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혜로운말씀/나의 신앙 간증

[스크랩] 나의 신앙고백 - 공중의 새와 들의 풀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

성경말씀중에서 가장 내 인생의 핵심으로 삼고 살아가는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공중의 새와 들의풀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내 신앙의 중심입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참 부유하게 살때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고 아픔도 있었고  그리고 가난도 있었고 참 어려운 시절들을 많이 보냈습니다.  누구보다 간증을 하면  눈물로 고백해야할만큼 많은 간증거리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많이 있을 겁니다.

 

모태신앙으로  어릴적부터 늘 교회에서 살며 찬양을 즐겨부르던 나의 어린시절이 생각납니다. 학교에서 나쁜말을 배웠다가 집에서 그말을 쓰다가  엄청 많이 맞고  나쁜언어를 쓰지말라는  어머니의 따끔한 가르침...책을 좋아해서 책만 보다가 학교성적이 엉망이라서  어머니에게 많이 맞기도 했습니다.

 

교회보내는걸 당연하게 생각했던 어머니 덕분에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속에서 건강하게 자랄수 있었습니다.   잘살던 집안이 풍지박산이 되어 길거리로 내쫓길지경까지 몰리고  그렇게 고등학교시절과 대학시절을 가난과 함께 보내야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많은 힘든 시간들 속에 나에게 힘이 되신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얼굴은 여드름투성이에 친구들은 거의 없었고  딱한명의 친한 친구만 있었지요.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사는지 연락두절입니다.  친구도 많지 않았고  늘 나의 삶은 학교와 집 그리고 교회가 전부였습니다.  

 

어릴적엔 시골의 작은 교회를 다녔고  의정부에 이사오면서  낙원교회라는 작고 아담한 교회를 다녔지요. 등록한 첫해 크리스마스때에는  예수님의 아버지 역활을 맡아 연극도 했었고..... 추운날  부흥사경회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던 기억들  새벽송을 돌다가  어느 집사님댁에서  번데기를 새벽에 먹은 기억들.  그렇게 행복하게 신앙생활했던 교회  전도사님에게 말씀을 배우면서 집에 찾아오는 여호와증인사람들과  열띤논쟁을 벌였던 중학교시절.......통일교에 다니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주먹다짐까지 했었던적도 있었습니다.

 

전도사님이 말씀을 잘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제가 비뚤어지지않고 신앙생활을 잘 했었나봅니다.   늘 경건하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불쌍한 이웃을 보면  단돈 천원이라도 도와줘야하고  어렵게사는사람들 붕어빵이라도 하나 팔아주고 싶은 마음을 가질수 있는것은  주님의 사랑때문입니다. 

 

어린시절  신앙생활했던 낙원교회가 부도가나서 문을 닫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어린 제가 할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고 사랑하는  강도사님은 어디론가 떠났고   새로운 목사님이 왔을때  교인들은 한주 두주 지날때마다 한명씩 떠나면서 결국 저만 남았습니다.  반년을 혼자서 예배를 드리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큰 교회로 갔을때...많이 당황했지만  열심히 기도하는 형제자매들을 보면서 새로운 교제를 맛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 적응이 되지 않더군요.  워낙 작은교회에서만 생활을 오래하다보니....그래서 동내 친구들 손에 붙들려서  동네에 있는  작은교회에 다니게 됬습니다.  작은교회에서의 생활이 참 행복했습니다.  그때가 고3때였는데 처음으로 성가대도 서보고.....그리고 문학의 밤때는 연극대본을 써서  연극을 하기도 했었죠.  정말 부족했지만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기립박수도 받았답니다. 

 

전 얼굴이 잘생기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사랑받으며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으로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그런 상처들을 가슴에 안고 살고 있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분들중에 부족한 분들 외로운분들만 보면 몸이 먼저 그분들을 찾아갑니다. 

 

하루는  교회에서 배회하던 어떤 분을 찾아가서  예배드리자고 말했다가  손을 붙잡혀서 그집에 끌려갔습니다.  초라하고 냄새나는 단칸방안에  두아이가 있었습니다.  딸둘을 키우는 참 불쌍한 아저씨 아이들의 몸에서도 냄새가 났었지요. 나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아저씨...전 사실 기도하는것이 지금도 익숙치 않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그 아저씨는 나에게 아이들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주일날 예배드리는데...그 집에 사는동안 전 아이들을 교회 대리고 다니며 말씀을 가르쳤지요.....

그 아이들 지금은  시집갈나이가 지났을텐데....잘 살고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작은교회에서의 생활은  전쟁으로 끝나버렸습니다.  교회분쟁이라는것을  처음 경험해본것이었습니다.  예배시간에  목사님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단상에서 내려오라고 떠들던 집사님   목사님이 간음했다고  교회는 시끄러워졌고  그렇게 목사님은 교회를 떠났고  성도님들도 많이 흩어졌습니다.  어린 우리 학생들은  많이 흩어져버렸지요....제 가슴에 상처가 크게 남은 날이었습니다.

 

저의 신앙생활은 편했습니다.  물론 삶은 어려웠지만  신앙생활만큼은 늘 행복했습니다.  교회가는것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낙이고 아이들을 만나는것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이교회에 다시 나오게된것도  교사가 필요하다는 부탁에  우리 구역 구역장님이 부탁해서 다른 교회 다니다가 다시  이 교회로 나가게 됬습니다.

 

20년을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이젠 시집갈나이가 지나버렸네요...저도 그만큼 늙어버렸는데  아이들을 위해서  일해서 번돈을 썼습니다.  사랑하며 돌보며 아이들과 지내다보니  내 성격이 아이들처럼 되어버리더군요.....

 

신학교를 다니면서도  전 늘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들이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학과도 기독교 교육학과였습니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  배우고 싶었으니까요....그런데 그꿈도 금방 깨져버렸습니다. 학교는 대모에 휩싸였고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체 대모에 휩쓸렸고  학교는 어지러워졌고  또 내 삶도 궁핍하다보니 결국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버렸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왔더니  교육학과가 폐과가 되어서  전 어쩔수없이  선교학과를 전공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위한 꿈을 깨고  그냥 저냥  졸업장만 받아들고 학교를 마쳤습니다.  견디기 힘들어 3학년 마치고 휴학계를 내고 1년을 쉬었는데  졸업은 해야겠기에  결국 졸업장을 어렵게 받아들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꿈을 꾸는데  다시 대학에 입학해서 졸업하지 못하는 악몽을 꾼답니다.

 

전 그렇게  미래에 대한 꿈도  비젼도 잃어버린채  이렇게  그냥 저냥 살고 있습니다.   군대에서 배운 워드실력으로 밥벌이 해가며  가끔 이렇게 인터넷에 글쓰는 즐거움으로....이렇게 글쓰게된 사연은....지난 3년동안  교회안에서의 분란때문에 쓰게되었습니다.

 

전 신앙생활보다  세상돌아가는것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해서  노사모도 가입하고  노빠로  인터넷 여러군데 토론방에서 논객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신앙인으로서의 모습보다  좀 타락한 모습으로 살았죠...ㅋㅋ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 빼면  교회생활의 즐거움은 많지 않았습니다.

 

교회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교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관심도 없고  예수님이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고  그냥 좋은게 좋은거라며....웃고 즐기며  마냥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늘 행복했습니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의 풀을 입히시는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전 근심과 고민을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담임목사가 오고  교회는 싸움판으로 변했습니다.  장로님들은 쫓겨나고  목사님과 싸우던 장로는 하늘나라로 부름받아 가시고,  친구들은 교회를 따로 설립해서 떠나버리고....전 교회를 지키기위해서 애쓰다가  친구들에게 왕따당하고 장로님들에게 욕먹고....목사파라고 낙인찍혀 이리저리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교회를 지키기위해 애썼던 지난 시간들...전  2006년 해가 저물때  사실  죽고싶었습니다.  교회가 쪼개진 그해 친구들이 다 떠난 그해 전 하나님을 원망하고 눈물로  저무는 해를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힘든시간 견디기 위해 사진기를 들고 이리저리 쫓아다녔습니다. 

 

2007년도 새해  일출을  보기위해  강원도로 달려갔습니다.  오는길에  극동방송을 들으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2007년도에는 아픔으로 가득찬 우리교회에  작은 나사못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아픔을 극복해갔습니다.  

 

교회는 성도님들의 아픔을 치유한다며  내적치유 프로그램을 한다고  알파코스를 진행했습니다.  처음엔 좋은 프로그램이라고만 생각하고  세벽1시까지 데코하며  까마득히 어린 동생들을 대리고  선생님 소리들어가며 그 아이들과  웃으며 알파1기에 봉사자로 참여했었습니다.

 

알파 간증자가  금이빨 척추치료 넘어뜨리는것과 교회에서 수군거리는것을 들으며  전 알파코스가 문제 있다는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알파코스가 뭔지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알파코스의 문제점을 알게되고  또 알파를 연구하면서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하나하나 껍데기를 볏겨나갈때마다  충격속에 휩싸였고  전 기독교가 참 많이 변질됬구나 타락했구나  나도 속고 있었구나  깨달으면서 충격을 먹었습니다

 

전 솔직히 교회 돌아가는거 관심없었습니다. 신복음주의가 뭔지  천주교가 어떤지  열린예배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솔직히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아이들과 즐겁게 보내는 시간들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2007년도  작은 나사못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그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 세운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3시까지 성경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자료를 찾아 알파를 연구하고......

 

그리고 그와 함께  교회가 분열되고 찢어지게되고 친구들이 교회를 떠나버린 그 이유를 알게되고  어쩔수없이 목사와 대립각에 서서  목사님과 전쟁을 치루게 됬습니다.  일대일로  전쟁을 치루기 원했지만 장로님들이  목사편에서서  제가 교회에서 맡고 있는 직분들을 다 뺏아버렸습니다. 

 

장로님들이 저지른 죄악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교회 분열의 가장 큰 책임이 바로 현 장로님들에게 있고  목사는 그걸 이용해서 자기의 성을 굳게 구축하는 짓을 자행한 아주 큰 죄악을 저질렀기에   그 사실을 알고 공개한  나를 처단함으로서 끝나는 싸움처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고 진실은 밝혀지는 법입니다.   전 알파코스를 연구하면서  이 대한민국의 기독교가  완전히 변질된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천주교가  기독교를 무너뜨리기위해서  벌인 수십년간의 노력끝에  이 교회들이 전부 천주교화 되어버렸구나 라는것을  깨닫게 된것입니다. 

 

전 행위구원도 관심없고  은혜구원도 관심없고  전  신학적 지식은 있었지만  그것을 삶에 적용시켜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냥 무관심하게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알파코스를 연구하면서  교회들마다 행위구원을 강조하고  성도님들마다  행위구원을 말하고 교회를 떠나면 구원을 잃는것처럼 말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큰일났다는 생각을 가지게되었고 위기감을 느끼게 된것입니다.

 

인터넷으로 알파코스와 전쟁을 치뤘습니다.  그리고  알파코스와의 전쟁은 교회와의 싸움도 되었습니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때도 많았습니다.  전 원래 조용하고  아이들과 지내는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싸움을 싫어했습니다.  목사되는것도 싫어했었는데 지금도 목사되는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제가  싸움의 핵심이 되어버렸습니다.

 

힘들어서 하기 싫다고 하나님께 투정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힘을 주셨고  총회때  알파코스 G12가  이단심의에 상정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응답을 듣고  전  9월총회때까지  최선을 다해 상정될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제 노력도 조금 보탬이 되서  총회가 이단심의에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실망한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알파코스 이단 분별해야하는 사람들을  알파코스를 물밑에서 도와주는 사람들로 채운것입니다.  쉽게 말해  고양이에게 생선을 지켜달라고 한것입니다.  그래서 절망입니다.  회복 불가능입니다.

포기했습니다. 이제 신앙글을 써보기로 생각하고 요즘은 알파코스와의 전쟁을 묻어두었습니다.  오직  바른 신앙에 대해서 고민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시간들을 신앙생활했지만  알파코스와 싸우고  이단분별하기위해 공부하고  많은 목사님들과 통화하고 그렇게 2007년도를 보내는동안  신앙이 부쩍 자란것을 느낄수 있게됩니다.  신앙만 자란것이 아니라 인격이 자라고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전 지금까지  여자친구 없이 좀 외롭게 살았습니다.  38년을  살며  딱한번 연애를 해봤지만 그것도 1년만에 헤어지고  사실 변변한 연애를 해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외로운 나에게  반려자를 허락했습니다.  올해 결혼할 예정입니다. 

 

신앙도 성숙하고  그리고 반려자도 생겼습니다.   오늘 이 고백을 하기 위해  자판을 두들겨봅니다.  38년의 외로움을 끝내고  내 반쪽을 만나 이제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 몸을 지켜야함을  깨닫고 요즘은 정말 조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빛과 소금처럼 세상을 살아요"  하나님이  오랜 시간 외롭게 만드셨는데  정말 내가 바라는  성숙한 인격을 가진 자매를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나와 신앙철학도 비슷하고  건강한 자매를 만났습니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의 풀을 입히시는 하나님   전 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자매를 만나게 해주세요.....있을때나 없을때나  가난할때나 부할때나  아플때나 건강할때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모든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그리고 불평하지 않는 자매를 만날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그런 자매를 만났습니다.  다른 기도는 하지 않았는데.....그저 이런 자매면 좋습니다. 했는데   얼굴도 예쁘고  날씬하고 착하고  성실하고  그리고 성경책도 세번이나 완독한 신실한 자매를 만났습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니 다른 모든것도 허락하신것처럼.....

 

많이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님들  주안에서 하나된 형제님들.....우리는  주님께서 돌보십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풀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근심걱정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믿음안에서 살면  우리는 불평할 이유가 없는 삶을 살게됩니다. 

 

앞으로도 꼭 그런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는  감사하는 삶을 살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신재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