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부터 한국교회 한쪽 모퉁이에서 칼빈주의 신학서적들을 발간해 내는 고집스러운 출판사가 있다. 바로 <도서출판 깔뱅>이다. 이곳을 통해 발간되는 책들은, 제목만 훑어보아도 가볍고 감각적이며 실용주의와 맘모니즘에 깊이 물든 한국교회로부터 외면당할 것이 뻔하다. 물론 한국에는 칼빈과 칼빈주의, 개혁주의를 내세우는 교회들이 많지만, 정작 칼빈이 말하고 신앙했던 신학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 오늘날 교회들의 현실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그들이 드러내놓고 천명하는 교회의 선생인 칼빈의 이야기에도 별로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깔뱅>을 통해 이러한 책들을 펴내고 있는 이들도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왜 이런 무모한 일을 벌였으며, 또 왜 고집스럽게 이 일을 계속해가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1년 전부터 어렵게 부탁해 놓은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 연지동 소재 기독교개혁신보사 사무실에서 <깔뱅>의 저자들인 송영찬, 이종연, 이광호, 장수민 목사를 만났다. 한국교회의 잘못된 독서습관의 원인과 해결책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한국교회가 원리적이고 딱딱한 책들을 읽지 않으며 그 원인은 강단이 허물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단숨에 “대안은 교회가 양서 공급과 불량서적 퇴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이 거침없이 지적됐다.
최재호: 참 만나고 싶었고 오랫동안 기다렸다. 아마도 이종연 목사님께서 미국에 계셨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좋은 기회이니 만큼 한국교회 독서습관, 예를 들어 기독서점들의 도서판매 추세를 보며 한국교회의 현 상황부터 진단해 보면 좋겠다.
장수민 목사: <생명의말씀사>같은 기독서점은 물론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등 일반서점까지 거의 매일 들르는 편이다. 서점 전면에 전시된 책들이나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어 있는 책들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많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이미 한국교회, 특히 기독출판계는 자기 정화의 한계를 넘어선 것 같다.
송영찬 목사: 독자의 필요에 따라 책을 선정하고 계획적으로 읽어나가는 것을 독서라고 한다면 ‘한국교회에는 독서가 전무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선교단체나 교회에서 이른 바 ‘필독서’를 선정해 읽기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선정된 필독서 자체에 너무 많은 문제점들이 포함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광호 목사: 동감한다. 우선 목회자나 신학생들에 문제가 많다. 실용적인 내용으로 현실에 당장 도움이 될 책들만 편식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붙잡고 묵상하거나 원리를 고민하며 생각하게 하는 책들을 읽으려 들지 않는다. 특히 오늘날 기독서점을 장악하고 있는 책들을 보면 나의 이같은 문제제기가 얼마나 온건한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이종연 목사: 전적으로 동감한다. 먼저 교회의 독서습관이나 경향이라고 할 때, 그것은 강단에서 어떤 말씀선포가 있느냐에 따라 좌우되기 마련이다. 좋은 책들이 안 팔리고 질 낮은 책들이 잘 팔린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강단이 그만큼 허물어지고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선포되는 말씀 수준에 독서수준이 맞춰진다. 여기에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출판업자나 서점의 현실 편승이 더욱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최재호: 그러면 이런 현실 가운데 놓인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장수민: 앞서 언급한대로 현재의 교회의 위기는 개교회가 교인들을 기독인으로서 갖춰야 할 정체성을 제대로 심어주지 못한데서 왔다. 교회에서 선포된 말씀을 책으로 만들어 교인들로 하여금 곱씹도록 하여야 한다. 물론 선포된 말씀이 바르고 원리적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진다. 현 상황에서 건전하고 의식있는 교회들이 출판업에 참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약교회의 성약출판사같이. 왜냐하면 경제논리에서 자유할 수 있고 교인들에게 필요한 책을 내겠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송영찬: 원리적으로는 독자가 책의 유통을 책임지는 서점이나 출판업자들을 좌우한다. 독자의 수요에 반하는 서점이나 출판사를 보이콧하거나 압력을 가해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독자들이 건전한 이해와 사고를 가졌다고 전제할 경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교회의 풍토 위에서 어떤 책이 출간되고 유통되느냐는 문제는 사실 출판업자들이나 그 책을 진열하는 서점의 역할에 좌우된다. 양식있고 건전한 의식을 가진 독자층이 두텁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실이 어떤가. 불량서적이 너무나 많이 유통되고 있지 않은가. 독자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출판사, 서점들이 변해야 한다.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며 총체적 난국이다.
이종연: 앞서 장 목사가 매우 중요한 언급을 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회는 사명을 가지고 양서(良書)를 공급해야 한다. 우리 교회는 교인들을 몇 그룹으로 나눠 그들의 신앙적 신학적 이해에 맞춰 독서목록을 정하여 제시한다. 한 50권에서 100권 정도 된다. 그리고 독후감을 발표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많은 유익이 있음은 물론이다. 이제 바른 출판, 서점운동을 교회들이 나서서 해야 한다. 의식있는 교회들이 협력해 이런 운동을 벌여 간다면 한국교회는 큰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개혁의 한 분야라 생각한다.
장수민: 사실 한국교회 상황 속에서 본다면 이같은 출판계 개혁은 불가능하게 보인다. 호주나 뉴질랜드 개혁교회들의 경우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동일한 아픔을 먼저 경험했다. 그러던 교회들이 교회 안에 서점을 구비하고 양서와 필독서들을 목록화하여 관리하고 추천하며 나아가 교회별 교류하는 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한국교회도 이렇게 나가야 하지 않을까. 언뜻 떠오른 생각이지만 신앙서적 출간문제도 총회가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송영찬: 사실 교회가 서점을 운영하는 것은 한국교회, 특히 대형교회들이 이미 하고 있다. 단, 문제는 무슨 책을 가져다 놓아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신학과 명확한 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교인들의 영혼의 건강을 위해 좋은 책, 바른 책을 가져다 놓아야 하는데, 좋은 책인지 아닌지 살피지 않고 소위 ‘잘 팔리는 책’만 가져다 놓고 있다. 좋은 책 목록이 절실하다.
이광호: 사실 어떤 의미에서 많이 읽고 열심히 읽는 것보다 ‘제대로’ 읽는 것이 필요하다. 오히려 독서 안하는 것이 더 좋겠다 싶을 때가 많다. 한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읽도록 해야 한다. 우리 교회에는 좋은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 있다. 많은 유익을 얻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교회 안에 건전한 독서 모임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종연: 맞는 말이다.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것은 물론, 그들이 무슨 책을 읽는지도 살피고 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혼을 돌볼 책임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리문제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한국교회 안에 베스트셀러로 손꼽히는 어떤 책을 ‘금서(禁書)’로 경고한 일이 있다. 아무리 많은 이들이 읽고 그래서 제 아무리 영향력이 큰 책이라도 바른 목회자라면 그 위험성을 경고해야 하고 나아가 교인들이 읽는 것을 금지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최재호: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것은 쉽고 재미있고, 감각적인 것들이다. 많은 이들이 좋은 책은 어렵고 딱딱하며 지루해서 외면당한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딜레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수민: 오늘날 교인들의 수준이 좋은 책을 골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교회에서 교리교육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데 있어 교리는 필수적인 요소다. 교리나 기독교고전은 딱딱하다고들 하는데 난 이해할 수 없다. 성경말씀을 재미로 나누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눈높이 맞추기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동일한 이유로 내용을 빼고 생략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칼빈이 영국의 크랜머 주교에게 쓴 15장 분량의 편지가 있다. 사실 편지라기보다는 소논문 수준으로 읽기도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 글에서 칼빈은 ‘교회는 교리교육을 통해서만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칼빈이 진리문제를 가르치는 원인자는 ‘성령’임을 전제하고 접근했기 때문이다.
최재호: 그러면 이런 상태에 놓인 한국교회가 펴내야 할 책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이종연: 성경을 관통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그 중심사상과 흐름을 붙들 수 있는 책 말이다. 이것은 마땅히 교회의 검증을 받은 책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일은 신뢰할 수 있는 여러 사람들이 동참해 작업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교리적 숲을 볼 수 있는 배경과 함께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광호: 사실 한국교회 문제의 핵심은 교인도 목사도, 심지어 신학교수까지 성경이나 교리를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런 책들이 출간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해설서를 쓰고 싶다. 몇몇 번역서가 있지만 내용은 물론 표현이나 문법에 이르기까지 무슨 말인지 난해하기만 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최재호: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책, 그래서 한국교회가 읽기를 바라는 책이 있다면.
장수민: 소책자이지만 앙드레 비엘리의 <칼빈의 경제사상> 요약본을 권하고 싶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교회에 있어야 할 직분에 대해 언급하면서 특히 집사직을 강조한다. 교회 안에서 성경이 말하는 집사직분이 회복된다면 우리 사회에 어떤 일이 있을까 하는 문제를 다룬다. ‘재물이 아닌, 선한 일과 선한 사업에 부요한 자가 되라’는 성경의 강조를 따른다면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치유할 방안을 교회가 제시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광호: 개인적으로 F.F.Bruce의 <구약사>, <신약사>를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책을 읽으면서 성경을 무조건 열심히 많이 읽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성경을 읽을 때 그 배경작업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이른바 열심있는 성도들은 무작정 성경을 읽을 것이 아니라 그 배경과 흐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송영찬: 나는 김홍전 목사님의 책들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 <산상수훈>을 읽으면서 복음의 깊은 본질을 보게 됐고 <예수님의 행적>을 읽으며 그분의 뒤를 따르는 느낌을 받았다. 또 <사사기소고>를 통해 교회의 존재됨, 본질에 대해 생각하며 교회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게 됐다.
이종연: 몇 권의 책, 아니 한권의 책을 읽더라도 ‘일당백의 책’을 읽어야 한다. 오늘날 새로운 것이 있을까. 귀한 신학자, 귀한 목사들의 책이 많이 있지만 그들을 있게 만든 원형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너무 오래전의 인물인 어거스틴이나 바울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와 그들의 중간에 있었던 칼빈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강요> 최종판을 반드시 읽어볼 것을 권한다. <기독교강요>는 성경을 읽는 방법, 특히 성경으로 들어가기 위한 배경이 되는 교리에 대해 너무나 선명하게 풀어낸 위대한 책이다. 한국교회의 질병을 해결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 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재호: 감사하다. 힘든 길이지만 한국교회를 위해 이 길을 걸어주실 것을 당부한다.
* 소개
송영찬 목사: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저서: <교회와 사명>, <다윗왕국과 언약>, <창세기> 등
이광호 목사: 홍은신학연구원, 조에성경신학원 교수, 저서: <창세기>, <신약신학의 구속사적 이해>, <구약신학의 구속사적 이해> 등
이종연 목사: 아틀란타 바이블칼리지 교수, 저서: <바른교회>, <바른찬송>, <하이델베르흐교리문답> 등
장수민 목사: 칼빈아카데미 설립, 홍은신학연구원 교수, 저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칼빈의 기독교강요 분석>
이러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1년 전부터 어렵게 부탁해 놓은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 연지동 소재 기독교개혁신보사 사무실에서 <깔뱅>의 저자들인 송영찬, 이종연, 이광호, 장수민 목사를 만났다. 한국교회의 잘못된 독서습관의 원인과 해결책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한국교회가 원리적이고 딱딱한 책들을 읽지 않으며 그 원인은 강단이 허물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단숨에 “대안은 교회가 양서 공급과 불량서적 퇴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이 거침없이 지적됐다.
최재호: 참 만나고 싶었고 오랫동안 기다렸다. 아마도 이종연 목사님께서 미국에 계셨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좋은 기회이니 만큼 한국교회 독서습관, 예를 들어 기독서점들의 도서판매 추세를 보며 한국교회의 현 상황부터 진단해 보면 좋겠다.
장수민 목사: <생명의말씀사>같은 기독서점은 물론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등 일반서점까지 거의 매일 들르는 편이다. 서점 전면에 전시된 책들이나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어 있는 책들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많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이미 한국교회, 특히 기독출판계는 자기 정화의 한계를 넘어선 것 같다.
송영찬 목사: 독자의 필요에 따라 책을 선정하고 계획적으로 읽어나가는 것을 독서라고 한다면 ‘한국교회에는 독서가 전무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선교단체나 교회에서 이른 바 ‘필독서’를 선정해 읽기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선정된 필독서 자체에 너무 많은 문제점들이 포함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광호 목사: 동감한다. 우선 목회자나 신학생들에 문제가 많다. 실용적인 내용으로 현실에 당장 도움이 될 책들만 편식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붙잡고 묵상하거나 원리를 고민하며 생각하게 하는 책들을 읽으려 들지 않는다. 특히 오늘날 기독서점을 장악하고 있는 책들을 보면 나의 이같은 문제제기가 얼마나 온건한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이종연 목사: 전적으로 동감한다. 먼저 교회의 독서습관이나 경향이라고 할 때, 그것은 강단에서 어떤 말씀선포가 있느냐에 따라 좌우되기 마련이다. 좋은 책들이 안 팔리고 질 낮은 책들이 잘 팔린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강단이 그만큼 허물어지고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선포되는 말씀 수준에 독서수준이 맞춰진다. 여기에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출판업자나 서점의 현실 편승이 더욱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최재호: 그러면 이런 현실 가운데 놓인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장수민: 앞서 언급한대로 현재의 교회의 위기는 개교회가 교인들을 기독인으로서 갖춰야 할 정체성을 제대로 심어주지 못한데서 왔다. 교회에서 선포된 말씀을 책으로 만들어 교인들로 하여금 곱씹도록 하여야 한다. 물론 선포된 말씀이 바르고 원리적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진다. 현 상황에서 건전하고 의식있는 교회들이 출판업에 참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약교회의 성약출판사같이. 왜냐하면 경제논리에서 자유할 수 있고 교인들에게 필요한 책을 내겠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송영찬: 원리적으로는 독자가 책의 유통을 책임지는 서점이나 출판업자들을 좌우한다. 독자의 수요에 반하는 서점이나 출판사를 보이콧하거나 압력을 가해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독자들이 건전한 이해와 사고를 가졌다고 전제할 경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교회의 풍토 위에서 어떤 책이 출간되고 유통되느냐는 문제는 사실 출판업자들이나 그 책을 진열하는 서점의 역할에 좌우된다. 양식있고 건전한 의식을 가진 독자층이 두텁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실이 어떤가. 불량서적이 너무나 많이 유통되고 있지 않은가. 독자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출판사, 서점들이 변해야 한다.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며 총체적 난국이다.
이종연: 앞서 장 목사가 매우 중요한 언급을 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회는 사명을 가지고 양서(良書)를 공급해야 한다. 우리 교회는 교인들을 몇 그룹으로 나눠 그들의 신앙적 신학적 이해에 맞춰 독서목록을 정하여 제시한다. 한 50권에서 100권 정도 된다. 그리고 독후감을 발표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많은 유익이 있음은 물론이다. 이제 바른 출판, 서점운동을 교회들이 나서서 해야 한다. 의식있는 교회들이 협력해 이런 운동을 벌여 간다면 한국교회는 큰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개혁의 한 분야라 생각한다.
장수민: 사실 한국교회 상황 속에서 본다면 이같은 출판계 개혁은 불가능하게 보인다. 호주나 뉴질랜드 개혁교회들의 경우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동일한 아픔을 먼저 경험했다. 그러던 교회들이 교회 안에 서점을 구비하고 양서와 필독서들을 목록화하여 관리하고 추천하며 나아가 교회별 교류하는 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한국교회도 이렇게 나가야 하지 않을까. 언뜻 떠오른 생각이지만 신앙서적 출간문제도 총회가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송영찬: 사실 교회가 서점을 운영하는 것은 한국교회, 특히 대형교회들이 이미 하고 있다. 단, 문제는 무슨 책을 가져다 놓아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신학과 명확한 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교인들의 영혼의 건강을 위해 좋은 책, 바른 책을 가져다 놓아야 하는데, 좋은 책인지 아닌지 살피지 않고 소위 ‘잘 팔리는 책’만 가져다 놓고 있다. 좋은 책 목록이 절실하다.
이광호: 사실 어떤 의미에서 많이 읽고 열심히 읽는 것보다 ‘제대로’ 읽는 것이 필요하다. 오히려 독서 안하는 것이 더 좋겠다 싶을 때가 많다. 한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읽도록 해야 한다. 우리 교회에는 좋은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 있다. 많은 유익을 얻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교회 안에 건전한 독서 모임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종연: 맞는 말이다.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것은 물론, 그들이 무슨 책을 읽는지도 살피고 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혼을 돌볼 책임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리문제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한국교회 안에 베스트셀러로 손꼽히는 어떤 책을 ‘금서(禁書)’로 경고한 일이 있다. 아무리 많은 이들이 읽고 그래서 제 아무리 영향력이 큰 책이라도 바른 목회자라면 그 위험성을 경고해야 하고 나아가 교인들이 읽는 것을 금지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최재호: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것은 쉽고 재미있고, 감각적인 것들이다. 많은 이들이 좋은 책은 어렵고 딱딱하며 지루해서 외면당한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딜레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수민: 오늘날 교인들의 수준이 좋은 책을 골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교회에서 교리교육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데 있어 교리는 필수적인 요소다. 교리나 기독교고전은 딱딱하다고들 하는데 난 이해할 수 없다. 성경말씀을 재미로 나누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눈높이 맞추기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동일한 이유로 내용을 빼고 생략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칼빈이 영국의 크랜머 주교에게 쓴 15장 분량의 편지가 있다. 사실 편지라기보다는 소논문 수준으로 읽기도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 글에서 칼빈은 ‘교회는 교리교육을 통해서만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칼빈이 진리문제를 가르치는 원인자는 ‘성령’임을 전제하고 접근했기 때문이다.
최재호: 그러면 이런 상태에 놓인 한국교회가 펴내야 할 책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이종연: 성경을 관통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그 중심사상과 흐름을 붙들 수 있는 책 말이다. 이것은 마땅히 교회의 검증을 받은 책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일은 신뢰할 수 있는 여러 사람들이 동참해 작업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교리적 숲을 볼 수 있는 배경과 함께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광호: 사실 한국교회 문제의 핵심은 교인도 목사도, 심지어 신학교수까지 성경이나 교리를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런 책들이 출간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해설서를 쓰고 싶다. 몇몇 번역서가 있지만 내용은 물론 표현이나 문법에 이르기까지 무슨 말인지 난해하기만 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최재호: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책, 그래서 한국교회가 읽기를 바라는 책이 있다면.
장수민: 소책자이지만 앙드레 비엘리의 <칼빈의 경제사상> 요약본을 권하고 싶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교회에 있어야 할 직분에 대해 언급하면서 특히 집사직을 강조한다. 교회 안에서 성경이 말하는 집사직분이 회복된다면 우리 사회에 어떤 일이 있을까 하는 문제를 다룬다. ‘재물이 아닌, 선한 일과 선한 사업에 부요한 자가 되라’는 성경의 강조를 따른다면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치유할 방안을 교회가 제시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광호: 개인적으로 F.F.Bruce의 <구약사>, <신약사>를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책을 읽으면서 성경을 무조건 열심히 많이 읽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성경을 읽을 때 그 배경작업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이른바 열심있는 성도들은 무작정 성경을 읽을 것이 아니라 그 배경과 흐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송영찬: 나는 김홍전 목사님의 책들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 <산상수훈>을 읽으면서 복음의 깊은 본질을 보게 됐고 <예수님의 행적>을 읽으며 그분의 뒤를 따르는 느낌을 받았다. 또 <사사기소고>를 통해 교회의 존재됨, 본질에 대해 생각하며 교회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게 됐다.
이종연: 몇 권의 책, 아니 한권의 책을 읽더라도 ‘일당백의 책’을 읽어야 한다. 오늘날 새로운 것이 있을까. 귀한 신학자, 귀한 목사들의 책이 많이 있지만 그들을 있게 만든 원형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너무 오래전의 인물인 어거스틴이나 바울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와 그들의 중간에 있었던 칼빈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강요> 최종판을 반드시 읽어볼 것을 권한다. <기독교강요>는 성경을 읽는 방법, 특히 성경으로 들어가기 위한 배경이 되는 교리에 대해 너무나 선명하게 풀어낸 위대한 책이다. 한국교회의 질병을 해결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 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재호: 감사하다. 힘든 길이지만 한국교회를 위해 이 길을 걸어주실 것을 당부한다.
* 소개
송영찬 목사: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저서: <교회와 사명>, <다윗왕국과 언약>, <창세기> 등
이광호 목사: 홍은신학연구원, 조에성경신학원 교수, 저서: <창세기>, <신약신학의 구속사적 이해>, <구약신학의 구속사적 이해> 등
이종연 목사: 아틀란타 바이블칼리지 교수, 저서: <바른교회>, <바른찬송>, <하이델베르흐교리문답> 등
장수민 목사: 칼빈아카데미 설립, 홍은신학연구원 교수, 저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칼빈의 기독교강요 분석>
출처 : 최재호 기자의 성경적 교회개혁
글쓴이 : 최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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