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5)
언약의 하나님이 아니면 전혀 하나님이 아닙니다(I)
우주 만물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것, 심지어는 나 자신의 지정의의 모든 요소들 사이에 있는 그 마땅히 존재해야 할 바(as they ought to be)에 대한 것이, “존재(생명)의 법칙으로서의 언약”(곧, 창조언약)이라고 하였다. 문제는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에 있다. 존재하는 것은 운동한다(act or move). 모든 존재하는 것은, 그 존재한다는 것 자체 안에 이미 운동의 “경향성”을 갖는다. 왜 그런가? 그것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속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고정된 불변(不變)의 어떤 원자(原子)가 아니다. 부동(不動)의 동인(動因)이 아니다. 하나님은 운동 그 자체이시다. 오해하지 말라. 운동하는 것이 모두 하나님이란 뜻이 아니다. 단지, 하나님께서는 그 당신 안에 부단히 운동하시는 속성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다. “운동”이라는 말을 어떤 물리적인 법칙으로만 생각하지 마시라! 그래서 오히려 “역동성”(dynamicity)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겠다. 성경의 개념으로 표현하자면, “사랑”과 “의”(진리)이시며, “생명”이시다.
성경의 하나님은, 창조 이전부터, 영원 전부터, “이미” 사랑이셨다. 오직 하나님이 “한 분”뿐이시기만 한다면, 창조 이전에, 한 분뿐이신 그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랑”이실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은 성경의 하나님에 대한 오해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실 뿐 아니라, “삼위”이시기 때문이다. 삼위 하나님 안에서의 영원 전부터의 활동, 혹은 “운동”이 바로 “사랑”이며, “의”(진리)이고, “생명”이다(“의”는 “사랑”의 활동패턴이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특성은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속성이 그 분의 창조운동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 모든 존재의 경향성이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존재”(Being)이시면서 또한 “생성”(Becoming)이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자신을 “존재”로서 계시하시되 그 존재하심의 “역동성”, 혹은 “경향성”에 의해서 그 존재하심을 “감추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를 아무리 많이 드러내신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우리 인간들(혹은 신자들)이 확신을 갖고 그 분에 대해서 알되, 모든 것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영원히 “생성”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이런 표현은, 칼 발트의 변증법적 신학이나 하숍의 과정신학을 비판하기 위해서 그들의 “용어”를 역이용해서 한 말이다-귀있는 자는 들을지언저!).이런 “경향성”(tendency)은, “기질”(disposition)이며, “성향”(inclination)이고, “습관”(habit)이란 개념과 상호연관되어 있다. 이 상호연관성에 대해서 앞으로 더욱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우선, 이런 모든 존재하는 것의 운동하는 경향성이 바로 언약을 가능케하는 토대라는 것이다. 언약은 하나님의 운동(활동)의 아주 중요한 한 표현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은 하나님되심의 그 속성으로 인해서 언약의 하나님이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언약의 하나님이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말은, 언약의 하나님이 아니면 그 하나님은 아예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삼위 안에서 스스로 언약을 체결하신 분이다. 하나님의 내적 경향성(혹은 내적 필연성, inward compulsion, necessitate finis) 때문이다. 결코 필연에 의하여 강제되시는 분이 아니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어떤 제약 속에 묶어두시는 것, 바로 그것이 “언약”이라는 것이다. 쉬운 말로 하자면, 하나님께서는 거짓말 하실 수 없는 것으로 스스로를 묶으셨다는 것이다. 의로우실 수 밖에 없고, 또한 사랑이실 수 밖에 없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생명이실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실 수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은 결코 하나님이실 수가 없다. 그래서 존재하실 수 밖에 없는 필연에 매여 계신다. 하나님되심의 내적 필연성에 의해서 자신을 묶으신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묶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다. 오해하지 말라. 언약맺으심이 내적 필연성에 의한 것이라는 말을, 외적 필연성(outward compulsion, necessitate coactionis)에 의해서 된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절대자유하신 분이다. 어떤 외적 강제에 의해서도 제한되실 수 없는 분이시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이실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이실 수 밖에 없다. 바로 그것이 내적 필연성이라는 것이고, 그것으로 언약을 맺으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예정론을 오해하게 된다. 하나님의 작정하심을 오해하게 된다. 하나님의 언약의 역사를 오해하게 된다. 모든 오해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설명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다음 주일에 그렇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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