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율법의 폐하여짐과 완성에 대하여
시내산언약에서 주어진 율법은 성부와 성자간의 행위언약에서 시작된다.
이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그리하여 율법이라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만이 지킬 수 있게 되고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성이 된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에 의한 율법의 재해석으로 도덕법에 관한한 문자에 불과했던 말씀이 영으로 바르게 해석이 되어 우리에게 적용이 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율법은 그리스도 십자가로 인하여서 폐하여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아는 십계명을 도덕법이라 하는데 이는 폐하여졌으면서도 성도의 윤리로서 중생한 성도의 성화의 도구로서 유용하게 사용이 된다. 이를 율법의 제3용도라고 한다. 신약성경 곧곧에서 십계명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십계명중에서도 1~3계명은 영원히 폐하여 질 수 없는 부분이다.
구약 율법의 요구는 완전한 행위를 요구하였다.
또한 율법을 어길 경우 정죄를 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가지 사실을 예수님에 의해서 폐하여진 것이고 우리에게 자율적으로 성령에 의해 재해석된 법을 지킬 것이 요구 되어진다.
인간의 행위가 아닌 성령에 의해서 점진적으로 바르게 따르는 것이다.
언약신학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새언약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
믿음을 일으키시는 분도 성령이시며 중생,회심,칭의,성화로 이끄시는 분도 성령이시다.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지정의에 의한 신앙의 3요소이다.
신약성도에게 있어 율법의 의미는 죄를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역할과 성도의 삶의 규범으로서의 윤리를 제공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이지만, 성령에 의해서 바르게 해석됨으로서 폐하여진 부분을 분별하여 보아야 한다. 폐하여진 율법은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온전케 되고 인간의 행위로서 지키는 형식의 부분들이 새언약에 의해 개혁이 되었을 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폐하여짐이 아니다. 성경에서 폐하여진 것을 지키는 행위를 경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무효화하고 율법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 때문이다.
율법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며 천국의 모형이고 그리스도께 향하게 하는 몽학선생이다.
따라서 이제 성도에게 있어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녹아져 내리고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게하는 도구인 것이다. 율법과 복음은 율법이 없이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수 없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없는 유기적 관계이며 하나님의 경륜적 발전적 관계에 있다.
2. 시민법, 제사법, 도덕법의 율법은 어떻게 되었는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계명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태복음5:17-19)
위 말씀은 율법을 폐하지 아니함을 나타낸다. 율법엔 도덕법,시민법,제사법이 있다. 시민법은 유대인에게 특별히 주신 것이었으나 그들이 메시야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기에 더 이상 그들은 선민이 될 수 없으며 시민법은 폐하여졌다.
제사법은 히브리서의 변증처럼 예수님에 의해서 하나님께 단번에 온전한 제사를 드림으로서 폐하여졌다. 온전케 된 것이다. 도덕법은 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모두 지키시고 온전히 이루셨다.
성도의 삶속에서 도덕법의 역할은 무엇일까? 마태복음 5:17-19절 말씀과 같이 여전히 "행하며 가르치는 것"으로서 지금도 존속되고 있다. 더불어 산상수훈을 통하여 율법을 재해석하심으로 도덕법을 더욱 온전케 하셨다.
3. 십일조는 제사법이며 폐하여졌다.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말 것이라 죄를 당하여 죽을까 하노라
오직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의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레위인에게 고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취하여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취할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민수기8:21-26)
민수기 18장을 보면 십일조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가 제사법이었음을 모르고 있었으나 23절에서 제사법중의 일부인 "거제"에 포함시키면서 십일조를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십일조가 율법이 있기 전 아브라함 때부터 있었다며 십일조의 당위성을 옹호하는 신학자들도 있지만, 21절의 "이스라엘의 십일조"는 호크마 주석성경을 보더라도 명백한 아브라함의 십일조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은 그 당위성을 궁색하게 만들고 있다.
신약성경에 유독히 십일조에 대한 용어가 나오지 않고 마태 23장 23절에 말씀으로 십일조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태23:23)
그러나 그 영어해석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구언약 아래에 있었던 바리새인들에게 과거형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율법 아래에 생활 했던 자들이고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어 성령의 법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성경을 번역할 때 반드시 고쳐야 할 부분이다.
You should have practiced the latter without leaving the former undone.- NIV
전자도( 앞에 박하등의 십일조 ) 소홀히 하지 않아야 겠지만, 후자도 마땅히 행해야 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는 말씀은 그렇게 행하라는 명령형 문장이 아니라 직설형 미완료 동사를 사용하고 있어서, 그렇게 행했어야 했다는 당위성만을 말하는 문장이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율법을 지킨다고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참으로 율법을 지키려면 물질의 십일조만 드릴 것이 아니라 율법에서 더욱 중요한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말고 다 지켜 행했어야 했다는 당위성을 말씀하신 것 뿐이지 그렇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다
십일조는 구약의 제사법으로서 초대교회 때 거둬들였다는 기록이 없을 뿐더러 교회가 타락했던 중세에 십일조가 다시 부각이 되고 칼빈 등 개혁자들이 십일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십일조를 제사법으로 보고 있으며 폐하여진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십일조가 폐하여졌다고 하여 교회의 헌금이 없어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즐겨내는 자를 기뻐하신다고 하셨고 목회자들의 일한 삯을 당연히 주어야 할 것을 서신서에서 말하고 있다.
다만, 십일조라는 이름으로 소득의 십분의 일을 거둬들이는 행위는 이제 없어져야 할 개혁의 대상인 것은 확실하다. 더나아가서 일천번제라 하여 헌금을 거둬들이는 것은 제사법이 폐하여진 새언약에 대해서 전혀 지식이 없는 소경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구약의 말라기서를 인용하여 십일조를 강요하고 십일조를 행할 때 땅에서도 물질적 복으로 임한다는 설교는 멈춰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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