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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구약의파노라마

102. 알렉산더 대왕과 헬라문화

102.  알렉산더 대왕과 헬라문화

 


노우호: 오늘은 마카비혁명에 대하여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세상을 정복하면서 전 세계가 헬라의 문화에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팔레스타인 지방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대표적으로 헬레비즘 문화의 꽃을 피운 곳이 아프리카의 안렉산드리아인데요 알렉산더의 수명은 아주 짧았지만 그가 전파한 헬레미즘 문화는 오래토록 지속 되었습니다

 

에굽과 시리아가 150년 전쟁을 치루면서도 두 나라가 모두 헬레문화였어요 그리스 본토에서는 오히려 헬레미즘이 침체하고 있었는데 알렉산드리아와 버가모 이런곳에서는 헬레문화가 꽃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김성윤: 헬레문화의 특징은 무엇이죠?

 

노우호: 예

헬레문화의 특색을 살펴본다면 첫째 공회당을 비롯해서 건축을 하게되는데 건축문화가 아주 발달되어 규모있게 지어졌고 신체를 단련하기 위하여 연무장(체육관)이 곳곳에 지어져서 강한 체격을 연무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오늘날은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를 노래하고 관심이 크지만 헬라인들은 남성의 우람하고 강한 체격의 남성미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남자들이 몸을 드러내고 경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레슬링의 그레꼬로망형은 그 당시부터 있었던 종목입니다 그리스형과 로마형을 묶어서 선정된 경기 종목인데 그 당시 유대인에게는 아주 망칙한 행동입니다 남자들이 몸을 모두 드러내고 경기하는 것은 경건치 못한 모습이지만 이런 문화들이 유대인 사회에 파고 들어오는 것이죠

 


그리고 민중들이 함께 즐기는 노천극장 같은 것이 여러군데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유로운 사유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데 생각을 종교의 틀 속에 고정되어 폐쇄되지 않고 자유로운 생각을 발표할 수 있는 문화가 되면서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남에게 발표할 수 있으므로 국민의 교양을 높혀갈 수 있었지요


그리스식의 의상을 즐겨 입게 되고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앞선 사람으로 인정이 되었고요 그리고 그리스의 어느 철학 학파에 소속되었다는 소속감이 큰 자긍심으로 작용하고는 사회였습니다


또 여런 신들이 많아서 신화인지 민화인지 알지 못하면서 복잡한 신화를 이야기하고 이런 신화를 알게 되면 헬라문화에 젖은 사람으로 앞선 문화인이라 여겨지는 사회였습니다 이러한 그리스 문화는 전적으로 나쁘다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모두 나쁜 것도 아니고 옳은 것도 아닙니다.


이 문화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으로 자유시만의 기상을 기르는 계기가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서구시민문화를 길러 내었고 일반 백성들의 의식을 깨치는 데는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헬레문화가 가는 곳마다 서민대중들도 상당히 문화적으로 눈이 이는 모습이죠 이런 사상이 유대인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이전의 유혹은 우상숭배가 유대인에게는 큰 문제 였지요

 

그러나 바벨론포로 이후에는 헬라문화가 유대인들의 순수한 신앙을 오염시킨다고 생각한 것이죠 포로기한시에 돌아온 숫자는 10만명 정도이고 나머지 유대인들은 전 세계 흩어져 버렸거든요  북왕국 이스라엘이 BC721년에 망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할라와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데 여러 나라에 흩어버렸다고 했는데 그 당시에도 흩어졌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 중에 돌아오지 않고 남아있던 유대인들은 바벨론이 망하고 메데 페르시아 시대를 지나고 헬라시대를 지나면서 온 세계에 유대인들이 많이 흩어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세계에 많이 흩어졌다고 하지만 유대인들만큼 짧은 시간에 많이 흩어져 나간 민족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흩어져 살기로 유명한 민족입니다 그래서 그 때 당시에 메데 페르시아, 바벨론, 안디옥, 다마스크스, 브리기아, 에베소, 버가모, 사르디스 파르티스, 엘람, 메소포타미아, 가파도기아, 폰투스, 아시아, 밤빌리아, 리비아,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 이디오피아, 고린도, 데살로니가, 베뢰아, 키프로스 전체 어디를 가도 유대인의 집단촌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모이면 다섯 가정만 되어도 시나고게라는 회당을 만듭니다 한국 사람들이 어디를 가더라도 교회를 세우는 것처럼 회당을 세웁니다 회당에서는 민족교육을 하면서 현지 문화에 동화 되면서 헬라문화에 유혹을 받기도 하는데 그 때 알렉산드리아에서도 상당한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유명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죠?

 

 

김성윤: 예

 

 

노우호: 70인 역을 셉투아젼트라고 말을 하는데요

70인 역은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이들은 유대인들이지만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모국어인 히브리어로는 읽기가 어려우니까) 히브리어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연구에도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모세5경은 BC250년경에 이미 모두 번역되었던 것 같고요

 

 

이어서 구약성경 전체가 번역 되었고 외경들 까지도 번역되었습니다 그 사본 가운데 1부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비취 되어 있었을 것이고 이 때는 애굽왕 돌레미 필리델푸스라는 왕이 통치했던 시기인데 그는 예술 애호가로 이름을 떨친 계몽된 통치자였지요 고대 왕국의 폐쇄적이 않고 애굽 사람이면서 헬라문화의 진취적인 기상에 매료되어서 책이나 문화를 관용하는 정치를 폈습니다 그의 통지기간에 세계사의 불가사의라고 하는 알렉산드리아의 대 도서관이 개관 되었다고 합니다

 

 

애굽의 왕조를 30왕조로 구분하여 정리하는데 마네토의 대역사책도 톨레마 필라델푸스를 위해 쓰여진 책이라고 합니다 마네토라는 역사가가 역사를 지필하면서 애굽역사를 30왕조로 나누면서 톨레미 필레델푸스 왕이 역사를 소중히 여기니까 역사책을 헌정하듯이 드렸는가 봅니다 팔레스타인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정통파 유대인들이라고 생각 했지만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도 나름대로 열심파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알렉산드리아 유대인들이 아주 진취적이면서 개화되고 경건한 유대인들이라 생각 되어집니다

 

 

그 증거가 율법서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을 볼 수 있는데 당시의 돌레미 도서관의 사서였던 데메트리우스라는 사람이 유대인의 율법에 관해서 왕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이죠 왕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사절단을 보내서 율법서를 헬라어로 번역할 장로를 보내달라고 했는데 이것은 전설 같기도 합니다만 처음에 72명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고 12지파에서 6명씩을 선출하니까 72명이 되었는데 72명이 번역했으므로 이것을 보통 70인 역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유대교의 학자들 중에서 히브리에도 능통하고 헬라어도 능통한 12명을 보내어 애굽의 파라오섬에 보내어져서 72명이 72일동안 범역을 했다고 합니다 전설같은 이야기지만 72명이 72개의 별실에서 72일동안 번역을 하였는데 번역한 것을 대조해보니까 72명이 똑같이 번역되어졌다는 믿기가 어렵습니다만 그랬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때 당시에 히브리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야말로 성경이 세계적인 책으로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죠 그것은 히브리어로 쓰여진 성경을 다른 나라 말로 최초로 번역한 효시라 할 수 있습니다 번역된 70인역에 대하여도 영감설을 적용하려고 이런 전설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 번역을 시도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후대 연구에 의하면 70인 역의 어투가 그 당시 애굽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어투라는 것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니까 팔레스타인에서 72명을 보내준 것이 아니고 애굽에 있던 사람들이 번역했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번역판이 그야말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영향을 끼치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선교가 쉬웠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 초창기에 바울이나 사도들이 온 세계에 복음을 가지고 갈 때 히브리어 성경을 가져 간 것이 아니고 헬라어로 된 구약성경을 가지고 간 것이죠 아직은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은 사도시대 속사도시대에는 70인역의 이 구약성경을 활용하였습니다

 

 

신약성경을 읽다보면 구약성경에서 인용한다고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과 정확하게 같지 않는 부분이 간혹 있어요 이것은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니까 전체의 뜻은 같지만 표현에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70인 역을 가지고 신약성경에서 인용한 부분들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를 바로 우리말로 번역한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와중에 헬레니즘이 화려한 문화에 쉽게 동화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정통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김성윤: 예,

 

 

노우호: 오늘날도 보수주의와 개혁주의가 갈등하고 있는 것처럼 그 당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사상을 고수하던 사람들도 헬라어를 모르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시대이므로 헬라어를 쓰지 않을 수 없고 헬라어를 사용하다보니까 언어에는 문화가 베여있으므로 결국은 팔레스타인 전체와 손 세계가 헬라 문화에 물들어 가는 그런 시대에 예수님께서 오실 당시의 모습이고 대부분 사람들이 헬라어를 구사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김성윤: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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