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상담 현장에서 들리는 성령의 탄식 | ||||||||||||
권위주의 내세운 목사에 굴종하는 교인들…병든 교회에 당당히 외치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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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2년여 동안 교회 상담을 해오면서 ‘교회 문제 상담, 이것을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이제는 항상 나 자신부터 교회생활을 흠이 없게 잘 하고 있는가 하는 반성을 먼저 하게 된다. 그리고 ‘교회는 이런 것이다’ 하고 훈계하는 식으로 대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찾아온 것은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데 무엇인가 교회가 교회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겪어야 하는 실망과 고통과 슬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과 슬픔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느끼고(체휼하고) 고뇌하고 대안을 찾으려고 함께 몸부림치는 것이 상담의 요체라고 본다.
교회 상담을 하다보면, 한없는 환멸과 슬픔에 몸부림쳐야 한다. “아니, 이럴 수가…”를 수없이 되뇌게 된다. 이러다가는 내가 먼저 시험에 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한두 번 한 것이 아니다. 언젠가 교회개혁을 외치는 목사가 “한국의 목사들이여! 과연 예수를 믿는 분들입니까” 하고 절규하는 설교를 듣고 좀 과장된 한탄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담을 하는 동안 그것이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실망과 탄식, 그리고 슬픔과 수치를 느꼈다. 그동안 상담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기를 내심 얼마나 기도했는가. 그러나 슬프게도 소수의 사례를 제외한 대부분이 사실이다. 그래서 수치스럽고 서글프다. 성령의 탄식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다원주의가 진리이기만 하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다른 길을 통해서 구원과 천국의 소망을 이루고 싶다는 충동에 온 몸을 떨어야 했다.
문제의 발단은 대부분 목회자
그동안 상담해온 교회 문제는 대부분이 슬프게도 목회자로부터 발단이 되었다. 목회자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과 이에 따른 목회자의 우월의식, 탐욕과 교만, 고급 승용차를 선호하는 세속적인 야망과 상류 생활을 꿈꾸는 왜곡된 성공주의, 초심 상실, 도덕적 양심의 실종, 불투명하고 자의적인 교회 재정 운용, 자기중심적이고 파행적인 교회 행정 운영, 교회 세습, 혈육 중심의 교회 운영, 불륜 등등 거의 대부분이 목회자의 문제다.
목회자의 문제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왔는가. 이런 것들을 때를 놓치지 않고 지혜롭게 대처하거나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당회나 제직회의 구성원인 장로나 집사․권사 등 평신도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절대적인 원인과 책임이 목회자 자신에게 있다.
실제로 평신도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것은, 한국적인 교회의 정서에서 목사를 권면하고 질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개신교가, 특히 목회자들이 성경 말씀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목사를 비판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비판하는 것이라든가 하나님의 대언자를 비판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이런 해괴망측한 정서가, 값싸고 천박한 은혜의 정서가 교인들의 마음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게 되었을까?
병든 기독교, 병든 신앙
교회는 기본적으로 교제와 봉사가 잘 이루어지고, 희생의 경쟁이 있고, 고아와 과부와 병든 자가 고통 받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 그런 경건한 삶의 바탕 위에 예수님을 닮아가는 모습이 여러 면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교회가 바로 하나님이 이 땅 위에 굳게 세워지기를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일 것이다. 고린도후서 8장의 마게도냐교회가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으로 어려운 형제들을 돕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병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하기도 쑥스럽다. 교회가 세상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따라가는 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옛날에는 사람이 시원찮아 보여도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래도 신뢰했다지만, 지금은 신뢰하려다가도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일단은 다시 생각해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요즘 우리나라 과거 10년간의 종교 인구 통계 자료에 의하면, 거의 모든 종교의 인구가 증가했으며 특히 가톨릭의 인구 증가가 괄목할 만한데 유독 기독교 인구만이 감소하였다. 또 어느 기독언론의 설문조사 결과에서, 비종교인에게 앞으로 종교를 선택한다면 어떤 종교를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 기독교를 선택하겠다는 사람은 불교를 선택하겠다는 4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7% 정도에 그쳤다고 한다. 이것이 그냥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다.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깨어 있는 평신도가 되어야
그런데 교회가 병들어가는 게 목회자의 문제만일까. 평신도의 우민과 목회자에 대한 굴종, 방관자적인 신앙생활, 여기에 평신도의 열세한 성경 지식 수준을 악용하는 목회자의 사제적 권위주의가 교회를 병들게 하는 공범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병든 교회를 슬퍼하는 자가 그렇게 많지 않다. 바알에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의 종들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루 속히 목회자에게 굴종하는 무책임한 신앙생활을 청산해야 한다. 목회자를 기쁘게 하는 말을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을 담대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평신도가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목회자의 일탈을 막을 수 있다. 서글픈 일이지만 목회자의 자정 능력을 맹신하고 있으면 안 된다. 천박한 은혜 논리를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목회자 자신이 선한 양심을 회복하여 수치심을 무릅쓰고 과오를 인정하는 각고의 통회자복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회개하기만 하면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우리의 죄과를 기억조차 안 하시는 자비의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또한 우리는 사악한 세력들의 궤변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사탄의 세력들은 지혜롭기가 믿는 자들을 뺨치는 수준이다. 그들은 병든 교회를 슬퍼하면 은혜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폄하한다.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역공을 한다. 문제가 생기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역이니 우리는 그저 기도만 하자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죽으면 죽으리라는 불퇴전의 일사각오로 피눈물을 쏟아 기도할 때 하늘 보좌가 움직인다는 것을 기억하자. 외쳐야 할 곳에서는 당당히 외쳐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는 사악한 세력들의 그럴 듯한 논리에 속지 말자. 외쳐야 할 곳에서 불의의 현장에서 침묵하면 돌들이 외칠 것이라고 예수님은 연약한 우리에게 있을지도 모르는 직무유기를 경고하셨다.
교회개혁실천연대가 문제 있는 교회만 다루지 말고 본이 될 만한 모델 교회도 발굴하여 네거티브 일변도의 활동이 아니라 포지티브 운동도 병행하는 균형 있는 활동을 하자고 늘 다짐해보지만, 이미 네거티브에 여력을 거의 다 소진해 버려서 안타깝다. 교회 상담을 하면서 소박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교회개혁실천연대가 할 일이 없는 시대가 속히 왔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의 나라 확장에 올인하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다.
신흥식 /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처장
외쳐야 할 곳에서 불의의 현장에서 침묵하면 돌들이 외칠 것이라고 예수님은 연약한 우리에게 있을지도 모르는 직무유기를 경고하셨다.
주님이 이런 말씀을 주셨군요. 전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침묵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니었군요!! 침묵하지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옛날같이 안하겠습니다. 지혜롭게 외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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