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9:27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이것이 구원에서 버림받을수 있다는 구절로 들린다면 그것은 성경전체를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는 구원받은후의 성화에 대한 구절입니다. 구원받았다고 뿅하고 완전 의로운 인간이 되는것이 아닙니다. 술을 끊기 어렵고 담배를 끊기 어렵듯이 죄를 끊는것은 불가능합니다. 죽기전까지는 말입니다.
성경이 일관적으로 말하는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이고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우리안에 예수님이라는 보석이 담긴것이지 우리가 보석이 된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착각합니다. 자기가 보석이 된것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귀한 그릇으로 삼아주시고 예수님이라는 보석을 우리안에 담아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담아주신것을 가져간다고요? 인간은 선물을 준것을 되돌려 달라고 할수는 있을지몰라도....그렇다면 정말 인간도 아니죠....하물며 하나님이 선물로 준것을 달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약속한것을 스스로 파기하겠습니까? 우리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담이 죄를 졌습니다. 그래서 사망이 왔습니다. 그 사망의 몸에서 아무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죽었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누가 몇살까지 살고 죽었다. 누가 몇살까지 살고 죽었다. 아브라함이 몇세를 향수했다. 야곱이 몇세를 향수했다. 이삭이 요셉이 다 죽었는데 에녹은 죽지 않았고 엘리야도 죽지 않았다는것이 나옵니다.
구약은 죽음에 대한 우리 인간의 처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것은 바로 아담의 죄로 인해서 인간 모두가 다 죽는다는것 저주를 받았다는것 사망의 몸에서 헤어나올수 없다는것을 가르칩니다. 그 죽음은 육적인 죽음이기도 하지만 영적인 죽음도 포함합니다.
그러나 신약에 들어오면 죽었다는 말보다(마태복음을 읽어보십시요) 누가 누굴 낳았고 라는 말이 나옵니다. 누가 몇세에 죽었다는 말이 안나오고 누가 누굴 낳았다. 낳음은 생명입니다. 삶입니다. 아담으로 인해서 죽음이 왔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두째아담인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이 왔다는것을 말씀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의 차이일것입니다. 새언약이고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언약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된것입니다.
신약에서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듯이 구약에서도 제사나 어떤 행위로도 구원얻을수 없음을 기억해야합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두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구원얻은 백성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박국서에서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믿음은 어디서 온걸까요?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았습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았습니다. 믿음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것입니다. 곧 우리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시키십니다. 그래서 구원은 선물이고 선물은 아무 값없이 주는것이므로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원에 대해서 우리가 자랑할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백성이지만 구원받지 못한 많은 사람들앞에 자랑할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잘해서 구원얻은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신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천국가는걸 자랑합니다. 그 자랑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욕을 먹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말합니다. 당신이 천국간다고 그럼 나는 지옥가련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사람들이나 우리들이나 똑같이 저주받은 자들이고 죄악의 종이었고 지옥에 갈형편에 놓인 불쌍한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셨는데 우리는 그 구원받은것을 자기가 잘해서 구원받은것처럼 떠벌리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구원받지 못했다는것이 아닙니다. 세상사람들과 우리와 차이가 없음을 말씀하는것입니다. 저주받은 위치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위치를 옮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나아진것은 아닙니다. 신분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저주의 자리에서 은혜의 자리로......구원받지 못한 분들을 향해서 우리가 뽑낼수 있는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우리의 구원과 믿음이 어디서 부터 비롯된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지금 구름님처럼 구원을 잃을수 있다는 잘못된 지식을 가질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런 말을 쓰고 제자들이 그런말을 한것은 구원을 잃는다는것이 아니라. 잘못된것으로 가르칠수 없다는것을 강력하게 말하는것입니다 다른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도 결국 다른 복음을 전할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의 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으로 부터 비롯됬으니 우리의 구원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 곧 구원을 주셨는데 빼앗아갈까요? 그것을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했는데 하나님이 실패할까요?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분으로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작정하신것이 실패한다는것은 말이 안된다는것을 아실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31절에 가면 하나님의 사랑에서 세상아무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수 없다고 단언하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왜? 위에같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류의 고백들이 성경 곳곳마다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 인간이 지금 죄의 몸 육신(변화하기전)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래서 고백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우리 몸은 여전히 죄악속에 있고 우리또한 죄악된 세상속에 살고 있으니 늘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주님앞에 바로서기 위해서 애쓰는것이 신앙인의 모습이고 그것을 제자들과 바울이 몸소 보여주신것입니다. 저글이 구원과 관련되어 있는 글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행위라면 우리가 으시대고 자랑할것이 있지만 은혜라면 자랑할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로운 자가 아닙니다. 저주받은자고 죽은자입니다. 살려주신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살려주신 은혜를 감사하기는 커녕 왜 살려놨냐구 왜 이 고생시키냐구 우리가 항명해서는 안됩니다. 자녀들을 나았더니 자녀들이 저주합니다. 왜 나를 나았냐구....세상에 나오고 싶어 나온 자녀가 어디 있습니까? 부모님으로 인해 태어났다면 부모님께 감사를 드려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태어난것을 저주하면 부모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도 이 마음과 똑같습니다. 당신이 뭘 어떻게 해서 잘해서 부모님에게서 잉태되어서 태어났나요?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태에서 잉태되어서 아무것도 갖지 않고 태어났습니다. 구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권적으로 허락하신 새생명입니다. 중생입니다.
구원이 누구에게 비롯됩니까? 행위입니까? 율법입니까? 아니면 나의 의지적 선택입니까?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으로 부터 비롯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강권하신 은혜로 인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감당치 못할 선물을 받음으로 인해서 우리가 그 선물이 진짜인지 아닌지 늘 확인하고 싶어하고 그것을 알고 싶어하고 느끼고 싶어하고 뺨을 때려보기도하고 꼬집어보기도하고 이것이 생시야 꿈이야라고 스스로 한번 말해보기도하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해보기도하고 그러다가 세상이 유혹하면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과거에 살던 버릇대로 술도먹고 담배도 피고 음란한 비디오도 보고.....그러면서 이러면 안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것인데 하는 마음이 들고 무거운 마음이 들고 그런데 자꾸 한두번씩 가다보니 완전히 세상에 빠져서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것처럼 느껴지고 하나님이 나를 포기했다봐 라고 느껴지고 정말 이대로 나는 지옥가나보다라고 두려움이 들때 하나님이 다시 찾아오시는것입니다.
하나님이 혼내십니다. 이제 그만 놀고 우리집으로 오라고 부르십니다. 세상에 나가서 사는데 마음에 부담이 없고 죄책감이 없고 세상이 정말 좋고 교회가는것이 시간낭비였다고 하나님이 어디있나고 하나님없다고 말하고 속시원하고 후련하다면 그분은 하나님앞에 가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자리에 갈수 없게될지모르니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혼내고 꾸중하는것은 자기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있는 성령님으로 인해서 중생한 영혼은 끊임없이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을 부르짖고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빠져있다가 교회에 나가게되면 눈물이나고 그동안 왜 방황했는지 회개하게되고 다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고백하고 다짐하게되는것이 신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려두시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해하지 못해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누구인지 몰라서 하나님을 의심하고 가뭄이 들때 애굽으로 내려가고 애굽왕에게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그렇게 살다가 하나님이 불러서 언약을 세우고 아브라함은 그래도 이해하지못하고 그러다가 아이를 나을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나서 이삭이 생겼을때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이 어떤분인지 알고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고 할때 순종하여 나가게 된것입니다.
혹여 지금 세상과 짝을 하고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마음속에 십자가를 보면 눈물이나고 하나님이 나를 버린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어난다면 하나님이 강권하셔서 찾으시는것이니 하나님앞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받아주십니다.
우리는 모두 탕자와 같아서 아버지의 재산을 들고 세상에 나가서 흥청망청 살고 있는 자녀들과 같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빈털털이가되고 돼지 주엄열매를 먹고 비참하게 놓였을때 우리아버지집이 그리워지고 아버지를 찾아가게되는것입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것중에 하나가 하나님이 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끌고 다닐거라는 것입니다. 개목걸이를 매고 처음 믿음부터 끝까지 끌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인냥 착각하는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개처럼 끌고다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개가 아니라 인간이고 인격체이고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으로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해주시니 우리도 또한 늘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벗어나지 않도록 늘 경건의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것입니다.
설령 우리가 죄에 거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당신이 부모인데 자녀가 말안듣는다고 내쫓을겁니까? 말안들으면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말안들어 나가 이놈아" "공부하라고 했더니 하라는것은 안하고 말이야 다른짓만하고" "내가 왜 저런 자식을 나았는지" 그렇다고 나갈겁니까? 공부안했다고 자녀를 집에서 내쫓는 부모가 있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그 말들이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임을 기억하십시요!! 그래서 믿는자들은 성경을 읽다보면 마음에 찔리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는데 힘쓰라고 했는데 자기가 하나님을 아는데 힘쓰지 않은것이 있으니 마음이 찔리고 거룩하고 죄짓지말라고 했는데 날마다 죄를 지으니 부모님 눈치보이는것입니다. 그것은 자녀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가능한것입니다. 내자식이 아닌 남의 자식은 무엇을 하든지 관심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하나님이 우리를 간섭하고 훈계하고 교훈하는것이 당연한것입니다.
우리가 죄에 거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자녀를 버립니까? 안버리십니다. 잘 붙들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려고 훈계하고 교훈하고 채찍질하고 그렇게 많이 맞다보니 잘못하면 맞는구나 하나님이 바라는뜻대로 가지 않으면 혼나는구나 하고 깨닫다보면 하나님이 좋아하는걸 하게되는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진 풍성한 것들로 자녀들에게 채워주는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통제하지 않습니다.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계시기때문에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찾기 바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다가도 신앙이 성숙하게되면 그동안의 불순종에 대해서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언과 예언에 대한 부분인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별한 계시 곧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가지고 하나님을 알기에 우리가 부족합니까? 부족하지 않습니다. 성경가지고 우리가 삶을 사는데 지침이 되는데 부족합니까? 하나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예언이 필요할까요? 이미 성경에 다 기록되어있는데 무슨 예언이 필요할까요? 당신은 이담에 훌륭한 시장이 될꺼야...이런 예언 하나님이 기독교인들보고 점쟁이 되라고 하셨습니까? 세상에서 높은 사람되고 잘살고 부자되고 많은 사람이 따르는 인기좋은 사람이 되는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데 방해됩니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에게는 저주가 될수 있습니다.
차라리 실패하고 부족하고 가난해지고 인기없는 사람이 되는것이 더 유익할겁니다. 왜냐구요!!! 내주변에 아무도 없어진다면 그다음에는 누굴 찾겠습니까? 하나님을 찾지 않겠습니까!! 내 주변에 아무도 없고 홀로 남았다면 그다음엔 뭐하실것입니까? 전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겠습니다.
외롭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는 당신을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하십시요. 고요하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십시요.. 하나님과 대화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원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고백하십시요. 어느 처지에 있더라도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할수 있다 하신이는 하나님이신 우리가 가난할때나 부자일때나 어느때나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할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방언에 대해서 전 방언을 사모하고 하는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방언을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방언을 하는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방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사인지 구별해야 합니다. 요즘 방언은 귀신들이 장난치는게 많아서......방언보다 하나님이 준 귀한 언어로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요.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기도하는것은 내 마음이 알아듣는 기도가 곧 영으로 기도하는것이라는 뜻인데 사람들은 우리말로 기도하고 방언으로도 기도하라고 하는걸로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전 14장은 방언의 유익이 아니라 방언이 꼭필요한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성경이 없었으니 방언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예언하셨던것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래서 교회안에서 통역이 있을때 방언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때 방언은 예언이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되고 나서는 예언적 방언은 이제 쓸모없어지게된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방언이 너무 난무해서 큰일 났습니다. 방언이 하나님을 증명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교회가 부흥하는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쇄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방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때 일부 사람들은 술취했나보다고 빈정거리기까지 했습니다. 택함을 입지못한 자들 구원받지 못한 유기된자들은 아무리 기적이 나타나고 방언을 해도 결코 그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방언은 개인적으로 유익한것이지 교회적으로 유익한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방언을 꼭 해야겠다면 골방에서 하라고 하는것입니다. 교회에서는 가급적 방언기도하지 마십시요. 많은 신앙의 초보인분들이 흔들리고 또 그런 은사에 함몰될수 있습니다.
바른 신앙은 바른 성경관을 가지고 있는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벗어난것은 배격해야합니다. 많은 이단들과 불교인들도 방언을 하고 천주교인들과 이슬람인들도 방언을 흉내냅니다. 그리고 방언을 하는경우도 있습니다. 방언은 기독교인들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안에 바른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고 바른 신앙 바른 구원관아래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바르고 거룩하고 의로운 삶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선택함으로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신앙생활을 해야하는것입니다.
모든 수학공식의 해답은 하나입니다. 해답이 여러개가 될수 없습니다. 곧 진리도 하나입니다. 진리가 여러개일수는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 되시고 우리를 작정하신대로 천국까지 이끄실것이고 저주받은 우리를 의롭다 칭해주실것이며 저주받은 우리를 영원한 나라의 상속자로 만들어 주실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 자랑할것이 없는 저주받은 백성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입어 구원얻는 자리에 옮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사람들 향해서 구원받지 못함을 조롱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할수 있고 세상사람들을 불쌍히 여긴다고 말할수 있겠지만 우리가 혹여 세상사람들을 경멸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구원받은게 무슨 큰 자랑인냥 떠벌리고 다닌다면 하나님이 슬퍼하실것입니다. 겸손하게 늘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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