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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7영리/구 원 론

[스크랩] 언약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4): 언약 이전의 언약

언약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4)

 

언약 이전의 언약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언약관계에 놓여져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언약을 일종의 법칙으로서 설명하였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한다는 그것 자체만으로서 일종의 법칙을 따라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 일종의 법칙이 바로 언약이다. 이런 법칙으로서의 언약을 창조언약”(Creation Covenant), 혹은 태양언약이라고 한다. 우주가 존재하는 한 그 우주의 변화와 존속에 관한 법칙의 설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참고:1, 8:22,89:34-37,31:35-37,33:20-22,25). 이런 존재의 법칙으로서의 언약은, 소위 아담언약(혹은 행위언약)이라고 알려진 것보다도 우선된다.

 

이러한 창조언약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참 중요하다. 우주 가운데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인 인간이, 아담이 대표가 되어서 하나님과 맺은 그 언약(아담언약, 혹은 행위언약)이라고 불려지는 것보다 이전에 이미 하나님과 일종의 언약을 맺고 있었다는 것은, 그 행위언약으로 인하여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순종의 의무와 축복의 어떤 약속을 맺게 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예배하는 존재인 것은, 아담이 하나님과 행위언약을 맺기 이전에 이미, 피조물로서 존재하는 그것 자체로서 이미 주어져 있는 과제요, 임무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암시적으로 강조하고 또 강조하였다. 이번에도 강조하는 것은, 이것을 언약신학을 논하는 자리에서조차 별로 언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임을 의식하기 이전에 이미 인간이다. 내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존재라는 것을 의식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요, 그 인간 속의 바로 나 자신이라는 인식, 이것이 바로 언약신학의 출발점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출발점이요, 나 자신에 대한 인식의 출발점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인식의 출발점을 먼저 언급하는 것은, 이런 출발점에 대한 인식이 바로 나 자신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창조언약을 아는 것이 어떻게 나 자신을 아는 출발점인가? 내 자신이 창조물인 줄 안다면, 나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바로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나 자신의 지, , 의가 그 마땅한 바 대로, 알고, 느끼며, 의지하고 있는가? 나의 마음(mind)과 마음(heart)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나 자신을 내 자신이 참으로 알고 있고, 그 원하는 것을 따라서 행하고 있는가? 바로 이렇게 나 자신이 나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창조언약에서 언급하였던 존재의 법칙으로서의 언약 속에 있는 모습이다. 나 자신이 나 자신 존재하는 그대로 인식하며 파악하고, 그 나 자신의 존재의 심층 깊은 곳에 있는 그 욕구대로 행하여도 전혀 잘못된 결과를 낳지 않는, 참 자유와 정의, 그리고 행복한 모습, 그 모습이 바로 창조언약 속의 나인 것이다. 이 창조언약은, 그렇기에, 나 자신의 마땅한 모습(myself as it ought to be)을 그려놓고 있는 조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 자신이 마땅히 살아가야 할 그 모습, 마땅히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알고, 경배하며, 그 뜻을 따라서 행하면서 살아가는 그 모습으로서의 내가 바로 이 창조언약, 존재의 법칙으로서의 언약 속에 규정되어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나의 지성이 나의 감정과 어떤 관계에 놓여져 있어야 하는가? 나의 지성과 정서가 나의 의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한 나의 의지는 나의 지성과 정서에 어떤 기능을 행사하는 것이, 그 마땅한 영향이며, 관계인가?

 

이런 질문들은, 바로 나 자신의 나됨(selfhood)에 대한 질문에 이르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이해했는가 싶으면 어느새 미꾸라지처럼 나의 인식의 어망(魚網) 그 틈 사이를 빠져나가 버리고 마는 존재가 바로 나이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의문이 생긴다고 하였다. 저 수많은 별들 너머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는, 그것을 헤아리고 있는 바로 나 자신은 누구인가? 문득 사로잡는 질문들이다. 그것을 묻는 자는 바보라고 하였던가? 독일계 유태인 시인 하이네가 한 말이다. 그런 나에 대한 질문과 더불어서 나와 더불어 함께 하는 또 다른 존재를 문득 연상케 하는 것이 바로 이 언약신학인 것이다. 그 다른 존재가 아주 가까운 지근의 인물이든, 우주 끝에 있는 절대타자이든, 그런 인식을 전제하는 것이 바로 이 언약신학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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