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참 믿음을 강조한 야고보서
김성윤: 오늘은 야고보서를 살펴볼 차례지요?
노우호: 예,
야고보서는 교회에서 잘 가르치지 않는 서신이고 인용하는 구절도 한 두절만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마르틴루터도 야고보서를 안 좋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 하면 야고보서에서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행함이 따라야 한다고 하니까 구원은 믿음과 행함으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우려가 있지요?
김성윤: 예,
노우호: 그러나 야보고가 말한 것은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고 구원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데 그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생명력이 있고 살아있는 믿음을 강조한 것인데 루터가 오해를 조금 했던 것 같습니다
루터는 위대한 학자 이지만 야보보서와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요한계시록에 대하여도 요한계시록은 그 단어 수만큼이나 수수께끼가 많은 책이라고 할 정도로 요한계시록을 어렵게 생각 했습니다 루터는 야고보서에 대한 소중한 의미를 조금 놓쳤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야고보, 베드로, 요한의 책이 연결되는데 야고보는 참 믿음을 이야기 합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으면서도 거짓 믿음이 있고 참 믿음이 있는데 사도 바울은 디모데 마음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보고 싶어 합니다 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너희 자신들이 정말 참 믿음에 서 있는지 시험하고 확정해 보라고 권면 합니다
세상에 믿음에 무슨 참과 거짓이 있는가?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거짓 믿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죠? 믿기는 믿었는데 그들은 예수님께 독사의 자식들아! 하는 말을 듣게 되고 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을 듣게 되는 것을 봅니다
그동안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에 심취한 나머지 야고보서에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소홀히 한 것은 사실입니다 특별히 한국의 교회들이 야고보서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윤리적인 삶(실천적인 삶)이 따르지 못하고 믿음과 삶이 일치(信行一致)가 되지 않아 불신자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따라서 야고보서는 재발견해야 될 책이고 온전한 믿음은 야고보서에서 제시하는 믿음으로 야고보서가 말하고 있는 믿음을 간략하게 정리 하려고 합니다
믿음의 길을 걷는다면 반드시 시험이 있고 시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기쁨으로 여기라고 시작합니다 신앙생활 하는데 시련이 없으면 좋겠지만 없을 수가 없습니다 학생들의 경우도 학교에서 시험만 없으면 학교 다닐만 하겠다고 하는데 학생들에게 시험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 같은 분에게도 반드시 시험을 해보시고 또 강하게 단련하기 위해서는 시련도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도 시험하신다는 사실을 마태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들이야 시험이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시험과 시련이 없는 믿음을 찾지 말고 참 믿음에는 시험과 신련이 반드시 따른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시험과 시련은 피하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이 아니고 다만 늦춰지고 퇴보하는 것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반드시 시험과 시련에 옳다 인정함을 받는 믿음! 모든 유혹을 이기고 견디는 믿음이 참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야고보는 행함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행함 있는 믿음을 강조하는 것인데 행함 있는 참 믿음이란?
첫째
시련과 시험을 능히 이겨내는 믿음을 말합니다
둘째
인간차별을 하지 않는 믿음을 말합니다 (부자나 가난한자를 차별한다는 것은 바른 믿음이 아님)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믿음이 좋은 믿음입니다
셋째
윤리적 실천이 있는 믿음을 말 합니다 믿는 사람이 믿음을 지키려다 보면 불이익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데 그런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돕는 긍휼을 베푸는 믿음을 말 합니다
네 번째
자신의 혀를 제어 할 수 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참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자신을 혀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참 믿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을 가졌다면 자신의 혀를 제어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혀를 제어하는 것을 굉장히 강조 합니다 만약 예수를 믿지만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분별 못하여 성도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거나 남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교회를 어렵게 하든지 혹은 혀가 제어되지 않아서 말의 실수가 많은 사람들은 많이 다듬어야 할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겸손하고 온유한 믿음을 말 합니다 참 믿음을 가졌다면 죄에서 구원받은 존재로서 겸손 할 수밖에 없지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으로 이것은 신구약전체를 관통하는 만고불변의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기독교 이외에서는 겸손을 강조하는 윤리가 없습니다 이슬람의 경우는 복수할 능력이 없으므로 겸손하고 용서하는 것이고 복수할 능력만 있다면 왜 용서하고 겸손하고 온유하겠는가 하면서 약자의 비굴한 변명으로 보는데 진리가 담긴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섯 번째
기도를 바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이고 정욕으로 쓰려고 하는 기도가 아니고 참 믿음은 바른 기도가 나옵니다 그 사람의 기도가 곧 그 사람의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기도를 들어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예상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일곱 번째
세상과 짝하지 않는 신앙을 말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늘나라도 가고 세상도 즐기고 둘 다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결코 참 믿음이라 할 수 없지요 만약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현저하게 줄어들게 될 것이고 세속주의에 물들게 되면 그 믿음은 파선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적이고 정욕적인 것을 추구하게 되면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시기하고 질투하기까지 근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세상과 자꾸 벗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은 하나님과 스스로 원수 되게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중한 말씀들이 야고보서에 안에 있는데 우리는 대부분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물론 이 구절은 야고보서의 전체를 대표하는 구절이라 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와 함께 소중한 내용을 더 살피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일곱 가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시험과 시련을 반드시 이겨내는 믿음
2. 절대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믿음
3. 사랑과 긍휼을 베푸는 윤리적 실천이 있는 믿음
4. 자신의 혀를 제어 할 수 있는 믿음
5. 겸손하고 온유한 믿음
6. 올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믿음
7. 결코 세상과 벗하지 않는 믿음
이렇게 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기도의 응답된다는 것이죠
그 증거가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지만 그가 기도함으로 3년 6개월 비가 오지 않기도 했고 또 기도함으로 비가 오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기도가 응답이 없는가 하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윤리적 실천적 삶이 없기 때문에 위의 7가지를 지키지 않으므로 우리의 기도가 온전치 못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믿음을 가질 것을 강조하고 있는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인데 야고보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의인 야고보라고 알려질 정도로 말 경건한 삶을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 친동생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기 전까지는 예수를 믿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서 예수님을 염려 할 정도로 경건한 사람인데 (예수님은 율법을 등한히 한 것이 아니고 바리세인들의 유전(전통)을 가감하게 무시해 버렸음) 수많은 사람들이 야고보 때문에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고 예루살렘교회에서 아주 기둥같이 여김을 받는 인물 이었습니다
나중에 이분은 순교하게 되는데 산헤드린에 끌려가서 끝까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강변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맨 처음 예루살렘 총회가 열렸을 때도 예루살렘교회의 대표격으로 일하는 모습을 봅니다
야고보서도 우리 성도들이 열심히 읽고 외울 만큼 읽어서 참 믿음!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베드로가 말하는 소망도 내다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성윤: 지금까지 노우호목사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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