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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7영리/구 원 론

[스크랩] 언약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6):언약의 하나님이 아니면 전혀 하나님이 아닙니다(II)

언약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6)

 

언약의 하나님이 아니면 전혀 하나님이 아닙니다(II)

 

 인간의 자유는 상대적이다. 하나님의 자유는 절대적이다. 인간의 자유와는 다른, 절대자를 가지신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절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시지 않으실 수 있는 자유는 그에게 없다.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자유도 <결코> 없다. 거짓말 할 수 있는 자유 또한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유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는가? 거짓말 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보다 못한 자유를 하나님께서 소유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의 자유는 정녕 절대적인 자유가 아닌가? 만일 하나님이 거짓말 하실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고, 만일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이 자유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자유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못하는 <필연necessity>에 종속되신다. 존재하지 않으실 수 없는 그 <필연>에도 종속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연>은 결코 그의 <절대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필연과 자유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연과 자유가 서로 상보적인 개념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연을 일종의 <강제 compulsion>으로만 생각하고, 또한 그 <강제> <물리적이고 외압적인> 강제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짓말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 외의 어떤 다른 존재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강제를 당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거짓말 할 수 없게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의 거짓말 하실 수 없음에 대해서 너무나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외에 하나님 자신을 강제할 수 있는 분이 또 누가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바로 그 존재가 하나님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거짓말 하실 수 없는 것은, 하나님 외의 다른 어떤 존재에 의한 강압이나 강제에 의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 안에서의 스스로를 규제하고 스스로를 제약하는 그런 힘, 그런 동기, 그런 기질, 그런 성향, 그런 운동성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내적 필연성inward necessity>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으실 수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외의 다른 존재의 힘이나 의지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존재하지 않으실 수 없게 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다른 존재가 하나님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실 수 없는 것은, 하나님  자신 안에서 스스로를 규제하고 스스로를 제약하는 그런 힘, 그런 동기, 그런 기질, 그런 성향, 그런 운동성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되지 않으실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내적 필연성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되지 않으실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외부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내적인 필연성에 의해서 거짓말을 하실 수가 없고, 존재하지 않으실 수 없게 되는 것이라면, 이런 논리를, 하나님의 작정에 적용할 수 있다. , 하나님께서 한 번 작정하신 것을 성취하지 않으실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한 번 작정하신 것을 성취하시는 것이 어떤 다른 존재의 외부적인 강압이나 강제에 의해서 성취하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한 번 작정하신 것을 그 작정하신 것에 <매여서> 그것을 성취하신다고 해서 그가 <절대자유>하지 못하신 분이 되는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 만물의 역사를 운행하시고 또한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자들을 구원하신다고 해서 하나님이 <절대자유>하지 못하신 분인가? 만일 이런 질문들에 올바르게 답하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내적 필연성>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존재하는 또 다른 하나의 오해는, 특별히 하나님의 자유의 영역인 <영원>, 인간의 자유의 영역인 <시간>의 범주로 오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칫 <영원> <시간화temporalization>시키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이것은, <영원>을 시간의 <무한한> 연속쯤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영원> <과거>라는 <시간> <무한정으로> 연장한 것도 아니고, 또한 <미래>라는 <시간> <무한정으로> 확대한 것도 아니다. <영원>이란 오히려 <과거>,<현재>, <미래>를 감싸면서 또한 초월하고 있는 그 <무엇>이다. 언제든지, <영원>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속으로 뛰어들어올 수 있고, 관계할 수 있는 역동적 관련성을 <시간>과 갖고 있다. 이런 <영원> 속에 하나님이 존재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은, 언제든지, 그 뜻하신 대로, <과거>속에 개입하실 수가 있고, 또한 <현재> <미래> 속에 돌입해 오실 수 있다. 하나님의 자유는, <시간>내의 자유인 인간의 자유와는 달리, 절대자유이면서, 또한 역동적인 자유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예정>을 생각할 때, 무한한 과거의 어떤 싯점을 영원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영원 속에서 예정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지적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무한한 싯점에서의 영원 속에서 예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영원> 속으로 돌입해 오실 수 있는 그 <영원>으로부터, 모든 것을 <작정하시고> 또한 <예정하신다>. 작정하시고 예정하신 것을 성취해가는 것 때문에, 그 예정과 작정의 프로그램에 매여서 하나님이 자유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하심 자체가 역동적이기 때문에, 그의 <영원>, 그의 <자유>도 모두 역동적이다. 이런 역동성을 갖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내적 필연성>인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되, 당신의 언약에 스스로를 묶으시는 것이 바로 이런 <내적 필연성> 때문이다. 절대자유하신 분이시면서도 그러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의 언약은 고귀한 것임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다. 언약의 하나님이 아니면 하나님일 수 없다는 말의 의미도 바로 이런 뜻에서이다. 언약이란 바로 하나님의 내적 필연성 그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의 행위<혹은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음 주에 살펴보기로 하자.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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