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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나의 신앙 간증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정말 매일 읽어도 새롭습니다.

산상수훈을 참 즐겨 읽습니다.  가장 많이 읽을때가 어느때냐면  교회에서 상처받고 눈물 징징 짤때입니다. 왜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사나? 하고 한숨푹푹쉬면서....

 

저도 죄가 많습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중에 하나가  엽서를 받았는데  거기에 "너 간음했으니 회개해"라는 문구입니다. 제가 어릴적에 연애편지를 좀 썼거든요^^ 연애편지가 간음죄를 진건지?  사랑하는건 간음이 아닙니다.  간음죄라는것은 사람을 사랑하는것이 아니라  쾌락을 사랑하는것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나의 쾌락을 위한 도구로 대하는것이 간음죄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을 나의 도구  성공의 도구, 물질을 주는 도구, 하나님을 도구처럼 생각하는것이 간음죄입니다.  영적인 간음죄에 우상숭배가 있는데 왜 우상숭배가 간음죄냐면 하나님은 우리의 성공의 도구나 쾌락의 도구나  물질을 주는 도구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그런걸 요구할때 하나님은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런걸 듣지 않으니 인간들은 하나님께 요구해도 듣지 않는다고  바알신을 만들고 아세라신을 만들고 온갖 잡신들을 만들고  우상을 만들어서  이 우상이 나에게  돈을 줄거야 나에게 건강을 줄거야 나에게 쾌락을 줄거야....이런식으로 우상에게 절하게 되는것이 바로 우상숭배이며 영적인 간음죄가 되는 것입니다.

 

말이 좀 어긋났지만  이런 말을 듣고 많이 화가 났었는데  뒤돌아보니 내가 그짓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 그래서 많이 괴로왔습니다.  제가 제일 자랑많이 하는게 20년 유년부에서 교사생활한것입니다.  제가 좀 교만해서 하나님이 벌주셨다는 생각이 드는데 제가 20년 교사생활 자랑했을때 그걸 안한 사람들은? 나에게 얼마나 원망했을까요?  그래 너 잘났다고.....참 미련하고 멍청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깨닫게 해주신것에 대해서 감사드리고 요즘은 만나는 분들에게 그런 말 안합니다.(여긴 인터넷이라서...살짝꿍 말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상상수훈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복있는 사람에 대해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세상의 소금/빛,  율법의 완성, 성내지 말라, 간음하지말라, 이혼하지말라, 맹세하지말라, 보복하지말라, 원수를 사랑하라, 구제에 대해서, 기도에 대해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금식에 대해서,  하늘에 재물을 쌓으라, 눈은 몸의 등불,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남을 판단하지말라, 거룩한것을 욕되게 하지말라, 구하라.찾으라,두드리라, 율법과 선지자의 정신, 좁은문,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말씀을 듣고 행하라,  대충 주석에 나오는 대로 순서를 나열해 봤습니다.

 

이 순서를 보면 참 신비하지 않습니까...예수님의 가르침은 중구 난방이 아닙니다.  순서대로  잘 가르침을 전하고 있음을 느낄수 있습니다.  복있는 사람은.....으로 시작해서  이땅에서 신자들이 살아가야 할 모습에 대해서  그리고 신자로서의 책임에 대해서 그리고 그 책임을 수행하는것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해서 그리고 이 모든것을 행하는것이 어렵다는것을 설명하고 있으며 이것들을 행할때 주님의 뜻으로 하지 않으면 주님은 모른다고 하실것을 경고하시면서  말씀안에서 행하기를 권고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철학과 비교해볼때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 철학자들 교육자들의 가르침과 별반 다를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의 양심에 이렇게 하라고 기본적으로 만들어놓은 품성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고 결국 죄의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선을 행하고 싶어도 행할수 없는 위치까지 떨어지고 만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인간에게 하나님이 빛을 비추는것이 아니고  양심을 완전히 없애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이 없어도 선을 행할수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보다 더 깨끗하고 아름다운 양심과 행실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우리는 얼마든지 발견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는데 그것은  참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선한행실과  자기의 욕심과 나타냄 자랑을 위해서 한 행실은 하나님앞에서 결코 숨길수 없다는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모든 행실이 어디서 부터 비롯�는지 다 알고 계신것입니다.

 

산상수훈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것들을 행할때  주안에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행하지 않는 선행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산상수훈을 대할때  구원을 얻은 백성이 아니면 이 말씀을 바로 행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하는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반석위에서 우리가 이런 착한 행실로 집을 지어야 한다는것입니다.  믿음의 반석이 없이 자기의 공로로 집을 열심히 짓는것은  모래위에 짓는 집과 같아서 무너질수 밖에 없다고 하나님이 말씀하는것입니다. 

 

인간의 행위로서도 충분히 이 말씀을 따라 살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로서 행한것은  모래위에 짓는 집과 같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이 말씀은  천주교식 거짓믿음(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아래서 행하는 착한 행위는 하나님이 인정치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는 것이  우리의 착한 행실 이전에 믿음을 강조합니다.  그 믿음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비롯�나요?  바로 말씀입니다.  들음에서 믿음이 난것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으로 우리의 죽은 영혼을 살리셔서  말씀을 듣게 하고 깨닫게 했기 때문에 가능한것입니다. 

 

곧 산상수훈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아래서 행하지 않으면  모래위에 짓는 행위에 불과함을 마지막에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을 가르칠때 가장 우선해서 가르쳐야할것은  복음이며  진리입니다.  왜 예수님을 믿어야하고  예수님이 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이 말씀이 좋다고  그냥 이말씀을 행하면 구원을 얻을거라는 식으로 하면 예수님은 나중에 난 너희를 모른다. 라고 말씀하실것입니다.   모래위에 집을 짓고 아름답다고 자랑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산상수훈을 공부할때 이점을 확실하게 먼저 해두어야 할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면  산상수훈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입니다.  성경의 중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것입니다.  여기서도 중요한것은 하나님이 항상 우선입니다. 이웃은? 하나님을 사랑하면 당연히 해야하는것이 이웃사랑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며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산상수훈의 중요한 정신은 맨앞과 맨뒤에 나오는데  뒷부분에 보면  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하나님을 사랑한다고하면서  말로만 하는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데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증거는 어디서 나와야 하나요?  바로 이웃사랑이 증거가 되는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것을  이웃을 사랑함으로서 표현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참 어려운것이 신앙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건 내모습인데  어찌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다보면  이웃에게 내가 드러나고  내가 자랑스럽게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는 행위인데  내 자신이 우쭐해져버리는것입니다.   이런 경우가 생기는것을 하나님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아와 과부를 도우라.....우리는 대접받으려고 남을 대접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대접받기 위해 대접하는것이 우선이지만 대접받기위해서 대접하는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것은  대접받을수 없는 자들을 대접하기를 바라는것입니다.  그것이 참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행할때 우리는 좋은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로 하나님앞에 인정받게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좋은 나무입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을수 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반석위에 집을 짓는사람,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  대접하길 즐거워 사람,  이런 사람들은 좋은 열매를 맺을수 밖에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사람은 이미 하나님으로 부터 인정받은 좋은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으니...앞에 열거된 착한행실을 하게 됩니다.  재물보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며,  남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무례이 행치않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대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함부로 맹세하여 자기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으며,  원수를 사랑하여  하나님앞에 죄를 짓지 않고, 간음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고 , 이웃과 화해하고 용서하여 하나님께 용서받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가 되어  결국 그런 행위들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을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율법을 완성해 나간다는것은  성화되어가는것을 말하는것인데  이또한  우리 스스로 하는것이 아님을 아셔야합니다.  율법을 완성하신분은 예수님이시고  예수님 안에 있지 않으면 우리는 율법을 알수도 없고 행할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안에 있을때 우리는 율법을 완성할수 있게됩니다.  곧 믿음없이는 이 산상수훈을 우리가 행할수 없고 믿음없이 성화되어가고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돌릴수 없다는것을  여기서 말씀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착한 행실을 할때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에 드러나게 될것이고  세상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게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하는 이유와 당위성을 우리에게서 찾게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빛은 감출수 없고 소금은 그 맛을 안낼수 없으니  우리가 아무리 숨고 싶어도 숨을 수 없고  아무리 감추고 싶어도 감출수 없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될 수 밖에 없게되는것입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게되고  그 열매는  하나님과 이웃을 기쁘게 하며  그런 열매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이 영광받는  참 기독교인으로 삶을 살게되는것입니다. 

 

그런 삶이 바로  복있는 자들의 삶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한 자들이며, 마음이 청결한 사람들이고, 화평케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착한 행실로 인해 어떤 핍박이 와도 그것을 기뻐하니  이렇게 복받은 자들은  하늘의 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바로 이런 삶을 살았기에 우리에게 복음이 전파된것이고  우리가 그 복음을 듣고 구원의 반열에 참여하게 된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삶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켜가며  빛과 소금의 역활을 통해서  좁은길의 삶이 참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고  그것이 반석위에 집을 짓는 삶임을 세상에 가르침으로 많은 불신자들을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산상수훈....참 어려운 삶이지만  우리가 주안에 있고   주님이 우리안에 있으면  능히 감당할수 있는 아름다운 삶입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주의 자녀들은  다 좋은 나무를 가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