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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나의 신앙 간증

믿는자들은 다 방언해야한다는 그말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마가복음 16장 15~18절말씀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방언은 믿는자들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말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방언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목사님과 많이 다투다가  많은 분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있는 몸이지만  나의 뜻을 굽힐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결코 그분의 의견을  인정할수 없습니다. 

 

방언을 믿는자들이 모두 다 해야 한다는것은  구원론과 연관성이 있는것입니다.  믿는자는  구원받은 백성이고  구원받은 백성은 믿는자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해 믿은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 성령님으로 우리의 영을 살려주셔서 내 영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깨달아 구원을 얻은걸 알게되는 것입니다. 

 

내가 믿어 구원을 얻은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구원한것을 아는것이다.  성경에  하나님을 아는것이  구원이라고 말씀하신 구절이 있습니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요한1서 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골로새서 1: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요한1서 4: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하나님을 아는것이 내가 하나님을 알수 있는 방법은 아무데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서 알게되는데  들려주는 사람이 없이는 알수가 없는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라는 미련한 방법으로  말씀을 전하게 하고  그렇게 말씀을 전하는 그 전도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듣게되고 구원을 얻는 길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의 발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이 나에게 날수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구원을 얻을 길은 없습니다. 내가 죽어서 천국을 만들수도 없고 내가 죽어서 천국을 선택해 갈수 없는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천국을 만드셨고 그곳으로 하나님만이 인도하실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에 대해서 할수 있는일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이 만든 천국으로 가기 위해 하나님이 제정한 방식을 따르는 길밖에 없는것입니다.

 

그길을 선택하는것도 내가 선택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그 길을 알게되는것입니다.  곧 구원받은 백성은 거듭난 백성 중생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죽은 자가 거듭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갈수 없습니다.  거듭난다느것은 성령님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되는것이고 생명을 얻게됨으로서 알게되는것은 전에 내가 죄로 죽어 썩은자라는 사실을 깨닫게되는것입니다.

 

그래서 중생한 백성들은 회개하는 시간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살아났기 때문에 죄가 보이는것이고 죄를 깨달았기 때문에 그 죄를 씻어야 하는것이고 죄를 씻는 방법으로 예수님을 주셨으니 예수님의 보혈을 믿고 의지하고  그 보혈에 죄를 씻고 주님을 영접함으로서 이제  의롭게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것입니다.

 

그런데  왜 내가 믿는자들이 다 방언해야 한다는 말에 내가 그렇게 반대하느냐 하면 믿는자는  모두 방언을 해야한다는 뜻은 곧 방언을 하지 않는 자는 믿지 않는 자들이라는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방언을 못하는것이 아니라 안하는것이라고 말하는것에 대해서 방언을 어떻게 하라는거냐고 나는 반문하지 않을수 없었고  그분의 대답은 자기 교회 사람들은 다 방언했는데 방언을 하려면 첫단어를 다른 말을 해야한다 이렇게 말했는데 나는 이말에 동의할수 없었습니다.

 

쉽게말해 랄랄라/바바바/도도도/버버버/이런식으로 첫발음 옹알이 발음을 하지 않으면 일반은사로 준 방언을 못하게될거라고 그렇게 하면 방언을 하게될거라고 말하는데 전 이렇게 하는것이 방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새언어(낡은언어는 바벨론에서 흩어진 지금의 우리가  쓰는 언어들)를  하면 충만한 성령님의 은사를 맛보고 은혜에 참여하는 자가된다고 말하는것에 전 동의할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16장의  말씀에서 믿는자들은 다 새방언을 말하고 라는 단어가 과연 방언을 뜻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믿는자들이 다 새방언을 말해야한다면 저기 기록되어 있듯이 믿는자들은 독을 마셔도 해가 없고 병을 다 고쳐야 하고 귀신을 내쫓아야 하는것입니다.  그러나  믿는자들이 다 병에 걸리지 않는것도 아니고 바울도 병으로 고생했고 칼빈은 병때문에 오래살지 못했고  많은 믿음의 선지자들이 병으로 죽어갔던것을 기억하면  그분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결국 이 성경구절을 가지고 믿는자들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바울이 쓴 성경책은 다 불태워야하며  칼빈이 쓴 기독교 강요는 쓰레기가 되어야 마땅한것이 되는것입니다.  

 

방언을 모두 다 해야한다는 말은 그렇게 쉽게 말할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방언을 하시는 분들은 신령한것을 체험했음으로 그 믿음이 더 자랄것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음을 또한 알수 있습니다.  방언을 한다고 정말 믿음이 강하고  특출난 믿음을 소유하게되는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방언을 말함으로 생기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허락하신것이고  믿음이 자라는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행함으로서 믿음이 자라는것입니다.  방언을 말하는것은 우리가 의를 행하는것과 다른것입니다.  그 자체로 유익이 있지만 방언을 강요하여 방언 못하는 성도님들을 상처주는것은 하나님이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글을 읽는 분들중에 방언을 하실줄 아는 분이 계시다면  방언의 은사를 받은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방언을 자랑으로 쓰지말고 하나님과의 대화로서 개인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을 자랑할때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병을 고치는 신유의 은사를 받은것을 가지고 돈벌이에 쓰는 자들과 하등 다를것이 없는것입니다.

 

늘 겸손하게 은사주심에 감사하며 하나님과 오래고 집중적인 기도를 통해서 그 은혜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더욱 깊이 깨닫고  남들보다 더 겸손하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성도님들을 섬기고 부족한 성도님들을 도우며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깨달아 말씀으로 성도님들을 세우는것이 은사를 받은 자들의 참된 모습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님께서는  방언을 받은자들 그리고 은사를 받은자들에게  사랑을 행하라고 강조하고 말씀하셨던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은자들이 되었고 참포도나무에 접붙임을 당한 가지들이 되었으며  주님의 몸된교회에 지체로서 참여하게되는 영광을 얻게된것입니다.  주님은 자기의 백성들을  가리켜 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 여러군데에서 몸을 강조하고 있고 제가 몸에 대한 글을 묵상하며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몸의 지체가 여러가지이듯이 사랑하는 자기의 백성들에게  주님의 몸에 참여케 함으로서 각 지체의 역활을 감당했는데  그 역활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주신것입니다.  모두 방언하고 모두 병고치고 모두 귀신을 쫓고 모두 지혜와 지식에 능한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서로 섬겨야하는것은 성경에 가르치고 있으니 모두 섬기고 사랑해야 하는것은 마땅이 성도가 해야할일이고 그것이 없이는 몸이 하나될수 없으니 하나님은 섬기는것과 사랑하는것에 대해서는 따로 구분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은사는 없습니다. 사랑은 은사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주님의 몸에 지체로  참여하는데  방언을 모든 믿는자들이 다 해야한다면 방언을 못하는 성도는  몸의 지체에 참여하지 못하는것이 되어버립니다.  나와 대화한 목사님은  방언을 통해서  다른은사들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방언이  모든은사의 통로가 된다고 말한것입니다. 그것이 맞다면 사실이라면  방언을 못하는 성도는 다른 은사를 받지 못한것이고  여기서 말하는 은사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 일원이 된것이고 각자의 맡은 임무를 하나님게서 그 기쁘신 뜻대로 주신것을 부인하는것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방언을 못하면 지체에 참여할수 없다는 것이 되어버리는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지체에 참여할수 없다는것은 곧 구원받지 못했다는 논리로 귀결됩니다.  방언을 모두 다 해야한다는 말은 곧  방언을 못하는 자들은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하는것이 되어버립니다. 그것이 은사주의자들의 주장이고 나는 이 주장을 이단으로 봅니다.  이런 말씀은 성경 어느구절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의 120명의 성도가 다 방언을 했다고 해도  그 성도가 모든 기독교인들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요  베드로로 인해서 3천명 5천명이 주님을 영접했을때 다 방언했다는 기록이 없으니  120명이 다 방언을 했으니  모든 기독교인이 성령을 받으면 다 방언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것입니다. 

 

믿는자들에게 이미 성령님이 임하셨고 충만하게 임하셨으며 그 영혼을 살려주셨는데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다 방언을 해야한다면 방언을 못하는 성도는 결국  성령님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방언에 대한 나의 논쟁의  시작과 끝은 바로 이것입니다.  방언은 믿는자들 모두 다 하는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은사를 통해서 방언을 허락하시는것입니다.  방언을 하는 자들과 못하는 자들  둘의 믿음을 비교할때  그 비교의 차이는 없습니다.  방언을 잘한다고 믿음이 강한것도 아니요   방언을 못한다고 믿음이 없는것도 아닙니다.  그것의 분별은 하나님만이 하실것입니다.

 

고전 12장 29~30절 말씀을 보면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가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고치는 은사를 가진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사랑은 통로고 길입니다.  각 몸의 지체가 연합하기위해서 서로 사랑해야 하는것입니다. 통해야하는것입니다. 길로 가야하는것입니다. 그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이 하나됨을 지키십니다. 성령님의 은사는 바로 하나됨을 잘 지키는 역할을 감당하시고 계시는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는것은 성령님의 은사를 활용하지 못함이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음이요 하나님의 역사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방언하는자들로 인해서  병고치는 자들로 인해서  능력을 행하는 자들로 인해서 교회가 쪼개지면 안됩니다.  그들의 자랑으로 인해서 교회가 흔들려서도 안됩니다.   오히려 묵묵히 안에서 일하는 많은 일꾼들로 인해서 몸은 지켜지는것이고 팔 다리가 다 잘려도 죽지 않을수 있는건  묵묵히 일하는 주의 백성들이 있기 때문에 몸이 죽지 않고 살수 있는것입니다. 

 

방언을 강조하는 자들이 있다면  네 그렇습니까? 라고 말하고 무시해버리십시요.  하나님은 방언을 일백만마디 하는것보다  우리가 알아듣는 언어로 하나님께 단 몇마디로 간구하는것을 듣습니다.  우리의 진실한 언어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우리의 고백이 하나님께 올라가게됩니다.

 

방언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결코 귀기울이지 않는거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쓰잘데 없다고 생각하는 잡스러운 기도까지 다 듣고 계십니다.  우리 부모님에게  용돈을 달라고 한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께  필요한것을 간구하십시요.  여러분이 필요한것이 있다면  방언으로 2박3일 금식하고 기도하는것보다  지금 당장  하나님께 필요한것을 단 1분만 구해도 하나님은 그 기도가 합당하면 들어주실것입니다.

 

다음번엔 기도에 대해서 묵상하고 글을 써보고 싶네요......남들이 너 기도 안해라고 욕하는 그 욕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의 기도에 대한 생각을 적어볼생각입니다.  무엇이 기도이며 얼마나 오래 해야 하나님이 들어주실려는지?  왜 기도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보고자합니다.  리차드포스터의 기도란 책은 읽지 마십시요!!  교묘한 사이비이니까.......천국은 무릎으로 가는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음으로 갑니다.

 

리차드 포스터는 관상기도라는것을 끄집어 내어서 기독교인을 미혹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반문하고 싶은 분들이 많이 있겠지만 관상기도는 수도원에서 나온것으로  기독교 영성과 전혀 상관없는  카톨릭영성이고 그것이 하나님을 알게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귀신의 농락을 당할수 있음으로 경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