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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운동/알 파 코 스

쓰러트림이 왜 이단인가!!

성경에 쓰러트림에 대해서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쓰러뜨림을 가지고 이단성을 분별하기 힘들다고 말하는데  이는 큰 오류를 범하는것이다. 쓰러뜨리는 것은 이단적 행위가 맞다.  왜냐하면 쓰러뜨리는것을 가지고 성령의 터치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쓰러트림이 그냥 쓰러지는것이 아니다. 성령님이 감동하고 터치하셔서 쓰러지는것이다.

 

그들이 쓰러트리는것이 곧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하는 행위이고 이는 신비주의적 발상에서 나온것이기 때문에 이단인것이다. 신비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같아질수 없으며 자연계의 질서를 훼손할수 없는것이다.  자연계의 질서를  좌우지할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조차도 자연계의 질서를 통일성안에서 이끄시고 지키시고 계시는데 우리 인간이 자연계의 질서를 파괴시키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행한다고 말하는것이 신비주의이다. 

 

쓰러트림의 행위를  방언의 행위쯤 은사주의의 하나쯤으로 생각하는것은 심각하다.  왜냐하면 쓰러뜨림의 행위는 성경에 기록조차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고  방언은 성경에 기록이 있기 때문에  쓰러트림을 방언과 같은 계열의 은사로 생각하는것은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는것이다.

 

많은 이단들이 쓰러트리는 행위를 하는데 쓰러트리는 행위를 우리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은 결코 쓰러트리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넘어뜨리거나 쓰러트리는 분이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쓰러지거나 넘어질수는 있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쓰러뜨리는적은 한번도 없고 성경에 그런 기록이 없다. 인간이 스스로 쓰러진것이다.

 

성령님이 터치한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입신의 역사가 일어나서 쓰러지는것도 아니고  쓰러뜨려서 입신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왔다거나 지옥을 보고왔다거나 천국을 보고 왔다고 말하는것은 그 자체가 성경의 계시를 무시하고 성경외의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는것을 강조하고 성경을 파괴하는 자연스러운 행위를 자행하는것이 바로 이 쓰러트림에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성경에 일점일획도 추가하거나 빼지말라는것을 쓰러트리는 행위로 지금 자행하고 있는것이다. 

 

이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생명책에서 빠질것이고  이짓을 저지르는 사람은 저주가 더할것이다.  곧 쓰러트리는 행위를 하는 자들은 구원받은 백성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저지르는것이다.  구원받은 백성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코 이런것을 할수 없고 이것을 보고는 결코 이를 성경적이라 인정할수 없는것이다.

 

우리가 왜 하나님과 하나되는 입신을 체험해야하는가?  왜 그짓을 해야하는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거듭남을 허락해서 우리를 살려주시고  죄의 종에서 의의종으로 신분을 바꿔주시고  저주의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진 우리의 상태가 뭐가 더 부족해서 하나님과 하나되어야하는 짓을 해야한단 말인가?  입신이라는것이 성경적인가?  이는 샤머니즘의 한 방편이 아닌가?  입신을해서 예언을 하는것은 무속신앙이 아닌가?  이것이 기독교인가?

 

쓰러트림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말은  왜 하늘을 쳐다보고 쓰러지는가 말이다.  하늘의 하나님을 그렇게 뻔뻔하게 볼만큼 인간이 의롭고 인간의 그렇게 자랑스러운가?  인간은 하나님을 결코 볼수 없는 죄인이고  저주받은 자들이다.  저주받은 죄인은 하나님을 볼때 그  빛과 그 위엄앞에서 결코 고개를 들수 없는것이다. 

 

곧 쓰러트려서 하늘을 쳐다보게 하는것은 하나님을 대면해서 나는 죽지 않는다는 일종의 그런 의식이고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것이다.  곧 쓰러뜨리는 자들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성령님으로 거듭난 백성은 하나님을 결코 대적할수 없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것이다.

 

겸손한자들은 엎드린다.  하나님을 바로 볼수 없기 때문에  엎드려서 하나님의 처분만을 바라보는것이  우리의 올바른 모습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겸손하게 엎드린 자들을 일으키시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다.  인간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결국 죽어서 지옥에 갈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지옥에 갈수 밖에없는 우리의 존재를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그 아들까지 주셨으니 우리가 그 하나님을 향해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뻔뻔히 쳐다보면서  하나님과 하나된다는 입신상태로 들어가는 짓을 자행할수 없는것이다.

 

이것은 복음이 아니다.  성경이 아니다.  다른 복음이고 다른 성경이고 다른 종교이다.  그런데 쓰러트림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그것이 성경적이며 성령님의 터치라고 생각하는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솔직히 난 이 쓰러트리는 행위가 이교도의 사탄숭배의 한 단면으로 보고 싶다.  왜냐하면 쓰러뜨리는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단이기 때문이다. 

 

이 쓰러트리는 집회는  사탄을 숭배하는 집회라고 볼수 밖에 없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성경이 아니다.  곧 기독교도 아니고 성경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닌것은  결국 사탄을 숭배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쓰러트림 그것을 분별하여  우리가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서는 안된다.  그짓을 자행하는  목사들을 경계해야하며 우리의 신앙을 지켜야한다.   말로는 예수님을 말하지만 뒤로는 다른 짓을 자행하고  거짓복음으로 우리를 속이는 자들인 것이다. 

 

 

[스크랩] 쓰러짐의 현상에 대한 소고 0 0 2007.06.07
[스크랩] 쓰러짐의 현상에 대한 소고 0 0 2007.06.07

 

위 글들은 똑같은 글이다.  쓰러짐에 대해서 이해하기 힘들거나  유명한 사람들도 쓰러뜨렸다고 생각한다면 이글을 읽어보기 바란다. 이것은 쓰러짐을  표적을 구하는 자들 말씀보다  기적과 이적에 몰두하는 자들에게 나타나기 쉬운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령님은 말씀안에서 역사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으로 역사하신다.  쓰러짐은 예수님을 증명하는것이 아니다. 성령님 자신이 자기를 증명하는것이다.  그래서 성령님의 사역과 전혀 다르다. 성령님은 쓰러트릴려고 오신 분이 아니다.  성령님이 은사를 허락하고 방언을 허락하시는것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이다. 성령충만한것도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살게 하기위해서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충만과 성령님의 사역을 예수님을 배제한  능력과 표적 그리고 이적과 감정에 사로잡히는 어떤 것으로  성령님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쓴다면 그것은 보내신 자의 명령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시는것이다. 이것이 분별이다.  김삼목사님은 분별의 영이 없다.  단호하게 말할수 있다. 그분이 분별의 영이 있다면  자기 고집에 사로잡히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구원받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분별의 영을 가진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것에 대해서 실망을 하는것이다. 남보다 더 잘 섬기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섬기는것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해야하지만  특별히 잘하는 분이 계신다.  분별도 모든 기독교인이 다 해야 하지만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잘 할수 있는것이다. 

 

방언도  모든 기독교인이 다 해야할 이유가 없는 특별한 은사이다.  방언만큼 겉으로 드러나는 표적이 없으니  병고침이 있긴 하지만 병고침은 병원에서 진찰한번으로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수 있지만 방언은 확인할 길이 없는 표적이다. 그래서 방언을  골방에서 하라는 것이 이것이다. 혼자 유익하기 때문이다.  교회에 덕이되려면 해석할줄 알아야하는데  해석이 없는 방언은 교회안에서는 꽹과리보다 더 시끄러운 것이다.  교회에 유익이 되는것은  예언이다. 

 

분별해야한다. 못하면?  분별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의  그 은사에 동감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언을 분별할수 있으니 그 예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사단으로 부터 왔는지는  성경이라는 기준으로 확인할수 있기 때문에  분별이 가능하다.   우리의 기준은 성경이다.  성경안에 쓰러짐에대한 말씀들은  빈야드 은사주의자들이나 신비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쓰러짐과  전혀 다른 개념의 말씀들이다. 

 

빈야드나 표적과 이적을 구하는 자들의 병고치는 은사적 쓰러드림이나 성령님안에서의 안식이라며  성령안에서 죽는다고 말하는 그런것들은  다 거짓이라는 말이다.  이런 쓰러뜨림에 대해서 성경은 단 한마디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추해서 해석하려고 하려면 억지해석이 되는것이다.  착각하지 말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