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하시딤과 하스몬
노우호: 시리아 나라에 내분이 일어났을 때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제사장이 되었는데 그가 시리아의 내분의 양쪽 중에 트리폰을 배격하고 디메트리우스를 지지한 것으로 인하여 디메트리우스는 유대인들에게 아주 호의적이였습니다 그래서 세금을 완전히 면제 하여 줄 것을 약속하므로 유대인들은 이제 완전한 자주 독립국가와 마찬가지로 되었다고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평화가 정착되는 것은 좋은데 레위지파가 아닌 사람인 시므온의 제사장직에 대한 불만이 하시딤을 중심으로 생겨 나게 됩니다 하시딤의 주장은 레위지파의 오니아스가문의 한사람을 정식 아론의 자손으로서 제사장으로 추천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니아스가문은 마카비혁명 때 애굽으로 도망을 갔던 사람으로 국가가 어려울 때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간 사람을 레위지파 아론의 자손이지만 제사장의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이스라엘 안에서 국론의 내분이 일어납니다
이에 이스라엘 지도자 헤이가 지혜로운 시몬을 신실한 지도자가 나타날 때 까지는 당분간 영원한 지도자이며 대제사장으로 불렀습니다
이 결의로 말미암아 하스몬 왕조가 생기면서 하스몬이라는 말은 마카비가의 조상의 이름으로 전해집니다 시몬때부터는 하스몬 왕조라고 부르게 되지요 전 134년에 시몬과 그의 두 아들이 야심 많은 사위에게 살해를 당합니다 그리고 셋째아들 히르카누스가 피신하였다가 훗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을 계승하는데요 히르카누스가 시리아의 인정을 받게 되자 헬라주의자들이 서서히 히르카누스에게로 다가오게 됩니다
옛 말에 이기지 못할 바에는 합세 하라는 말이 있지요?
김성윤: 예,
노우호: 그러면서 돈이 있거나 권세가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헬라문화를 수용하는 입장이고 이로부터 헬라화 된 사두게파와 하시딤 정통을 이어받은 바리세파가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헬라문화를 여전히 수영하려고 하는 아주 현실주의자는 사두게파가 되고 하시딤의 사람들은 바리세파가 되는 것이죠 힐카누스는 죽기전에 자기는 사두게파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요한 힐카누스는 영토라는 책을 집필하여 처음에는 시리아에게 양도했던 팔레스타인 해안지역을 모두 합병하고 다음에는 에돔(이두메) 사람들을 합병했습니다 힐카누스가 이두메를 침략하여 에돔 사람들을 잡아
강제로 할레를 받게 하여 강제로 유대인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애돔 사람을 유대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실제로 피는 애돔의 피가 흐르지만 강제로 할레를 받고 결례를 행하였기 때문에 명분상으로는 유대인이 된 것이죠 그 애돔사람 중에서 헤롯왕이 나온 것입니다 공연히 요한 힐카누스가 애돔 사람들을 강제로 유대인을 만든 것
때문에 헤롯가문의 사람들이 자신들도 유대인으로 귀화를 했기 때문에 자신들도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입니다 이들 두 지역은 팔레스타인의 무역로가 지나가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힐카누스는 영토의 확장으로 인해 때로는 반대에도 부딪치고 했지만 그러나 하시딤의 일원으로 사두개파의 일원으로 적당하게 간격을 유지하면서 양쪽에 비위를 맞쳐 가면서 그런대로 잘 해나갔습니다
이 요한 힐카누스가 죽고 그의 아들 아리스토블루스(유다)가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이는 노골적으로 헬라주의 자 였습니다 헬라주의가 미워서 마카비혁명이 일어났는데 놀랍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결국은 그 후손들도 헬라주의자들로 변질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도 히브리 언어인 유다로 불리는 것 보다 헬라식의 이름인 아리스도블루스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 했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전제군주제 였는데 경쟁이 되는 형제 3명을 옥에 가두었고 그 중 2명은 옥에게 굶어 죽게 만듭니다 어느 시대든지 권력이라는 세계가 그렇듯이 독립운동하며 어려운 시기에는 단합하여 잘 싸우더니 그사이 권력이 안정되고 편안하니까 정권다툼에 형제까지도 죽이는 끔직한 비정함을 보입니다
그리고 한명은 왕궁에서 살해 하였습니다 그는 영토확장 사업을 계속하려고 했지만 음주와 질병과 반란에 대한 공포 등으로 겨우 1년을 통치하다가 죽었습니다 죽었지만 백성들이 아무도 울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아리스토불루스가 죽고 나자 그의 형제는 감옥에서 살아남아 있는 형제 1명밖에 없었는데 그의 히브리식 이름은 요나단이고 헬라식 이름은 알렉산드리아 얀네우스 라는 사람인데 이 알렉산드리아 얀네우스도 아주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취임하면서 정책의 변화를 기대했던 백성들은 그가 또 영토확장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는 실망하게 됩니다 이 사람은 해양을 정복까지 꿈을 꾸는 사람으로 실제로 영토를 많이 확장하여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차지하고 있는 영토를 거의 회복할 정도였지만 국민들의 지지는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바리세인들의 의식을 모독할 정도로 헬라주의자 였고 사두게파 였습니다 바리세인들은 이런 얀네우스를 제거하기 위해 시리아에게 군대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한 경우가 있었죠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의 나라에 도움을 요청하면 반드시 후유증이 남게 됨니다 사두게파 사람들과 바리세파사람들의 세력다툼으로 인하여 다른 나라를 끌어들여 나라를 망치게 하는 역사가 우리나라 경우와 같은 역사가 있습니다 바리세파 자손들이 시리아군대를 요청했는데 이것은 하시딤 후손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안티오크스에피파네스의 후손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어처구니없는 일을 한 것입니다
시리아군대가 도착하자 얀네우스는 산으로 도망을 하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이러다가 나라가 통재로 시리아에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얀네우스를 타도하기 위해서 시리아 군대를 불러들여 놓고는 바리세인들이 걱정이 되면서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새롭게 얀네우스에게 합세를 합니다 얀네우스는 힘을 얻어서 반격에 사서려고 하니까 시리아 군대는 명분없는 싸움을 할 의사라 없다는 판단에 시리아 군대는 철수 해 가버렸습니다
얀네우스는 시리아 군대가 철수한 후 큰 잔치를 베풉니다 잔치를 베풀었으면 잔치로 끝이 나야 하는데 이 얀네우스는 보복을 합니다 잔치자리에서 자신을 타도하기 위해 시리아군을 끌어들인 바리세인 사람들 800명을 십자가에 못을 박습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았지만 잔치자리에서 금방 죽지 않잖아요?
김성윤: 예
노우호: 못 박힌 채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 자녀들을 데려와서 기구를 사용하여 그들 혀를 뽑아버립니다 이런 끔찍한 짓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두 지파가 화해할 수 있는 기회는 영영히 없어진 것입니다 못 박힌 800명의 바리세인들이 처음에 시리아 군대를 끌어들였지만 나라가 위태로워 질 것 같은 판단에 다시 시리아군대를 몰아내기 위해 얀네우스에게 합세를 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나고 나니까
정치보복을 하면서 800명의 바리세인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자식들을 끌어와서 그들의 혀를 뽑아내는 잔인함이 극에 달하여 이 얀네우스는 정말 무시무시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악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가 임종하기 전에 자기의 잘못을 회개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의 아내 알렉산드리아 살로메에게 정권을 이임하면서 자기는 바리세인을 늘 두려웠다는 심정을 이야기 하고 자기 아내에게 '당신은 바리세인들을 잘 대하여 주고' 바리세인과 가까이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김성윤: 예
노우호: 얀네우스가 죽고나서 아내 살로메가 정권을 잡았는데 알렉산더 살로메가 바리세인들의 대표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사실 나는 당신들을 괴롭히는 얀네우스의 아내였지만 나는 당신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늘 가슴아프게 생각했다고 하면서 남편 얀네우스의 관을 보이면서 자, 여기 남편의 시체가 있소 쉽게 분이 풀어지지 않겠지만 시체를 불태우던지 보복을 마음대로 하시오!
나는 그동안 얀네우스가 한 짓을 혐오한다고 하면서 유화정책을 쓰니까 그렇게 참혹한 변을 당했던 바리세인들이 살로메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면서 오히려 안정이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살로메는 아리스도블루스와 결혼했다가 다시 알렉산드얀네스와 결혼한 여자인데 얀네우스의 사후에 여왕으로 등극한 것이 계획된 순서였는지도 모릅니다 이 때 그녀의 나이가 70세쯤 됩니다
그녀는 여자이기 때문에 대제사장직을 맡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그의 장남인 히르카누스가 제사장이 됩니다 그리고 그의 동생 아리스토블루스는 군대를 통솔하게 되었지요 여왕의 남동생은 '시몬벨세타'라는 사람인데 그는 바리세인들의 지도자 였습니다 이때부터 양계파의 화해를 위한 노력이 조금 보입니다만 결국은 아리스도불루스와 힐카누스 두 사이에 싸움이 붙게 됩니다
이 싸움이 붙었을 때 로마가 너희 집에 내분이 있고 집안이 시끄럽다면 좀 도와줄까! 하면서 서서히 개입해 들어오게 되고 그러면서 헤롯이 등장하게 되고 헤롯은 애돔사람인데 이 사람은 로마와 잘 지내는 사람으로 결국은 헤롯이 밀고 들어오고 로마가 진주해 오면서 예수님의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 당시 로마는 폼페이우스라는 장군을 앞세우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진군해 들어옵니다 지쳐있던 히르카누스는 로마를 지지하면서 마침내 자기 형제인 아리스도불루스를 무너뜨리고 세력을 잡긴 했지만 로마의 힘을 배경으로 잡은 세력은 결국은 로마에게 세력이 넘어가게 됩니다
폼페이우스장군은 그의 장교들을 이끌고 성전에 들어갔는데 이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매우 격분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폼페이우스는 성전에 들어가긴 했지만 성전을 약탈하는 만행은 저지러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아리스도불루스의 패배와 함께 유다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유다는 로마가 지배하는 시리아영의 일부가 된 것이죠 로마가 시리아 전체를 수리아라는 1개의 행정도(道)로 지정하고 유다는 수리아에 예속된 작은 지방으로 전략되어버린 것입니다 결국은 이스라엘은 로마의 휘하에 들어가게 된 것이죠
김성윤: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 이었습니다
신구약 중간사
요한 힐카누스가 죽고 나서 벌써 이름이 헬라식이 되어버렸다. 알레산더 얀네우스는 완전히 헬라주의자가 되어가지고 사두개파가 되었다. 요한히르카누스가 왕이 되면서 더 심하게 노골적으로 바리새인들을 핍박하니까, 이렇게 하다가는 바리새인들, 하시딤, 경건한 사람들 그 유대교 율법과 진리를 고수하겠다는 경건한 사람들은 씨가 마를 수밖에 없겠다. 그렇게 걱정이 되니까 알렉산더 얀네우스 때 바리세인들은 원수 나라인 시리아에다가 알렉산더 얀네우스를 제거해 달라고 용병을 요청한다.
시리아 군대는 금방 와서 약탈이나 하면서 그러고 있는 것을 가만히 바리새인들이 보다가 생각한다. 저것들이 알렉산더 얀네우스를 잡아먹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이 나라를 통째로 잡아먹겠구나! 이렇게 정신이 번쩍 들면서 바리세인들은 알렉산더 얀네우스에게 투항을 한다.
알렉산더 얀네우스는 다 받아들여 힘을 모아 시리아 군대를 격퇴시켰다. 알렉산더 얀네우스는 야망이 광장했던 사람이다. 그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큰 잔치를 하게 되는데 물론 그 잔치는 사두개인들을 위한 잔치였다. 그 잔치 때에 지난번 바리새인들이 주동이 되어 가고 셀루쿠스 군대를 불러들인 주동자 800명을 잡아왔다.
십자가 800개를 세워놓고 그 십자가에 800명을 못 박아 놓고 그 십자가 밑에서 잔치를 한다. 그것도 유위부족해서 그 못 박혀 있는 사람들의 자녀들을 잡아다가 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뺀지로 그 자녀들의 혀를 다 뽑아낸다. 그런 악한 사람이 이 알렉산더 얀네우스다. 그런 만행을 저지르다가 알렉산더 얀네우스가 죽고 나자 그 아내 알렉산드라 살로메라는 얀네우스의 부인이 권세를 이어받아 정치를 하게 되는데 이 알렉산드 얀네우스가 죽기 전에 이상한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돌이켜볼 때 자기정치는 실패한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경건주의자, 하시림, 바리새인들이 훨씬 양심적이고 신앙적인데 내가 그 사람들을 미워했는데 그 미움 때문에 그 사람들을 미워하다가 내 정치는 피로 얼룩진 그런 정치를 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후회스러우니까 당신은 오히려 이 간사하고 정치 곁에 붙어서 알랑거리는 사두개인들보다도 바리새인 중에 경건한 그런 사람들의 지도를 받으며 화해를 힘쓰고 바른 정치를 하기를 바란다고 유언을 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알렉산드라 살로메가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바리새인들 지도자를 초청을 한다. 초청을 하니까 바리새인들이 이거 함께 장사되는 것 아닌가 하면서 두근거리며 살로메에게 갔다. 그런데 이 살로메의 입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내 남편은 노골적인 헬라주의자이고 사두개인 편만 들고 당신들을 많이 미워했었는데 여자가 나설 수는 없었지만 마음 아프게 생각했었다. 내가 볼 때도 여러분들이 얼마나 억울하게 당했는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바리새인들의 지도자들을 알렉산드 얀네우스의 관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서 그렇게 여러분들을 괴롭히던 알렉산드 안네우스 내 남편의 시신이 여기 누워 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 시신을 가지고 가서 화풀이를 하던지 불을 사 지르던 여러분들 마음대로 해도 좋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정치할 때는 남편처럼 그렇게 하지는 않겠다. 여러분들의 경건한 지도를 내가 받으면서 정치하겠다고 한다.
경건한 하시림들이 오히려 영웅대접을 하면서 장례식을 거창하게 치루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 알렉산드라 살로메가 죽고나자 문제가 터지는데 여기 요한 히르카누스 2세하고 아리스토 불루스 두 아들이 있는데 여기에 파워게임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경건한 하시림(바리새인들)들은 장남인 요한 히르카누스를 옹립하여 왕으로 세우고 반대로 사두개인들은 이르스토 불루스를 옹립하여 왕으로 세운다. 그래서 싸움이 붙인다. 바리새인들이 요한 히르카누스를 왕으로 세우니까 아리스토 불루스를 옹립한 사두개인들이 발 빠르게 군사를 모집해서 공격을 해 들어온다.
그러니까 요한 히르카누스는 나는 본래부터 왕이 될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서 형제간에 피를 흘리는 것은 옳지 않다. 동생이 왕이 되고 싶으면 왕이 되라고 양보를 해 버린다. 이렇게 해서 아리스토 불루스2세가 왕이 된다. 바리새인들은 학자들이고 군대도 없으니까 게임이 안 된다. 아리스토불루스가 왕이 된 후 요한 힐카누스를 옹립했던 바리세인들이 에돔 나라의 안티파테르2세(헤롯왕의 아버지)에게 가서 이런 저런 억울한 이야기도 하고, 아랍의 나바테안에 아레타스를 찾아가서 또 이런 저런 억을 한 일을 이야기 하니까 이 헤롯이 힐카누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는 머리를 쓴다.
요한 히르카누스가 명분상 장자니까 왕위 계승권이 있다. 그래서 히르카누스를 이용해서 정치의 발판을 넓혀가려고 계획을 세움 이 헤롯안티파터는 알렉산드 얀네우스 때에 그 지역 통치자로 임명을 해 놓은 상태이다. 그 지역 지도자이다. 왕은 아니지만, 이 사람이 로마에 가서 곡물(뇌물)을 많이 바쳤는데 그 때 로마는 줄리어스 시이저가 있을 때이다(삼두정치). 인정을 받게 된다. 요한 히르카누스와 아랍의 나바테안의 아레타스와 헤롯 안티파터와 함께 군대를 모집해 가지고 아리스토불루스를 타도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싼다.
3개월을 에워싸도 전쟁이 끝나지 않는데 그 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로마가 어슬렁 어슬렁 오는데 그 때 삼두정치의 한 사람이었던 폼페이우스 장군이 군대를 거느리고 요한 힐르카누스를 찾아와서 힘이들면 우리가 도와주겠다. 예루살렘이 워낙 견고하기 때문에 함락을 시킬수가 없어서 로마의 손을 빌리게 된다. 그러면 결국은 로마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로마의 힘을 빌려 동생을 타도한 요한 히르카누스는 로마도 괄시할 수 없고 헤롯의 힘을 빌렸기 때문에, 헤롯이 시이저와 친분이 있고 시이저를 통하여 폼페이우스 장군이 와서 예루살렘을 공략했기 때문에 헤롯과 폼페이우스와 시이저가 한 통속이 되어있기 때문에 요한 히르카누스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면서 결국은 로마도 이 땅에 들어오게 되고 헤롯도 발판을 넓히게 된다. 그렇게 할 때에 헤롯 안티파터는 자기가 정치적으로 활약한 것으로는 만족이 안 되고 아들 파사엘과 헤롯(아들), 두 사람을 위하여 정치적으로 활동을 많이 해놓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세상을 떠나고 나자 이 헤롯은 로마로 망명을 간다. 로마로 망명을 갔다가 거기서 누구를 사귀는가 하면 (시이저가 죽임을 당하는데 그 부루터스와 카시우스가 일어나서 카시우스 정권이 들어설려고 하는 어수선한 가운데)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삼두정치의 두 번째 인물들인데 그런 사람들을 사귄다. 헤롯은 정치줄타기를 잘한다. 정치에는 명수이다.
로마의 원로원과 시이저를 떡 주무르듯이 주무른 사람들은 이 헤롯 가문 사람들이다. 국제무대에서도 헤롯가문처럼 활약한 사람들이 없다. 이스라엘의 모든 흔적은 헤롯이 만든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 80년 이상 지은 것이다. 건축술, 국토개발, 토목기술이 탁월하다.
이 헤롯은 정통 유대인도 아니고 다윗의 가문도 아니고 그런 사람이 유대인의 왕이 되었기 때문에 경건한 사람들로부터는 항상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하니까 그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신경전을 벌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아무래도 이 헤롯이 자기의 정치적 발판을 좀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하스몬 왕가의 한 여자를 끌어들여 결혼을 해야 되겠다고 해서 하스몬 왕조의 마리암네라는 여자와 결혼한다. 아들들도 많이 낳았다.........
이 여럿이 중에서 누구를 후계자로 세울 것인가? 후계자를 여섯 번을 바꾼다. 바꿀 뿐 아니라 죽여 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아무도 모른다. **예수님 탄생시에 유대인의 왕(미가서 5:2)*** 죽이겠다는 속셈. 자기 아들 왕자를 3명이나 죽였다. 헤롯왕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보다 헤롯왕의 돼지로 태어나는 것이 훨씬 생명이 안전하다는 속담이 생겨날 정도 (휘오스: 아들, 휘스:돼지)
헤롯이 죽고 나자 아켈라오가 헤롯의 뒤를 잇게 되고(마2장), 그 다음에 빌립(눅3:1)이 윗 지방에 왕이 되고, 헤롯빌립(마14장)이 다른 지방에 왕에 되어 세 사람이 분할통치를 하게 된다. 그리고 헤롯 아그립바1세(행12장에 나오는 야고보를 칼로 죽였던 그 헤롯이다) 헤롯 아그립바 2세,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행25장에 나오는 바울아!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하는 그 헤롯은 또 다른 헤롯이다. 헤롯가문이 약 100년 정도(주전 37년부터 주후70년까지) 다스렸던 사람들이다. 맛다디아스부터 요한 히르카누스2세까지가 하스몬 왕조라 할 수 있겠고 그 이후는 왕조라 할 수 없겠다. 이렇게까지 정치적으로 불안할 때에 그러면 유대인들 중에서 경건한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유대인들이 불 때에 도대체 우리나라의 역사가 어떻게 될 것인가? 왕권은 헤롯이 가져가고 실권은 로마가 가져가고 바리새인도 사두개인도 맥을 못 추게 되어 있다.
또 진짜 더 경건한 사람들은 에세네파라해서 산으로 운둔해 가버렸다. 세상하고 등지고 하루 일곱 번 목욕하고, 기도하고, 성경만 보고 있고, 이런 사람들이 쿰란공동체라는 에세네파 그런 사람이 있고, 그래서 이제 유대나라는 조금만 세월이 더 갔으면 희망이 아무것도 없어 보일 때, 그럴 때도 주야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엎드려 기도하고 금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몬이라든지 안나(과부된지 84년), 세례요한 같은 분들이 기도할고 있을 때 희망이 없을 때, 일반 세상적인 안목으로 보면 도저히 희망이 없을 때 가물가물한 촛불심지처럼 상한 갈대처럼 그 정도 되었을 때, 참 이스라엘의 소망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진노하신지가 400년이 지났습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기다려야 합니까? 약속하신 엘리야는 언제 오는 것입니까. 메시야는 언제 오는 것입니까? 다윗의 자손은 언제 오는 것입니까? 눈이 시리도록 울고 금식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400년 동안에는 하나님이 예언자는 단 한사람도 안 보내신다. 그 때 자칭 예언자라고 나타나는 사람은 다 거짓 선지자였다.
사람들이 한번 두 번, 속고 또 속고, 그렇게 속다가 보니 참 선지자가 나타나도 까딱하면 못 믿을 입장이 되어가고 있을 때 어느 날 하루는 광야에서 큰 소리가 들려온다. “회개하라” 점잖게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가서 보니 거짓 선지자 같지는 않다. 누구의 낯을 두려워하지 않고 외치는데 한번 듣고 나면 회개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잘 정도이다. 하시림계가 바리새인이 됐다.
하시림: 헤세드, 인애, 충절, 신의, 우정, 경건, 경건과 인애를 합한 것 같은 말. 경건주의(바리새인들) : 헬라주의, 세속주의에 물들지 않고 권력도 탐하지 않고 신앙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사두개인: 오경만 인정하는 자들(사두개인) 부활 부인, 천사나 영을 부인 현실적으로 권력에 가까이 해서 잘 먹고 잘 살면 그것이 복이라고 믿고 살았다 (사두개인중에는 좋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예루살렘 성전이 없어진 후에는 사두개인들은 발판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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