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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성 경 공 부

[스크랩] 예배에 대한 개인적 이해

'예배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달고 보니 물이 꽉찬 저수지 뚝방이 생각난다. 담긴 것은 무척 많은데 무엇부터 글로 풀어내야 하나 하는 부담이 생기는 탓이다. 물론 주제의 방대함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 지식이 꽉찼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고민과 부담은 기꺼이 담당해야 할 우리의 몫이다. 우리 시대 교회는 이러한 부담을 진지하게 부담하지 않는 것 같다. 진리를 위해 깊은 고민을 하고 진지하게 묵상을 해야 한다면 기꺼이 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편하며 적당한 것만 모색하는 것은 우리시대 교회의 질병 중 하나다.

 

1. 예배의 정의

예배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 편의 반응이다. 주지하듯, 하나님의 계시에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가 있다. 사실 일반계시란 것도 특별계시의 조명과 인도가 없다면, 부패한 인간이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특별계시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인식(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을 인식하게 될 때, 그 하나님의 어떠하심(성품), 창조와 구속사역, 섭리와 은혜, 심판과 권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예배와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깨닫게 된다. 즉 계시된 하나님의 실존 앞에서 피조물로서, 또 구속받은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은혜받은 자로서 감사와 영광을 그분께 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설교(하나님 말씀의 선포)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인간에게 계시하신 말씀이 없이는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으며, 당연히 예배로 나아갈 수도 없는 까닭이다. 오늘날 강단에서 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는 것은 우리 시대 참된 예배가 사라지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개혁자들은 이런 행위에 대해 '우상숭배'라고 규정한 바 있다. 말씀의 기준을 따라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잘못이고 죄로 성경은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즉 예배란 우리 편의 행위적 열심이나, 엄숙한 분위기도 나의 종교적 감흥도 아니며 따라서 내가 열심히 노력했다고 해서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렸다고 착각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2. 예배의 요소

전술한 바와 같이 예배는 하나님의 자기계시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자기계시와 인간의 반응을 예배의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기계시는 설교(말씀선포)라고 할 수 있고, 인간의 반응은 기도(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는 기도에 찬양을 포함하고 있다)와 헌상(헌신, 헌물)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지 않은 모든 기도나 헌상이 예배의 요소가 될 수 없음은 말 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즉,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가르침이다. 성령과 말씀, 그리스도를 통해 예배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모든 예배행위 즉, 형식이나 구성요소, 의미 등은 늘 말씀과 성령의 조명아래 이뤄져야 한다. 말씀의 조명없는 인간의 어떠한 행위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타락한 인간 존재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일 수 밖에 없음과 동일하다.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 아래에서 그리스도의 외와 공로를 성령의 역사로 덧입게된 인간만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는 것이 전제된다.

 

하지만 우리시대 교회에는 이러한 말씀과 성령의 인도와 무관한 '인간의 종교적 열정'으로 충만하다. 예배를 뜨겁게 드려야 한다는 전제에서 열심과 열정을 강조한다. 하지만 말씀의 인도와 지시 없는 그 어떠한 행위도 죄악이며, 우상숭배에 다름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열심이나 간절함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여기서 예배의 핵심요소라 전술한 '말씀 선포'를 생각해보자.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충실히 선포하고 드러내는 일에 설교자들은 얼마나 충실하게 참여하고 있는가. 오히려 자신의 욕심과 판단에 따라 적절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 복지정책, 교육철학, 윤리기준 등등...

 

하지만 말씀선포란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대로, 말씀만 전하는 것이다. 여기에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전체성경(tota scriptura)'의 개념이 적용된다. 즉 '오직 말씀'을 통해 설교의 범주가 말씀 안에 제한된다는 의미가 드러나고, '전체 성경'의 의미에서 화자(speaker)로서의 하나님의 진의와 본의가 드러나는 것이다. 누구나 성경을 말하지만(심지어 교회의 대적자나 이단들도) 전체적인 맥락과 배경에서 이해되지 않는다면, 흔히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이해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시대에 전체 성경으로의 정신은 매우 강조되어야 할 항목이다.

 

그러나 분명 우리시대 교회들에는 이런 정신과 의미가 사라져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자로 세워진 목사들도 문제지만, 그것을 감독할 당회나 교회의 무지와 게으름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악순환의 고리가 되어 교회를 더욱 약화시키고 타락시키는 요인이 된다.

 

교회에 선포되는 말씀이 이러하니 거기에 따른 기도와 헌상이 바를 수 없다. 오늘날 기도는 마치 하나님을 내 욕심을 성취시켜 주는 존재로 만들고, 나아가 기복주의와 세속주의로 뒤섞어 버렸다. 기도는 말씀의 기준을 따라 내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드려져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의 뜻에 반하고 어긋난 나의 뜻과 갈망은 하나님의 뜻앞에서 복종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도는 말씀의 기준 앞에서 너무나 변질되어 버렸다.

 

헌상은 어떠한가. 내가 열심히 봉사하고 충성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하나님의 돈이 부족한 것도, 일할 일군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는 하나님 자신의 열심으로 드러나지고 선포된다. 아니, 오직 그분에 의해서만 당신의 영광이 제대로 드러나고 선포된다.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의 참여는 그 영광을 오히려 더럽히고 오염시키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존재와 사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은 오직 그분의 자비의 은혜요 십자가 신비의 결과일 따름이다.

 

3. 회복되어야 할 예배

늘상 여기까지 오면 할 말이 막힌다. 우리시대 교회들이 회복된 예배를 볼 수 있을까. 그런 예배를 드릴 수가 있을까. 참 예배는 참 부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그분에 말씀에 의해 통치되는 부흥....하지만 어찌하면 그리될 수 있을까. 막막하다.

오늘날 한국교회들은 '어게인 1907'을 외친다. 그때의 부흥이 우리 시대에 재현될 것이라 믿고 그렇게 기도하고 외치며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상당수 교단과 단체, 기구가 참여하고 점점 분위기를 띄워가고 있다. 이른바 평양대부흥의 평가도 엇갈리고 있는 것이 아실이지만, 긍정적으로만 생각한다 해도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안타깝지만 그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시기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도에 달린 것을 우리 인간에게 맞춰달라고 간구하는 일은 과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심이란 용어로 정당화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프로그램과 캠페인을 통해 이뤄질 수 있을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때에 가능한 일이며 인간의 열정이나 갈망과 관계없다. 단 하나님에 의해 시작된 일이 인간에게 열망과 열정을 부으시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다른 문제이다. 지금의 한국교회의 열정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는 예배의 회복이 전제되지 않은 가운데 이런 열심과 정열은 참된 부흥으로 이어질 수 없다. 일말의 가능성까지 배제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바른 계시가 참 예배와 부흥의 전제란 점은 분명하다.

 

예배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면 우리에게 바른 설교가 회복될 것이다. 그래서 말씀 앞에서 두려워 떨며 복음 가운데로 나아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에 감격하여 기쁨과 희락이 넘침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창조사역과 구속사역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 가운데 예배 중에 충만하게 선포되고 드러나지게 되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 이것이 참된 예배의 회복의 전제이다.

 

그러나 우리시대에 참된 설교가 사라지고 바른 성경의 사역자가 희귀한 것은 우리 시대에 참 예배의 회복도 참 부흥도 요원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나님의 교회는 다수가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수의 남은 자들에 의해 계승되어지는 것이 성경의 증거다. 우리는 참 예배를 통해 이 땅에 소망없음을 인식하고 천국을 대망하는 자리로 나가야 한다. 우리시대 참된 예배와 부흥을 열망하지만 그 일이 이뤄질 가능성이 없음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부족과 무능한 현실 앞에 그리스도의 위로와 공로를 기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출처 : 최재호 기자의 성경적 교회개혁
글쓴이 : 최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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