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전13:2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사60:19, 렘31:34, 합2:14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주안에서 형제된 바나바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10년동안(신학교 졸업이후) 아이들과 묻혀서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이 살면서 마음은 갈급했지만 늘 육신이 연약한 관계로 그동안 공부에 소홀이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았더니 많은 부분에서 지혜가 약해지고 하나님을 찾는것이 부족해지며 성경을 이해함이 연약해짐을 느낍니다.
이 구절은 옛날에 전 이렇게 해석했고 그것이 맞을것입니다. 천국가서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가 궁금해하던것을 하나님이 다 가르쳐줄것이다. 전도사님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옛날 거울은 동으로 만든것이라서 요즘같이 깨끗하지 않았기 때문에 희미하게 알수 있었을것이라고....그날에(천국가는날) 주님을 만나면 모든 의문이 다 풀어질것이라고......
바나바 형제님 제 첫사랑 자매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참으로 반갑네요^^ 제 나이를 알테니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것같습니다.
한가지 요즘 들어서 제가 반성하는것이 있으니 참으로 잘난체를 많이 한다는것입니다. 제 잘난맛에 살고 있죠. 그래서 어떤부분이 나의 자랑이 되고 있는지를 깨닫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년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과연 하나님뜻안에서 아이들을 돌봤는지 다시 돌아봅니다. 연수만 많이 했을뿐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있었는지.....혹 아이들을 사랑하는것보다 교사 연수가 더 중요한것은 아니었는지...그래서 그동안 오랬동안 교사로 봉사했던 그 봉사를 내려놓은 지금 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내가 잘해서 교사를 오랬동안 한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때문이라는것을.....그리고 이렇게 교사직을 박탈당하면서 하나님께서 쉼을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쉬고 싶었거든요...그리고 이렇게 공부하게 하심을 또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신학은 하나님을 더 잘알자는데 핵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학이 구원을 이루는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깨달음으로서 하나님을 더 잘아가게 하는것이 신학입니다. 요즘 목회자들은 하나님을 알기위해 목회하는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위해서 목회를 하는것을 보게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양들을 돌보는것이 핵심이 아니라 자기의 삶이 풍요로와지는것이 핵심이 되다보니 교회들마다 시끄러워지고 싸움이 끊이질 않습니다.
남포교회도 문제가 없을까요? 아니요 모든교회가 다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교회들 안에서 어떻게 교회를 지켜나갈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때가 이때라고 생각합니다. 형제님이 교회에서 너무 힘들고 어려운것을 알고 있습니다. 권면하고 사랑으로 도와주십시요. 지체에서 떨어지는것은 상처가되고 그 상처는 많은 교인들에게 큰 짐이 되니 교회를 사랑하고 교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가 분리되면 안된다고 청년들을 설득시켜 주십시요.
제 교회는 삼분오열되어서 많은 부분 상처속에 고통받고 있고 전 더욱더 큰 상처속에 있습니다. 제 친구들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떠나버렸기 때문에 가끔 꿈에서 친구들을 두들겨 패곤합니다. 큰 상처가 마음에 남아있으니 아무리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도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움을 느낍니다.
위 본문을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합니다. 이는 불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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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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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본문이 주어진 것은 은사때문에 주어진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사와 비교해서 해석해야합니다. 은사를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정말 지식이 폐할까요? 지혜가 폐할까요? 방언이 폐해진것일까요? 폐한다고 말했는데 왜 그것들이 남아 있을까요? 어떤 지식이 폐하는지 어떤 지혜가 폐하는지 어떤 방언이 폐해지는지를 이해해야합니다.
전 분명히 천사의 말은 방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천사의 말은 - 아름다운 말 위로의 말 좋은 언어를 뜻한다고 말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좋은 말을 해서 위로를 해도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것입니다.
제가 지금 지식이폐해졌습니다. 지혜도 폐해졌습니다. 어떤 지혜가 폐해지고 어떤 지식이 폐해졌을까요? 바로 인간의 지혜와 인간적 지식이 폐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적 지혜와/지식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조명으로 허락하신 성경말씀을 온전히 깨닫는 지혜와 지식을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배운바 지식과 지혜들은 하나님앞에서 폐해집니다. 그것이 하나님 보다 우월할수 없으며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위에있을수 없습니다. 방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보다 위에 있을수 없습니다.
믿는자들에게 세상의 지식/지혜/언어들은 하나님앞에서 자랑할것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성경을 이해하고 성경을 깨닫고 성경을 바로 아는데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 그는 배운지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설교했을때 3천명 5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소용이 없습니다.
바울도 인간적 지식과 철학으로 가르쳤을때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았고 그가 복음으로 하나님만을 전했을때 세상의 헛된철학과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운동력이 있어서 골수를 쪼개고.....하나님의 말씀외에 지식은 소용이 없어집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우리의 지식 배운것 지혜들을 동원해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믿음이 자라고 성장할수록 어떻게되나요? 우리가 배운 지식과 지혜들은 없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지혜와 지식이 되어갑니다.
희미하게 아는것은 어린아이의 지식입니다. 그러나 장성하게되니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것처럼 알게되는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당장 이루어지는것은 아닙니다. 어린아이가 당장에 어른이 될수 없듯이 신앙도 중생한 우리가 바로 어른이 될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신앙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장성하게되면 성경을 바로 깨닫게되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되면 시원해집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것과 같은 신앙으로 자라게됩니다. 과거의 의문들이 눈녹듯이 사라지게됩니다.
어떤 의문들이 있나요? 왜 창조했나요? 왜 선악과를 만들었습니까? 왜 홍수로 심판했습니까? 왜 모든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겁니까? 이런 의문들이 우리에게 가득하고 어린아이일때는 그런 의문들에 의해서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지만 장성해지고 하나님을 알게되니 나는 저주받은 자였고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했고 하나님앞에 대들고 반항할수 없는 존재이며 벌래만도 못한자고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사랑해서 구원하셨구나 이런 부족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셨구나 라는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이걸로 끝났을까요? 아니죠...
하나님이 기뻐하는것을 찾고 그것을 행하게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것이요 의문이 해결되는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전한것은 곧 마지막때에 하나님을 만날때 모든것을 다 알게되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온전한 것이라는 말은 성경을 지칭하는 말임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온전한 것이 만약에 마지막때에 주님을 마나는 것이라면 아마 이렇게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마지막때에 주님이 재림하시는날....우리가 모든것을 알게될것이니...그때가 되면 모든것이 폐하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은사와 표적을 사랑하지만 성숙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를알고 그 지혜안에서 하나님을 더욱더 깊이 알아가게됩니다. 방언을 하던 신자도 성장하고 성화되어가면 갈수록 방언을 버리게됩니다. 세상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지혜가 출중해도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믿음이 깊어질수록 자기가 가진 지혜와 지식을 버리게됩니다.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자기가 가진것을 다 똥으로 여기고 오직 하나님을 아는것만을 복음만을 자랑하겠다고......이것이 성장한 성숙한 신앙입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할것입니다. 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라면 이해하게됩니다. 그리고 자신감이 생기면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아이가 어른을 이해하지못하듯이 자녀가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자기가 부모의위치 어른의 위치에 서게되면 세상을 관조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신앙인이 될수 있습니다.
칼빈같은 분이 바로 그런분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알정도로........
제가 깨닫는것이 그런것입니다. 제가 27살때 신경성 위경련이 있었습니다. 1년정도 있었는데 왜 그당시 그런 병이 있었냐면 전 저녁이면 잠을 잘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늘 고민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인생에대한 의문들과 고민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실수한것들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왜 이런 실수를 했지? 오늘은 왜 이런 죄를 진거지? 오늘은 왜 이런것이지? 왜? 나는 이렇게 못난거지.....그런데 아직도 지금도 10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이 부르짖습니다. 왜 나는 여지것 하나도 변하지 않은것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물었지만 하나님은 저에게 변한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제가 변한것을 느낍니다. 변한것을 느끼다보니...욕심이 또 생깁니다. 그래서 또 넘어집니다. 지금 가진 욕심마져 하나님앞에 내려놓을때가 되어야 비로서 조금더 성장할것같습니다.
전 칼빈과/박영선 목사님의 해석을 존중합니다. 그분들의 원론적인 해석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원론적 해석위에 또하나 개인적인 깨달음과 체험도 중요합니다. 그 깨달음과 체험이 또한 성경적이어야합니다. 성경적이라는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나의 고백을 듣고 싶다는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할때 부족하다고 고백하는것을 기뻐하신다는것입니다. 알고 싶을때 알고 싶다고 말하는것을 바라신다는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즘 시편에 대해서 깨닫는바가 있습니다. 제 블로그에 시편에 대한 글을 한편 쓴것이 있습니다. 나의 고백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편을 묵상합니다.
항상 주님안에서 믿음의 성숙이 있어지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문을 갖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자기의지혜를 버리고 자기가 가진 지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으로 넘치길 바랍니다.
제가 말한것중에 실수한것이 있다면 이해하시고^^ 전 마음을 열어 틀린부분이 있다면 늘 고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식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더 큰 지혜와 지식을 받아들여야 하고 잘못은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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