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로마서의 파노라마
노우호: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은 이 서신의 집필동기와 주제설명과 문안인사들이 1장 1절부터 17절까지 이어집니다 1장 18절부터 마지막절 까지는 죄 아래 그냥 버려져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하면 이방인이거나 이방인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율법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죄에 종이 되어 있는 사람들!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들! 율법도 없는 사람들! 이스라엘 밖에 있는 사람들! 이들을 이방인이라고 하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버려두었다는 말을 3번씩이나 하는데 로마서 1장 2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사 내어버려 두었다는 것입니다 26절에 보면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 두셨으니 28절에 보면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이렇게 3번씩이나 내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버린 자식처럼 내버려 두면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하면
[로마서]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1:31 우매한 자요 배약(背約)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내버려 두면 이런 모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가지고 있으면 완전하냐?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가지고 있으면 완전하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혹은 종교를 가지고 신앙생활 하면서도 악을 행할 수 있는 인간의 연약함과 악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처럼 율법을 가진 사람들이 율법이 없는 사람들 보다 조금 낫긴 하지만 율법이 없으면 죄 아래에서 죄의 종노릇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율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율법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율법 앞에 서 보니까 자기가 죄인인 것이 더욱 빨리 드러나는 것이므로 율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죄인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즉, 율법 있는 사람이나 율법이 없는 사람이나 결과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죄인인데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죄의 관계를 정상화 하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길이 무엇인지
4장에서 다루는데 4장에서 바울이 새로운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 아브라함의 믿음을 모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보고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었는데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100살에 아기를 낳게 될 것이라고 했던 것과 사라에게서 생리가 끊어진지 오래인데 사라가 아기를 가진다는 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죠 이렇게 믿을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그 약속을 믿었더니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면 그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려고 한다는 사실을 믿을 때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면서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5장에 하나님과 화목 되어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등을 돌리고 하나님을 원수처럼 생각하고 죄의 종노릇하고 율법을 범하면서 하나님을 격노케 하던 인간들이 하나님과 화목 되어지는 교리를 5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6장에서는 사람은 어차피 종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유인인 것 같지만 사람은 어느 쪽이든지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죄에 순종하여 죄의 종이 되든지 의에 순종하여 의에 종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게 되든지 혹은 죄의 종으로 죄악을 범하게 되는데 어차피 종이 될 바에는 죄의 종이 되어서 사망에 이르는 것 보다 하나님의 의의 종이 되어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복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죄의 종이 있고 의에 종이 있을 수가 있는데 6장 12절에 보면
[로마서]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가 인격적으로 누구에게 내 몸과 마음을 바칠 수 있는데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우리 자신을 드리게 되면 죄라는 것이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7장에서 어려운 이야기를 덧붙여 하게 됩니다 바울은 6장과 7장에서 원죄의 역할과 원죄의 영향을 다루면서 이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 이방인들은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고 유대인들은 율법에 종노릇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라는 남편에게 종노릇하든지 율법이라는 아주 까다로운 남편에게 종노릇하든지 인간은 죄의 종노릇하면 죄의 삵은 사망이므로 반드시 지옥으로 가게 되고 그렇다고 율법에 종노릇하여 율법을 남편으로 모시고 있으면 편안하고 의롭게 되느냐! 율법의 남편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아내가 조금만 잘못하여도 반드시 지적을 당하게 되어 율법이란 남편 앞에서는 어떤 여자나 아내도 의롭게 인정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한 남편을 소개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는 것을 이해도 할 뿐아니라 용서도 하시고 우리가 잘못하면 인도하시고 고쳐주시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담당해 주시는 한 남편을 소개 하면서 죄를 남편으로 모실 것인가? 율법의 아내가 될 것인가? 새로운 남편인 예수그리스도를 모실 것인가? 3가지 경우를 대비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남편으로 모시고 있으면 우리 속에 있는 죄가 발동을 하여 옳은 줄 알면서 하라고 하면 반발을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계속 하려고 하는 못된 죄의 성질이 우리 속에서 율법에 반발 한다는 것입니다 죄의 정욕이 발동해서 선을 행하려고 하면 더욱 악을 행하려고 하는 바울이 자신을 내면을 보면서 선을 행하려고 하는 나에게 악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악이 함께 있어서 결심할 때는 선한 일을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결론은 싸움이 되고 부부가 좋은 남편이 되겠다고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싸움이 되어버리는 비참한 현실을 보면서 선을 행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도무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제3의 남편인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길은 율법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길은 죽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죽을 때 누구와 함께 죽어야 되느냐 하면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물에 풍덩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어버리면 죽었으므로 죄와 율법이 전혀 관계 할 수 없는 것이고 물속에서 건너편으로 올라 올 때는 죄와 율법을 결별하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서 죄와 전혀 상관없고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난 뒤 강 건너편에 올라와서 예수님을 남편으로 다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세례 받는 다는 것이 단지 씻는다는 의미뿐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죽고 죄 씻음 받고 예수님과 연합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의 죄와 율법과는 완전히 이혼하고 예스그리스도와 다시 만나서 재혼한 상태 이런 이야기를 6장과 7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8장에는 이렇게 된 사람들은 결코 정죄함이 없고 하나님께서 정죄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하여는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이기 때문에 죄인에게 최고의 형벌이 죽이는 것인데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죄 값을 묻지 못하므로 정죄 할 수 없고 다시 산 것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았기 때문에 다시 산 사람에게는 옛날 법이 아무런 구속력이 없고 또 우리의 죄를 대신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산 자들에게 엄청난 자유를 선포하는 것이 8장에 나옵니다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고 율법의 저주와 율법의 심판에서 자유하게 되어 정죄함이 없는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어 해방을 선언하듯이 로마서 8장에서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9장에는
다시는 육신을 쫓지 않고 영을 쫓아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김성윤: 지금까지 노우호목사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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