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이런 질문을 던지면 참 한심스러운 질문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안계신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고 충만하신분이십니다. 10억인구가 한목소리로 하나님께 기도해도 하나님은 그 모든기도를 다 들으시는 충만하신분이십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을 다 다스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신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임재연습이라고 불리는 신앙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시다는것을 무시한 생각들입니다. 곧 인본주의적 생각이라는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계시고 저렇게 하면 하나님이 안계신것처럼 느껴진다는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그런분이신가요?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때 눈을 돌려주시길 바라고 안보시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때는 한탄속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지켜주고계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애굽왕에게 속였을때 하나님은 다른곳을 보고계셨을까요? 모세가 애굽의 군병을 죽였을때 하나님은 그걸 모른척 했을까요?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않으셨습니다. 필요할때 간섭하시고 그리고 지켜보시고 잘못된것이 더 잘못되지 않도록 마음을 움직이시고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살아있는 양심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일반은총의 양심이 있습니다. 믿는사람들에게는 죽은 양심 화인맞은 양심이 아닌 살아있는 양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중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죄라는 의미를 윤리와 도덕에서 찾을뿐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죄의 의미를 깨닫고 찾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복잡한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죄라는 의미는 양면성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규정으로 죄를 규정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법규라는것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법 곧 성령의 법이 있으니 그것은 살아있는 양심이 법이 된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해야할것을 생각나게하시고 그것을 행하게 하시며 우리가 죄악속에 있을때 그것이 죄임을 살아있는 양심속에서 깨닫게 해주십니다. 문제는 신앙의 성숙도에 따라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달라지는데 그것은 어린아이의 법적용과 성인의 법적용이 다른것처럼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시는것이 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어릴때에는 하나님의 보호속에서 죄를 짓지않도록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인도하시지만 이제 성인이 되면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게되며 혹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께 회개하는 모습으로 바로 돌아오는 성숙한 모습을 가지게됩니다. 어릴때에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간섭이 있어서 늘 하나님의 보호함을 느끼고 살고 그것이 하나님이 늘 임재하는 것처럼 느끼고 행복하지만
이제 믿음의 분량이 커져서 신앙이 성숙하고 단단한것을 씹을수가 있게되면 그만큼 더 책임이 지워지는데 그것은 이제 하나님이 나에게 항상 임재하는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할수 있는것을 더 많이 허락하신다는것입니다. 우리가 자라 선택의 많은 책임들이 주어지는데 성인이 될수록 그 책임이 무거워지고 삶의 무개가 점점 무거워지는것처럼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들을 돌봐야하며 신앙이 어린자녀들을 책임져야하는 위치로 성숙해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을 실천해야합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결코 어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살때는 우리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헤매일때가 있지만 신앙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길을 가르쳐주셨으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길을 갈수 있도록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얼마나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아래 복종시키느냐의 문제입니다. 곧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것이 참 신앙인의 모습이며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라는것입니다. 아이들은 부모님들에게 필요한것이 있으면 떼쓰고 울고 해서 그 필요를 채우는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떼쓰고 울면서 그 필요를 채워달라고 하는 모습은 어린아이와같은 신앙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성숙하면 하나님께 떼쓰지 않으며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것이 바로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자라 부모님에게 무엇을 해드릴것인가를 고민하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것이 자녀의 모습이고 자녀들은 어리나 늙으나 늘 부모님이 볼때는 어린아이처럼 보이듯이 하나님이 그 자녀들을 볼때는 다 어린아이처럼 보인는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하여 늘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늘 하나님이 보신다는 생각을 하며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하는가...라는 고민에 부딛칠때...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하나님이 바라시는것이 무엇인지를 선택해나가며 사는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연습이라고 할수 있을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순종했듯이 하나님이 나에게 순종을 요구할때 그 순종에 따를수 있는것이 바로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경지에 가기까지 참 어려운 과정들을 겪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그 과정들을 하나하나 거쳐갈때마다 그냥 뒷짐지고 계시는것이 아니라 늘 간섭하시고 가르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는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임재 아닐까요?
우리의 삶은 세상사람들의 삶과 다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사망한 자들의 삶과 영적으로 생명을 얻은 사람들의 삶이 다르고 이미 사망의 종이 된 사람들의 삶과 생명으로 영생을 얻고 천국시민으로 살아가는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늘 묵상해야하는것은 천국시민의 삶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넉넉함입니다. 세상사람들을 향해 기독교인들은 늘 넉넉해야하며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풍성해야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인의 삶이 되어야합니다. 넉넉함이 있고 풍성함이 있기에 우리는 세상을 능히 이길수 있으며 넉넉함이 있고 풍성함이 있기에 우리는 조급하지 않으며 희생을 감당할때 기쁨으로 그 희생을 감당할수 있게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삶은 하나님으로 인해 천국의 풍성함을 누린는 삶입니다. 그 삶은 온유하며 긍휼하며 겸손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마음을 늘 청결하게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삶입니다. 그 삶을 예수님이 산상수훈 뒤에 많이 기록했는데 그 삶의 중심에는 바로 우리가 천국시민이라는것입니다.
우리는 주로 인해 가난해졌지만 주로인해 풍성한 삶을 누립니다. 그것은 주님이 풍성하시기 때문입니다. 곧 모든 신앙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풍성한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풍성한것입니다.
그래서 아내를 사랑할때 내몸같이 사랑할수 있으며 부모님을 섬길때 하나님을 섬기듯이 섬길수 있으며 이웃을 향해서 손해보며 5리를 가달라고 할때 10리를 가줄수 있고 겉옷을 달라할때 속옷까지 줄수 있는 넉넉한 삶을 살게되는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함과 함께동행하는 삶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임재와 임재연습이라고 어렵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이모든 말의 핵심은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우리는 풍성해야합니다. 나는 가난해도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넉넉해야합니다.
이것을 몸에 익히는것이 경건의 연습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빚을 갚을수 있는 넉넉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과부와 고아 그리고 가난한자들을 돕는것입니다. 왜 과부와 고아를 돕는것이 경건한 삶일까요? 그것은 받을것을 생각하지 않고 주는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향해서 우리가 사랑을 베풀때 받을것을 생각하고 베푸는것이 아니라 받지 못할것을 생각하고 베푸는것이 바로 참 사랑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되 받을것을 생각해서 사랑해서는 안되며 베풀며 받지 못할것을 각오하고 사랑해야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의지가 되는것입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지니.....낙심한다는 말은 바란다는 말입니다. 선을 행했으니 뭔가 보답이 있을거야?라는 바램들 말입니다. 절대로 우리는 그런것을 바래서는 안됩니다. 바라지 않아야 낙심치 않습니다. 선을 행하되 기쁘게 행하고 주께 하듯해야합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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