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제로서의 새벽기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내신 은혜의 수단들을 의미있게 사용하려면, 그 신행들을 내신 의도나 정신 그리고 자세에 맞게 갖추어서 해야 정당할 것입니다. 말씀이나 성례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께서 내신 은혜의 수단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말씀답게 전하지 못하고, 성례를 성례답게 시행하지 않고, 기도를 정당한 자세를 취하고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사용하지 않으실뿐만 아니라, 자기의 종교활동 정도에 머물거나 아니면 더 나아가 구원받은 자요 그리스도의 교회로서의 정체성마저 의심을 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구약성경에서 많이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시지 않거나 정당한 의식과 바른 자세를 취하고 하지 않은 제사라든지 이스라엘의 열심에 대해서는 엄하게 꾸짖으시거나 징벌을 하신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고 지시하신 바에 의지하지 않고 사람의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하고나 스스로 규율을 만들로 행하는 일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을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계시의존적인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신 은혜의 방도입니다. 하지만, 기도하게 되는 것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바른 인식과 관계를 가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생명의 발휘로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말씀의 양육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인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고 싶어하는 사상과 마음을 심어줄 수 있도록 하는게 더욱 바람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자신을 바르게 파악하는 사람이라면 강요를 하지 않고, 권유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은혜의 수단을 사용할 것입니다.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기도를 강요하는 것에 비해 하나님이나 하나님나라의 사상을 가르치는 것에는 매우 소홀한 것을 봅니다. 그러니 믿은지 얼마안된 신자나 어린 신자들이 기도를 하려고 하면 그 내용이 빈약할 뿐만 아니라, 형식적이고 공적주의적인 심정으로 하거나 운동주의식으로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차츰 정신과 의식은 빠진 종교인으로 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무엇인지 안다면, 새벽에 기도해야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둥, 자기성공을 위해 새벽에 기도해야 한다는 식의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고, 정당한 소원을 아뢰고, 순수하게 의지하는 마음을 가진 신자라면 언제든지 기도해도 들어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기도의 응답은 나의 열심이나 공적에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정당한 관계에 있느냐, 하나님께 정당한 것을 소원하고 아뢰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기도를 하면서 새벽기도를 백날한다면 단순히 종교생활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와 교제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경영을 알아아고, 거기에 맞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내용들을 구하면(먼저그의나라와의를구하면), 하나님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고, 이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을 새벽에만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존재 자체나 내신 신행들에 대한 바른 의미들을 모르니 열심과 형식에만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양이 아니라, 질에 있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40일 작정기도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한번 기도하면 이루어주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운동주의식으로 강요를 하고 공적을 쌓든 행하는 한국교회의 많은 교회들은 마치 타락한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을 뿐입니다. 제 말이 새벽기도를 하지 말라는 얘기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언제 기도하든지 바른 의미와 자세를 취하고 한다면 상관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새벽기도를 안하면 이상한 사람이고 교회이며, 수준이 낮은 사람으로 평가하는 자체가 문제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도록 하는 풍토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것은 강요를 해서 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풍성히 가르쳐 보십시요. 구원의 깊은 도리들을 전하면 생명의 발휘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자기를 부인한다는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실이 없는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통해 자기의 비참함(성도의정체성)에 대해 바로 알도록 하고, 하나님과 교회에 대해 바른 가치관을 가지도록 한다면 그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이루는 정당한 자세를 가지며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백날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만한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사람에게서는 바른 기도생활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떠한 일을 하거나 도구를 사용할 수 있으려면 그만큼 자라야 가능한 것입니다. 자란 만큼의 수준에서 운동도 하고 분별력도 생기고 활동도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기어다니는 정도에서 점점 앉기도 하고 한발짝씩 걷기도 하다가 마침내 자라면서 뛰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와같이 기도에 대한 도리들을 잘 가르쳐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 수준의 정도에서 할 수 있는 것이지 장성한 사람과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하고픈 마음이 있어서 기도한다고 할찌라도, 그 사람이 기도하는 수준이나 간구하는 내용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영적인 장성의 정도에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은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수준의 차이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린아이에게 장정들이나 겨우 들을 수 있는 역기를 들으리고 하는 것과 같은 무모한 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람의 장성의 정도를 무시하고서 어떤 높은 수준의 내용을 요구한다면, 그 또한 은혜의 수단을 멍에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직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분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에 대한 인식이 아직 희미한 가운데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에게 기도부터 가르치거나 기도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장성한 만큼의 수준에서 자연스럽게 하고 싶어서 할 수 있는 정도에서 하도록 놔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꼭 도와야 할 일이 잇다면 기도에 대한 도리들을 잘 가르쳐 주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스스로 나와서 그 사람이 수준에서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도무지 밤을 새워서 기도해야 할 정도로 기도해야 할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기도해야겠다는 당위성이나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자꾸 철야기도나 새벽기도를 강요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멍에가 되어버리고, 기도자체에 대한 큰 오해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저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저녁내내 몸부림치다가 새벽이 되면 몽롱한 상태로 집에 들아와서 한날을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새벽기도가 마치 한국교회의 부흥한 요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 또한 큰 오해입니다. 종교활동을 거대하게 하고, 종교심을 부추기며, 열심을 만들어 내기도 했는지는 몰라도, 신자다운 신자의 자태, 교회다운 교회의 자태를 만들어내는 일에는 실패한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이 어떤 외적이고 양적인 성장이나 업적을 세우는데 있는 것입니까? 숫자는 얼마 늘어나지 않을지라도 나 하나가 하나님에 대해 바르고 풍성하게 인식하며 더욱 깊은 관계와 교제 가운데 들어가서 더욱 의지하고 살아가게 되었다면 그것이 그 교회에 있어서는 본질적인 큰 부흥을 한 것입니다. 교회의 질, 성도상호간에 얼마나 지체의식을 갖추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주고받은 성숙한 인격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교회가 드러내야할 거룩한 자태와 행보를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부흥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는 부흥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를 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자꾸 교회 안에 있는 비본질적인 요소나 반신국적인 요소들을 찾아내서 순수하고 바른 교회의 모습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 일환의 하나로 하나님께서 내신 은혜의 수단들의 의미와 정신과 자세를 바로 파악하여 정당하게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차라리 없는게 나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부흥과 개혁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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