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중생의 의미
중생의 의미부터 생각해 본다. 먼저 신학자들의 견해를 생각해 보고, 그 다음 성경이 말하는 중생의 의미를 상고해 본다.
(1)신학자들의 견해
신학자들의 중생에 대한 견해는. 크게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나타난다.
1)첫번째 견해는, <넓은 의미의 중생관>으로서, 중생은 “도덕적 종교적 회개”로 말미암는 전 인격 변화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칼빈(Calvin) 같은 분이 그렇게 생각한다. 이 넓은 의미의 중생관은, 심지어 우주 변화까지(마19:28) “중생”이란 개념 속에 포함된다고 보는 입장을 취한다. 왜냐하면 마 19:28에 보면, “중생”의 개념 속에 “세상이 새로워지는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여기 “세상이 새롭게 되어”(엔 태 파링게네시아 = εν τη παλιγγενεσια)라는 말씀은, 원어에 의하면, <중생 가운데>(in the regeneration)라고 되어 있다.[차영배, 성령론(서울: 교회교육연구원,1987), pp.194-195 참조].
2)다른 한 견해는, <좁은 의미의 중생관>으로서, 중생은 새 생명을 나타내는 ‘순간적인 새로운 출생’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H. Bavink, Abraham Kuyper, Charles Hodge 등이 이같은 견해를 말하고 있다.
(2)성경의 견해
그럼 성경은 “중생”(παλιγγενεσια)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는가? 성경 중에서 “중생”에 대하여 가장 잘 가르쳐 주는 본문은, 바로 요한복음 3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교훈이다.
1)요한복음 3장의 예수님의 교훈에 의하면,
a)중생은 “거듭나는 것”(γεννηθη ανωθεν)이다(요3:3.7). 여기 ‘거듭난다’는 말은, 원어에 의하면, ‘위로부터 나는 것’(is born from above) 혹은 ‘다시 나는 것’(is born again)을 가리킨다.
b)그럼 무엇이 거듭나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요 3:6에서 “육으로 난 것은 육(σαρξ)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πνευμα)이라”고 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중생시에 인간의 육이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πνευμα)이 거듭나는 것임을 알게 된다.
c)그럼 거듭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요3:5에서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
(γεννηθη εξ υδατος και πνευματος)이라고 한다. 여기서 강조점은 “성령으로 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3:8에서 ‘중생한 사람’을 가리켜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단지 “성령으로 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 “물”이란 말은 왜 첨가되었는가? 딛3:5의 “중생의 씻음”이란 말과 비교해 볼 때, 여기 “물”은 ‘죄 씻음’을 의미한 것으로 본다. 중생시에 우리의 “영”의 죄가 씻음 받고 새로워지는 것이다. 중생은, 전적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중생 이전의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자이기 때문이다(마8:22, 엡4:18, 요일5:12). 죽은 자는 시체이며, 시체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중생은 예수님의 교훈에 의하면, 바람이 불어서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이 신비스럽게 일어난다. 이상이 “중생”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이다.
2)그 다음 벧전 1:23에 의하면,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한다. 그리고 약 1:18에 의하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다”고 한다. 이 말씀들은, 중생 사역에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 전파를 사용하심을 보여준다. 중생이 전적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만, “말씀”을 제외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교훈한다.
3)성경의 교훈에 의하면, 중생의 절차는,
a)하나님의 택정이 먼저 있고(엡1:4-5, 살후2:13),
b)그 다음 복음이 전해지도록 하시고(엡1:13, 벧전1:25, 행1:8),
c)그 다음 인간으로 하여금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리고 믿게 하시는 것이다(살전2:13, 롬10:17, 행16:14).
그러므로 중생의 순간이란, 바로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순간이다. 이 중생의 순간이, 바로 영생 얻는 순간이요(요3:16), 의롭게 되는 순간이요 구원 받음의 순간이다(롬10:9-10). 중생은, 바로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고, 중생자는 그의 자녀가 되는 시작이다. 중생이란, 이와같이 성령님의 역사와 인간의 영의 출생에 관한 교훈이요, 신분의 변화, 상태의 변화에 대한 영적 개념이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중생에 대한 교훈이다.
2.중생과 성령세례의 관계
그럼 중생과 성령세례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 한다. 먼저 개혁신학 전통의 견해를 상고해 보고, 그 다음 성경은 이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상고해 본다.
(1)개혁신학 전통의 이해
개혁신학 전통에서 주장하는 견해는 대개 다음과 같다.
1)첫째로, 물세례를 줄 때, “물”은 상징일 뿐, 그 물세례는 곧 성령의 역사로 죄에서 죽고 부활의 주와 함께 산다는 의미가 있으니, 이것은 바로 ‘성령세례의 징표’라고 한다. 그래서 ‘성령세례’는, 물세례가 상징하는 중생이, 실제로 일어나게 하는 성령의 일하심이라고 한다. 이 말은, 성령세례와 중생이 같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경우, 물세례가 상징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라고 하면 될 것이다. 구태여 “성령세례”라고 할만한 명확한 성경적 근거가 없다.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성령세례”의 개념은, 오히려 “물세례”와 대조되고 있는 “성령 부어 주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행1:5, 2:1-4, 33). 예수님은 행 1:4-5에서 말씀하시기를, 세례 요한은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었지만,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줄 것이라”고 하심으로, 요한의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대조시켜 구별하고 있음을 본다.
2)둘째로, 그들은 고전 12:13에 근거하여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시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본문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시한 본문이 아니다. 그 이유를 다시 한번 간단히 열거해 보면 이러하다 ---
a)고전 12:13에 “다 한 성령으로 세례 받아, 한 몸이 되었다(into one body)”는 말씀은, 원문을 비교 연구해 볼 때, “다 한 몸 안에서(in one body) 한 성령으로 세례 받았다”고 번역함이 보다 타당하기 때문이다.
b)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이미 바울의 서신을 받기 이전에, 성령의 부어주심(성령세례)을 받은 사람들인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고전 1:7에서 그들이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잘 입증된다. 방언과 예언 등 여러 은사들은, 성령세레시에 나타나고 있음을 성경이 말한다(행2:4, 10:46, 19:6).
c)고전 12:13에서 “성령으로 세례 받음”과 “성령의 마심”이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요7:38-39 참조).
d)행 1:5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령세례’는 이미 중생한 제자들이 “위로부터 능력을 옷입는 것”(눅24:49), 복음 증거의 권능(행1:8), 혹은 “성령의 부어 주심”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가리키는데(욜2:28, 행2:17, 2:33, 10:45), 이러한 성령세례는, 순간적 신생(新生) 의미의 ‘중생’ 개념과는 일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e)“중생”은, 성령의 일방적 주권적 사역으로, 구약시대나 예수님 당시나 오순절 이후에나 한결같이 계속되어온 성령의 구원 사역이다. 구약시대에는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는 믿음을,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주 임을 믿게 하는 믿음을 일으키는 성령의 사역이다. 그러나 “성령 세례”는,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구원 받은 신자들에게 ‘복음 증거의 능력’을 입혀 주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 주시는 사역이다(눅24:49, 행1:8). 성경에 의하면, 전자는 성령님의 주권적 사역으로 나타나며, 후자는 성자의 사역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신 후 오순절부터 보내주시기 시작한 것이다.
f)“중생”을 위해서는 기도할 수 없으나, “성령세례”를 위해서는 기도해야 할 것을 성경이 교훈하고 있는데서도(눅11:13, 요7:39), 그 차이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에 일어난 일들로서, 중생 사역이 있은 후에 성령세례가 있은 것으로 나타나는 많은 구절들을, 단순이 “시대전이적 사건들”이나 혹은 오순절 사건에 “편입적 가입적 사건들”이라는 애매한 설명으로, 오순절 이후에 와서는, 중생과 성령세례가 동일하다고 주장할 때, 여기에는 성경해석상 심한 무리가 온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3)세번째로, 그들은 또한 딛 3:5-6에 근거하여 중생과 성령세례가 같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그 문구조와 해석에 관해 살펴 본바와 같이, 이 귀절들은,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시한 본문이 아니다.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셨다”는 동사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수식하는 것이 아니다. 6절 초두의 관계대명사 ου 는 단지 선행사 “성령”(πνευματος αγιου)과만 관계할 뿐이다. 원문 구조에 대한 오해 때문에, 그같은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이다. 5절 하반절은 중생 사역을 말하고, 6절은 성령세례를 말하는데, 여기서 성령세례는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시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2)성경의 견해
이제 그럼, 중생과 성령세례의 차이점은, 이미 지적했으니, 성경은 그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간단히 상고해 본다.
중생 때 성령이 오셔서 내주(內住)하시는가? 성령께서 인간의 영
(πνευμα)을 새롭게 하신 후, 그 영 속에 내주(內住)하신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로마서 8:9에 “...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에 위배된다.
그러나 우리의 영(πνευμα)이 거듭나는 중생의 순간에(요3:6), 우리의 육
(σαρξ)이 동시에 거듭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이 거듭나는 중생시에, 우리 속에서 영과 육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즉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말하는 속 사람의 법과 육체의 법의 투쟁이 일어난다. 바울 사도는, 이 속사람의 법을 “하나님의 법”(롬7:22) 혹은 “마음의 법”(롬7:23)이라고 칭하고, 육체의 법을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롬7:23)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요엘서 2:28이나 그것을 인용하고 있는 사도행전 2:17을 보면, 말세에 성령이 부어질 대상이 “모든 육체 위에” (επι πασαν σαρκα ) 라고 되어 있다. 여기 사용된 “육체”(רשׂב σαρξ)라는 말은, “영”을 가리키는 루아흐(חור)나 퓨뉴마(πνευμα)와는 대조되는 말이다. 결코 이 두 말은 동일시 될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육체”란, 사도행전 2:39에 의하면, “하나님이 부르시는 모든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모는 육체”라는 의미는, 구속함을 받았으나 여전히 죄성에 사로잡혀 있는 지성 의지 감정을 가진 인간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이러한 “육체”에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세례” 이다.
중생시에 성령께서 우리의 “영”(πνευμα חור)에 임하여 그 영을 새롭게 하셨는데, 이제 우리의 “육체”(σαρξ רשׂב)에 강력한 성령으로 임하여 우리의 죄악된 인격을 지배하시며, 우리 속에 충만히 내주하실 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충만한 내주는 요한복음 14:16-17에서 증거된다. 거기에 보면, 이미 제자들과 “함께 거하고”( παρ υμιν μενει) 있는 보혜사 성령께서, 오순절에 “그들 속에 계실 것이라”(και εν υμιν εσται)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임하셔서 함께 계실 보혜사 성령님은, 성화를 촉진시키며, 심적 놀라운 변화와 함께 복음 증거의 권능이 나타나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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