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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나의 신앙 간증

십일조에 대한 나의 짧은 견해..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분이십니다.   십일조는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의 의미도 완성하러 오신분으로 보고 싶습니다.  십일조의 완성은   모든것이 하나님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곧 소유의 개인화가 아니라  소유의 공동화입니다.  
 
왜 기독교는 나눔을 강조할까요?   그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것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에게 주어진 재물은  맡겨진것이지 가지라고 준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질수 있을수 있는 그런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질은 내몸이 아닙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에게 하나님께서 사용하라고 맡겨진것이 물질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준것을 내것이라고 우기면 안됩니다.  그것이 바로  탐욕의 시작이고  세상이 타락하게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준 물질은  나누라고 있는것입니다.   나눌때 더 커지는것이 바로 돈의 성격입니다.   왜 말세가 될수록 나눔이 사라지게 될까요?   그것은 서로 나누어야 배로 커지는 돈의 원리가   어느 한쪽의 일방적 희생을 강조함으로서 돈이 한쪽으로 몰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때문입니다.

지금 전세계의 돈들을 보면   한쪽으로 다 쏠려있습니다.   각 나라들의 부의 편중을 보면 상위 몇%가 국부의 90%이상을 장악하고 있는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것은 바로 부의 편중현상때문입니다.  세상이 공평치 못하고 맡겨진 것을 나누지 않고  힘있고 가진자들의  폭압과  연약하고 부족한 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함으로서  희생을 바탕으로 돈을 갈취하는 자들의 부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재물 돈의 원리 탐욕이 문제가 되어 늘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서로 다투고 싸우고 빼앗고 죽이고 하는 일들이 벌어지니까 만들어진것이 사회보장제도이고 세금제도입니다. 곧 강제적 나눔의 시스템이라는 것이죠.  그것이 하나님이 세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운영되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는데 바로 십일조라는 공적 세금제도인것입니다.  십일조는 일종의 세금입니다.

십일조의 원리는 나눔입니다.   서로서로 10/1을 나누어서 과부와 고아를 돕고   소득이 없는 레위인을 돕는것이 바로 10/1조의 원리입니다.  십일조를 통해서 가진자들의 탐욕을 제어할수 있고 약한자들의 어려움을 사회가 감당하고 혼란을 막을수 있는 국가 시스템이 흔들리지 않고 기초를 놓을수 있게된것이 바로 이런 십일조와 그와 비슷한 세금제도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이 제정한 10/1조의 원리를 가지고 교회의 덩치를 키우는데 앞장섰습니다.  부의 편중이 교회안에서도 나타나는데  가난한성도, 부유한 목회자로 양분되는 쪽으로 이상하게 변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십일조를 자기들의 일한뎃가로서 정당히 받아야할 몫으로 강조하고 성도님들에게 십일조를 뜯어내기 위해 축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성도님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십일조를 내기 싫어하면 하나님께서 말라기서에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까지 했겠습니까!!   십일조를 내기 싫어하는 인간의 성품은 어쩔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깝기때문입니다. 인간의 죄악된 성품은 나눌줄 모르고 탐욕으로 채울줄만 압니다. 성경은 이런모습들을 많이 옅볼수 있는데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나타납니다.
 
돈을 땅에 묻어주는것은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정당하게 사용하는것이 아닙니다.  10달란트를 가지고 장사를 하여 10달란트를 남길수 있는건 그만큼 사용하고 투자하기 때문에 나탈수 있는 것입니다.  주인이 1달란트를 가진자에게 책망한것은 은행에 저축하여 이자라도 벌어야 한다는 그 말은 곧 1달란트가 은행에 있는동안 그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빌려 쓸수 있는 여유자금이 되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강요한다고 해서 내고 강요안한다고 해서 안내는 그런 헌금이 아닙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의 헌금방식과 전혀 모습이 다릅니다.  예수님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라고 해서 십일조도하고 의와 인과 신도 행하라는 말씀으로 십일조를 폐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틀렸다고 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강조한것은 행위가 아니라 마음일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한쪽의 일방적 희생이 아닌 나눔의 보편화가 이루어진다면 자발적 십일조를 내는 성도님들이 늘어나게 될것입니다.   교회가 가난한 성도를 보호하는 역활을 감당하면   그 가난한 성도님들을위한 부유한 성도님들의 자발적 헌금은 강요하지 않아도 교회에 차고 넘치게 될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가난한 성도를 보호하지 않으며 오히려 가난한 성도의 헌금액수가 적은것에 불평을 하고  가난한 자들이 교회 들어오는 것을 탐탁치 여기지 않고  부자들이 많이 교회 나오는 것을 원하는 모습을 보이면 과연 주님이 기뻐하실까요?  버는돈이 생활비에도 턱도 없이 부족한데 그 돈에서 십일조를 요구하는 것도 솔직히  이건 착취가 될수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다워져야합니다.  십일조는 십일조의 정신으로 돌아가야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십일조의 정신은 나눔입니다. 그것은 한쪽의 일방적 희생이 아닌 가진자들의 넉넉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을 제어하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소한의 양심을 행하라는 뜻입니다. 

전 부자들이 하는 말을 아주 경멸하고 증오합니다.   특히 가난한자들에게 베풀면 더 많은것을 요구한다는 그런 싹수가 노란말들은 정말 부자들이 해서는 안될말들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스스로 고기를 잡을수 있는 능력이 없기때문에 더 많은것을 요구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현실에 처한 자들입니다.    
 
부자들은 스스로 고기를 잡을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누구의 도움없이도 잘 살수 있는 자들입니다.   스스로 잡은 고기의 10/1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나누며 그것을 기쁘게 누리고  더 많이 잡아 많이 필요치 않을때는 더 많이 나눌수 있는 넉넉한 삶을 사느것이   바로 십일조의 원리입니다.  창고를 더 지어 물질을 쌓는것보다 창고가 부족할정도로 많이 수확했다면 그것을 나누는것이 주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운 삶일까요!

예수님의 십일조의 완성은 오병이어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타나고 있다고 단정짓고 싶지만 이의를 제기할 사람들이 있을것같아서......  나눌수록 더 커지는것이 천국의 원리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가진것을 다 내놓았을때  그리고 그것을 서로 나눌때 12광주리에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것입니다. 십일조가 아니라 내가 가진것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때 그것은 수천배 수백배로 풍성해져서 돌아올것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늘 헌금할때 오병이어의 기적을 생각하며 기도하는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부자들은 결코 자기것을 내놓지 않습니다. 탐욕은 탐욕을 낳고 결국 자기자신을 죽이게됩니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가는것이 어렵다고 예수님이 말씀했는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기독교인들에게 부자로서 사는 삶에 대한 책도 많이 나와있는데....이 부자들에게 참 안타까운것은 십일조만 하면 땡하고 십일조만으로 신앙생활을 다한것처럼 말하게 하는것만큼 큰 죄악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록펠러의 십일조 생활에 대해서 책자가 있지만 이것만큼 속이는 책자도 없는것입니다.  십일조하면 록펠러가 되는것이 아닙니다. 록펠러는 우리가 상상할수 있는 돈을 가진 자가 아닙니다. 상상할수 없을만큼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돈에 십일조하면 엄청나게 많은 헌금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머지 십의 구를 생각하면 아마 상상이 가지 않을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은 하나님이 그 나머지는 다 록펠러에게 준것이라고 생각할수 있겠죠...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니 그 책이 문제가 없다고 할수 없겠죠^^ 제가 읽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안봐도 비디오입니다.   10/9의 그 풍성하고 넉넉한 삶을 허락하신다는데 10/1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신앙생활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자에게 10/1은 별것아니지만 가난한 자들에게 10/1은 삶을 드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십일조라는 헌금의 의미는 10/ 1 만을 의미한다고 봐서는 안될것입니다. 

천국의 원리인 나눌수록 커지고 풍성해진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인간의 욕구속으로 집어넣어 축소시키고  십일조를 강요하여 어떻게든 십일조를 뜯어내려는 지금의 교회 모습은 결코 천국의 모형이 될수 없습니다. 

십일조가 아니라 모든것을 다 내놓고 그것을 나눌때   오히려 더  풍성해지고  풍성함이 풍성이 남는 천국의 원리는  하나님이 신약의 시대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십일조의 완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십일조.....죄악된 인간의 탐욕을 제어하기 위해 10/1이라도 내놓으라고 제정한 법   그것을 지키지 못해 이거라도 제대로 지키면 큰 축복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한숨소리......목사님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것이라고 말하지만  저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의 한숨소리로 들리니  제가 이상한것인가요?
 
전 더 많은것을 요구합니다.  가진자들은 그의 넉넉함을 더 많이 나누어야하고  10/1을 내놓으면 생명을 내놓는것같이 어려운 사람들은 오히려 가진자들의 내려놓은 것에서 10/1을 얻어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10/1을 걷는곳이 아니라  교회안에 있는 어려운 성도님들을위한 10/1을 베풀수 있는 모습이 우선적으로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천국의 원리가 이 땅에 실현되기는  불가능하고 그저 꿈으로 그치는것이라고 밖에 볼수 없고....그러니 어쩔수 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주여 어서오시옵소서라고 말할수 밖에 없는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체념하는 길밖에 없음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