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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칼 빈 주 의

[스크랩] 무조건선택

출처 블로그 > agape12님의 블로그
원본 http://blog.naver.com/agape12/70004462557
 

                 칼빈이 5대의 강령 설교(4)

                       (무조건적선택)      박발영목사



서론

오늘은 칼빈의 5대 강령 중에 2번째 강령인 무조건적 선택에 대해서

말씀들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주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지난주 설교말씀을 복습을 하겠습니다.:

탁락한 인간의 상태를 어떻게 보는가? 이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첫단추를 어떻게 끼느냐에 따라 다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알미니안주의를 비유로 들자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갈빗대 3개가 부러지고

다리가 다친 상태와 같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아직은 살아있고, 또한 상처는 입었으나 의식이 있어서

의사를 부르며 스스로 구원을 요청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억지로 몸을 끌고 전화를 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자율(自律)의 힘과 노력으로 구원을 요청하면,

그때 하나님은 그를 도와서 구원시켜준다는 것이다.

신인협동(神人協同)에 의해 구원이 이룩된다는 억측이다.


그들은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병든 것이라고 본다.

영적 진리를 분별하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자유의지와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할 때에

영적도움을 받지 못할 정도로 완전타락을 한 것이 아니고,

부분적으로 타락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적 진리를 분별하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자유의지와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얼마든지 인간은 자신의 양심과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자신의 운명을 선하게도, 악하게도 선택할 수도 있다고 주장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자기 백성만을 위하여 지신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지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구원은 자기 의지로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칼빈주의에서는 타락한 인간의 상태를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100층 꼭대기에서 떨어져 완전히 죽어버린 인간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구원요청 커녕은 그럴 생각조차 가질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구원은 자율이 아니라 타율(他律)입니다.

전혀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도 없는 죽은 인간을

다만 하나님께서 그의 강력한 성령의 능력으로 생명을 불어넣어 살려 놓은 것이다.

그것이 중생(重生, Regeneration)이란 것이다.

그래서 에드윈 팔머는

「인간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떨어져 박살난 존재와 같다」

그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은혜로 살리셨도다."(엡 2:1) 고 한 것입니다.

"죽을 뻔"했던 인간이 아니라 "죽었던" 인간이다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었기' 때문에(엡 2:1).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전적 무능력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성령의 은혜의 역사 없이는 거듭 날 수 없으며

구원 받을 수 없다.

믿음 그 자체도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이다.

그래서 믿음도 또한  구원의 조건으로서 믿음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로서 믿음인 것이다

즉 우리가 스스로 믿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음을 주셔서 구원을 받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본질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1.무조건적 선택에 대한 교리 설명

아담이 에덴낙원에서 타락하였을 때 죽음이 초래되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절에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은혜로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죽음의 상태에 버려진 죄인들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스스로 그리스도 앞에 나올 수 있거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전적으로 상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택한 백성을 위 죽으시고 예수 앞에 나오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여 구원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택하실 때 어떤 의를 보거나 선행을 보고

쓸 만한 사람을 골라 택하신 것이 아니라

조건 없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구원 받을만한 “의” 나 “선”을 보고 선택하셨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몰라도 저는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죄인인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자기백성으로 자기 자녀로 선택 하셨고 나를 구원하러 독생자를 보내셨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성령으로 나를 살리셨고 나를 예수를 믿게 하셨고

그래서 내가 구원을 받을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조건적 선택에 대한 교리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알미니안 주의의 주장은 다릅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는 선거열풍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5월31일이 되면 도지사, 시장 ,구청장, 시, 도의원들을 뽑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뽑아야 되겠습니까?

잘 살펴서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조건적인 선택인 것입니다.


또 회사는 직원을 뽑습니다.

회사가 직원을 뽑을 때 어떤 사람을 뽑습니까?

자기 회사를 위해서 일을 잘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을 뽑습니다.

바로 이것이 조건적인 선택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조건을 보고 선택을 합니다.


알미니안주의가 주장하는 선택교리가 바로 조건적인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을 사람을 미리 아시고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회사 직원을 뽑을 때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뽑듯이 말입니다.


고액과외 하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가르치는 학생들은 대부분 서울대를 들어 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싸들고 와서 자기 자녀들을 가르쳐 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그러나 아무나 받지를 않습니다.

시험을 치러가지고 받습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물었답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저는 학생을 처음 받을 때 서울대학을 들어갈 수 있는 학생들을 뽑아서 받습니다.

서울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 있는 학생들을 뽑아서 조금만 도와주면

다 서울대학교를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알미니안주의가 주장하는 선택교리가 바로 조건적인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을 사람을 미리 아시고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만한 사람들을  천국에 갈만한 사람들을

미리 아시고 선택하여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서울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학생들을 뽑아 가르치듯이 말입니다.

바로 이런 원리가 알미니안 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조건적 선택인 것입니다.

우리는 조건적 선택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건적 선택의 삶에 길들여 져 있고

그것을 진리처럼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신학인 알미니안 주의자들은 칼빈주의의 무조건적 선택교리를

부정 할 뿐 아니라 분개를 합니다.

실력이 있는 사람을 뽑았다면 이해가 되지만

실력도 없는 사람을 뽑는 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어떤 사람은 택하여 천국가게 하고

어떤 사람은 지옥가게 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서울대 총장이 자의에 따라서 실력이 안 되는 사람을 서울대학에 입학시켰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분개 하겠는가? 이것은 세상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는 세상 나라의 원리와 다릅니다.

그래서 칼빈주의 주장은 다릅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죽어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구원 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적으로 상실한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를 스스로 구원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자기 백성으로 택하여

허물과 죄로 죽은 자를 (엡2:1)다시 살리시고(중생) / 예수 앞에 나오게 하시고

예수를 믿고/ 회개시켜서/ 구원을 받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이 세상에서 회사 직원을 뽑고 정치적인 지도자를 뽑는 것처럼

조건적 선택도 아니고 그리고 판교아파트 입주자를 추첨하는 것처럼 뽑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쫒아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자기 백성으로 택하여


구원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거기에는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남편이 아내를 선택할 때 어떤 사람을 선택합니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택하여 아내로 삼습니다.

여자가 남편을 선택할 때 어떤 사람을 선택합니까?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하여 남편으로 삼습니다.

왜 저 사람은 선택하여 아내로 삼고/

왜? 나는 아내로 안 뽑아 주는가? 라고 불평을 할 수 있습니까?


★☆ 하나님이 주신 배우자를 분별하는 법 !! ☆★

1. 하나님께선 유일하게 나에게만 특별히 끌리도록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2. 그 사람에게 끌림 뿐 만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주고

   싶은, 그 사람의  단점까지도 사랑 할 수 있는 그런 순수한 사랑이 가는 사람,

3. 그리고 만나면 만날수록 상대방이 자기 몸처럼  소중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배우자 일거란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특별히 끌리고 특별한 사랑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택해서 배우자를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모스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암 3:2)라고 말씀하셨다.

  또 습3:17 에 보면

  남보다 잘생겨서도 아니고 다른 사람보다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히 끌리고 특별히 사랑이 가는 사람을 택하여

  자기 자녀 삼으시고 자기신부 자기백성을 를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특별한 사랑을 입어 택함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에 무슨 조건이 있겠습니까?


순수한 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어머니와 여자의 차이가 무어라고 했습니까?

생각나십니까?

엄마는 사랑하기 때문에 예뻐합니다.

여자는 예쁘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조건적인 것과 무조건적인 것에 차이입니다.

예쁘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예쁜 짓을 하니까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엄마는 예쁘던 밉던 건강하든 장애자든 상관이 없습니다.

자식을 사랑 하니까, 예쁜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선택과 조건적인 선택의 교리의 차이는

쉽게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내가 회개하고 내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선택해서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하나님이 믿게하고

하나님이 회개케 하여 구원을 받았느냐?

어느 쪽이냐의 싸움입니다.


크게 쓰임 받는 분들을 보면 뭔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마음이 순전하다든지, 영성이 탁월하다든지, 구령의 열정이 탁월하다든지

믿음이 크다 든지, 분명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마음이 깨끗하고 내가 영성이 탁월하고, 내가 믿음이 커서 하나님이 쓰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마음을 깨끗게 하고 큰 믿음을 주시고

탁월한 영성을 주셔서 하나님이 쓰십니까? 어느 쪽이 맞습니까?


하나님이 선택해서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하나님이 믿게하고

하나님이 회개케 하여 하나님이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깨끗게 하고 하나님이 큰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이 탁월한 영성을 주셔서 하나님이 쓰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구원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어서 구원을 받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쓰임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어서 쓰임을 받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니까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써 주시니까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성프란시스의 고백:

하루는 성 프랜시스의 제자가 꿈을 꾸었답니다.

천국을 갔는데 높이 들린 영광스런 보좌가 있었습니다.

부러운 생각으로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저 보좌는 누가 앉을 자리입니까?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의 스승 성 프랜시스가 앉을 자리이다.

꿈을 깬 후에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스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자 제자는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은 위선입니다.

선생님은 세상이 다 아는 성자인데


선생님이 가장 큰 죄인이라면 누가 그 말을 믿겠습니까?

그러자 프랜시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그에게 주셨다면

그는 나보다 더 거룩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나에게 거룩함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구원은 인간의 산물이 아닌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면 칼빈주의입니다.


이에 반해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조건적 선택을 주장한다.

즉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은 선택하신 근거는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것이라는

즉 하나님은 복음을 받아들일 자들을 미리 아시고 그들만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구원은 인간의 선택이라는 것이 알미니안주의 자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알미니안 주의는:내가 회개하고 내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내가 마음이 깨끗하고 내가 영성이 탁월하고, 내가 믿음이 커서 하나님이 쓰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들어 낸것이 아니라 자기를 들어 냅니다.

이 주장은 비성경적인 인본주의 주장입니다.



.2.성경은 무조건적 선택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판단의 기준은 항상 성경입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가 중요합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


위대한 칼빈 신학자인 에드윈 팔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주를 찾은 줄 알았으나 후에 알기는

주께서 나를 찾아 내 영혼이 주를 찾도록 나를 감화 시키셨음이라

오! 주여 내가 주를 찾음이 아니요

주님이 나를 찾으셨나이다.

나는 주를 붙들기 심히 부족하오나

사랑하신 주께서 나를 붙드셨나이다.

내가 걷고 찾고 사랑하나

오! 이 모든 것은 주님 당신께 대한 나의 응답이나이다.

주께서 앞에서 내 영혼을 이끄시고 항상 나를 사랑하셨나이다.


행전13;48

믿을 자들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다고 말하는 것도 타당치 않다.

사도행전 13:48이 이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우리의 믿음 때문에 선택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된 것 때문에,-'영생으로 작정된 것 때문에' 우리는 믿는 것이다.


살후2;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엡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신10:14-15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벧전2:8-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3.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엡1:4-6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은혜`란 하나님의 `호의`이다.

그 호의의 대상은 언제나 죄인인 우리들이며,

우리들은 아무런 공로 없이 하나님의 `호의`를 받는다.

이것이 곧 은혜이다.

롬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호의이기 때문에

만약 받는 쪽에서 받을 자격이 있어서

은혜를 얻게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다.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엡 2:8)이라고

말하는 것은 은혜를 시행하고 설명할 수 있는 권한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롬9:18-23에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우리가 구원의 모든 전제조건과 구원 얻는 과정에서 일점이라도

우리 인간의 어떤 결정, 어떤 공로, 어떤 자격이 대입이 된다면

여기에 선언된 `은혜`의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구원이 우리가 만들어낸 어떤 공로의 결과라면

그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인만큼 은혜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선택으로부터 그 완성인 영광에 이르기까지의

구원의 모든 단계는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무조건적인 은혜로 말미암는다.


결론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은혜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주의 은혜가 아닌것이 어디있나이까?

다 하나님의은혜로소이다

계7;13-15을 보면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주님처럼 영광스럽게 거룩하고 영화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습니다.

천군 천사들이 노랩니다. 장로가 나와서 감격하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이들이 어디서 왔느뇨? 몰라서 묻는 말이 아닙니다.

어디서 사는 아무개가 아니냐? 어떻게 이렇게 영화롭게 변화 될 수 있었느냐?

놀래어 묻는 말입니다.

그때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어린양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입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면류관을 벋어서 어린양 예수앞에 드리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것이 성도의 구원이 완성이 될 때 있게 될 모습입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 집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출처 :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글쓴이 : 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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