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좁은 문과 거짓선지자(마 7:1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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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글 | 2007/06/19 (화) 0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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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3-14)
좁은 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좁으며 멸망의 길도 처음부터 넓습니다.
좁았다가 넓어지고 넓었다가 좁아지는 것이 아니지요.
이것은 한 번 영생의 길로 출발한 사람은 끝까지 간다는 얘기입니다. 즉 영생의 길은 처음부터 좁은 길을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신앙생활을 하다가 중간에 벗어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실제적으로는 영생얻은 신자가 아님에도 신자의 흉내만 낸 것입니다.(히브리서 6:4-8)
요즘 구원받은 사람도 중간에 구원이 상실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신실함을 부정하는 사상입니다.
또 그 사람은 구원의 기준을 십일조와 주일성수등의 종교적 행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의 율법적 구원관과 다를 바 없습니다. 본문은 그런 의미와 혼동해선 안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긴장해야 될 부분은 교인들 중에서 구원받는 사람이 적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창세이후부터 사람숫자만 따진다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 다니는 사람에 대한 구원받은 사람의 비율을 볼 때 적다라는 말입니다. 교회내에도 참신자와 거짓 신자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해 행위구원을 주장하는 것도 문제고, 자신의 구원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좁은 길은 고통과 고난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 끝은 영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기꺼이 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안목과 분별력이 없으면 편한 길로 유혹하는 세속주의, 인본주의, 기복주의, 실용주의로 물들인 거짓선지자, 거짓교사, 거짓 목회자의 유혹에 고스란히 끌려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거짓지도자들은 종말이 가까울 수록 대다수를 차지하여 무지한 사람들을 휩쓸고 다닐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다수결이라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하나님말씀의 기초와 뿌리에 바로 서 있어서야 합니다.(마 7:24-27)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5-20)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마태복음 7장 21절은 행위구원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하기가 쉬운데, 전체내용을 보면 그런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뜻이란 무엇입니까? 단순히 윤리적, 도덕적 의로움, 행동을 바르게 하는 것을 뜻하나요? 이 부분은 산상설교의 결론을 맺어가는 부분인데요 15절부터 나오는 거짓선지자와 연관된 메세지입니다. 이어서 16절은 그들의 열매를 보면 그들의 잘못된 근본을 알 수 있다고 주님이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무리 주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귀신을 쫓고, 능력을 행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처음 근본부터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때문에 구원을 못받는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인격적 관계가 없이 단지 은사적 능력만 일으킨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속지 않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더라도 성령의 은사를 받을 수가 있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사가 구원의 표징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누구에게나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이 구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일이나 교회에서 자신이 해 놓은 것, 내 놓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앞에 자기 증명의 수단으로 삼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누가복음 18장에서 바리새인이 자기를 자랑하면서 기도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은 이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무슨 사역을 하겠다고 나서고, 계획하고 무슨 봉사를 하겠다고 하기전에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가 맺어있는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내 안에 주님이 정말 계신가? 나는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라는 것을 먼저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되지 않은채 일과 어떤 사역이나 프로그램에만 몰두하다가, 정말 중요한 하나님을 알아가고 자기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시간낭비하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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