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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렙/수 필 집

잘난체 하며 사는 내모습을 반성하며..

가끔 이렇게 묻는 사람들 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려고 예수님 믿는거야?  천국때문에 예수님을 믿는거냐고...좀더 고차원적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안되?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를두고  잘난체 한다고 합니다.   저부터 회개합니다.  가끔씩 나는 너무나 잘난체 하고 살고 있습니다.   잘난체 하지 않는 참된 신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실때  이렇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예수님은 천국이 아니면 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천국에 갈 자격이 없었고 갈길이 없었고  죽음으로 갈수밖에 없었고 지옥으로 갈수밖에 없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우리를 천국에 보내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실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성경이고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유업)을 약속하셨는데  그 복이 하늘나라입니다.  믿는자들에게 천국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고 우리의 죽음도 헛것이고 우리의 신앙도 헛것입니다. 

 

우리가 인격을 수양하기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교회를 다니는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났더니 의롭게 살게되는것이 우리들입니다.   믿음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저주받은 인간들입니다.  저주받은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심판을 받아야하고 지옥으로 갈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것을 깨닫는것이 우선입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입니다.  이 존재를 깨달아야 구원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찾는것입니다.  오직 구원하시는 하나님 한분뿐입니다. 라고 고백하게 되는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비로서 믿음안에서의 성장이 있습니다.  인격의 성숙이 있고  자람이 있습니다.  믿음의 진보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조금  신앙이 자라면  잘난체 하게 됩니다. 잘못된 믿음이 아니라  어리기 때문입니다.  조금 크니 힘을 자랑하고 싶고 배운것을 자랑하고 싶은것이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부모님들이나 형들은 다 거쳐간것인데  이제서야  학교다니면서 형들이나 부모님들이 모르는걸 배운것처럼  자랑해봅니다.  

 

나처럼 믿어봐!!  이게 신앙이야.....이렇게 말하고 싶을때가 많아집니다.  믿음이란 이런거야!!   넌 너무 믿음이 없어 기도도 안하지?  금식은 얼마나 하니?  새벽기도 다니니?  금요철야는? 수요예배라도 참석하니?  고작 주일예배 한번 나오고 구원을 얻기 바라니.....믿음이 자라고 큰 사람들은 이런 어린신앙을 놀리지 않습니다.  귀엽게 봐줍니다. 그래  마자라고 대답해줍니다.  부모님의 위치에 가게되면 어린아이들의 신앙이  촌스러 보이는것이 아니라...자랑스러워 보이는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이런 믿음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왜 우리는 잘난체 해야 하나요?  우리는 저주받은 죄인들인데  하는 짓들마다 죄만 행하는 악한자들인데  심판받을 자리에 있는 자들인데....왜 잘난체를 해야하나요?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하지 못한 아직도 믿음의 철부지 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싫어하는것은 잘난체 하는것입니다.  천국을 얻었다고 뻐기는 것입니다.  자랑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그런 기독교인들 어린아이 같은 기독교인들이 많아서 욕을 많이 먹습니다.  신앙의 진보가 있는 성도님들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세상이 녹아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라야합니다.  신앙의 진보가 있어야합니다.   천국을 얻었으니 미안해 해야합니다.   세상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저주받은 자들이니 그들에게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 설명해야하고  내가 얻은 천국을 그들도 얻도록 해야합니다.  그것이 빚진자들의 행동이며  하나님을 믿은 자들의 본입니다.  그렇게 까지 할수 있도록 믿음의 진보가 있도록 자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는자들의 힘은 약한데서 나오고  믿는자들의 삶은 빚진데서 시작합니다. 

 

나 이렇게 살아...정직하게, 거룩하게, 경건하게....이렇게 살아 믿는자들은 이렇게 살아야해 라고 말하는것은  결국  다른 사람을 향해서 너는 정직하지 않아, 거룩하지 않아, 경건하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것입니다.  이웃을 정죄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믿는자들은  천국을 얻었으니 미안해야 하는데  천국을 얻은것이 자기가 잘해서 그런냥? 자랑을 쉼없이 합니다.  세상사람들이 눈쌀을 찌푸릴 정도로  너가 가는 천국 나는 안간다고 반발할정도로 심하게  자랑합니다. 이는 절제해야하는것은 맞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지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잘해서 천국을 얻은냥  세상사람들을 향해서 잘난체를 합니다. 이것이 잘못된 신앙의 전형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천국때문에 예수님 믿는게 아니라  예수님 닮으려고 예수님 믿는다고....이것도 초보신앙이고 자랑입니다.  이보다 좀더 자라야합니다. 그것은 가르쳐서 되는것이 아니라 묵상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저도 아직 부족합니다.

 

나는 세상을 변화시킬수 있는  능력과 부와  힘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가진다고 세상을 변화시킬수 없습니다.  그것을 가지면 세상을 변화시킬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추구한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것을 깨달았습니다. 

 

약한데서 우리가 강해지는것입니다.  내가 약할때 내안에 계신 주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보배되신 주님께서 일하시기때문에  약해질때 세상을 정복할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길수 있게됩니다.  세상을 이기는것은  곧 빛이 되어 세상속으로 들어가는것이고  소금이 되어 세상의 부패를 막는 것입니다.  곧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살게 하는것입니다.  전 그 경지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갈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깨닫습니다. 

 

뭔가 거대하고 위대한 일을 해야하는것처럼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걸 깨닫습니다.  유년부 아이들에게 설교했던 그 설교가 기억납니다.  각 지역마다  작은 불빛들이 되어서  온 세상을 밝히는 우리들이 되자고....내가 태양이 되어서 세상을 밝히는것을 하나님이 바라는것이 아니라  거울이 되어서  예수님의 빛을 받아서 구석구석 빛이 들어가지 않은 곳에 빛을 비추는 그래서 더러운 곳을  밝히고 청소하는 일을 감당케 하는것이 바로 우리들의 역활이라고....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태양이 되려고 욕심을 부립니다. 

 

자기 믿음의 분량만큼의 크기의 거울이 되면 됩니다.  그렇게 태양이신 주님의 빛을 받아서  세상에 비추면됩니다.  거울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지만  태양빛을 받은 거울을  제대로 쳐다볼수 없게됩니다.  우리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안에 계신 예수님을 세상에 밝히면 됩니다.  그것이 믿는자들의 삶입니다.  처음 신앙의  손거울에서   벽걸이 거울같이 큰 거울이 되어서 내가 있는 그곳의 어두움을 밝히는 주님의 착한 종이 되는것이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신자의 모습이 아닐까요?

 

이것이 주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나의 빛이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