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적 속죄
박발영목사
서론
오늘은 칼빈주의 5대 교리 중에 제한적 속죄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구원받을 자기 택한 백성만을 위해서 죽으신 것인가?
인본주의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예수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다고 주장한다.
감리교와 성결교의 신학자들은 예수께서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고,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시지만,
단지 그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것을 '보편 속죄론'이라고 부르며, 알미니우스주의의 견해가 그러하다.
그러나 신본주의 칼빈주의자들은 자기 택한 백성만을 위해 죽으셨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택한 백성만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천하 만민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택하심을 받은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입니다. 즉, 구원 받는 사람은 제한돼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택함을 입은 자녀의 죄만을 제한하여 속죄하셨다고 하여
이것을 제한적 속죄 또는 특별속죄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장로교회는 제한적 속죄설을 주장하고,
감리교회는 만인속죄설을 그 교리로 채택하고 있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 점일까?
간단히 요약하자면,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대속의 대상범위가 만인을 위한 것인가
혹은 제한적인 사람(즉 선택을 받은 사람)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1.양대 주장에 대한 설명
1)인본주의자들의(알미니안) 주장
인본주의(알미니안주의)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자기 백성만을 위하여 지신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지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구원은 자기 의지로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예수는 택한 자기백성을 위해서만 죽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것이 인본주의자들의 주장인 일반적 속죄 또 보편적속죄, 만인 속죄설이라 합니다.
얼핏 보면은 하나도 틀린 말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예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러므로 구원은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의해서 결정된다.
얼핏 보면 맞는 것 같은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알미니안주의를 비유를 들자면 이런 뜻입니다.
알미니안 주의자들은 인간의 전적 타락에 대해 부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자연인)은 이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갈빗대 3개가 부러지고
다리가 다친 상태로 비유한다.
그래서 사람은 아직은 살아있고, 또한 상처는 입었으나 의식이 있어서
의사를 부르며 구원을 요청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억지로 몸을 끌고 전화를 걸 수도 있다고 본다.-
즉 인간이 자기 의지와 노력으로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그때 하나님은 그를 도와서 구원시켜준다는 것이다.
신인협동(神人協同)에 의해 구원이 이룩된다는 억측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병든 것이라고 본다.
영적 진리를 분별하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자유의지와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사람이 성령의 도움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그 도움을 조절하는 것은 사람의 의지라고 보는 것이다.
믿고 회개하는 것은 사람의 책임이라고 인간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협동으로 이루는 것이며,
여기서 사람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리는 “값없이 주시는 은총(Free Grace)”이란 설교에서
그리스도는 만인을 위해서(for all), 만인 안에서(in all) 죽으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가르켜 만인 속죄론(universal atonement)라고 말한다.
그러나 웨슬리의 만인 속죄론은 오리겐의 만인 구원론과 다르다.
오리겐의 만인 구원론은 사탄도 구원받는다고 하지만
웨슬리는 사탄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예수는 만인의 속죄를 위해 죽으셨으나 안 믿으면
구원의 속죄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웨슬리의 견해이다.
심지어 만인 구원설주의 자들은 예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었기 때문에
예수를 믿던 안 믿던 다 구원받는다고 주장한다.
2) 신본주의자들의(칼빈) 주장
그러나 칼빈주의는 인간의 타락의 상태를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2층에서 떨어져 병들고 불구가 된 상태가 아니라
100층 꼭대기에서 떨어져 완전히 죽어버린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은혜로 살리셨도다."(엡 2:1) 고
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려달라고 구원을 요청합니까?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인간은 구원문제에 있어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살려줘야 사는 것이지 어떻게 자기 스스로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은 구원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명을 불어넣어 살리실 때 살아 나면서 감각을 느끼고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 지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깨달아 지고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즉 회개나 믿음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명을 주신 결과로 나타나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감각하고 인식하고 깨닫는 시점이 중생의 때 이므로 내가 회개한 것같고
내가 믿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살리시고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이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즉 믿음은 은혜의 결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구원은 자율이 아니라 타율(他律)이다.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도 없는 죽은 인간을
다만 하나님께서 성령를 통해서 예수의 생명을 불어넣어 살려 놓은 것이다.
그것이 중생(重生, Regeneration)이란 것이다.
그래서 에드윈 팔머는
「인간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떨어져 박살난 존재와 같다」
그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은혜로 살리셨도다."(엡 2:1) 고 한 것입니다.
"죽을 뻔"했던 인간이 아니라 "죽었던" 인간이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살리셨다"고
기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전적타락 , 전적 무능이란 것은 인간은 죄와 허물들로 죽어 있기 때문에
다만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생명을 불어넣어 살려 놓기 전에는
스스로 죄를 회개 할 수 도 없고 스스로 예수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능한 상태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칼빈주의자인 "아더 핑크"가 말하기를,
"죄인은 스스로 회개하거나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자기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웨스트 민스트 신앙고백서 제 3장, 6절에 보면,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비록 아담 안에서 타락하였다 할찌라도
X 안에서 속량되고,.. 드디어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구원받는 사람은 오직 택하심을 받은 사람 뿐이고
그 외에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수는 없다.” 고 했습니다.
천하 만민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택하심을 받은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입니다. 즉, 구원 받는 사람은 제한돼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택함을 입은 자녀의 죄만을 제한하여 속죄하셨다고 하여
이것을 제한적 속죄 또는 특별속죄라고도 합니다.
2.성경의 주장
1) 제한적 속죄에 대한 성구들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은 자기백성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마1:21“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눅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택한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
요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나는 내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3:16 “G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행13:48에는,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G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곧 믿는 자란 영생을 받기로 작정된 자란 제한적인 의미이다
또 요13:1, 17:2, 6, 9 에서는, ”유월절 전에 J 께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 께로
돌아 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택함을 받은자)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요한복음 17:9,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구원에 관하여는 보편적인 만인의 사랑이 아니고 자기 백성만을 사랑하신 것이다.
그것은 제한적 사랑인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아버지께서 주님에게 주신 자만을 영생 주신다는 제한적인 의미의 말씀이다.
“내가 비옵는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여기서는 기도 까지도 제한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보건대 기독교의 구원은, ‘예수 안에서’의 구원---(In christos)
그리스도안에 있는 모든이의 구원인 것---믿는 자에게 제한적인 구원인 것이다.
제한된 자만이 구원된다는 말씀들이다.
그 외에도 많은 성경의 귀절들이 있는데, 엡1:4, 5, 살후 2:13, 벧전 1:2,---
이와같이 제한속죄 교리는, 성경의 교리요, 성경의 교리는 곧 G의 교리요 말씀이다.
그러나 이 제한적속죄 교리는 JX의 구원의 효력이 모자라서 제한 된다는 것이 아니요,
주님의 속죄와 구원의 능력은 그분의 완전하심 만큼 완전 영원, 무한하시다
그러나 실제로 구원을 적용함에 있어서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 기준은, G의 뜻을 따라서---
2)성경전체에 나타난 제한적 속죄의 진리
성경 전체에 흐르는 사상은 구원을 받을 택자와 불 택자의
양대 산맥으로 이어지는 역사이다..
가인과 아벨
아브라함- 이삭---------야곱-----이스라엘 -------신자 =택함을 받은자
(이스마엘) (에서) (이방인) (불신자)=택함을 받지 못한자
3.제한적 속죄 교리를 의심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하여
1) 이 제한속죄 교리는 G을 불공평 하신 분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사랑의 G께서 어떤 사람은 구원하시고, 어떤 사람은 버리셨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면 G의 하신 일들은 다 불공평 하다고 봐야한다.
G은 왜 어떤 사람은 남자로, 어떤 사람은 여자로 만드셨는가?,
어떤 사람은 크게 어떤 사람은 작게 만드셨는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 하셨는가?
왜 어떤 지방은 춥고 어떤 지방은 덥게 하셨는가?
이렇게 따지다 보면 공평한 일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G이 어떤 사람은 구원하시고 어떤 사람은 버리신다 하여
불공평 하시다 할 수 없는 것이다.
∴ 바울은, 롬9:20이하에서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G을 힐문 하느뇨? ...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G은 저대 주권을 가지시고 자기의 피조물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에게 그렇게 하신다 하여 불공평 하다고 원망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자기의 피조물을 자기 맘대로 하시기 때문이다.
2)성경은 제한속죄 교리를 말하는 반면에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는다는 구절도 있다는 것이다.
딛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은혜....”
딤전 2:4 “G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고후 5:15 “주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다.”고도----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15:22)
이러한 말씀들의 언뜻 듣는 느낌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말하는 듯 하나
사실은, 그것이 모든 인류를 말 한다기 보다는
‘G께서 택하신 모든 사람’으로 해석해야 한다.
막1:5 “온 유대와 Jer. 사람들이 다 나와서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죄를 자복했다 의미이지
그 도시의 사람들이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 나와서 죄를 자복했다는 말은
아닌 것이다.
막1:38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라는 말씀 역시
많은 사람이 주를 찾는다는 의미이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주를 찾는다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이 말씀들은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 중에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 구원 하시기를
원하신 다는 말씀이 아니요 자기의 기뻐하신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제한적으로 선택한 모든 사람을 의미이다.
제한속죄의 교리는 억지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성경의 교리이고, G의 가르치심이다.
만인구원설은 스스로의 억지에 빠지게 된다.
주님의 피 흘리심이 모든 인간을 위한 일이라면
왜 안 믿고 죽는 사람의 수가 그렇게 많이 있는가?
죽어가는 사람에게 전도를 하면 어떤 사람은 끝까지 입을 꼭 다물고
절대로 X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J를 저주하면서 죽는 사람도 있다.
행13:48에는,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G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성경이 말씀하셨지 않은가?
즉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으면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구원 받는 사람도 있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주님의 속죄 사역이 일부는 성공하고 일부는 실패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통일교의 주장과 똑같이 된다.
주님은 전능한 분이 아니다. 절반은 실패한 분이된다.
주님은, 홍해 사건을 통하여 Is.은 구원하시고 애굽의 바로는 수장시키신 것---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G의 능력이 되는 것---
알미니안 주의는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은 제한속죄의 교리를 말하고 있다.
제한됐기 때문에 불리하고 불안한 것은 전혀 없고 오히려 제한 됐다는
특권의식 때문에 더욱 감사가 있는 것이다.
천만 죄인중에 나하나 빼어 구원받게 하신 G의 은혜를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결론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주의 은혜가 아닌 것이 어디 있나이까?
다 하나님의 은혜로소이다,
“모든영광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이 칼빈주의의 신앙의 핵심이다.
나의 나된 것은 주님의 은혜로소이다.(바울).
(알미니안)는 자칫 잘못하면 바리새인이 될 수 있다.
(바리새인=“알미니안” 과 세리=“칼빈”비유)
제한속죄를 믿으면 선교가 약화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들이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칼빈주의는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찾는 믿음으로 전도한다.
“이 성에 택한 백성이 많도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선한목자의 심정으로
택한 잃은 자녀를 찾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믿을찌 안 믿을찌 모르는 가능성만 가지고 전하는 알미니안과는 차이가 있다.
실제로 선교의 역사에서 제한속죄를 믿는 칼빈주의자들의 활동이
훨씬 두드러졌던 것이 증거가 된다.
반대로 제한속죄를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에게 다른 사람들의 구원과 교회의 부흥이 달려있다고 믿는다.
구원의 문제는 사람자신에게 결정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책임감은 강 할 찌라도 자기 힘으로 인본주의적인 방법으로 접근을 하기가 쉽다.
그래서 온갖 인간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선교를 하거나 부흥을 일으킬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음악, 분위기, 조직, 최면술 등 온갖 것을 사용한다.
이들에게 참으로 말씀의 능력과 성령님의 역사를 믿는 믿음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성령께서 하실 일을 자기가 가로채 할려고 한다.
우리는 단지 주님의 증인으로서 성령을 의지하고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양들을 돌보는 자들이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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