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8)
사랑의 언약 언약의 사랑
사랑은 홀로 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이 사랑이라 함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사실 그 이상임을 암시한다. 사랑이 어떻게 대상이 없는데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의 하나님은 단일신론적인 하나님이 아니다. 그렇다고 다신론적인 하나님인가? 과연 하나님”들”이 계신가? 아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유일신론적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고(예,요1:1) 성령도 하나님이시되(예,고후13:13), 예수님과 성령이 아버지 하나님과는 다른 “분”(person)이라고 한다(예, 마3:16-17). 그런 면에서 하나님은 세 “분”이시라고 할 수 있다. 한 “분”이시면서 세 “분”이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이 “한” 분 되시다는 것으로는 의미가 충분치 않다. 하나님이 한 “분” 이상이신, “분들”이어야만 그 의미가 충분해진다. .
만물이 창조되기 훨씬 이전부터 하나님은 사랑이셨다. “세 분”이신 하나님들께서 사랑하신 것이다. 그 사랑은 어떤 것일까? 영원 전부터 “세 분” 하나님들께서 사랑하신 그 사랑의 관계를 성경은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첫째로, “낳으심”(generation)이 그것이다. 이것은, 두 “분”이 서로 동일본질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히1:3)이시고 참 형상(골1:15)인 것이다. 이 “낳으심”은, 아들이 역사의 어떤 싯점, 어떤 시간상의 사건으로서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들의 인간으로서의 “성육”시에, 혹은, “부활”이나 “승천”시에 낳아지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역동적 영원세계에서의 “관계”로서의 “낳으심”이다. 아버지는 <영원히> 낳으시는 분이시고, 아들은 <영원토록> 낳으신 바 되는 분이시다. 그래서는 아버지는 영원히 “아버지”이고, 아들은 영원히 “아들”이시다. 아들이 만물과 피조물에 대해서는 “아버지”일수 있지만(사9:6), 그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들”이다. 그 아버지도 아들을 부르기를, “하나님” 또는 “주”라고 한다(히1:8). 중요한 것은, 이 “낳으시고 낳으신 바 되는” 이 관계가 바로 사랑의 관계이며 이 사랑의 관계가 하나님 안에서의 영원한 언약이라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언약이란,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서 아버지가 되고,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아들이 되기로 한 그 관계, 그 사랑의 관계를 말한다.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사랑의 언약이 “낳으심”인 것이다.
이런 사랑의 언약은 성령이 아버지, 그리고 아들과의 사이에 가지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 관계를 두 번째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나오심”(procession)이다(요15:26). 성령은 아버지에게서 나오고, 또한 아들에게서 나오신다. “낳으심”이 역사적, 시간상의 사건이 아닌 것 같이, 이 “나오심”도 시간상의 역사적 사건과 일차적으로 관계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나오시는 것이 “오순절강림”시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영원 전 세 “분” 하나님 안에서의 영원한 관계로서의 “나오심”이라는 것이다. “낳으심”이 사랑의 관계이고, 또한 사랑의 언약의 표현이라면, “나오심”도 똑같이 사랑의 관계이고 또한 사랑의 언약의 표현이다. 성령께서 아버지와 맺은 언약이 바로 “나오시는” 관계이고, 아들과 맺은 언약도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성령을 “보내시는” 자로, 성령은 아버지에게서 “보내심을 받는” 자로서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그와 같이, 아들은 성령을 “보내는” 자로, 성령은 아들에게서 “보내심을 받는” 자로서 서로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하나님 “세” 분(persons) 안에서의 영원한 언약이 결코 <상업적이거나 법률적인> 계약(contract)과는 관계가 멀다는 것이다. “낳으심”과 “보내심”, “낳으신 바 됨”과 “보내신 바 됨”은, 결코 상업적 이익관계나, 법률적 구속을 갖는 어떤 계약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표현이다(물론 이 사랑은 거룩하다! 의롭고 또한 진실하다! 두말하면 무엇하랴!). 세 분 하나님께서 서로를 향하여서 “사랑해 달라”고 하는 상호간의 호소이며 그 호소에 답하는 약속들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약”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낳으시는” 사랑을 영원토록 나누시며, 아버지와 성령, 아들과 성령은 “보내시는” 사랑을 영원토록 나누시는 것이다. “낳으시고” “보내시는” 사랑으로서의 언약이며, 그 언약 안에서 “낳으시고 보내시는” 사랑을 나누신다. 사랑의 언약이며, 또한 언약의 사랑을 나누시는 것이다. 그 사랑의 사귐과 나눔 속으로 부르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뜻이시다(1요1:3).
그 나눔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우리에게 “낳으심”과 “보내심”의 그 무엇이 없을 때, 세 분 하나님의 그 “낳으시고 보내시는” 사랑 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 언약을 알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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