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열심주의와 행위구원은 서로 통한다. |
|
신앙글 | 2007/06/16 (토) 08:12 |
| ||||
최근에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 등의 사후세계를 보았다는 신비주의 사람들이 지은 책들이 유포되고 있는데, 이 책은 크리스챤이라는 개념자체부터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제목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지옥에 간다고 하며, 종교적 열심을 해야 구원받는다는 비성경적 주장들을 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사탄에게 미혹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지적했듯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더불어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는 얘기를 한 유대인들의 생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구원을 위해 할례를 받자는 것은 사람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을지 모릅니다. 또 내가 구원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뿌듯함의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마치 그것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바울의 메세지는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갈 5:11) 구원을 위해 무언가 하나님께 하질 않으면 허전하다는 생각은 바로 인본주의적 사상입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 1장에서 저주받을 다른 복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순수한 복음에 대한 물타기입니다. 종교적 열심이란 겉으로 보여지는 열심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열심도 다른 사람에게 겉으로 자꾸 보여진다면 마태복음 6장에서 주님이 경고하신,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솟아나올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처럼 보이지만, 신앙이 아닙니다. 내가 구원을 위해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인간의 자랑과 교만이 하나님앞에 고개를 뻣뻣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엡 2:8,9)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에도 표현만 바뀌었을뿐 여전히 교회안에 불순하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을 딱딱 체크해서 신앙생활이라 하면 신앙생활이 오히려 쉬울 것입니다. 신앙은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영역이 훨씬 많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누구는 신앙이 좋으니 나쁘니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과 생각을 보시는 하나님이 온전히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구원얻은 후 성화되는 변화의 과정은 우리 노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의 이미 구원하신 은혜안에서 노력이지, 자기만의 노력이 아닙니다. 은혜안에서 하지 않는 자기 노력은 그것이 아무리 거룩해보여도 위선이며 허영입니다.
구원과 성화는 별개가 아니라, 서로 붙어다니는 기관차와 같습니다. 야고보서에 대해서 흔히들 착각하는데, 어떤 행위들을 안하면 구원 못받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받은자로써의 교회 공동체내에서의 도리를 권면하는 것입니다.
열심이 무조건 잘못되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무턱대고 하는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방향에 맞는 열심이어야 하죠. 더 자세한 글들은 여기를 참고해 보세요
|
'신세계운동 > 알 파 코 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인군자처럼 되는게 성화(聖化)가 아니다 (0) | 2007.08.12 |
---|---|
비판과 지적은 다르다. (0) | 2007.08.12 |
내가 하나님앞에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 (0) | 2007.08.12 |
한 번 구원받은 자녀는 중간에 구원이 상실되지 않습니다 (0) | 2007.08.12 |
아담의 죄의 후손에 대한 "전가"개념 (0) | 2007.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