주의권이 천명해온 이니셜 모듬 '튤립'(TULIP)으로 대표되는 5대 교리중 핵심적이고 대표적인 교리가 바로 한가운데 'L'자, 즉 제한속죄(Limited Atonement)다. 문자로만 보면, 예수 크리스토는 제한된 사람들의 죄만 구속 했다/한다는 뜻이 된다. [칼뱅주의 학자에 따라서는 문자 그대로가 아닌 딴 풀이 내지 긴 해설을 붙이기도 한다.]
그런데..(현재 필자도 속해있는) 칼뱅주의권(圈) 사람들은 반발할지 모르나 필자의 집중 연구에 따르면, 제한속죄는 성경과는 상반되는 학설이다. 바꿔 말하면 개혁가 칼뱅의 말이라고 다 옳진 않다는 뜻이다.
[칼뱅의 말도 틀린 것이 많으니, 칼뱅주의자들은 성경 외에 그 어떤 것도 절대화 하지 말 일이다. 성경이 칼뱅의 말보다 더 옳으면 성경을 따라야 한다. 만일 칼뱅의 말은 모두 성경과 다름 없다거나 칼뱅의 말이 성경보다 더 옳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이단이 아니고 무엇이랴. 물론 신학자들이 반발할 테지만 나는 스승들에게서 배운 신학보다 진짜 스승이신 성령께 배운 성경말씀을 더 중시한다!]
자..다음 성구를 보자. [특기하지 않는 이상은 한글개역]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2:9)
주님은 분명히 미리 점 찍어 놓으신 일부인들을 위해서만 죽음을 맛보지 않으셨다.
다음 구절은 또 어떤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딤전2:4~6a).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길 원하시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그냥 거저 아무렇게나 막, 구원을 베푸시진 않는다. 반드시 홀로 한 분이신 중보자 크리스토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구원이 국한된다. 이 점을 중도적/진보적 카톨릭이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예수회 사제 헨리 나웬은 자기가 만나는 장애인들에게서 조건 없는 사랑과 함께 조건 없는 구원까지 베풀어지길 희구(?)했고 테레사 수녀는 모든 힌두인들 속에도 크리스토가 있는 것처럼 해석했다. 물론 성경과 전혀 배치된다! [그래도 나웬과 테레사를 극찬하는 신교 사람들, 특히 거의 주일마다 전국 여기저기서 그들의 어록을 설교 예화로 들춰 써먹는 사람들..큰 문제다!]
각설하고..위 구절은 분명히 그 분이 모든 이(!)들을 위해 자신을 속전(놓아주기 위한 몸값)으로 주셨다고 명시해준다. 여기 우리가 무슨 조건을 달고 자시고 할 수 없는 법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이를 위해 속전을 주셨다는데 무슨 잔소리가 더 필요한가! 물론 그 속전이 개인에게 적용되려면 반드시 그분을 유일한 구주, 주님으로 믿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제 코린토베타(고후) 5장으로 가 보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컨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5:14~15a)
위 구절을 보라. 형용사 '모든'이 3회나 된다. 그뿐인가..그 몇 절 뒤인 18절을 보면, 이렇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코b 5:18)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1~13)
오해는 말자. 이런데도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시진 않는다. 그럼 위 말씀들과 모순되신단 말인가? 전혀! 하나님의 심정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지만 예수 크리스토를 거부하는 이들은 하나님도 어쩌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다음 구절을 유심히 보라.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8. 참고: 5:12)
위에 '모든 사람'이란 말이 두 번 들어있다. 그러니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인류의 운명은 예수 없이는 모두(100%!) 가망이 없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윗 구절을 다음과 비교해보자.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18,19)
바로 윗 구절엔 '모든'이란 형용사 대신 '많은'이 쓰였다. 그러므로 위/아래 성구를 대조할 때 분명 구원은 궁극적으로 천하만민 모두의 것은 아닌 셈이다.
자..그럼 하나님은 만인이 구원받길 원하신다면서 도대체 누구를 어디까지 구원하실 셈인가?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다! 다음 구절이 말해준다. 이 말씀은 곧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면 이제 더는 구원하지 않으신다는 암시다.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로마서11:25하).
그러므로 구원 받을 기회는 충만한 수가 차기 전인 바로 지금, 이때다(고후6:2)! 지금 당장 그분 앞에 무릎 꿇고 예수님의 이름을 붙들고 그분께 믿음을 고백해야 한다. 그분을 주님으로 모셔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거듭나고 구원 받고 성령을 모시게 된다.
만인구원은 하나님의 희망사항..귀결점이 아니다
-보편속죄와 소위 '만인구원'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며 만인을 구원하시고 싶다. 그러나..궁극적으로는 인류 다수가 멸망할 것을 알고 계신다. 아시면서 왜 다 구원하지 못하시는가? 하나님이 제시하신 유일한 구원의 방법, 예수 크리스토를 거부할 무리가 많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 구원받고는 싶으면서 하나님의 구원 방편은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에겐 자동적으로 멸망의 길이 약속돼 있다: 불못, 그것이다.
카톨릭은 만인을 구원하시고 싶은 하나님의 보편구원적(!) 지향성과 그리고 보편속죄 개념을 상당량 이해하곤 있다. 그러나 구교 사람들은 한 가지만 알지 두 가지를 모른다. 보편속죄와 만인구원은 전혀 다른 두 개념임을 말이다. 보편속죄일 뿐 '보편구원'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이런 까닭은 구교인들이 신교인들만큼 성경을 중시하지 않으며 성경해석도 궁극적으로 바티칸에 맡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엔 그런 위탁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 그래서 카톨릭교는 독자의 영혼구원을 위해 의존하기엔 더더욱 위험한 종교다. 그들은 말씀의 반석 위에 든든히 서있지 못한 탓이다. 기억하라: 반석 아니면 모래땅일 뿐이다.
만약 카톨릭교가 생각하듯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끔 된다면 다음은 뭐란 말인가?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3:1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마귀)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3)
위의 상황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자동적으로 일단 다 해결된 게 아니다. 오직 그분을 유일한 구주로 믿는 이들에게만 구원의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나, 예수님 믿어! 뿐만 아니라 공자님도 믿고 석가님도 믿고 무함마드님도 믿고..다 믿어, 다! 한 분만 믿느니 만약을 위해 다 믿어두는 게 더 좋잖아. 더 안전하고.." 가 아니다. 미안하지만 그래선 구원을 못 받는다. 심판을 받을 뿐이다. 하나님이 제정해 놓으신 유일한 구원의 방편인 예수-그분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겐 구원이 보장되지 않는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청으로 넘치지만, 그 못지않게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 불순종하는 무리에 대한 멸망과 심판의 경고도 넘친다. 한번 찾아보라. 그러므로 보편속죄일 뿐 '보편구원'/'만인구원'은 아닌 것이다.
"그(예수 크리스토)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10:43, 개정).
예수를 믿는 사람들, 그 이름을 힘입는 사람들만 속죄함을 얻는 법이다. "예수를 안 믿는데도 적당히 봐 주셔서 구원(또는 그 배스름한 것)을 받게 하신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위의 말씀들은 분명히 로마 카톨릭교를 믿어 구원받는다고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지, 로마 카톨릭교를 믿어 구원을 얻게 되는 게 아니다. 성경 밖에 다른 복음은 없다.
새삼스럽지만..다음 구절들은 구원의 방편으로서 예수 크리스토님의 절대유일성을 단언한다.
"예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이라네. 아무도 나를 통해서가 아니면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네."(요14:6. 사역)
"(그밖에) 다른 분으로는 구원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늘 아래 그 어떤 다른 이름으로도 우리가 구원 받지 못합니다."(행4:12. 사역)
그러니 어찌 예수의 복음 밖에서 구원이란 게 있을 손가! 예수 밖의 '익명 신자'라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여기서 잠시 '삼천포'로 빠지지만..
크리스토의 참 복음은 구원론과 신론의 영역에 마리아를 포함시키지 않는다. 마리아는 구원자도 중재자(중보)도, 기도/찬미/대화나 '흠숭' 대상도 아니다. 성경엔 그런 구절이 전혀전혀전혀 없다! 마리아는 태어날 때 소위 '무흠수태'도 안했고 '영원한 처녀'가 아니었다. 우리처럼 평범한 인간이며 예수님 탄생 후 요�과의 정상적인 부부관계로 (원죄 있는 형제들을) 낳았다. '몽소승천'도 하지 않았다.
마리아를 '하늘여왕'으로 받드는 대관식을 천국에서 거행한 적도 없다. 성경엔 그런 근거가 반쪽도 없다. 마리아는 믿음 좋고 순종적인 여인이었으나 그냥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신의 어머니가 아니다. 신모 아닌 산모, 즉 예수님을 낳고 키운 어머니였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바티칸2는 제3회기 중인 1964년 11월 21일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공식 선언했다. 선언자는 요한23세의 직승계자 파울로6세였다. 물론 옵저버로 참석한 신교도들 중 아무도 항변하지 않았다.
중보자는 오로지 예수님뿐이시다! 카톨릭교의 소위 어떤 '성인'들도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카톨릭이 지정하고 선정하고 시성/시복한 그 어떤 성인들도 (카톨릭신도들의 바람처럼)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지 않으며 어떤 중재적 행위도 할 수 없다. 죽은 자는 죽은 자일뿐 우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죽은 자와의 대화는 성경에서 엄격히 금한 네크러맨시(necromancy)일 뿐이다.
성경에 따른 성인/성자들은 카톨릭 교황의 지정/선정 대상자들이 아니라 바로 거듭난 모든 신자들이다! 성도가 누군가? 바로 거듭난 모든 신자들이 성도요 성인들, 성자들이다. 카톨릭은 이 점에서도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든 것이다.
마리아의 발현/현현? 허허, 웃기지 마라! 성경엔 그런 일언반구도 없다. 죽은 자들은 모두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갈 뿐이다. 마리아는 천국에 있지 결코 지상에 나들이를 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주님 공중재림하시어 교회가 휴거받을 때 다른 모든 잠자던 성도와 마찬가지로 땅에 누웠던 자신의 몸과 합일하여 신령체를 입게 될 뿐, 결코 나들이를 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녀에게만 그런 허락을 하셨다는 성경구절이 눈 씻고 봐도 없다!
그럼 그들이 떠드는 '발현' 현상은 뭔가? 고인을 흉내 내는 악령그룹인 친숙령들(familiar spirits)의 장난인 것이다(신18:11, 삼상28:3. KJV 참조). 이른 바 '피'가 흐르는 '액체 발현' 현상도 마찬가지다. 파티마서부터 윤모씨의 나주성모상까지 한결 같은 친숙령들의 짓이다. 조해너 마이클슨 여사의 책, '악의 아름다운 면모'를 보면 친숙령들은 심지어 예수님 흉내까지 그럴 듯하게 낼 수 있었기에 저자가 깜빡 속는 장면이 나온다.
마리아 석상에 키스하던 로마 교황 요한 파울로2세의 모습, 기억나는가? 하나님 앞에 가증스런 일이다. 우상에 키스를 해? 어이없고 어림없는 일이다. 온 천하의 다른 모든 석상들은 다 우상이고 바티칸궁과 박물관 속의 상들만은 우상이 아니다? 그런 말은 필자의 '내가복음'에도 없다. 교황이 키스한 마리아 석상만은 우상이 아니다? 교황이 누구며 뭔데..? 역대 교황들이 '사도'라는 구절이 성경 어디에 예언돼 있나? 설혹 사도라 한들, 마리아 우상에 키스한 사도는 거짓 사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참조: 행17:16, 29)
또한 신약은 더 이상 구약시대와 같은 유의 중재자인 사제를 허용치 않는다. 우리의 유일한 사제는 하늘 대사제 예수 크리스토뿐! 그런 의미에서 카톨릭/정교회/성공회의 '사제' 제도는 기실 비성서적이다. 오히려 사도 페트로의 말에 따르면, 성도 자신들이 왕 같은 사제들이다. 바로 로마 카톨릭교가 '초대 교황'으로 그렇게도 받드는 페트로의 말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사제' 제도도 그들이 뭐라든 변질된 복음이지 바른 복음이 아니다.
사도들이 전한 것 밖의 딴 복음을 전하면 저주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카톨릭/정교회/성공회 사람들에게 전혀 구원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말씀 대로 불탄 지푸라기 속에라도 공력이 남는다면 구원 받을 사람도 있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갈1:6~9)
봤는가, 위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조금이라도 변질된 복음을 전하면 저주의 대상이다! 카톨릭이 그처럼 떠받드는 천사라도 말이다. 하물며 변질된 복음을 전하는 인간이랴~! 마리아 숭상이건 흠숭이건 숭배건 찬미건 다 변질된 복음이다. 교황무류? 인간이 만들어낸 변질된 복음이다. 카톨릭 교리는 걸핏하면 공의회나 교황교체 때 "왔다리갔다리" 하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카톨릭교 안팎 사람들이 이런 구교와 (내 말이 아닌 성경에 따르면) 저주 대상인 변질된 복음에 관대한 점수를 준다. 특히 그리로 개종해 들어간 사람들이 그렇다. 개종은 자의에 의한 것이고 현재는 자유일지 모르나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이다. 자기책임이 따르는 자유란 것이다.
카톨릭의 자체 변질
카톨릭 공식교리엔 이런 부분이 있다. "(카톨릭) 교회 밖에는 구원도 죄의 보속도 없나니(Extra Ecclesiam nulla salus)." 이 문구는 교황 보니파체 8세가 1302년에 내린 교서 '우남 상크툼'(Unam Sanctum)에서 선언한 말이다. 그에 앞서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에서 인노센트 3세가 한 다음 말을 약간 깎고 줄인 것이다. "더욱이, 하나 뿐인 신도들의 보편적(카톨릭) 교회 밖에서는 아무도 결코 구원받지 못하느니."
보니파체 8세는 또 한술 더 떠 "우리가 선언(말하고 정의하고 단언)하건대, 각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는 로마 교황에게 복종함이 절대 필요하다."(Declaratio quod subesse Romano Pontifici est omni humanae creaturae de necessitate salutis)고 천명했다.
그런데 신교대표들이 참석한 바티칸2에선 마치 신교 등 타 기독교공동체를 위해 절대선언들을 포기하는 듯한(?) 근사한 입발림 소리들을 했다. [여기 다 옮기진 않는다.] 과연 구교가 위와 같은 절대적 선언들을 정말 포기했을까. 누가 알겠는가, 그 속을..!
아니 바티칸2후 수십년이 지나 금방 또 딴소리를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둔다.
"현 지상의 한 순례자-(카톨릭)교회는 구원에 필수적이다.." 요한 파울로 2세가 2000년 교서 '도미누스 이에수스'에서 한 '딴소리'다. 길게 다 인용하진 않지만 전반적인 속내로서는 결국 카톨릭교 없이 구원이 없다는 얘기였다.
이렇게 말을 슬쩍슬쩍 바꿔가며 하는 변질 내지 '엎었다 뒤짚기'를 우리는 어찌 해석해야 할까. 궁극적으로, 그러니 구원받고 싶으면 모두 카톨릭으로 들어와라-그런 얘기다! 어찌 보면 일종의 동화정책(assimilationism) 내지 흡수주의다. 그런데 신교 사람들 일부가 여기 잘도 속아준다. 눈 뜨고 속아준다.
우주적 교회와 제도교회 사이의 혼동
신교 일각에서도 그러지만, 카톨릭은 유난히 제도교회와 성경의 참 교회인 우주적 교회를 혼동한다. 우주적 교회의 개념을 몰라서 그럴 리는 거의 없고 고의적으로 그럴 것이다. 크리스토를 머리로 하는 그분의 몸된 교회는 가시적인 지상교회/유형교회가 아니다. 온 세계의 거듭난 신자들의 공동체다.
따라서 크리스토의 몸이 카톨릭교회일 리가 없고 교황이 크리스토의 '대리자'일 리는 더구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진리의 진실을 카톨릭교는 적당히 짓밟고 무시한다.
하나 묻자. 크리스토가 머리이신 참 교회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삼으며 그녀의 우상을 여기저기 전시하고 섬기게 하겠는가? 천만에다! 아울러..마리아를 열렬히 추앙하던 고 요한 파울로 2세가 참 교회의 제2수장, 크리스토의 '대리자'이겠는가? 글쎄다. 크리스토의 '대리자'라면 지옥엘 가겠는가? 교황의 생시 행태로 보면 그가 천국 갔을 확률이 너무나도 낮아서(?)다. '파티마의 비밀'들을 믿고, 쿠란에 뽀뽀를 다 하고..
복음 아닌 복음: '익명 기독교'
이른 바 '익명 기독교'(anonymous Christianity)는 바티칸2에서 강조됐던 그들만의 포용주의 표어다. 카톨릭이 대표적 신학자의 한 명으로 내세우던 칼 라너(Karl Rahner) 박사의 뇌리에서 나온 개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익명'이란 뜻의 anonymous는 불명의/정체미상의/가명의/개성없는 등의 뜻도 있다. 귀착적 의미로 앞 보다 뒤 어의들이 더 적절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독일 예수회 신부 출신으로 토마스 아퀴나스, 하이데꺼, 인류학, 중세신비주의 등을 섭렵한 초월신학자/신비주의자 라너는 바티칸2에서 전문위원(periti) 즉 공식 신학자중 한 명으로 활약했고 이 공의회에서 그의 '익명 기독교' 아이디어는 그가 표방한 다양한 신학사상들중 가장 대표적 개념으로 자리매김했다.
'익명 크리스천'(anonymous Christian, 이하 '익명신자')은 쉽게 말하면 타종교권 사람이나 무신론자도 숨겨진 (카톨릭)신자일 수 있고 따라서 구원받을 퍼텐셜이 있다는 식의 발상.
그러나 알고보면 말장난에 가깝다. '크리스천', '신자'는 모름지기 예수 크리스토를 믿고 거듭난 사람을 가리키는 명칭인데, 어떻게 말꼬리에다 적당히 눈 가리고 아옹 식으로 붙일 수 있는 이름이란 말인가. 구태여 꼭 구교측이 원하는 그런 뉘앙스로 쓰련다면, '카톨릭 후보'나 '후보 교인', '미래 신자', '잠정 교인', '포교 대상'이라곤 할 수 있을 것이다. '익명신자'는 아닌 것이다. 더욱이 라너가 말한 '기독교'란, 제도교회의 하나인 카톨릭 중심의 관점에서 본 기독교이지 성경 중심의 관점에서 본 기독교일 수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라너는 카톨릭의 다원종교 뉘앙스를 피하기 위한 발상으로 소위 크리스토 중심적 포용주의(Christocentric Inclusivism)에 해당하는 이 개념을 배태시켰다.
흔히 일각에선 성경의 백부장 코르넬리우스를 '익명신자'의 일례로 든다. 코르넬리우스는 이방인인 로마 무관이었으나 온 집안이 야웨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자로 유다 빈민들을 상대로 활발한 온정사역을 펴고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유다 민족이 다들 경탄하던 사람이었다. 그 누구보다 '익명신자'감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 알아두자. 코르넬리우스와 그 가족이 이미 익명 '신자'라면 그에게 페트로의 복음이 왜 필요했겠는가? 왜 천사가 양쪽이 서로 만나도록 중개했겠는가? 만일 이때 백부장이 페트로를 안 만났다면 코르넬리우스가 신자가 되겠는가? 하나님이 미리 점 찍어두신 택한 자(행10:35), 또는 아직 잃은 양일지언정 정식교인은 아닌 것이다.
반증할 성구가 있다. 이방인 코르넬리우스 가문 방문 건에 관해 페트로가 일부 유대교우들에게 뒤늦게 추궁 당했을 때 설명한 내용 중 "그(시몬)가 너(코르넬리우스)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행11:14)고 미래형으로 되어있다. 즉 아직까지는 신자도, 구원받은 자도 아닌 것이다.
그나마 코르넬리우스는 야웨 하나님께 매우 근접한 사람이었으나 카톨릭측이 포용하기 원하는 비교회권 사람들, 이교도들, 무신론자들이 '익명신자'?..말도 안되는 것이다.
'익명신자', '포용주의'라는 어휘들은 왠지 온 세상사람들을 모조리 카톨릭 교권 아래 모아들이려는 일종의 포섭 프로퍼갠더 내지 전략 같기도 하여 왠지 좀 낯 간지러운 건 필자만의 느낌일까? 아닌 게 아니라 바티칸2의 첫 개회 때인 1962년 10월11일, 요한 23세는 자체 구교인들을 포함한 86개 정부와 국제인사들 앞에서 미사를 이끈 뒤 '모교회는 기뻐한다'(Gaudet Mater Ecclesia)란 제하의 연설문을 읽었다. '모교회'라..뭘 의미하는가. 모든 이들의 어머니 교회란 암시가 아닐까.
그리고 카톨릭측으로서는 '익명신자'들 중 신교사람들도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에겐 우리가 기껏 [그쪽에 아부하는] 최고라봐야 '익명신자'들이지 결코 그들과 동급 '신자'들이 아니란 얘기다. 그러면서 동시에 신교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힌두교/불교/회교 또는 무신론자들과 거의 동등한(?) 위치에 서는 셈이다.
물론 우리 대다수는 '익명신자' 아닌 정식 카톨릭도 되길 원치 않겠지만. 그래도 좋다고 익명신자 축에라도 속하려는 복음주의권 인사들도 상당수 된다. 그러나 그들중 아직 성당에서 성체성사를 받았다는 얘길 못 들어봤다. 비록, 침례교 신자 클린턴은 전직 대통령인 죄로 성체를 받은 적이 있다지만..물론 카톨릭법상 반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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